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여섯, 결정은 신중하게, 행동은 신속하게
리더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무엇보다 결정을 내려주는 것이다. 사람들의 유형을 흔히 돈키호테와 햄릿으로 나누는데, 이 구분을 그대로 리더의 분류에 적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나는 리더십에 관한 강의를 할 때 리더의 덕목을 다음 셋으로 규정한다. 우선 리더 (leader)는 리더(reader)여야 한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일단 리더로서 자격이 없다. 리더는 조직의 그 누구보다 많이 알아야 한다.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것들을 미주알고주알 다 꿰고 있을 필요까진 없을지 모르지만 사태의 전후좌우는 확실하게 파악해야 하고 이런저런 위기를 해결해낸 선지자들에 대해 폭넓은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리더는 무엇보다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리더는 생각하는 사람(thinker)이어야 한다. 생각을 깊이 할 줄 모르고 경거망동하는 사람이 조직의 리더가 되면 본인의 인생만 망치는 게 아니라 애꿎게 함께 하는 많은 사람의 인생도 한꺼번에 수렁에 처넣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리더는 책도 많이 읽고 생각도 깊이 해서 나아가야 할 길을 찾아줘야 한다. 리더는 길잡이(pathfinder)여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돈키호테는 애당초 리더로 어울리지 않는다. 일단 돈키호테 유형의 사람들은 리더로서 자격이 없다. 리더의 경거망동은 조직의 운명은 물론, 그 피해가 조직원 모두에게 확산된다. 그러나 지나친 햄릿도 조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리더가 너무 오래 생각만 하고 결정을 내려주지 않으면 업무가 멈춰선다. 생태원 초창기에 나는 미처 업무 파악이 안 된 상태에서 보고를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결재하기를 꺼려했다. 그러나 절대로 오래 들진 않았다. 기안한 직원에게 하루만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저녁시간에 관사에서 꼼꼼히 읽어보았다. 이튿날 사무실에 돌아오면 서류를 작성한 담당 직원을 불러 내가 수정한 부분에 대한 간단한 설명도 했고,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은 일일이 질문하고 답을 들었다. 사안이 심각해 외부의 자문이 필요하다거나 담당 정부 부처와 좀 더 면밀한 조율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대개 하루 이틀 내로 결정해 알려줬다. 결심은 당연히 신중하게 해야 하지만 결정은 가능한 한 신속하게 내리려 노력했다.
제33대 미국 대통령 트루먼(Harry S. Truman)의 책상 위에는 "The buck stops here!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라는 푯말이 놓여 있었다. 미국의 각 주는 제각기 애칭을 갖고 있다. 뉴멕시코(New Mexico)는 '마법의 땅(The Land of Enchantment)'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고 유타(Utah)는 '벌통 주(The Bechive Sate)'로 불린다. 트루먼 대통령은 '보여줘야 믿겠다(Show me)'는 애칭을 지닌 미주리(Missouri)주 출신이다. 확신이 설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일단 결정하고 나면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나도 이 말을 늘 가슴에 새기고 일했다. 원장이 직접 나서면 오히려 일을 그르친다고 극구 만류해서 멈춘 적은 있지만, 모든 책임은 궁극적으로 내게 있음을 분명히 했고 절대로 직원들 뒤로 숨지 않았다. 최종 책임이 어차피 내게 있다고 생각하니 결정을 내리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의 잘못된 결정으로 애꿎게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볼까 그게 두렵지 내가 곤경에 빠지는 것은 스스로 저지른 일의 대가라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그래도 결심을 거의 굳힌 상태에서 나는 언제나 한 차례 더 멈춤의 시간을 가진다. 역지사지의 방법으로 내 결정이 불러올 파장을 다시 한번 검토하는 시간을 가진다. 아무리 간단해 보이는 일이라도 잠시 한번쯤 묵혔다 가는 방식은 내가 오래전부터 해오던 나만의 삶의 방식이다. 삶의 여정에서 바로 이 방식 때문에 나는 큰 과오 없이 잘 살아온 것 같다. 잠시 멈춘 이 한 템포 속에서 때로 전혀 예상치 않았던 새로운 국면이 벌어져 내 결정을 수정할 수 있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짧은 한 박자 동안 끓어오르던 마음을 가라앉혀 쓸데없이 일을 키우지 않아도 되었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나는 자동차 운전을 할 때에도 이를 습관처럼 지킨다. 차선 변경을 결정한 다음 꼭 한 박자 쉬어간다. 사각지대에 있던 차가 모습을 드러내 가슴을 쓸어낸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모름지기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 했다.
숲에서 경영을 가꾸다 중에서
최재천 지음
첫댓글 부지런히 돌다리 두둘기러 오늘도 으쌰으쌰
나날이 춤사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