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이 되면 북한산과 도봉산은 시민들의 산으로 자리매김합니다.
그때 '우리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모아 보았습니다.
술자리에서 선배들의 구라 속 전설로만 떠돌던 이야기들의 '장소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도봉산 북한산 봉우리들 뿐 아니라,
돈암동 버스 종점, 그린파크. 우이동 유원지, 송추 유원지 등등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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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들의 출처는 맨 좌측 1972년 '이것이 한국이다' 중 제1권 서울 경기편, 이 책에 대해 더 보시려면
발행인에 따르면 이 '위대한' 전집을 10년 준비했다고 하며 사진은 7000여장에 달했다고 한다.
사진의 포인트는 '사람사는 세상'의 등산 버젼으로, '산이 좋아 산을 수놓은 사람꽃들' 이다.
제대로 된 '등산' 사진집 한 권 없는 우리나라를 읽으시려면 --> 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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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먼저 일제 때에도 해방 후에도 도봉산 북한산 산행의 출발점으로 기능했던
돈암동 버스(전차?) 종점은 어떠했을까?
'
'신흥사 부근 '돈암동 종점의 신흥사 부근은 각종 대소 연회장으로 이용되는 음식점이 많다'
충남상회와 진흥상회의 간판이 보인다. 이런 상호가 약속장소의 포인트가 되었을 것이다.
간판의 좌우측 광고는 백화(白花)'라는 당시 소주 제조회사이다.
그시절 그들은 이곳에서 아침일찍 서성거리며 친구들을 기다렸고, 하루 산행의 즐거움을 예상했다.
신흥사는 지금은 흥천사라고 볼리는데, 지도 중 좌측 상단의 C가 흥천사 일주문 위치로 보인다.
종점은 어디쯤 있었을까?
돈암동 전차 종점에 대해서 더 읽으시려면 여기를, 여기를
인수봉과 백운산장 사이로 보이는데, 설명에는 '인수봉의 테라스'라고 적고 있다.
이 표현은 과문하여 여기서 처음 만난다.
아마 인수봉 등반하는 팀일텐데, 텐트 위 소나무가 임금님의 행차에 그늘을 드리워주는 양산같다.
이런 사진 앵글 일찍부터 인수봉을 담은 클라이머들의 사진에도 또 있을까?
'그린파크 입구' 우이동에 풀장 등 시설을 갖춘 그린파크 부근은 경치가 아름답다.
책에는 요즘처럼 '순수'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하는 자연'을 담으려 하다보니,
그시절 우리네 등산 문화를 증거하는 자료로서 훌륭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45년이나 된 책의 손상을 두려워하면서(^^) 스캔을 뜨게 되었다.
'도봉산 푸울장'
이곳은 어디일까요?
망월사 입구의 유원지일 수도 있겠고, (1968년 경 망월사 입구 풀장을 보시려면)
도봉산역쪽의 새로운 유원지 일 수도 있겠는데, 시설의 차이를 보면 도봉산 역쪽으로 보여진다.
사진설명 - "수유리 장미원에서 본 도봉산 - 이곳은 여름내 장미 향기에 뒤덮인다."
수유리에 유명한 장미원이 있었나 보다.
검색해보니 지금도 그 명칭이 남아 있다.
산악계 원로인 김영도 선생님의 6,70년대 수유리 저택의 주변도 이런 분위기였겠다. --> 여기를
설명 - 도봉산 주봉에서의 록클라이밍 - 기술적인 등산도 많이 일반회되었다.'
말그대로 70년경이면 인수봉이 정체가 벌어지던 시절이죠...
저 시절 저 푸릇푸릇 청춘들이 지금 한국산악계의 원로들이 되겠겠다.
사진설명 - 백운대의 등산객들 - 주말이면 백운대는 원색의 등산복으로 얼룩인다.
하루를 만끽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뜀 바위사이에 철다리가 있는데,,,
백운대 뜀바위는 언제 만들어졌을까요? --> 여기를
우이동 유원지의 실제 모습이 이러했다니...
'옥수정'은 아마도 술과 음식을 파는 곳이겠지.
두갈래 계곡이 모이는 것 같은데 이곳은 어디일까?
일제 때 우이동 계곡의 모습을 보시려면 ---> 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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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 유원지.
창경궁이라는 궁궐이 공원이 되듯이 왕릉이 유원지가 된 건 상식적으로 일제가 되시겠다.
정릉에 관해서는 우측 상단의 검색란에 '정릉'을 넣으면 많은 편린들을 볼 수 있다.
6.25때 거의 완파된 진관사가 재건되었다. 건물이 산뜻한 걸 느낄 수 있다.
대웅전 앞의 두 석등이 너무 날렵한게 뭐랄까 그럴리는 없지만 왜색의 느낌이 든다.
(왜색이 짙어보이는 탑의 모습을 보시려면 --> 여기를)
지금의 석등은 조금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석등 위가 네마디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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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 특히 선인봉의 앞모습은 어디일까?
지금은 도봉산역에서 바라보는 이 정경이 도봉산의 얼굴이 되겠는데,
별 장관이지도 않은데..도봉산의 선인봉이라고 하고 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시절에는 천축사를 통해 도봉산 정상을 향해 많이 올라갔기 때문일 것이다.
천축사쪽 등산로에서 보면 도봉산 선인봉의 전면은 바로 이 모습이 되시겠다.
만장봉 클라이밍의 모습.
사진의 색감이 다른 사진보다 좀 더 이른 걸로 보인다.
그리고 백운대 정상의 모습.
그런데 도봉산 정상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의문을 가질 수 있겠다.
60년대만 해도 도봉산 정상의 암괴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는 것도 이유중 하나일 것이다.
일제는 물론이고 5,60년대 사람들은 도봉산 정상은 갔던가..--> 여기를
'도봉산 우이암... 우이동으로 갈 수 있다'라고 적고 있다.
그냥 단순한 해석인데,
우이동은 주로 우이동 유원지에서 놀거나 등산이라면 북한산행 입구라는 걸 의미한다.
일반적인 도봉산행이라면 우이암은 우이동으로 '내려'가며 만나는 코스였다.
지금도 그러한 것 처럼 말이다.
송추 유원지.
우리가 '계곡'을 찾는 건 한여름 무더위를 피해서가 주된 이유였고,
따라서 풀장은 어디에건 인기 있는 곳은 이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1966년 소설가 김동리는 단편소설 '송추에서'를 발표한다. ----> 여기를
그가 송추에서 본 모습은 이랬을 것이다.
북한산의 낮은 곳은 이렇게 아마 산림녹화도 조금 늦어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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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삼릉에 현대식 목장이 있고...
서오능도 있다.
서오능을 한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나처럼 신영복 선생의 서오능으로 기억하는 이 많을 것이다.
언젠가 먼 훗날 나는 서오능으로 봄철의 외로운 사색을 하고 싶다.
맑은 진달래 한 송이를 가슴에 붙이고 천천히 걸어갔다가 다만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
북한산 대서문 복숭아꽃이 피던 아름다운 시절을 담았다.
민가가 대서문 앞에도 있었을 터인데 잘 보이지 않네...
그리고 419 민주묘지
플랭카드에는 '추념 - 제 12회 4 19 의거 희생자 추념식'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니까 1972년이 되는 셈일까.
북한산 설경.
안부를 가운데에 놓고 저멀리 산을 담고 있다. 하도 가본지 오래되어 여기가 어디인지 갸웃.
보현봉에서 찍은 것 같은데, 멋있다.
좌측의 북한산 세봉우리와 우측의 도봉산 봉우리가 서로 원근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누가 찍었을까 궁금하였는데, 책의 맨 앞쪽에 작가들을 거론하며 발행인은 감사를 표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고, 최구현 선생이 눈에 들어온다. 아마 설악의 최구현을 말할 것 같다.
최구현 선생없는 설악산 개발은 생각할 수 없는데, ( 여기를, 여기를 그리고 또 여기를
그는 1950년대 말에 이미 설악산 최고의 사진집 '설악산'을 상재한 분이다.
지금도 설악산 특히 외설악은 그의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그 이후에 만들어진 허다한 설악산 사진집과는 반열을 달리하는 명작이다.
나는 장담한다. 허다한 설악산 사진작가들은 60년전 최구현 선생의 작품집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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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1970년 전후 북한산과 도봉산의 '일상'을 사진을 보았습니다.
관악산과 경기도의 산과 '사람냄새'가 나는 관광지의 사진으로 이어집니다.
첫댓글 흑백사진 좋습니다.
우이동 포럼 자리에서 일찍 돌아오셨군요...~
여행지, 지리(지도) 관련지, 맛집 소개 등 각종 관광안내 및 정보계통 서적류는 10년만 지나면 못 쓰게 됩니다. 그냥 추억 삼아 사진 정도 감상하는 건 몰라도... 그래서 문학, 학술지 등, 나중 고전으로 남을 良書를 구입하는 게 좋습니다.
소장하고 계신 귀한 장서를 도봉서원에 기증하신 걸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책의 의미에 대해 하신 말씀을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사람쯤은 그런 '흘러간' 책들을 무슨 보물인양 컬렉팅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선인봉남측 십자로가보이는 사진은 60년대말 낙뢰로 일부무너져내리기전의 사진인듯합니다
같은위치에서찍은 요즘사진과 비교해서 달라진부분을찾아보는것도 재미있을것같네요
백운대정상이라고 표기된 사진은 만경대 정상입니다.
당시 사진찍으신분이 착각하신듯 합니다.
형님.. 오랫만입니다~
선인봉 남측, 60년대 말 낙뢰는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
말씀대로 달라진 부분 찾고, 자료도 있으면 덧붙여서 블로깅 하고 싶습니다.
말씀대로 그런게 재미죠.~
저도 무심코 백운대 정상이라고 했는데, 자세히 보니 아니군요.~
그리고 돈암동에 관한 이야기, 사진있으시면 사진과 함께 좀 부탁드립니다.
사진에 있는 곳이 돈암동 전차 종점이라고 해야 하는지요? 버스종점이라 해야 하는지요.
그런 것부터 궁금하네요~
검색하다보니 '돈암동 전차종점'이라는 소설이 있더라고요.
1963년 돈암동을 사실적으로 그렸다고 하는데, 구입하는대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