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개봉을 앞둔 헐리우드 영화 ‘이터널스’에는 ‘길가메시’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 영화는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주인공 10명이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데, 그중에서 길가메시는 맨손으로 괴수를 때려눕히는 전사이자 영웅으로 그려진다. 이는 실존 인물이었던 길가메시가 거대한 체구에 강력한 힘을 가졌던 데서 착안해 영화적인 캐릭터로 만들어 낸 것이다. 특히 길가메시 역에 우리나라 배우가 캐스팅되면서 국내 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데, 예고편에서 길가메시가 바빌론의 성문 앞에 버티고 서서 괴수를 물리치는 장면이 공개되자 그가 어떤 활약을 보여 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자료1,2>
역사적으로 길가메시는 서기전 2600년대에 존재한 인물로,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도시 ‘우루크’를 다스렸던 젊고 패기 넘치는 왕이었다. 영화와는 달리 실제 길가메시는 바빌론의 성문 앞에 서 있을 수가 없었는데, 이 성문은 서기전 500년대에 건설된 것으로 길가메시가 죽고 2000년 이상 지난 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길가메시는 비록 바빌론 시대를 살지 못했지만 그의 모험을 담은 ‘길가메시 서사시’는 바빌론 시대에도 계속 살아남아 학생들은 학교에서 이 흥미진진한 영웅담을 배웠으며 필경사들은 점토판에 이 서사시를 기록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우루크나 바빌론뿐 아니라 이 도시들을 포함하는 메소포타미아 지역 전체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였고, 그 생명력은 2000년 이상 이어졌던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길가메시가 바빌론을 무대로 활약하는 영화 장면이 역사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빌론 시대로부터 다시 2500년이 지난 지금, 길가메시가 영화의 주인공이 될 만큼 각광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길가메시를 주인공으로 하는 ‘길가메시 서사시’가 수천 년의 시간을 넘어 현대에 널리 알려진 것은 성경과의 독특한 관계 때문이었다.
이번 기획기사에서는 길가메시 서사시의 전체 내용과 함께 성경과의 관계를 짚어 본다.
『광활한 땅 위에 있는
모든 지혜의 정수(精髓)를 본 자가 있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모든 것을 경험했으므로
모든 것에 능통했던 자가 있었다.』
<길가메시 서사시 中>
(출처: 김산해,『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휴머니스트 출판그룹, 2020., p.63.)
길가메시 서사시는 길가메시라는 인물을 자세히 묘사하면서 시작된다. 그는 모든 왕을 압도하는 체격과 힘을 가진 인물이었으며, 견고한 성과 화려한 신전을 세운 유능한 왕이었다.<자료3> 또 ‘세상 최고의 남자’라고 자부하는 오만한 성격의 소유자였는데, 신들은 오만방자한 길가메시를 견제하기 위해 야수처럼 강인한 청년 엔키두를 창조하게 된다. 두 청년은 막상막하의 대결 끝에 서로의 능력을 인정하고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으며, 파란만장한 위기를 함께 헤쳐 나가며 산속의 괴수를 처단하고 하늘에서 내려온 황소를 죽여 명성을 떨치게 된다.<자료4,5,6>
자료4> 엔키두와 길가메시(왼쪽)
신들은 길가메시를 견제하기 위해 엔키두를 창조했지만 두 청년은 막상막하의 대결 끝에 서로의 능력을 인정하고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출처: 하버드 위키)
<자료5> 길가메시 서사시 다섯 번째 점토판과 훔바바 마스크(가운데)
이 점토판에 길가메시와 엔키두가 산속의 괴수인 훔바바를 처치하는 모험담이 기록되어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영국 국립 박물관)
<자료6> 하늘의 황소를 물리치는 길가메시와 엔키두(오른쪽)
훔바바와 하늘의 황소를 죽인 사건으로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신들의 노여움을 사고, 엔키두는 벌을 받아 목숨을 잃게 된다. (출처: http://cargocollective.com/jonjen/Gilgamesh-and-the-Bull-of-Heaven)
그러나 산속의 괴수와 하늘의 황소는 모두 신의 관할 아래 있었고, 그들을 죽인 사건으로 인해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신들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결국 엔키두가 벌을 받아 극심한 고통 끝에 목숨을 잃게 되는데, 죽은 친구를 끌어안고 슬픔에 잠겨 있던 길가메시는 부패가 시작된 엔키두의 코에서 구더기가 기어 나오는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때까지 두려울 것이 없었던 길가메시가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자료7>
길가메시는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며 방황하게 되었고, 신에게서 영생을 얻은 인물 ‘우트나피쉬팀’이 머나먼 곳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길가메시는 그를 찾아 험한 산을 넘고 위험한 바다를 건넌 끝에 결국 우트나피쉬팀을 만나게 된다.
길가메시가 “당신은 나와 똑같아 보이는데 어떻게 신들에게서 영생을 얻게 되었는지 말해 주십시오.”라고 청하자 우트나피쉬팀은 “내가 너에게 숨겨진 사실을 말해 주리라.”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먼저 신이 대홍수로 온 세상을 쓸어 버렸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신이 홍수에 대비해 그에게 배를 만들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집을 허물고 배를 만들어라. (…)
온갖 생물의 씨를 배에 실어라.
네가 만들 배는
그 크기를 잘 재어서 만들어라.
가로와 세로의 길이가 똑같도록 하라. (…)”
거기 있는 모든 것을 배에 실었다. (…)
모든 산 것들의 씨와 그것들을 실었다. (…)
가축, 들짐승 (…)을 태웠다. (…)
육 일 밤낮으로
바람이 일고 홍수와 폭풍이 땅을 휩쓸어 버렸다.
칠 일째 되자, (…)
바다는 잠잠해졌고 폭풍은 가라앉았으며
홍수는 그쳤다. (…)
모든 인간들은 진흙으로 돌아갔다. (…)
배는 니무쉬 산에 머물렀다.
니무쉬 산은 배를 꼭 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
일곱째 날이 되자,
나는 비둘기를 꺼내어 내보냈다. (…)』
<길가메시 서사시 中>
(조철수,『수메르 신화』,서해문집,2003.,p.124.~130.)
우트나피쉬팀은 날려 보낸 새가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아 먹는 것을 보고 땅이 드러났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방주 밖으로 나가 정성을 다해 신에게 제사를 올렸는데, 그 제사를 보고 흡족해진 신이 우트나피쉬팀을 찾아와 축복하며 영원한 생명을 주었다는 것이다.
자료8> ‘생명의 식물’을 의미하는 수메르의 설형문자
우트나피쉬팀은 자신도 영생을 얻게 해 달라고 간청하는 길가메시를 측은히 여겨 생명의 식물(불로초)을 손에 넣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출처: 김산해,『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휴머니스트 출판그룹, 2020., p.311.)
이야기를 들은 길가메시는 자신도 영생을 얻게 해 달라고 간청했는데, 처음에 냉소적이던 우트나피쉬팀은 결국 길가메시를 측은히 여겨 불로초를 손에 넣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자료8> 길가메시는 그 방법대로 위험한 심연에 몸을 던져 천신만고 끝에 불로초를 손에 넣었지만, 허무하게도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뱀에게 빼앗기고 만다.<자료9> 빈손으로 돌아온 길가메시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마지막에 숨을 거두는 장면으로 서사시는 끝을 맺게 된다.
점토판에 새겨진 길가메시 서사시는 인류가 기록한 최초의 서사시로 불린다. 흥미진진한 모험을 기록한 이 이야기는 메소포타미아 전역에 알려졌지만, 이후 이곳의 도시들이 쇠락하고 황폐해지면서 길가메시 점토판은 모래 언덕 아래에 묻히게 되었다.
그 후 길가메시 서사시가 다시 세상에 알려진 것은 이것이 인류 최초의 서사시라거나, 매력적인 모험담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성경 때문이었다. 성경의 노아 홍수 이야기와 동일한 대홍수 이야기가 기록되었다는 이유로 길가메시 서사시는 큰 주목을 받았던 것이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잘보고갑니다
잘 읽고갑니다
잘보고가요
깊이 알수 있어서 좋아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잘보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