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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상
제목 :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갑시다!
성경 : 빌 3:12-14
찬송 : 360장
저자 : 이삼규 목사
출처 : 2025119 낙양교회 주일 낮 고별예배
빌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 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빌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세월은 유수와 같습니다. 1992년 12월 8일에 낙양교회 39세의 나이로 부임했는데 33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어느덧 은퇴할 시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토록 젊은 나이에 우리교회에 부임해서 사역을 시작했고 성도님들의 무한한 사랑을 받으며 지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젊다고 무시하지 않고 주의 종으로 깍듯이 섬겨 주셔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가 33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진지한 자세로 삶에 임해야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인생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삶의 문제를 풀어나가고 죽음을 이길 수 있을까, 어떻게 남은 인생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영혼의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빌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 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빌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바울은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말씀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려야 합니다. 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멸망을 향하여 치닫는 이 허망한 세상에서 진정한 성공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부르신 부름의 상급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다음 세 가지를 행해야 합니다.
√첫째, “여호와는 위대하시다”라고 말하라!
√시 40:16 주를 찾는 자는 다 주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말하기를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우리 신앙인들의 가진 문제의 근본 원인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작은 하나님’으로 보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위대하시다”라고 말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하나님을 큰 하나님으로 만들어라”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의미입니까? “하나님을 크게 보라”는 뜻입니다. 하늘에 떠 있는 별은 본래 지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지만, 우리의 눈에는 아주 작게 보입니다. 본래 큰 별을 우리가 크게 만들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본래 큰 별을 크게 보기 위해 우리는 망원경을 사용합니다. 우리가 망원경을 가지고 별을 볼 때 우리가 별을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있는 별을 크게 보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큰 하나님으로 만들 수 없고, 다만 그분을 크게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유주의자들의 하나님은 작은 하나님이고, 복음주의자들의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이다.”라는 말이 오늘날 유행합니다. 복음주의자들의 하나님이 크신 하나님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은 하나님을 크게 보지 않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은 크시다”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작게 봅니다. 그러기에 두려움 없이 행하는 것입니다.
성경 가운데 중요한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3:8절이나 요한복음 3:16절은 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내 생각에 더욱 중요한 말씀은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1절은 성경이라는 거대한 집으로 들어가는 유일무이한 문입니다. 이 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성경이라는 집에 절대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만유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에게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그 무엇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어떤 믿음의 사람이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은
만유 위에 계시며,
만유 아래 계시며,
만유 밖에 계시며,
만유 안에 계신다.
하나님은
위에 계시나 낮은 곳을 굽어보시며,
아래 계시나 높은 곳을 살피시며,
밖에 계시나 유리 되지 않으시며,
안에 계시나 갇히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위에서 온전히 만유를 다스리시며,
아래에서 온전히 만유를 지탱하시며,
밖에서 온전히 만유를 품으시며,
안에서 온전히 만유를 채우신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크게 보십니까? 그렇다면 사람을 작게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인간적으로 위대하고 매력적인 사람들이 우리의 눈에 크게 보이지 않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눈에 인간이 크게 보일수록 하나님은 작게 보인다는 사실을!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전직 모 대통령을 ‘반인반신’으로 보며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눈에 하나님은 아주 작게 보입니다. 사람은 존경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숭배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들 끼리 서로 존경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지만 서로를 숭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도 영웅숭배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위대하시다”라고 말하십시오. 하나님은 자신의 영원한 목적을 위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계획에 따라 일을 추진하십니다.
오래 전에 장로교 사람들이 영국의 런던에 모여 그들의 교리를 체계화했습니다. 이것은 훗날 ‘장로교 39개 조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모든 교리에 대해서는 어렵지 않게 정의를 내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관한 교리를 정의하는 데에는 매우 어려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만족할 만한 정의를 내리는 데 실패한 그들은 완전히 실망하여 포기 일보 직전까지 갔습니다. 그때 토론회의 사회자가 앞에 앉아 있는 젊은 목사에게 “형제님, 하나님에 관한 교리에 대해 무엇이라고 써야 할지 깨달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젊은 목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앞에 있는 의자를 붙잡고 눈을 꼭 감고 머리를 흔들더니 이렇게 열렬히 기도하였습니다.
“오, 하나님!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지혜와 권능과 거룩함과 공의와 선함과 진리는 무한하고 영원하고 불변하십니다.”
그 순간 누군가 “바로 그겁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것을 하나님의 정의로 삼았다고 합니다.
노바티안(A.D 257년 경 순교한 로마의 장로)은 “하나님의 위엄을 묵상해 보라. 그러면 당신은 침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표현하든 그분은 그 표현에 담긴 것보다 더 크시다는 말입니다.
√사 40: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대하게 보기를 원하십니다. 신자들이 많이 모인다고 해서 큰 예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배 중에 사람들이 위대한 하나님을 보게 될 때 그 예배가 위대한(큰)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점점 더 크게 볼수록 그들의 예배는 점점 더 큰 예배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크게 보십시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삶과 사역과 죽음이 보잘 것 없는 것이 될 것입니다.
√둘째, 육신을 억제하라!
√골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우리가 두 번째로 해야 할 것은 육신을 억제하는 것, 즉 육신을 죽이는 것입니다. KBS1에서 방영한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손양원목사님에 대해서 방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도 방송을 보면서 너무나도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방송 말미에 손양원목사님과 평양신학교 동문이신 방지일목사님(한국 최초 선교사)의 인터뷰가 지금도 잔잔히 떠오릅니다.
예수께서 교회 세우러 오신 거 아니에요.
나를 위해 죽으려고 오셨어요.
그게 예수인데,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처럼) '나'는 죽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때려줘요.
속옷을 달라고 하면 겉옷까지 주라고 하지 않았어요!
완전히 나를 버리는 거란 말이야.
그런 것이 신앙의 기본인데
우리 손양원은 그대로 산 사람이 아니오!
육신을 죽이지 않고 어떻게 자기의 두 아들을 죽인 철천지원수인 ‘안재선’을 용서하고 양자로 삼을 수 있었겠습니까? 손양원 목사님 딸 손동희 권사님의 간증을 들어보면 아들이 죽고 난 후에 두 아들의 유품을 목사님이 건네받고 두 손이 부르르 떨면서 눈물을 흘리셨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면서 우리 아버지도 인간이구나라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손양원 목사님도 육신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땅에 있는 지체를 죽였기에 그 원수를 용서하고 양자로 삼은 것입니다. 만일 그분이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았다면 그는 평생 죄 값을 치르지 못하고 후회하면서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용서해 주어서 목사님의 양자가 되었고 손양원 목사님이 순교 당하셨을 때 상주로서 아들노릇을 한 겁니다. 그분의 아들이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놀라운 사랑의 열매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죽여야 할 옛 사람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교만, 비열함, 분노, 심술궂음, 색욕, 다툼 같은 것들입니다.
직분자들이여! 내가 말하는 옛사람은 무엇입니까? 교회의 각종 회의에서 자신의 잘못된 주장을 철회하지 않고 버티면서 교회의 목회자를 지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옛 사람’입니다.
찬양대원들이여! 내가 말하는 ‘옛 사람’은 무엇입니까? 혹시 자신보다 노래를 더 잘하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습니까? 혹시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지휘자나 모든 대원들이 알고 있는데 굳이 자신이 솔로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르지 않습니까? 그것이 바로 ‘옛 사람’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육신을 억제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 육신 때문에 여러분이 죽게 될 것입니다.
‘억제하다’(mortify)라는 영어 단어의 라틴어 어원과 ‘영안실’(mortuary)이라는 단어의 라틴어 어원은 동일합니다. 영안실은 어떤 곳입니까? 죽은 사람들을 두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이 단어들에는 ‘죽음’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육신을 억제한다는 것은 육신을 죽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을 죽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육신이 우리를 죽일 것입니다.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셋째, 단순하게 살아라!
√빌 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빌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모든 사람들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너무 많은 것을 알고, 너무 많이 보고, 너무 많이 듣고, 너무 많은 곳을 찾아다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인생에는 중심이 있고, 또한 주변부가 있습니다. 우리는 영혼의 중심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나가면 엉뚱한 것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심부에서 살지 않습니다.
√시 46: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만히 있어 자신이 하나님 됨을 알라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크게 소리 지르지 않으면 자신들의 신앙이 후퇴할 것이라고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까지 잠잠히 있어보면, 자기들이 이제까지 너무 시끄러웠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이제 저는 여러분과 헤어질 시간을 맞이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베풀어 주신 큰 사랑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여러분 곁을 떠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오셨습니까?
바울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오직 내가 그리스도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직 잡은 줄로 여기면 안 됩니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단순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저도 이제 주님과 단둘이 만나는 시간을 좀 더 많이 가지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리 저와 우리 성도님들 모두가 부름의 상을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주님께 면류관을 받아쓰며 기쁨으로 만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