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5]
헨리 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r, 1858-1902)①
언더우드와 함께 우리나라에 최초로 선교사로 입국한 미국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는 18세 때 어느 장로교회 집회에 참석해서 회심을 하게 된 후 24세 때 드루(Drew)신학교에 진학했으며, 그곳에서 공부하는 중에 윌리엄 그리피스(William Griffis)가 쓴 『은둔의 나라 조선』(Corea: The Hermit Nation, 1882)을 읽고 조선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1884년 12월 엘라(Ella Dodge)와 결혼 후 1885년 2월 27일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해서 일본 요코하마에 들렀습니다. 아펜젤러가 언더우드와 함께 요코하마에 도착했을 때 이미 이수정은 『마가젼 복음셔언』 1천부를 발행한 상태였고, 이 두 선교사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수정을 통해 약 1개월간 조선어를 배웠고, 인천 제물포항으로 들어올 때 우리말로 번역된 마가복음서를 가지고 입국할 수 있었습니다. 선교사가 어느 나라에 들어가서 최소한 몇 년간 또는 여러 해 이상 현지 언어를 철저히 배우고 익혀야 번역할 수 있는 현지어 복음서를 아펜젤러는 입국할 때 들고 왔던 것입니다. 그가 아내와 함께 ,그리고 언더우드 선교사와 함께 조선 땅을 밟게 되었을 때가 바로 1885년 4월 5일 부활절이었습니다. 아펜젤러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부활절 아침에 여기에 도착했습니다. 이 아침에 사망의 철책을 부수고 일어나신 주님께서 이 나라 백성에게 얽매여 있는 쇠사슬을 끊으시고 그들에게 하나님 자녀의 영광과 자유를 얻게 하여 주소서!” 그는 서울시 중구 정동에 사저를 마련하고 선교활동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당시 조선의 상황이 불안정해서 제물포로 돌아갔다가 얼마 후 일본으로 다시 건너가서 그곳에서 자유롭게 우리말을 더 익히고 7월에 재입국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도서: 김재현, <한반도에 새겨진 십자가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