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길 / 규슈 올레 - 다케오 코스

[산에산에]

걷고 싶은 길

정겨운 산길과 들길, 청결한 마을길

- 규슈 올레 다케오 코스

일본 규슈가 2012년 2월부터 제주의 ‘올레’를 수입하여 ‘규슈 올레’를 개장했다.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쳐 7개 현에 걸쳐 모두 10개 코스가 문을 열었는데, 각 코스 길이는 10~15㎞로 걷는 시간은 4~5시간 정도이다. 이 가운데 사가현의 다케오 코스와 오이따현의 오쿠분고 코스 두 곳을 차례로 찾아본다. 

규슈 올레는 길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파란색과 붉은색 리본, 나무 화살표, 간세(제주 조랑말을 형상화한 모양)가 곳곳에 배치돼 있다. 파란색 화살표가 정방향, 붉은색 화살표는 역방향을 뜻한다. 곳곳에서 마주치는 간세를 만나면 머리가 향한 방향으로 나아가면 된다.

제주 올레는 마을의 고샅길이라는 원래의 의미 이상의 많은 것을 지니고 있다. 치유와 느림의 걷기문화로 한국인의 마음을 다독여준다. 이 제주 올레가 규슈에 수출, 일본의 자연과 인정, 문화의 속살까지 그대로 보여준다. 규슈 올레를 걷는 것 또한 길 이상의 의미를 찾게 된다.

부산에서 가장 접근성이 좋은 곳은 사가현 다케오(武雄) 코스이다. 후쿠오카에서 JR열차로 1시간 10분이면 닿게 되는 다케오는 야트막한 산들에 둘러싸인 1300년 된 온천마을이다. 수령 3000년의 신비한 녹나무들과 400년 역사의 도자기 가마 90여 개가 있는 전통예능의 관광지이기도 하다.

다케오 올레 코스는 다케오 온천역에서부터 시작된다. 시가지의 차분한 아스팔트 길을 따라 잠시 걸어가면 대나무숲이 서늘한 산길이 맞아준다. 쉼터에서 시가지를 내려다본 뒤 다시 내리막길로 접어들면 기묘지(귀명사) 절이 나타난다. ‘규슈 올레를 걸으시는 분들은 차 한 잔 들고 가세요.’ 이런 한글 안내판을 내건 주지 부인이 서투른 우리말로 인사를 건네며 차대접을 한다. 그이는 규슈 올레를 찾는 한국인들과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도 했다.

절에서 나와 이케노우치 호수 입구까지 마을길을 따라 걷는다. 길에는 쓰레기 하나 없는 것은 물론, 주차 위반 차량을 단 한 대도 찾아볼 수 없다. 떠들거나 고함을 지르는 이들도 물론 없다. 일본인들의 청결이 얼마나 완벽한지 소름이 끼칠 정도라는 탄성이 나오고는 한다.

우주과학관이 있는 곳에서 길은 A, B코스로 나누어진다. 난이도가 좀 높은 상급자 코스와 일반 코스로 체력에 맞춰 선택한다. 상급자 코스는 거대한 삼나무 그늘을 따라 가파른 비탈을 오르내려야 하고, 일반 코스는 아주 평탄하면서도 아름다운 길을 따라간다.

A, B코스가 다시 합류하는 지점에서 다케오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다케오의 자연풍광을 아름답게 뒷받침하는 산 미후네야마. 고양이 코를 닮았다는 이 산이 기자의 눈에는 한국의 마이산을 보는 듯했다.

다케오 코스의 하이라이트는 다케오 신사의 녹나무이다. 대나무와 삼나무가 좌우에 곧게 서있는 오솔길을 따라 가면 3000여 년을 버텨온 녹나무 ‘다케오노오쿠스’가 웅장한 자태로 서있다. 높이 30m, 둘레 20m, 뿌리둘레 26m의 거대한 나무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일본인들에게 녹나무는 영험함이 서린 ‘신물’과 같은 존재라고 한다.

이곳에서 가까운 거리에 수령 3000년의 또 다른 녹나무 쓰카사미노오쿠스를 만날 수 있다. 이 나무는 낙뢰(落雷)로 인해 지상 9m 이상이 없어졌지만, 과거의 장대한 모습을 연상케 하는 둥치와 뿌리가 그대로 남아있다. 나무둘레 13.6m, 뿌리둘레 38m이다. 이들 녹나무는 다케오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힘을 안겨주고 있다는 것이다.

다케오 코스는 돌부처 88개가 산의 이곳저곳에 숨어 있는 사쿠라야마 공원을 거쳐 다케오 온천의 입구에 붉은 칠을 한 대문인 로몬에서 마무리된다. 1915년에 건설된 로몬은 도쿄 역과 일본은행 본점 등을 설계한 다쓰나 긴코의 작품으로 일본의 중요문화재이다. 매주 일요일 아침 7시30분에는 ‘로몬 아사이치’라는 아침장이 열리는데, 이 고장 사람들이 아침에 딴 과일과 야채 등을 관광객들에게 판다.

그 역사가 오랜 다케오 온천은 수질이 좋아 일본 안에서도 인기가 높다. 이곳의 공동욕탕과 노천탕 등이 눈길을 끄는데, 여관과 호텔에 숙박하지 않아도 이용할 수 있는 욕탕(무숙박)도 있다. 규슈 올레 다케오 코스는 온천역에서 시작하여 노천탕 등이 있는 온천장이 종점으로 온천욕으로 피로를 풀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다케오 코스를 걸어본 이들은 누구나 뿌뜻한 기쁨을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자연 풍광이 좋은 곳에 인간 친화적인 길을 만드는 제주의 ‘올레 정신’이 규슈에 제대로 전수되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깨끗한 숲, 정겨운 마을길, 넘치는 인심은 서로의 편견과 갈등을 치유할 수 있게 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사람과 자연의 만남 못지않게 사람과 사람의 만나는 소통의 장으로서도 올레의 의미는 배가 되는 듯하다.

※ 규슈 올레 10개 코스 (괄호 안은 현)

⓵ 다케오(사가) ⓶ 히라도(나가사키) ⓷ 아마쿠사(구마모토) ⓸ 이브스키(가고시마) ⓹ 오쿠분고(오이타) ⓺ 다카치호(미야자키) ⓻ 아마쿠사 · 마쓰시마(구마모토) ⓼ 기리시마 · 묘켄(가고시마) ⓽ 고코노에(오이타) ⓾ 가라츠(사가)

[김무영]

자연스럽게 잘 꾸며 졌네유
표지도 그렇구
산과 연못과 냇가
낙엽도 그대로 둔체 낭만의 분위기를 연출하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