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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땅 - 그 특징과 특권
(신명기 11:8-17)
요단강을 건너간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죽음을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장례예
배 때 부르는 찬송 중에는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라는 가사가 많이 나옵니다. 그리
고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은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라고 이
해합니다. 이처럼 요단강을 사망으로, 가나안 땅을 천국으로 해석하는 것이 좁은 의미
에 국한했을 때는 옳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다 옳은 것은 아닙니다. 왜
냐하면 가나안 땅을 천국으로 볼 수 없는 이유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가나안 7족과 계속해서 싸워야 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는 승리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패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는 원수도 없고, 미
움과 다툼도 없기 때문에 가나안 땅을 천국과 동일시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렇
다면 우리가 성경에서 보는 출애굽 사건은 전반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애굽은 죄의 노예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했
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통치하는 왕도 없고 일을 해봤자 이익도 없이 항상 고생하
면서 고통을 겪고, 마귀와 죄의 노예가 되었다는 불신앙 시절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출애굽은 어린 양 예수의 피로 죄와 마귀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구원받은 것을 상징합
니다. 또한 광야생활은 구원을 받기는 했지만 아직도 구원의 확신을 얻지 못하고 불신
앙과 여러 가지 의심과 혼란, 불만과 불평들에 지배받는 생활을 상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광야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으로 들
어가야 합니다. 가나안 땅은 구원의 확신을 통해 용기를 얻고 성령충만 해서 영적으
로 승리하는 영적 충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으
로 들어가는 것은 승리와 축복의 일입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도록 하나님께
서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할 일이 있었습니다. “너희가 건
너가서 얻을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을 것이며”(8절) 어차피 얻을 땅이지만 ‘들어
가서’(enter) ‘얻어야’(take over) 한다는 말입니다. 그 땅에 안 들어가도 안되
고, 그 땅에 들어가서 관광이나 하면서 놀다가 몇 일만에 나와도 안되며, 그 땅의 거
주민들을 완전히 쫓아낸 후에, 그 땅을 차지하여 정착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
들에게는 요단강을 건너가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
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성령충만
을 약속하셨을 뿐만 아니라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성령충만이 저절로 되지 않습니
다. 구경꾼에게 오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충만과 승리의 생활은 구경꾼에게 오는 것
이 아니라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하는 사람의 것입니다. 우리는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해 순간순간 싸우고 노력해야 합니다. “침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
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 천국은 가만히 구경하고 노는 사
람이 얻는 것이 아닙니다. 침노하는 사람의 것입니다. 승리의 생활, 감격의 생활, 성
령의 능력이 역사하는 생활도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사모하고 침노하는 사람들의
몫이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들은 모두 성령충만을 사모하시고 기도
할 때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승리의 생활을 누릴 수 있기 바랍니다.
1. 가나안 땅의 세 가지 특징
“네가 들어가 얻으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10절) 성령충
만을 상징하는 가나안 땅은 불신시절을 상징하는 애굽 땅과는 세 가지 면에서 차이점
이 있습니다.
첫째는 물의 공급원이 다릅니다. 애굽의 물 공급원은 땅입니다. 애굽은 비가 아무리
와도 국토의 절반이 모래이기 때문에 비를 담지 못합니다. 그래서 애굽 사람들은 오로
지 나일강을 의지합니다. 이 나일강 만이 비를 담아 두는 곳입니다. 그래서 봄만 되
면 범람하여 홍수가 나는 나일강이지만 애굽 사람들은 물의 근원이 되는 나일강을 떠
날 수가 없습니다. 나일강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저수지에 저장해두고 필요할 때는 관
개시설을 만들어서 끌어 쓸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애굽 땅의 물의 근원은 땅과 강
입니다.
그러나 가나안의 물의 공급원은 땅이 아니라 하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필요할 때마
다 가나안 땅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주십니다. 그러므로 가나안에는 인공 저수지
가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무궁무진한 저수지가 되어 그들에게 필요할 때마다 물
을 내려주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께서 “우리나라는 천수답
이 많아서 비가 안 오면 흉년이 들기 때문에 강을 막아서 댐도 만들고 저수지도 많이
만들어서 흉년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지 댐과 저수지가 여기저기 많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저수지
가 되어 주시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와 불신자의 삶의 원리에 드러나는 차이점입니다. 불신자의 삶의 공급처
는 자연입니다. 자연을 개조하고 이용해서 생명을 유지합니다. 그러나 신자는 다릅니
다. 신자는 자연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생명의 줄이요, 생명의 원천입니다. 세
상이 삶의 근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삶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래서 모세
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상을 사랑하거나 타협하지 말고 오로지 마음과 뜻과 정성
을 다하여 주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봉사하라는 사실을 신명기에서 계속
반복해서 말씀합니다.
혹시 동서남북이 다 막혀서 답답하고 고통스러우십니까?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마음
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섬기시기 바랍니
다. 긍휼은 하늘로부터 옵니다. 불신자들은 이 긍휼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에게는 하늘로부터 도우심과 은혜가 내려오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물의 공급방법이 다릅니다. 10절 후반에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
하니 거기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애굽에서는 물을 밭에 대려면 발을 이용해서 삽질을 하거나 펌
프질을 해야 합니다. 길을 내서 물꼬를 트거나 물 펌프를 통해 물을 끌어들여야 합니
다. 육체적인 노동을 통해서 일을 해야 만이 물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나
안 땅은 다릅니다. 가나안 땅에서는 물을 대기 위해서 발이나 손이나 머리도 쓸 필요
가 없습니다. 가나안 땅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 집에 들어가서 자거나 나무 밑에서 쉬
면 그만입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늦은 비와 이른 비를 내려주시기 때문입
니다. 비는 사람이 노력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성도들은 쉬면됩
니다.
반면에 불신자들의 사는 방법은 얼마나 피곤합니까? 불신자들은 어려서부터 야망을 세
웁니다. 돈을 버는 야망, 출세할 야망, 권력을 얻으려는 야망, 높은 학위를 따려는 야
망을 이루기 위해서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밤에 늦게 잡니다. 때로는 그것을 이루고
자 밤잠도 못 이루다가 건강을 해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편은 “너희가 일찌기 일어
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 127:2)라고 말씀합니다. 애굽 땅의 원리, 불신자들의
삶의 원리는 잠도 안자고 수고하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정말 고생을 많이 합니다. 그래도 돈을 열심히 벌어서 나이 먹
은 후에는 수영장이 달린 큰 집도 사고, 캐딜락, BMW같은 좋은 자동차도 사서 폼 잡
고 다닙니다. 그런데 간신히 고생을 마치고 즐겁게 사는가 했더니 그만 정기검진에서
암 말기라는 선고를 받습니다. 그리고 죽은 이후의 삶에서는 아무 것도 보장받을 수
가 없습니다. 얼마나 헛된 노력과 고생입니까? 이것이 불신자들의 삶의 원리입니다.
애굽에서는 수고하고 노력하고 고생해도 헛됩니다. 애굽에서는 혹시 승리와 축복이 있
다고 해도 그저 ‘피루스의 승리’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주전 3세기에 헬라에 피루스 왕이 있었습니다. 이 왕이 25,000명의 군인과 20마리의
코끼리를 이끌고 로마를 침공을 했습니다. 격렬한 전쟁이 끝난 후에 피루스 왕은 승리
를 얻었지만 그만 자신의 코끼리도 다 죽고 군인들도 3/4이나 죽어서 남은 병력이 얼
마 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피루스의 승리’라고 합니다. 패배나 진배없는 승리를
말합니다. 마치 헤비급 권투선수가 챔피언에게 도전을 해서 판정승을 거뒀지만, 너무
맞아서 다음날 골병이 들어 죽어버린 것과 같은 승리입니다.
방송국 유명한 PD로서 세상에서 출세한 사람이 자기의 부인을 버렸습니다. 부인은 충
격을 받아서 기도원을 전전하며 하는 일이 날마다 우는 일입니다. 제가 기도원에 집회
를 인도하러 갔을 때 이분에게 왜 날마다 울고 다니느냐고 물으니 자기 남편이 너무
출세해서 여자들이 많이 따라다니는 바람에 자기가 이렇게 비참해졌노라고, 자기 남편
이 버렸노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남자는 세상에서 승리했는지는 몰라도
집안을 망가뜨리고 자신의 아내를 망가뜨린 피루스의 승리를 한 것입니다.
피루스의 친구이자 철학자였던 시네아스가 피루스 왕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로
마를 침공해서 승리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자 피루스 왕은 “우리가 이태리 전체
를 지배하게 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왕의 대답을 들은 시네아스는 다시 물었습니
다. “그러면 이태리 전체를 지배하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합니까?” 왕은 다시 대답
했습니다. “그러면 시실리도 침공하고 아프리카 북부 카르타고도 침공하여 마케도냐
전역을 지배할 수 있게 됩니다.” 왕의 대답을 들은 시네아스는 “그러면 그 다음에
는 무엇을 하게 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왕은 “그 후에는 집에 가서 발 닦고 쉬
고 잠자고 즐겁게 놀 겁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모든 대답을 들은 시네아스는 왕에
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지금 쉬고 잠자고 즐겁게 놀면 안됩니까? 왕이시
니까 얼마든지 쉬고 즐겁게 지내실 수 있는데 왜 그 많은 전쟁을 벌여서 사람을 죽이
면서 고통을 겪은 후에 쉬고 먹고 주무시려고 하십니까?”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은 너무 애굽식 인생살이를 강요당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초청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쉼
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쉬어라. 너희가 쉴 때에도 나는 하늘
문을 열어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모두 내려주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를 쉼으로
초청하십니다. 인생이 너무나 피곤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
을 내려놓으시고 그 분께서 주시는 쉼을 누리십시오. 쉼을 누리라는 말은 게으르게 살
라는 말이 아닙니다. 헛된 피곤을 피하라는 의미입니다. 시편 127편 1절에는 “여호와
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
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
는 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쉼, 이것이 참된 축복입니다.
세 번째로 물의 저장방법이 다릅니다.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
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11절) 애굽은 평평한 땅입니다. 그리
고 애굽에서는 평평한 곳에서만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땅이 높으면 나일강의 물
을 끌 수가 없기 때문에 높은 땅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에는
산도 있고, 골짜기도 있습니다. 산과 골짜기가 비를 흡수하기 때문에 땅 자체가 물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은 조금만 파도 우물이 솟아나오는 땅입니다.
가나안 땅에 산과 골짜기가 있다는 것은 우리 신앙생활에도 굴곡이 있음을 의미합니
다. 어느 때는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비전을 보며 승리하기도 합니다만, 어느 때는 사
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슬퍼하며 탄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산이든 골짜기든 가나안 땅은 손을 내밀어서 땅을 파기만 하면 그 속에서 샘물
이 솟아나오는 땅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려워도 땅을 파보세요. 어려워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해보세요. 그러면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성령충만의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입
니다.
예수님은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7:37-
39)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가 답답한 골짜기를 지날지
라도 간구하고 기도하면 성령께서 넘치는 생수의 강이 되어 기쁨과 능력과 위로를 주
십니다. 사람이 돈을 많이 벌어야 기쁩니까? 로또 복권에 당첨되어야 기쁩니까? 잠깐
기쁠 수는 있지만, 조만간 고통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나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 안에서 생수의 강이 터져 나오면 그 때부터 기쁨이 넘치기 시작합니다. 천지가
개벽을 하는 어려움이 온다고 할지라도 기쁘고 감사할 수밖에 없는 생활이 시작됩니
다. 이것이 성령충만입니다. 가나안에는 골짜기에도 물이 있고, 산에도 물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2. 가나안 땅의 특권
가나안 땅은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특권도 가지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
라”(12절) 세초부터 세말까지,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여호와의 하나님의 눈이 1
초도 빼지 않고 항상 그 위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눈이 우리 위
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의 눈이 우리 위에 있다는 사
실 때문에 부담스러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잘못하는 모습도, 우리의 프라이버
시도 모두 지켜보신다면 부담스럽고 창피하지 않겠느냐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
나님의 눈은 그런 것들만 지켜보시기 위해 거기 계신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눈
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시 34:15) 여호와의
눈이 우리 위에 계신 이유는 사랑하는 자녀가 마음에 무슨 고통이 있는지, 지금 무엇
을 기도하고 있는지를 보시고 들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역대하 16장 9절에도 “여호
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
시나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눈은 사랑과 관심의 눈이요, 능력
의 눈이며, 세초부터 세말까지 1분 1초도 빼지 않고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은혜의
눈입니다.
저는 고속도로에서 제일 위험한 운전수는 눈을 절반 감고 졸면서 운전하는 사람이라
고 생각합니다. 고속도로에서 졸음운전은 사망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자기뿐만 아니
라 다른 사람에게도 큰 위험을 줍니다. 그러므로 고속도로를 달릴 때, 앞에 가는 차
가 삐뚤거리면서 진행하면 빨리 피하십시오. 조는 눈, 잠자는 눈은 이처럼 위험한 눈
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십니다(시 121:4).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사랑의 눈으로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삶의 터전을 지켜주시는 특
권이 성도의 특권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 가지 육신적인 질병이나 사업의 어
려움으로 고통 받는 성도님들이 계십니까?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여호와의 눈이
오늘 나와 함께 하신다고 했으니, 여호와께서 그 눈으로 나를 살피시사 건져주시고 속
에서 솟아나는 생수의 축복을 허락하시며 치료하시고 건져주시고 이 위기에서 이끌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결 론
현대인들은 자연현상과 하나님의 뜻을 관계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히브리 사
람들은 자연 현상을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통해서
도 말씀하셔서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하늘 문을 여시고
비를 내리셔서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요롭게 먹게 하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가나
안 땅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따라 섬기면 하
늘은 닫혀서 비가 내리지 않으며, 여호와께서 주신 아름다운 땅일지라도 속히 멸망하
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사랑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자
연과 환경이 나를 거스르면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돌이키시는 여러분들이 되시
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용서를 구하고 다시 돌이키면 하늘의 하나님은 언제나 닫힌 문
을 여시고 다시 비를 내려주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네 가지를 권면합니다. 첫째로 성령충만하십시오.
아직도 신앙에 의심이 있고 삶에 불평과 원망이 가득한 분들은 아직 가나안 땅에 들어
가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취하시
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충만을 목표로 “하나님이여! 제가 성령충만
케 하옵소서. 제가 성령충만하여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시
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현재의 삶이 답답하고 비가 없이 황무함이 계속된다면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있다면 회개하시고 다시 하늘 문을 열
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손바닥만한 구름이라도 뜬다면 조만간에 은혜의 소낙비가 내
리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쉬십시오. 수고하고 노력하는 인생을 살았어도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이 고통
과 질병 속에 사시는 분들은 인생의 헛됨을 탓하지 마시고 예수님 안에 모든 짐을 내
려놓고 쉬시기를 바랍니다. 욕심도, 탐욕도, 정욕도 모두 내려놓으세요. 그리고 모든
근심과 걱정과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한 쉼
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쉰다고 할지라도 은혜의 비는 하늘로부터 계속해서
내려오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낙망하거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산 위에 있든지 골짜기에 있든지 간에 인
생의 오르막 내리막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조금 잘 됐다고 좋아하다
가 조금 어렵다고 금방 낙담하지 마십시오. 인생을 살다보면 성공이 실패가 되고, 실
패가 성공이 되며, 축복이 저주가 되고, 저주가 축복이 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축복 때문에 자고해서도 안되며,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낙담하거나 절
망해서도 안됩니다.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이 교통사고로 인해 한 쪽 다리를 절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보조 고무다
리로 살았는데, 하루는 사냥을 나갔다가 그만 식인종에게 잡히고 말았습니다. 식인종
이 이 사람을 잡아먹으려고 하자 이 사람은 자기의 고무다리를 떼어서 식인종에게 먹
으라고 던져주었습니다. 식인종이 고무다리를 씹어보고는 “이 고기는 아주 질기고 맛
이 없네?”하며 그 사람을 다시 풀어줬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네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눈이 일 년 내
내 우리의 가정과 교회, 삶의 터전 위에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
께서 주시는 은혜의 비를 맞으며, 우리 안에서 솟아나는 생수의 샘을 맛보며 살아가
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