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명구는 우계 성혼(자는 호원)이 구봉 송익필에게 쓴 편지에 나온 문장이다. 우계 성혼은 구봉 외에도 율곡 이이와 도의지교(道義之交)를 나눈 관료이자 학자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가 담긴 「호원에게 답하는 편지〔答浩原書〕」속 우계가 보내온 편지를 읽다 보면 선비 특유의 도덕률보다 몸과 마음에 쌓인 애달픔과 그 안을 지탱하는 화자 나름의 소소한 자기 위안이 방어막 없이 펼쳐져 마음이 쏠린다.
당대에 이름을 날린 선조들이 쓴 문집을 읽노라면 몸과 마음을 닦아야 한다는 수양의 의지가 문장에 송곳처럼 박혀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강박적 반성에 이르게 한다. 그것이 명구의 조건일 수 있겠으나 때로는 다림질한 옷의 각진 주름보다는 현실의 고달픔이 배인 구김이 더한 울림을 주게 마련이다.
우계 성혼은 관직에 있을 당시 서인의 지도자로 활동하며 서인 동인 분쟁, 정여립의 난, 임진왜란 당시 선조에 대한 처신 문제로 인해 동인의 공격을 받았다. 죽은 후에도 남인 북인에 의해 관직을 빼앗기는 등 그 또한 여느 관료처럼 당쟁의 소용돌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 삶이어서였을까. 중년에 다다른 우계가 몸과 마음이 노쇠하여 책도 못 읽고 편지도 못 쓰고 그저 중앙에 현판만 걸어 놓는 학당에 누워 새소리와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한가로움을 즐기고 있다는 이야기가 애달프기만 하다.
성안의 부랑배는 오늘날 어떤 서생이 당신을 찾아오겠느냐며 서원의 문지기나 하라는 말로 그를 비웃기까지 한다. 찾아오는 이 하나 없는 학당에서 홀로 누워 이 편지를 쓰니 자신을 서원의 문지기라고 이를 만하다는 그의 자조적 고급 유머는 어떠한가. 그런 그를 죽지 않게 살려준 소일거리는 자신이 사랑하는 학당에 누워 손과 마음의 한가로움을 느끼는 일로 보인다.
나는 성혼이 다른 곳도 아닌 학당에 누워있다는 데 눈길이 간다. 관직보다는 후학 양성에 뜻을 둔 그의 성향이 오롯이 보이기 때문일까. 그에게 해방구란 학문의 공간이자 애정의 공간인 학당이었을 것이다. 나 또한 한때 삶의 의욕이 바닥까지 갔을 때 도서관 벤치에 앉아 햇살 속에서 책장을 넘기는 게 유일한 소일거리이자 낙이었던 적이 있었다.
이처럼 누구에게나 자신을 살리는 한 가지 일이 있다. 남들이 보기엔 변변치 않아도 나를 살리는 소소한 낙이자 버팀목. 돌이켜 보면 내게 있어 그러한 낙이란 대부분 결과를 바라지 않는 행위의 모둠에 가까웠던 것 같다. 당신을 죽지 않고 지낼 수 있게 하는 한 가지 일엔 무엇이 있나? 구봉과 우계의 편지를 읽다 보니 작지만 자신을 살리는 우리 각자의 낙이 새삼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