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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구조조정(마태복음 26장 31-35절)
한국에 두산 그룹이 있습니다. 역사가 굉장히 깊은 기업인데, 역사가 깊은 만큼 굴곡도 많은 기업입니다. 이 두산 그룹은 창업한 지 112년이 되는 1995년에 무려 1,500억 원의 적자가 발생했습니다. 회사의 위기감을 느낀 경영진은 곧바로 구조조정을 단행했습니다. 먼저 계열사를 정리하고, 문어발식 확장을 자제하고, 명예퇴직을 시키며 주력사업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구조조정의 결과로 인하여 회사는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2년 뒤 1997년에 터진 IMF 라는 큰 불황 속에서 거의 모든 다른 회사들은 큰 위기에 봉착하지만 두산 그룹은 무려 832억 원의 흑자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바로 적당한 시점의 구조조정이 회사를 살아남게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업체에 적당한 시점에 구조조정이 필요하듯이 우리 인생에서도 때로는 이러한 구조 조정이 필요합니다. 특히 지금은 사순절 절기 중에서도 고난주간입니다. 이 한 주간은 주님을 바라보며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는 기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신앙의 구조조정을 하는 기간이 되어야 합니다.
이 사순절에 우리가 살펴보는 인물로는 열두 제자가 있는데 그 중에 제일 많이 언급되는 인물은 사도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열두 제자 중 수제자로 알려졌으며 교회 역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인물 중의 한 명입니다. 가톨릭교회의 제 일대 교황이 베드로일 정도로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이런 평가를 받는 베드로이지만 예수님께서 그의 인생에 개입하셔서 신앙의 구조조정을 안 하셨다면 이런 위대한 신앙의 인물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베드로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순간에 나타나셔서 다섯 번에 걸친 구조조정을 하셨습니다.
첫 번째 구조조정은 인생관의 조정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베드로의 인생관을 바로 잡으셨습니다. 인생관이란 인생을 어떻게 보는가에 대한 관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 땅에 무엇 하러 왔으며, 우리가 사는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조정입니다. 왜 사십니까? 지금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마태복음 4장 19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을 다니시다 어부인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를 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이 말씀은 누가복음 5장에 더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베드로의 직업은 어부이며 가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는 한 가정을 책임 진 가장이었기에 고기를 잡아야 했습니다. 그 날도 베드로는 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날따라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우리가 하루 종일 힘과 정성을 기울여 일하지만 결과가 전혀 없을 때가 있는데 베드로가 바로 이런 경우를 만났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4절) 이 말씀이 조금 어색하게 다가옵니다. 왜 그런가하면 베드로가 처음 보는 사람의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5절 말씀에 베드로는 예수님께 이렇게 답합니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베드로는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릅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그의 말을 듣고 바다로 나가 다시 그물을 내립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을 때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기적을 경험한 베드로가 놀라며 예수님께 말합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9절) 이 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내가 사람을 취하리라”(10절)
베드로의 인생에 대한 예수님의 구조조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제까지 베드로의 인생은 자신과 가정을 위해 바다에서 고기 잡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자신의 육신과 가정을 위한 인생이 아니라 이제는 베드로를 생명과 영혼을 위한 사명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생명과 영혼을 위해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처음 보는 사람의 말을 듣고 생업과 가정을 포기했다는 것이 의아하게 생각될지 모르지만 그만큼 예수님의 말씀은 베드로에게 엄청나게 다가온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는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 즉, 타인의 생명을 위해 살겠다고 결단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인생의 참 의미와 왜 살아야 하는지를 예수님을 만나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하신 베드로의 인생관에 대한 조정입니다.
두 번째 구조조정은 베드로의 중년기에 맞이한 신앙관의 조정입니다. 신앙관이란 신앙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삶에 있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 가에 대한 것입니다. 또한 신앙관은 우리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누구신가에 대한 질문이며 조정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베푸신 후에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13절) 이에 제자들이 답합니다.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14절) 다시 예수님이 이번에는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15절)
제자들은 오랫동안 예수님을 쫓아다녔지만 왜 따라다녀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들은 제자가 되어야 하는 데 아직까지는 무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날은 근본적인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그 때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절) 베드로는 정확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그 대답에 예수님은 너무 흡족하셔서 천국의 열쇠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동일한 질문을 하십니다. 혹시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삶에 어떤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액세서리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물음에 정확한 신앙고백을 한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이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절대적인 분이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정확한 신앙고백을 해야 합니다. 세상과 신앙의 경계선상에서 신앙고백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신앙관의 구조조정이 필요합니다. 이런 조정이 있을 때 우리는 주님이 나의 인생에 있어서 어떤 분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세 번째 구조조정은 베드로가 수난을 당하는 순간에 왔습니다. 베드로의 믿음의 분량에 대한 조정입니다. 베드로는 스스로 믿음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 믿음의 분량에 대해 예수님이 조정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1절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 말을 듣고 베드로가 깜짝 놀라 33절 말씀에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결의 찬 다짐을 합니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도 그와 같이 말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신앙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주님이 보시기에 보잘 것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자신의 믿음을 순교자의 믿음으로 생각하고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까지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를 가장 확실하고 정확하게 아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신앙을 아십니다.
예수님은 이런 굳은 결단을 한 베드로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34절) 결국 이 말씀대로 베드로는 그 날 밤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믿음이 얼마나 초라한지 깨달았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베드로는 닭이 울 때마다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울었다고 합니다. 사순절은 닭이 울 때마다 울었던 베드로처럼 자신의 믿음의 초라함을 뼈저리게 깨달아 겸손하게 하나님께 나아오는 기간입니다. 자신을 믿음을 조정해야 할 때입니다.
네 번째 구조조정은 목양관의 조정입니다. 목양관은 양을 치는 관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양관은 목회자의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관점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가에 대한 질문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같은 질문을 세 번이나 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 질문에 베드로는 대답합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 이 질문을 세 번이나 하십니다.
양을 먹이라는 말은 형제와 자매를 사랑으로 돌보라는 말입니다. 정말 주님을 사랑하면 말로만 하지 말고 형제와 자매를 향해 행동으로 사랑하는 것을 보여주라는 말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하는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행동을 보았을 때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물으신 것입니다. 내 양을 먹이라는 말은 행동으로 보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의 삶에서 행동으로 형제와 자매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순절은 이런 사랑을 조정하며 결단하는 기간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구조조정은 신앙 자리에 대한 조정입니다. 이 말은 나는 지금 어디를 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에 대한 문제이며 조정입니다. 우리가 향하는 방향성이 신앙의 자리인지 불신앙의 자리인지 묻습니다.
영화 쿠오바디스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베드로가 “쿠오바디스 도미네(주님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묻습니다. 영화에서 베드로가 처한 상황을 말씀드리면 로마의 박해가 일어났고 예수 믿는 신자들이 순교를 당하는 때입니다. 베드로는 박해를 피하여 로마를 떠나는데 부활한 예수님을 만납니다. 베드로가 묻습니다.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대답합니다. “나는 네가 버린 박해받는 나의 양들을 위해 다시 십자가를 지려고 로마로 간다.” 이 말을 듣고 베드로는 충격을 받습니다. 마지막까지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을 교정시켜주십니다. 예수님은 마지막까지 베드로의 인생에 간섭하십니다. 그 말을 듣고 베드로는 돌아서서 로마로 들어가서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는 순교를 당했습니다.
고난 주간에 주님이 원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의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방향이 주님이 가신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가신 길이 신앙의 자리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고난 주간을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지는 마음으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 우리의 인생을 온전히 바쳐 예수님께서 단행하시는 인생의 구조조정으로 말미암아 진정으로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성도가 되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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