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마재성지
한계령에 서서
썰렁한 바람을 온 몸으로
받았다.
여름 같은 봄날이라고들 하지만
이른 아침
역시 으스스 움츠러든다.
사방이 온통 아름답고 싱그럽지만
유난히
돌산들이 와 닿는다.
설악산 정상으로 오르는 입구
흘깃 쳐다보곤
저 앞으로 펼쳐진 병풍 같은 산들만 눈에 들어온다.
이젠
산행객들
하나도 안 부럽다.
전 같았으면
이 한계령
그냥 휘리릭 네발로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그냥 눈으로만 흡족하다.
저 작은 차
한계령 해발 900을 넘는 고지
오르느라 좀 힘들었을 듯
차도 나도 좀 쉬었다 가자
어제 어디부터 잘못되었지?
규칙적으로 생활해야 한다고
그걸 모르나
허지만
자유 분망하게
내 멋대로
일정도 세우고
하고픈 것들만 골라 하다 보니
자꾸 생활의 리듬이 깨어진다.
네 다섯 시간만 잤어도
아니면 오전 봉사만 걸렀어도
오늘까지
가라앉지 않았을 터인데...
어제
한계령을 넘을 땐 맹했고
오늘은 기가 푹 죽었다.
그냥 심드렁하니
빨랑 집에 가서 눕고만 싶다.
몸이 아니라는데
맘이 앞서가니
그여 피곤한 몸으로
수산항 첫 걸음을 감행하였다.
양양 수산항으로 가는 도중
마재성지에 잠시 들렸다.
이런
조용한 공간을 찾아도 마땅한 곳이 없다.
다른 성지보다 많이 작아 보이고
쉴만한 곳이 없다.
성지를 나와 주변을 걸어봤지만
밭자락의 원두막도 오를 수가 없다.
풍경도 좋고
왁자지껄한 식당도 많지만
내 취향에 맞는 곳은 없다.
홀로라서 더 그렇다.
부득이
샛길 한적한 곳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눈이 맑아질 때까지 앞 산만 들여다 보았다.
한강변
팔당댐
이어지는 길에
사이클링 족들이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지는 풍광은
좀 쉬었다 가라고
나랑 놀다가자고 하건만
내쳐 달렸다.
최대한 정신을 집중하면서
아차
한순간에 고속도로 진입로를 놓치고
계속해서 44번 국도를 내달았다.
한계령을 넘어서면서도
중간 중간 유혹하는 국립공원 입구들
모두 지나쳤다.
수산항에 도착하니
휴우~~~
5시가 넘었다.
좀 눈을 붙일까
아니지
자전거를 꺼내 올랐다.
정신이 좀 맑아지겠지
항구도 돌아보고
선사박물관이 있는 곳까지
자전거도로로 신나게 달려도 보고
약속된 시간에
요트계류장으로 들어섰다.
그림이 좀 다르네
허구 헌 날
홀로 떠돌아다니다 보니
바지들만 만나고
특히
짝 없는 바지들만 부딪친다.
만남을 기약한 요트의 선장도 부부
4학년 선주도 부부
5학년 선장도 부부
6학년 스키퍼도 부부
학년은 골고루
모두가 쌍이로다...
저녁을 곁들여
첫 인사들을 나누고
아직은 멀리 해야 할 이슬이도
몇 잔 걸치니
더 몽롱해진다.
요트 캐빈에서
세대를 넘나드는
자리를 갖고
바다의 무용담도 듣지만
남은 게 없다.
맹하니 들어서...
다시 세찬 바람이 점퍼 자꾸를 올리게 한다.
오늘만 날이냐
다음에 다시 오르면 되지...
산도
요트도
오늘은
미련 없이
집으로 가는거야
지난 시절
좋은 기회
숫하게 날렸지
이제
지난 세월 되돌릴 수는 없지만
남은 세월
제대로 살아야할 텐데...
하룻밤 사이에
큰 숙제 하나 안고
한계령을 내려간다.
카페 게시글
미주알 고주알
남은 세월 제대로 살아야지~~~- 한계령 너머 수산항 요트마리나
야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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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5.22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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