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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잔치할 수 있는 비결
성경본문: 잠언 15: 13-20
13.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14.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요구하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즐기느니라
15.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16.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17.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18.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19.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울타리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
20.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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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지 목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용인 수지(龍仁水枝)에 있는 목양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유관지(劉寬之) 목사입니다.
저희 교회의 5월 30일 주일 낮 예배 설교를 여기 올려 드립니다.
저희 교호에서는 5월 30일에 전 교인 체육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컴퓨터를 통해 이 설교를 대하는 모든 분 위에 하나님의 큰 축복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성경에는 잔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첫 번째 기적을 베푼 갈리리 가나의 혼인잔치를 비롯하여 욥이 아들과 딸들의 생일에 베풀던 잔치, 그밖에 잔치와 관련된 기사들이 많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생일이나 결혼식 때는 물론 낯선 사람이 찾아 왔을 때도 잔치하고 아이가 젖을 뗄 때도 잔치하고 양털을 깎은 후에도 잔치하고 포도를 수확할 때도 잔치했습니다.
잔치는 즐거운 것입니다. 대단히 기쁘고 흡족한 일이 있을 때 "잔칫날에 상 받는 기분"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하면 잔치하는 것 같은 마음으로 살 수 있을까요?
잠언서 15장 15절은 "고난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마음이 즐거운 사람에게는 모든 날이 잔칫날이고, 마음이 편하면 하루하루가 잔치기분이라는 뜻입니다.
마음이 즐거운 사람에게는 그가 부자이건 가난한 자이건 간에 인생이 끊임없는 잔치의 날들입니다.
잘 알려진 영국 동화 하나가 있습니다.
임금님이 중한 병에 걸렸습니다. 의사가 자세하게 진찰하더니 "임금님, 이 병은 약으로 고칠 병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속옷을 얻어 입으면 낳을 병입니다" 했습니다. 그 임금님은 요즘말로 하면 우울증 같은 신경 계통의 병에 걸린 것 같습니다.
임금님은 '그거 어려울 것 없지!' 하고서 신하들을 풀어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사람을 찾게 했습니다. 그런데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한 사람입니다" 하는 사람들은 많이 만났어도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저 사람은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거야!" 이런 이야기를 듣는 사람을 찾아가 보면 "그런 말하지 마시오! 사실은 내게 이런 말못할 고민이 있소! 사실은 나야말로 불행한 사람이오" 하기 일쑤였습니다.
신하들을 제치고 왕 자신이 나섰는데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루는 왕이 무거운 마음으로 어느 시냇가를 산책하고 있는데 물방앗간이 있었습니다. 물방아가 돌아가는 소리를 반주 삼아 방앗간 안에서 주인이 혼자서 하는 이야기가 들려 왔는데 "아, 세상에서 나만큼 행복한 사람이 또 있을까! 해 뜨면 물방아를 돌리고 해 떨어지면 쉬고,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고, 아마 영국 임금님도 나만큼 행복하지는 못 할거라!", 왕은 "이제 나는 살았다!" 하고서 방앗간 주인을 찾아 사정을 말하고 속옷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방앗간 주인은 겸연쩍은 듯이 머리를 긁으면서 "헤헤, 임금님, 제가 사실은 가난해서 속옷이 없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했다고 합니다.
가난해서 속옷도 없이 살면서도 마음이 즐겁기 때문에 이 방앗간 주인은 잔치하는 마음으로 매일을 지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즐거운 마음을 가져 늘 잔치하는 기분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잠언은 "고난받는 자는 그날이 다 험악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고난받는 것은 병에 걸리는 것, 직장을 잃는 것, 모함을 받는 것, 자녀가 말썽을 일으키는 것도 포함됩니다. 그런데 그런 바깥의 일들보다는 안으로 마음이 그렇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가 스스로 고난받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둡고 침울한 기분에 늘 사로잡혀서 사물의 어두운 면만을 보는 것입니다. 일부러 어둡고 우울하게 삽니다. 이런 분들은 사물을 비관적으로 봅니다. 기분이 늘 저하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형편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이 찾아오더라도 "저리 가쇼!", 놓쳐버리고 불행이 찾아오면 "어서 옵쇼!"꽉 붙잡고 놓지 않습니다.
우리 전래동화에 우산장사 아들과 기와장사 아들을 둔 어머니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늘과 같이 개인 날은 우산장사 아들의 장사가 안될 것을 생각하고 울고, 비가 오는 날은 기와장사 아들이 손해볼 것을 생각하고 울고 늘 운다는 것이 중요한 줄거리입니다.
이 동화가 강조하는 것은 바뀌어져야 합니다. 오늘과 같이 개인 날은 기와장사 아들을 생각하며 즐거워하고 비가 오는 날은 우산장사 아들이 잘될 것을 생각하고 즐거워하고 늘 즐거워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더 나가서는 개인 날은 우산 장사 아들이 얼른 기와장사 아들을 도와 함께 장사하고 비가 오는 날은 기와장사 아들이 얼른 우산장사 아들을 도와 어려우나 즐거우나 형제가 힘을 합해 즐겁게 살았다는 것으로 바뀌는 것이 가치관 형성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어느 직장에 "어안피"라는 별명을 가진 직원이 있었습니다.
쉬운 일도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되는 일도 안되게 만들기 때문에, 즐거운 일도 피곤하게 만들기 때문에 별명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런 분들 주변에는 사람이 모이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분이 만드는 무겁고 짜증나는 분위기는 전염이 잘 됩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88서울 올림픽 조직위원장을 했고 지금은 2002년 월드컵 조직위원장으로 수고하고 있는 박세직(朴世直)의원은 좋은 신앙을 가진 분인데 "자즐보"를 늘 강조합니다. "자즐보"는 "자랑스럽고, 즐겁고, 보람있게 살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사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즐겁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영생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영생과 연결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최후 승리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지난 주일에 강림한 성령이 우리와 동행합니다.
즐겁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즐거운 마음이 없으면 "내 신앙이 진정한 것인가?" 한 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할 수 있는 한가지만을 가지고도 우리는 잔치와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영생과 최후 승리가 보장된 삶은 이긴 운동경기의 녹화 테이프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팀이 위기를 맞이해서 실점을 했다고 하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긴 것을 알고 있는 게임이니까요.
어제(29일) 인도네시아를 7:0으로 이긴 축구경기의 녹화 테이프를 오늘 다시 보면 얼마나 즐겁겠습니까?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잔치하듯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13장의 가사 그대로 삶이 기쁜 샘이 되어 즐거움이 바다처럼 넘치는 나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교회는 잔치자리가 되어야합니다. 주일은 잔칫날이 되어야합니다. 잔치 가운데서도 혼인잔치가 제일 즐거운데 주일의 교회는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만나는 혼인잔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속담에 "잔칫날 신랑의 길은 임금님 행차도 막지 못한다"는 것이 있습니다. 결혼잔치는 그 누구도 방해해서는 안 되는 가장 경사스러운 일이라는 뜻입니다.
작년 어느 금요심야합심기도회에서 교회학교 교사인 권사님이 간증을 했습니다. 주일이 되면 예수님을 만날 생각, 또 학생들을 만나 가르칠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는 간증이었습니다. 이 권사님은 잔칫집에 오는 마음으로 교회에 오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마음으로 교회에 와야합니다.
초대교회는 잔치하는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과 47절에 초대교회의 모습이 생동적으로 그려져 있는데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잔치하는 것과 같은 교회였기에 사람들이 날마다 늘어났습니다.
잔치하는 것과 같은 교회는 부흥하고 부흥하는 교회에는 잔치가 있습니다.
교회의 잔치는 세상의 잔치와 다릅니다.
세상의 잔치는 맛있고 풍성한 음식을 자랑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많아 육식망국론(肉食亡國論)이라는 것도 나왔습니다.
교회의 잔치는 말씀이 주 메뉴인데 말씀은 아무리 먹어도 체하는 법이 없습니다.
세상의 잔치는 VIP가 얼마나 많이 참석했느냐 하는 것이 관심을 끕니다. "아무개가 벌인 잔치에 누가 참석했다" 하는 것이 화제의 대상이 됩니다. 유명인사를 잔치나 모임에 참석하도록 로비 해 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교회의 잔치는 반대로 가난한 사람, 눌린 사람, 병든 사람, 마음속에 깊은 탄식이 있는 사람이 많이 참석할수록 더 즐거운 잔치가 됩니다.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잃어버렸던 자들이 얼마나 많이 참석했느냐 하는 것이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세상의 잔치는 자기 과시, 사치, 과소비로 연결되어 집안이나 나라를 기울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로마 귀족들이 매일같이 벌이던 잔치, 백제 의자왕과 남원의 변 사또가 벌인 잔치가 대표적입니다. 이 지역사회의 행정책임자(경기도지사)가 자기 생일잔치를 벌였는데 그것이 지금 호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 잔치에 참석했던 분들 가운데 목사님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다니엘서 5장 바벨론 왕 벨사살이 벌인 잔치는 파멸의 잔치였습니다. 귀인 일천 명을 청해서 큰 잔치를 하는데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해 온 은, 금 기명을 가지고 술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그 잔치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 벽에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 "하나님이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했습니다,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습니다,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데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습니다"라고 썼습니다.
그 잔치가 벌어지고 있을 때 고레스가 지휘하는 연합군이 바벨론 성벽을 감싸고 흐르는 강의 수로를 바꾸고 원래의 수로를 통해서 은밀하게 침공해 들어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88서울 올림픽에 성공했다고 성급하게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을 때 IMF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교회의 잔치는 교회를 부흥하게 합니다. 기쁨을 줍니다. 사회에도 힘을 줍니다.
미국에 처음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의 생활이 얼마나 고달팠겠습니까? 그런 가운데서도 추수감사잔치를 벌였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미국이 있게 하고 유지하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레디 럿셀이라는 여자 목사님이 미국 뉴욕의 할렘가에서 목회를 합니다.
할렘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범죄가 많은 곳입니다.이 목사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이 "복음은 율법을 통해 노예가 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축하의 잔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할렘가의 빈민들은 기쁜 마음으로 축하 잔치의 초청에 응해서 럿셀 목사님은 할렘에서의 목회를 성공적으로 잘 했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오실 때 즐거운 얼굴로 오시기 바랍니다.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욕 가운데 "잔칫집에 같이 못 갈 사람"이라는 욕이 있습니다. 잔칫집에 가면 함께 즐거워해야 하는데 재를 뿌리고 심통을 부리고 그래서 "저 사람하고는 잔칫집에 같이 못 가겠다"는 소리를 듣게 되면 그것보다 비참한 일이 없습니다.
기뻐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찾게 되고 슬퍼하는 사람은 사람들이 돌아서 가 버립니다.
어떻게 하면 늘 잔치하는 것과 같은 교회가 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모신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그 잔치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에 그 잔치는 즐거운 자리가 되었고 처음보다 나중이 더 흥겨운 자리가 되었고 칭찬 받는 잔치가 되었습니다.
"아니 예수님을 모신 교회가 되어야 한다니 그렇다면 예수님을 모시지 않은 교회도 있습니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인기 있는 교역자와 세상의 방법, 세상의 가치관, 세상의 사고방식을 모시려고 하는 교회가 늘어가고 있는 것이 현대교회의 문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목양교회가 잔치하는 교회가 되는데 특히 가나의 혼인잔치와 같이 예수님을 모신 잔치가 되어 흥겹고, 갈수록 더 즐거워지고 칭찬 받는 교회가 되기를 함께 기원합니다.
예배가 구원의 기쁨을 노래하는 잔치가 되어야 하고 봉사도 잔치하듯 해야 합니다. 지난번에 여선교회가 바자회를 했는데 그것을 노동이라고 하면 아주 중노동입니다. 음식 만들고 아나바다 물품 정리하고, 그것을 노임으로 계산해서 주어야 한다면 인건비가 상당히 지출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잔치하듯 하니까 얼마나 즐거웠습니까?.
특별히 전도에 힘쓸 때 잔치하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전도하는 교회는 잔치가 있는 교회이고 잔치가 있는 교회는 전도가 잘 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잃었던 양의 비유를 보면 잃은 양을 찾은 사람은 벗과 이웃들을 불러모아 잔치를 합니다.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눅 15:6), 잃은 양을 찿은 사람은 하나님이지요.
그 다음 말씀이 중요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전도해서 한 영혼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면 하늘에는 잔치가 열립니다. 천국은 교회의 본점, 교회는 천국의 지점입니다. 본점의 분위기가 좋으면 지점의 분위기는 저절로 좋아집니다.
전도하면 그 교회는 잔치하는 교회가 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잔치들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잔치는 집을 나갔던 둘째 아들이 돌아 왔을 때 아버지가 벌린 잔치입니다.
얼마나 즐거운 잔치입니까?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먹고 즐기고 풍류와 춤추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전도해서 한 영혼을 주님 앞으로 돌아오게 했을 때 하늘나라에서는 오늘도 이와 같은 잔치를 벌
이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오늘 우리는 체육대회를 합니다.
이 체육대회를 통해 "교회는 잔치가 있는 곳이다"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알게 되기 바랍니다.
어제 밤에 교회에 혼자 남아 설교 원고를 정리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거기 목양교회입니까?" "그렇습니다"
"거기 김 아무개 부목사님 계십니까?" "퇴근하셨습니다. 댁으로 전화하시기 바랍니다. 댁 전화번호를 알려 드릴까요?"
"아, 집에서는 전화를 안 받기에 교회로 전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소리가 아주 밝고 쾌활합니다. "실례지만 누구이십니까?" 했더니
"네, 저는 내일 체육대회 진행을 맡은 레크레이션 강사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저는 이 교회 담임목사입니다. 내일 체육대회, 잘 부탁드립니다."
오늘 체육대회를 처음에는 교회에서 프로그램을 짜는데 여러 분이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전문가에게 의뢰했는데 그 분이 전화를 한 것입니다. 그 전화를 받으면서 "아, 이 분 프로로구나! 내일 체육대회 잘 인도하겠다"하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만일 그 분이 어둡고 우울한 목소리로 전화했더라면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분은 억지로 레크레이션 강사 하는 사람이로구나!" 했을 것입니다.
구원의 기쁨을 생각하면서 즐거운 마음을 갖기 바랍니다. 이것이 매일 매일이 잔치하는 것과 같이 살아갈 수 있는 비결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모든 일을 잔치하는 마음으로 하고 특별히 전도에 힘쓰십시오. 이것이 항상 잔치하는 것과 같은 교회가 되는 비결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살며 전도에 힘써 늘 잔치하는 것과 같은 생활, 늘 잔치가 있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