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영과 진리 안에서 감사의 예배 드리는 삶
2024년 올해 저의 영성 목표입니다. 지난해에도 비슷했는데, 지난 1월 24일부터 27일까지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에서 사제 연피정하면서, 좀 심화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원하시는, 아니 저로부터 받고 싶은 예배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제로서 주님께 감사와 찬미와 영광의 예배를 드림은 당연한데, 그렇지 못한 삶이 많았습니다. 말로는 그렇게 한다고 하고는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더욱이 주님께서 받고 싶은 예배(감사와 찬미와 영광)와 제가 드린 예배가 다른 점도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드리는 예배는 저를 중심에 놓고 드린 예배(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 나를 위한 기도, 나의 영광을 위한 삶)였음을 고백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보면, 그렇게 많이 바뀌지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는 ‘영과 진리 안에서’ 드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요한 4,23-24).
영도 진리도 모두 주님이시기에, 주님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내 생각과 판단에 따른 예배가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예배여야 함을 말입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뜻 안에서’라는 말씀은 주님께서 함께하시며 머무르시고 당신께서 역사하시기 위한 자리(범위)가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다가옵니다. 그동안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못함은 하느님이신 영과 진리가 아니라, 더러운 영과 그릇된 것을 간직한 채 예배를 드렸기에 불편한 마음이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 안에서가 아니라, 더러운 것과 거짓 된 것도 간직한 채 드린 예배였기에 그렇구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온전한 거룩함과 온전히 옳고 좋은 것 안에 머무르는 예배의 삶... 정말 그동안 내가 바라는 바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과 진리 안에서 주님께서 함께하시며 머무르시고 역사하시는 '자리'(범위)는 '우리의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의 밭'이 그런 자리 말입니다. 주님께서 머무르시고 역사를 시작하는 기반의 자리가 바로 ‘겸손하고 온유한 나의 마음’임을 깨달았습니다.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은 바로 예수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임을... 예수님께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배워라.”(마태 11,29)라고 말씀하시는 바와 같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예배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주님(영과 진리) 안에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예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 안에서 드리는 예배’라는 뜻입니다. 그 예배는 자연스럽게 감사의 예배, 성찬(εὐχαριστία 에우카리스티아) 또는 성만찬(The Holy Communion 홀리 커뮤니언), "주님의 만찬"라는 표현으로 연결됩니다. 즉 성찬례(또는 성체성사)중 하나이며,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을 기념하여 빵과 포도주를 나누라고 하신 말씀, 그리고 십자가상 희생제사까지 연결됩니다.
좀 더 확장하면,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예배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께 바친 희생의 제사’임이 드러납니다. 또 다른 의미로 ‘예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께서 당신을 제물로 바친 제사(예배)’입니다.
이러한 예배를 한갓 인간인 우리가 바칠 수 있는가? 도저히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더러운 것과 그릇된 것을 멀리하고 씻어버리며, 영 자체이시고 진리 자체이신 예수님 안에 머무르려고 하면 가능합니다. 영과 진리이신 예수님이 머무르시기 가장 좋은 자리이며 친구인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그 순간순간들이 영과 진리이신 예수님 안에 머무는 순간들이고, 예수님이 그 안에 머무르는 순간들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이 모여 예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 (영과 진리) 안에서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순간들이 마련됩니다. 그렇게 예배드림은 자연스럽게 감사의 시간(감사의 성찬례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을 묵상하며 올해 영성의 목표로 삼고 나니, 얼마나 기분이 좋고, 얼마나 가슴이 벅찼는지 모릅니다. 주님께서도 그러한 저로부터 예배를 받고 싶어 함이 다가왔습니다. 주님도 기뻐하시는 듯했습니다.
그리고는 피정을 마치고 영적은인 월례미사 후 은인회 임원들에게, 제가 “지도 신부님의 영성 목표를 이렇게 정했으니, 우리 영적은인들도 그것을 목표로 삼아, 함께 달리자.”라고 이야기했더니, 그다음부터는 많은 분이 자신들의 영성적 목표를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영과 진리 안에서 감사의 예배드리는 삶”으로 정해 사용하는 것 같아, 한편으로 흐뭇합니다.
이번 설 명절 연휴에 산책하면서, “예배드리는” 구절 부분에 머물렀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예배를 드리는 것, 그것도 감사의 예배를 어떻게 드리는 것이 좋은가 생각하면서, 깨달은 것은, “예배”의 그 자리에 감사와 찬미와 영광 이외에, ‘이해’라는 단어를 넣어 보았습니다.
실은 그동안 이해 안 되던 분이 있어서,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그분의 처지에서 그분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니,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고, 그렇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저의 모습을 지켜보시는 주님께서 흐뭇이 웃고 있는 듯하여, 너무 마음이 좋았습니다.
그러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영과 진리 안에서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깨닫는 순간, 그동안 이해 안 되어 마음고생했던 분이 용서되고 축복의 기도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참 기뻤습니다. 그동안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온 어깨와 마음이 편하고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올 한해에는, 특별히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되는 사순시기에, 더욱 이해하고 위로하며 사랑하는 삶을 다짐해봅니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위로하고 사랑하기 위해 또 다른 ‘재’(ash)가 되는 것이, 또 다른 의미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영과 진리 안에서 감사의 예배드리는 삶’임을 깨닫습니다. 그 깨달음을 주신 주님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영과 진리 안에서 감사의 예배를 드립니다.
이글을 함께 나누는 분들을 위해서도,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영과 진리 안에서 감사의 예배를 드리며 축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2024년 재의 수요일을 맞으며... 모든 분을 위해 강복합니다.
첫댓글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영과 진리 안에서 감사의 예배 드리는 삶', 삶을 살아가는데 울림이 큰 경구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이해하며 영과 진리 안에서 온전히 하느님께 감사의 예배 드리는 삶을 잘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하루 하루를 봉헌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영과 진리 안에서 감사의 예배 드리는 삶》
아멘~♡
재의 수요일을 맞으며 이해하고 위로하며 사랑하는 삶을 위하여 '재'로 돌아가야 함을 깨닫게 해주시고, 강복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은혜로운 사순시기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