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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복음, 그 영원한 울림] (1) 생명의 교과서, 회칙 「생명의 복음」
가톨릭 신자로서 교리 · 도덕적 내용 동의할 의무 지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가 1995년에 반포한 회칙 「생명의 복음」에 대한 해설을 시작한다. 인간 생명의 불가침성을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천명하는 「생명의 복음」은 죽음의 문화가 판치는 이 시대에 생명의 문화를 건설할 것을 촉구하며 생명에 관한 교회 가르침을 전하는 사목교서다. 생명 문제에 관한 교회 교과서로 통한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애독을 기대한다.
천상의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지상의 생명 봉사자들에게 주신 편지
들어가며 : '얼떨결'의 성소와 '떠밀림'의 성소
서로를 모르는 신학교 입학 초기에는 '영웅적인' 성소 이야기들로 꽃이 핍니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주눅이 들곤 했는데, 성소 동기가 너무도 평범해 '거저먹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여 고민 끝에 발견한 나름의 성소가 있습니다.
1960년대 한강 홍수로 다리가 끊겨 고립됐던 마을 사람들이 서둘러 나룻배를 띄웠습니다. 만원버스처럼 가득 탄 채 강 가운데를 지나는데, 갑자기 여인의 비명이 터져 나왔습니다. "으악! 내 아기! 도와주세요!" 서로 밀치다가 그만 안고 있던 아기를 엄마가 강물에 빠뜨린 것입니다. 울부짖는 여인을 보면서도 "어이쿠!" "저걸 어째!" "누가 안 나서나!" 하고 탄식만 할 뿐, 무서워서 아무도 감히 뛰어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한쪽에서 풍덩 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웬 할아버지가 옷을 입은 채 뛰어들어 헤엄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뱃사공도 힘껏 노를 저어 마침내 할아버지가 붙잡은 아기를 건져 올릴 수 있었습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속에 배 위로 올라오자마자 다 젖은 할아버지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어떤 놈이 날 떠밀었느냐!"
세상의 거친 파도를 맞서 생명수호봉사자가 되는 일은 어쩌면 '얼떨결에' 그리고 '떠밀려서'야 가능한 성소일 것입니다. 어느 젊은 구역장 자매님이 자백합니다. "시간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데, 제가 젊다고 얼떨결에 임명됐어요."
교회에서 그리고 세상에서 '얼떨결'의 성소를 받은 생명 봉사자분들을 '떠밀림'의 성소를 받은 사제 필자가 동반하겠습니다. 'Fabricando fit faber'라는 라틴어 속담처럼 나무를 다루면서 목수가 되듯이, 헤엄치면서 헤엄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다행히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인간 생명의 교과서'격인 회칙 「생명의 복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긴장감 내려놓고 목차대로 따라가며 읽어갑시다. 인용되는 자료와 외국어는 글의 매끄러운 전개를 위해 꼭 필요할 때만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 : 회칙이란 뭔가요?
더 정확하게는 '회칙 서한'(回勅 書翰, encyclical letter)입니다. 간단히 '회칙'이란 "전 세계 교회에 대해 교황이 발표하는 공식적 사목교서로서, 그리스도의 교훈을 오늘의 사회, 윤리적 문제에 적용시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내용이 특별히 교리적이고 사회적이며 권위를 지니고 있지만 그 자체가 무류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 가르침이 시대의 변화에 따른 수정을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신자는 그 교리 및 도덕적 내용에 동의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가톨릭대사전의 '교황문서'가 설명해줍니다.
원래는 그리스어 '회람'(回覽)에서 유래된 단어로, 교회 안에서는 교회 전체를 위한 사목교서인 '회칙 서한'(encyclical letters)과 더욱 장엄하지만 교회 일부만을 위한 사목교서인 '회칙 교서'(encyclical epistles)로 구분합니다. 사목교서로 이보다 더 낮은 권위를 지닌 것은 '교황 권고'(Apostolic Exhort ation)가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신설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 시노드) 결과물들을 교황님 명의로 발표하게 되는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첫 번째 '교황 권고'는 「가정 공동체」(1981년)였습니다.
나가며
앞으로 마음 아픈 사연ㆍ사건들이 인용될 텐데, 관련된 분들께 미리 심심한 위로와 죄송한 말씀을 드립니다. 일주일에 30분 정도만 시간 내어주십시오. 천상에서 이미 '지상에서의 승리'를 기뻐하실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숨결이 우리네 생명봉사에 힘이 돼주실 것입니다. 다음에는 교황 문서와 문헌 이름을 살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생명의 복음, 그 영원한 울림] (2) 예수님 말씀의 핵심, 생명과 복음
회칙의 원천 헌장, 무류적 가르침으로 동의할 의무 지녀
천상의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지상의 생명 봉사자들에게 주신 편지
들어가며
"죽고 싶을 때가 많다. …왜 어른보다 어린이가 자유 시간이 적은지 이해할 수가 없다.…물고기처럼 자유롭고 싶다." 2002년에 고작 11살짜리 초등학생이 자살하며 남긴 글의 한 대목입니다.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를 드는 것조차 끔찍하지만, 지나친 성적 경쟁으로 자녀가 부모를 방화 살인하고 그 시체조차 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 전문가는 말합니다. "이런 사건은 수년간 지속된 갈등으로 발생하고, 갈등을 중간에서 중재하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 '죽음의 문화'가 이웃집에서 이제 막 내 집 문턱마저도 넘어서려고 합니다. 좀 '중재할 사람'은 없는지? '안타까움을 알아줄 사람' 어디 없는지?
있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지상에서의 승리를 얻어 하늘나라에서 우리의 '전달자'가 되신 천상의 복자 카롤 보이티야, 요한 바오로 2세 말입니다.
♂♀ : 「생명의 복음」이란 이름은 누가 지었나요?
교회 문헌의 이름은 통상 그 라틴어 본문의 첫 두 단어를 따서 붙입니다. 본 회칙도 그 첫 문장 "Evangelium Vitae penitus implicatum insidet in Iesu nuntio(생명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메시지의 핵심입니다)"의 첫 두 단어를 따서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이라 불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내용 이해를 돕고자 관련 주제의 일관성과 분량에 따라 항목을 끊고 일련번호를 부여해 찾기 쉽도록 해주며, 한 항목의 분량이 너무 많으면 단락(§로 표시)을 끊어 구분합니다. 예를 들어 「생명의 복음」 1항 §2이라 하면, "인간 구원의 빛이…"라고 시작되는 제1항의 둘째 단락을 의미합니다. 참 친절하고 정교하지요?
♂♀: 회칙이 비무류적이라면 '무류적인' 가르침은 어떤 것이 있나요?
비무류적 가르침(Non-Infallible Teaching)인 회칙이 "…시대의 변화에 따른 수정을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신자는 그 교리 및 도덕적 내용에 동의해야 할 의무가 있는" 이유는 본 회칙의 원천이 되는 문헌, '무류적인 가르침'(Infallible Teachi ng)으로서 교리와 도덕을 가르치는 '헌장'(Constitution)인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예 이참에 교황문서가 지닌 권위의 등급을 정리하고 가봅시다. 가톨릭대사전을 보면 교황문서는 교황이 입법한 문서(文書), 즉 넓은 의미의 'Constitutio'(헌장)와 교황청 해당 기관이 입법한 문서, 즉 'Decreta'(교령)로 구분됩니다. 또 전 세계 교회에 관한 보편적인 범위와, 특정인물이나 사건에 관한 개별적인 범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세분화하면 이렇습니다. ① 교황령(敎皇領, Constitutio)은 극히 중대한 사안에 대한 것으로, 교황에 의해 그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문서 중 최고의 권위를 지닙니다. ② 교황 자의교서(敎皇自意敎書, motu proprio)는 그 다음 가는 중대한 사안의 것으로, 대개 행정을 다룹니다. ③ 교황서한(敎皇書翰, Litterae Apostolicae)은 시성 발표, 주교나 추기경 서임, 교구 설정 등 행정을 다루는데, 일반적으로는 청원에 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④ 회칙(回勅, Encyclica)과 ⑤ 그 외의 강론(Homilia)과 담화(Allocutio)가 있습니다.
교회 문헌의 표준 언어는 라틴어입니다만 현대어들로도 동시에 발표합니다. 먼저 교황청 공식 일간신문인 로세르바토레 로마노(L'Osservatore Romano)가 보도하지만, 교황청 관보(官報)인 '악타 아포스톨리케 세디스'(AAS, Acta Apostolicae Sedis)에 게재될 때 법적 효력을 갖게 됩니다.
나가며
딱딱한 감이 있었습니다. 다음에는 회칙의 발표 동기와 구조를 살펴보겠습니다. 인내심을 발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명의 복음, 그 영원한 울림] (3) 왜곡된 생명 의식에 대한 반성
인간 생명에 대한 현대적 위협과 생명문화 등으로 구성
천상의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지상의 생명 봉사자들에게 주신 편지
들어가며 : '생명'과 '인간'에 대한 해묵은 오해
"생명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역사의 명령에 겸허해야 한다. 생명 위기와 삶의 황폐화를 낳게 한 현대 문명의 오류를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몇 년 전 '생명 평화를 위한 탁발 순례의 길'을 이미 9000리쯤 걸으셨다는 어느 스님의 말씀입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스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모순된 현대 문명을 자초한 인간 중심의 왜곡된 가치 의식과 삶의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해야 한다."
생명 평화를 위하는데 그 장애물이 '인간 중심의 왜곡된 가치 인식과 삶의 방식'이랍니다. 그러면 인간 중심이 아니고 '자연 중심'이면 온전한 가치가 될까요? '동ㆍ식물 중심'이면 생명 평화가 활짝 열릴까요? 과연 제대로 된 인간 중심의 가치가 구현된 적은 있기나 했나요?
♂♀: 무슨 이유로 회칙을 반포하셨나요?
본 회칙의 탄생 배경에는 1991년 4월 4~7일 로마에서 개최된 특별 추기경회의가 자리합니다. 그 회의는 오늘날 '인간 생명을 위협하는 세계적인 현실'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했고, 그래서 교도권의 최고 책임자이신 교황님께서 권위 있게 가르침을 내주시도록 청원했던 것입니다. 그런 심각성을 깊이 공감하고 계셨던 교황님께서는 마침내 105개 항목으로 구성된 본 회칙을 1995년 3월 25일 발표하셨습니다. 당시 필자는 로마에서 박사 과정을 마무리하는 중에 꼭 필요한 회칙인지라 기다리고 있었고, 다행스럽게 가톨릭교육성 장관 라기(Laghi) 추기경님께 학교에서 그 배경까지도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가톨릭교회의 공식 문헌을 한국에서 번역,보급할 책임을 맡은 한국천주교주교회의(CBCK)의 법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CCK)는 약 여섯 달 후 1995년 9월 20일에 우리말 번역본을 출간했습니다.
♂♀: 어떤 구조로 구성이 되었나요?
크게 보자면 1장에서는 현실 이해로서 인간 생명에 대한 현대적 위협(7항-28항)을 다루고, 2장에서는 생명에 관한 그리스도교의 핵심 메시지(29항-51항), 3장에서는 하느님의 신성한 법(52항-77항), 4장에서는 새로운 생명문화(78항-101항)를 위한 가능한 방법을 다루고 있습니다. 6개 항의 서론과 4개 항의 결론을 앞뒤로 배치해 전체 105개 항으로 이뤄져 있으며,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 마리아의 전구를 청하는 감동 어린 글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나가며
모순된 현대 문명에 대한 진단이 참 다르지요? 추기경회의와 교황님 시각에 의하면 자연을 거슬러서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 중심이 아니라서 현대 문명의 모순이 발생한 것입니다. 인간 생명은 도롱뇽보다, 새만금보다, 그리고 그 위대하다는 자연보다도 더 소중하고 또 존엄합니다. 유일하게 "하느님의 모습"(창세 1,27)을 간직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일부 인간 생명이 똑같이 존중받지 못하고 동ㆍ식물 생명의 수준으로, 또는 자연의 부속품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황폐화'된 것이지요.
우리글 중에는 분명히 같은 단어를 쓰는데 그 의미와 가치가 다른 것들이 있습니다. 그 결과 각자가 머리 속에 다른 그림을 가지고 같은 단어를 쓰게도 됩니다. 예를 들어, 스스로 그러한 자연(自然)과 하느님 피조물로서의 자연(Nature)은 남자와 여자에 따라, 인간관과 세계관에 따라 사뭇 다릅니다. 그러므로 다음에는 '우리말 번역본'의 어려움 일부와, 내용상 다른 문헌과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끝까지 읽고 따라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생명의 복음, 그 영원한 울림] (4) 정당방위 아닌 제도적 사형은 불가
인간 존엄성에 부합하지 않고 사회 보호에도 기여하지 못해
천상의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지상의 생명 봉사자들에게 주신 편지
♂♀: 다른 문헌과의 오해 가능한 부분이란 무엇인지요?
지난호에 언급했지만 로마의 많은 학생이 교황님께서 회칙을 발표하신 배경에 대해 알고 싶어했고 그래서 필자가 다닌 교황청 라테라노 대학 당국에서 당시 가톨릭교육성 장관 라기 추기경님을 초대해 설명회를 마련했습니다. 설명회 말미에 브라질 출신 어떤 학생 사제가 회칙 56항 §2의 표현이 혹시 '사형제도의 용인'을 의미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즉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처벌의 본질과 범위를 신중하게 평가하고 결정해야 하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즉 다른 방법으로는 사회를 보호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범죄자를 사형에 처하는 극단까지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형벌제도를 꾸준히 개선한 결과 그러한 경우는 실제로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극히 드뭅니다.(It is clear that, for these purposes to be achieved, the nature and extent of the punishment must be carefully evaluated and decided upon, and ought not go to the extreme of executing the offender except in cases of absolute necessity: in other words, when it would not be possible otherwise to defend society. Today however, as a result of steady improvements in the organization of the penal system, such cases are very rare, if not practically non-existent.)"(「생명의 복음」 56항 §2)
나중에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교황님은 「가톨릭교회 교리서」(2266항)에서처럼 당연히 '정당방위'를 제외한 '사형 불가의 원칙'을 다시금 확인해주셨습니다.
♂♀: 우리말 번역본으로 읽는데 일부의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앞뒤 문맥을 정확히 읽어나간다면 내용의 오해나 혼란의 가능성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필자 개인의 입장에서 몇 가지 지적해볼 수는 있겠습니다.
첫째, 본문 자체가 주는 애매한 표현의 문제입니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브라질 학생이 지적한 것처럼 회칙 56항 §2의 표현에서 범죄로 야기된 무질서를 바로 잡는 것이 불가능하고 그래서 사회를 보호할 수 없어 사형까지 시켜야 하는 경우가 '실제로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아주 드물 것입니다'라고 해서, 마치 '드물게라도' 사형제를 용인(tolerance)해야 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정당방위가 아닌 경우 제도로서의 사형은 무질서에 대한 교정에도, 사회 보호에도 기여하지 못하며 동시에 인간 존엄성에도 부합하지 아니하기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둘째, 번역 용어들의 선택 문제입니다. 63항 §1에서 embryo를 배자(胚子)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통상 그 앞에는 human(인간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음으로써 그 자체로 '인격적 존재'라는 점을 충분히 드러내 준다고 보기에 다른 교회 문헌들은 '배아'(胚芽)로 번역해 사용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셋째, 마지막으로 부적절한 번역이 일부 보입니다. 예를 들어 71항 §3의 둘째 줄 "삶의 어느 영역에서도, 국법은…"에서 '삶'보다는 '생명'이 적합하고, 71항 §3의 열한 번째 줄 "…즉 모든 긍정적인 법이 반드시…"에서 '긍정적인 법'보다는 '실정법'이, 73항 §3의 열두 번째 줄 "…잘 알려진 선출된 관리가…"에서 '선출된 관리'보다는 '국회의원' 또는 '선출직 공무원'이 더 적합할 것입니다.
딱딱해질까 봐, 싫증들 낼까 봐 노심초사하는 필자의 마음을 천상에서도 헤아려주실까요? 필자의 손을 두 번이나 잡아주셨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따뜻했던 손길로 친히 독자 여러분께 축복해주시길 청합니다. 다음에는 회칙 내용으로 들어가서 서론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생명의 복음, 그 영원한 울림] (5) 예수 탄생으로 시작된 생명의 영원성
신성성 · 하느님의 선물 등 인간 생명에 관한 핵심 원리 제시
천상의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지상의 생명 봉사자들에게 주신 편지
유명해진 광고가 있습니다. 1990년대 것이지만 회칙의 목적과 배경에 어울리는 것이기에 인용해보겠습니다. ① 10대 소녀가 임신을 했는데 그녀의 남편은 아이 아빠가 아닙니다. ② 세 아이가 있는 가족이 있는데 첫째 아이는 시각장애아, 둘째는 청각장애아, 셋째는 결핵환자입니다. 엄마 역시 결핵환자인데 넷째 아이를 가졌습니다. ③ 몹시 가난하게 사는 가족이 있는데 아이가 열넷입니다. 엄마는 15번째 아이를 임신했습니다. "당신은 이 경우 낙태를 권하시겠습니까?…"
무심코 '예'라고 했다간 곧 후회합니다. 광고에는 곧이어 깨알 같은 글씨가 이어집니다. ①은 예수 그리스도 ②는 베토벤 ③은 유명한 성서학자 존 웨슬리.
오늘부터는 회칙의 본문을 다룰 것인데, 천릿길도 한걸음부터라고 먼저 첫 페이지 첫 줄부터 읽어보시지요.
♂♀생명봉사자: 서론인데 별 중요한 것이 있을까요?
제목은 그냥 붙이는 것이 아니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교회 문헌의 제목이 첫 문장의 첫 두 단어로 정해진다고 볼 때, 비록 서론일지라도 거기에 이미 핵심 내용이 함축되어 있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회칙 전체를 관통하게 될 인간 생명에 관한 핵심 원리들이 제시되는데, 순서대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첫째는 '신적 생명에 불림'에 대한 원리입니다. 회칙의 제목 문장이 밝힌 것처럼,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예수님의 탄생 그 자체가 당신 메시지의 시작(1항 §2 참조)이며, 그분의 탄생으로써 인간 생명이 '새롭고' 그리고 '영원한' 단계로 고양되고 거기에 참여하도록 불렸다는 것입니다(1항 §3). 이런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도 환기시켰듯이, 바로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신'(요한 3,16)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2항 §3) 때문입니다.
둘째는 '전체성'의 원리입니다. "현세적 측면에서까지도 위대함과 측량할 수 없는 가치"(2항 §1), 그리고 "인간 생명의 시작에서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그 신성한 가치"(2항 §2)를 언급함으로써 이미 인간 생명이 지닌 전체성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하느님의 선물'로서의 원리입니다(2항 §1). 슬쩍 언급되었지만 나중에는 구체적으로 제시됩니다.
넷째는 마지막으로 '자연법'과의 합치에 대한 원리입니다. "진리와 선을 향해 진지하게 마음을 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성의 빛… 에 의해서 인간 생명의 시작에서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그 신성한 가치를 마음에 새겨진 자연법 안에서 깨닫게 됩니다"(2항 §2). 이는 신적 계시는 자연-이성과는 다르다는 해묵은 논쟁의 여지를 아예 차단하게도 합니다.
목숨이 귀하다는 것, 그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고 또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문제는 '새로운 위협'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생명봉사자: 무슨 '새로운 위협'이 나타난 것입니까?
"개인과 민족들의 생명에 대한 위협들이, 특히 생명이 약하고 자기 방어능력이 없는 곳에서 유례없이 증가하고 심각해지고 있다"(3항 §2)는 점입니다. "온갖 종류의 살인, 집단 학살, 낙태, 안락사, 고의적 자살과 같이 생명 자체를 거역하는 모든 행위와, 지체의 상해, 육체와 정신의 고문, 심리적 탄압과 같이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와 인간 이하의 생활조건, 불법감금, 추방, 노예화, 매춘, 부녀자와 연소자의 인신매매, 또는 노동자들이 자유와 책임을 가진 인간으로 취급되지 못하고 단순한 수익의 도구로 취급되는 노동의 악조건 등"(3항 §3)에 대해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헌장 「기쁨과 희망」(27항)이 이미 30년 전에 단죄했건만, "그런 범죄들에 새롭고 더욱 사악한(sinister) 성격까지도 부여하는 문화 사조"(4항 §1)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 '새롭고 사악한 문화 사조' 현상에 대해서는 다음에 살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생명의 복음, 그 영원한 울림] (6) 반생명적 범죄에 무감각한 사회
교회, 생명 기본권 억압받는 사람들 대변해 줄 의무 지녀
천상의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지상의 생명 봉사자들에게 주신 편지
♂♀생명봉사자 : '새롭고 사악한 문화 사조'가 무엇인가요?
이미 서론을 읽으신 분은 벌써 간파하셨겠습니다만, 교황님께서 심각하게 우려하며 지목하시는 새로운 형태의 위협들이 만드는 '문화 사조'는 이렇습니다.
첫째는 각 분야 언로(言路)의 직무 남용으로 형성되는 문화 사조입니다. "개인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반생명적 범죄들을 정당화하고" 더 나아가 "처벌의 면제뿐 아니라 국가의 공인까지" 그리고 "보건 제도의 무료 봉사까지 받아가면서" 그런 범죄들을 "완전히 자유롭게 행할 수 있게" 하려는 사회적 경향 말입니다(4항 §1).
둘째는 반생명적 범죄를 합법화하려는 각국의 경향으로 형성되는 것인데, "헌법의 기본 원칙을 벗어나면서까지… 합법화"하려는 경향을 말합니다(4항 §2).
셋째는 그런 이유로 도덕적 타락을 촉발시키고 양심을 어둡게 만드는 것입니다만, "범죄라고 만장일치로 내려진 결정과 상식적인 도덕 판단에 의해 거부된 것들이 사회적으로 점차 용인되게 하고"(4항 §2) "그 결과로 양심 자체가 어두워져서 인간 생명의 기본적인 가치에 관한 문제에서 선과 악을 구별하는 데 점점 더 어려움을 겪게"(4항 §3) 하는 그런 사조 말입니다.
넷째는 그래서 의료업의 성격마저 일부 왜곡하게 만드는 문화 사조입니다. '그 종사자들의 품위'마저도 떨어지게 하는 그런 사조 말입니다(4항 §2).
♂♀생명봉사자 : 아직 위기감의 실체가 다가오지는 않는데… 뭘 해야 할까요?
아직 서론인지라 구체적 사례들을 다루지 않아서 그렇겠습니다만, 먼저는 "1세기 전에 노동자 계층이 기본권을 억압당하고 있을 때"처럼 "생명의 기본권을 억압당하고 있을 때에 교회는 그와 똑같은 용기로써 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의무"(5항 §3)를 공감해야 하겠습니다. 그것도 그저 이념적 의무로서가 아니라 "연약하고 방어능력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 특히 태어나지 않은 아기들의 생명"의 '불쌍함'에 대한 공감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황님께서 호소하신 것처럼, "가정이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생명의 성역'으로 남게 되기를"(6항 §2), 그리고 "진리와 사랑의 참된 문화를 건설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구체적 방법들은 나중에 제시될 것입니다.
나가며
"…노부부의 사랑과 존엄사를 다룬 프랑스 영화 '아모르'의 여자 주인공을 연상시켰다."
최근 국내 한 유력 주간지가 웰다잉(well-dying)을 위한 죽음 체험 프로그램을 소개하면서 쓴 기사 내용입니다. 작년에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라는데, 검색해보니 웬걸, 고통스러워하는 할머니를 지극히 간병하던 할아버지가 마침내 할머니 얼굴을 베개로 눌러 숨 막혀 죽게 한다는 줄거리였습니다.
이제 위기감이 슬슬 잡히십니까? 무엇을 위해, 누구를 상대로 봉사하고 대항해야 하는지 감이 오시는지요. 많은 장면과 대화가 담겨 있겠지만, 그래서 큰 상도 받았겠지만, 그러나 '아모르'(사랑)도 '존엄'도 아닌데, 그저 '배우자 살인극'을 존엄사로 소개하다니…. 돌아가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또 한 번 의노(義怒)하실 일입니다. '새롭고 사악한 문화 사조'의 한 전형이 아닐런지요. 기자의 개인적 무지의 소치인지, 아니면 의도적 혼용인지, 그 저의가 의심스럽고 또한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작년 12월 대통령 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제도화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는 것으로 이어지는 기사의 의도가 또 '생사람' 잡으려는 건 아닌지, 나도 우리도 '무의미한 인간'으로 내몰려는 것은 아닌지 사뭇 걱정스럽습니다
[생명의 복음, 그 영원한 울림] (7) 고의적 살인, 하느님 공격하는 행위
살인의 기원은 '분노와 시기'... 죄인의 죽음보다 회개가 중요
천상의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지상의 생명 봉사자들에게 주신 편지
시작하며
사기꾼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경찰이요? 물론 그렇겠지만, 모든 사람이 부정직해진 세상이 아닐까요? 살인을 밥 먹듯 하는 살인마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요? 역설적으로, 살인 전문가에게 자신이 살인당할 일인가 봅니다. 정남규(40세)가 구치소 안에서 자진(自盡)했다는 3년 전 기사를 보고는 쓴웃음이 나왔습니다. 형 집행을 기다리던 중 사형을 집행하라는 여당 의원들의 요구가 일었고 연말이 다가오자 불안감을 못 이겼던 것 같다고 합니다. 자그마치 13명의 부녀자를 살해한 간 큰 살인마조차도 두려움에 빠지게 하는 '살인행위', 그 실체가 궁금해집니다.
♂♀생명봉사자 : 신부님, 죄송하지만… 죽어 마땅한 사람은 죽어야 하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당연하지요. 하지만 누가 죽어 마땅한 사람인지, 그리고 누가 죽일 수 있는지의 문제가 또 남습니다. 성 암브로시오에 의하면, "죄인을 죽이기보다는 바로잡기를 원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살인이 또 다른 살인행위를 통해서 처벌받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9항 §3).
예고드린 대로 회칙 본론인 제1장으로 들어가 '인간 폭력의 기원'에 대해 신학적 숙고를 해봅시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먼저 생명의 세상에서 죽음의 기원이 '악마의 시기'(7항)라는 것, 그리고 그 결과로 인류 역사의 시초부터 '분노와 시기'가 작동해 살인행위가 이어진다는 것을 「가톨릭교회 교리서」와 맥을 같이해 설명하십니다(8항).
♂♀생명봉사자 : 왜 카인을 차별하셔서 '분노와 시기'를 촉발시키셨을까요?
인류의 속성을 이해하는 데 피할 수 없는 질문인 것 같습니다. "왜 하느님께서 카인의 봉헌보다 아벨의 봉헌을 반기셨는지 성경은 설명하지 않는다"고 일부러 지적하시는 것을 보면, 교황님께서도 아쉬움을 느끼셨나 봅니다. 필자의 속마음도 무척 아쉽습니다.
필자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첫 부모의 타락으로 죽음이 인간성 안에 들어왔을 때는 이미 인간성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손해 등에 대한 '과장된 피해망상'이 심어진 것으로 여겨집니다. 인간 각자의 정성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당연히 하느님께서 더 반기실 수도 덜 반기실 수도 있겠지요.
문제는 덜 반겨진 인간이 더 반겨진 인간과 동일한 대우를 기대하도록 '악마의 속임수'가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내밀한 대화를 나누는 인간의 완전한 친교를 향한 '악마의 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떡도 아닌데 먼저 김칫국물부터 마시도록 착각하게 합니다. 정성이 적으면 적게 얻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차별로 인식하도록, 자기 몫도 아닌데 손해보고 있다고 착각하도록, 그래서 분노를 일으키도록 만듭니다. 정성이 적어서 덜 반가운 카인이지만 그래도 그와의 '대화를 단절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조차도 의심하게 해 하느님에 대해 이질감을 느끼도록 합니다. 이간질이 성공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런 시기와 속임수는 대성공을 거둡니다. 마침내 인류 최초로 형 카인이 동생 아벨을 "쳐죽였습니다"(창세 4,8; 7항 참조).
교황님께서는 이 가족살해와 마찬가지로 모든 살인행위가 인류의 '영적 친족관계에 대한 침해'(8항 §3)라고 하시며, 생명의 원천인 피를 흘리게 하는 고의적 살인이 "하느님 자신을 공격하는 것"(9항 §1)이라고 규정하십니다. 그래서 살인자 카인조차도 살해당하지 않도록 "표를 찍어주셨음"(창세 4,15)을 잊지 않고 애써 강조하십니다(9항 §3).
마치며
전 세계 197개국 가운데 미국과 대부분 개발도상국인 57개국만이 사형을 집행한다는데 우리나라는 다행히 10년 이상 집행하지 않아 '사실상의 사형제 폐지국가'랍니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노골적인 사형집행보다도 생명의 초기와 마지막 단계에 대한 위협입니다. 이것은 다음에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