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계국 피는 강둑으로
간밤까지 가늘게 내리던 비가 새벽녘에 그친 오월 셋째 금요일이다. 아침 식후 빈 배낭을 둘러메고 현관을 나섰다. 같은 아파트단지 이웃 동 뜰에 꽃을 가꾸는 꽃대감을 만나 아침 인사를 나누었다. 화단 가득 자라는 여러 화초는 비를 맞아 더 싱그러웠다. 제철을 맞은 장미가 제 이름값을 하듯 아름다운 자태로 꽃송이를 달고 있었다. 아래층 할머니 꽃밭의 장미꽃이 더 풍성했다.
할머니는 모종을 옮겨 심고 꽃대감 친구는 플록스 줄기를 잘라 꺾꽂이하고 있었다. 꽃의 개체 수를 늘리는 방법은 몇 가지 되는데 꺾꽂이가 가장 실용적이고 확실했다. 비가 와 습기를 머금은 땅에 꽂아두면 뿌리내려 살았다. 이 밖에도 씨앗을 받아 가을이나 봄에 뿌려 싹을 틔워 키웠다. 꽃대감은 꽃씨로도 모종을 가꾸고 있다. 포기나누기와 가지를 휘어 땅에 묻는 휘묻이도 있다.
꽃대감과 할머니와 헤어져 나는 정류소로 나가 105번 버스를 타고 동정동에서 2번 마을버스로 갈아탔다. 용강고개를 넘어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사무소 앞을 지났다. 주남삼거리에서 주남저수지를 지나니 들녘에는 모를 내려고 무논을 다려놓은 구역도 보였다. 대산면 소재지 가술에서 모산을 거쳐 북부리에서 내렸다. 북부리는 우영우 변호사 드라마에 나온 팽나무가 선 마을이다.
북부리 팽나무는 작년 이맘때 그 드라마 배경으로 등장한 모양이었다. 도로 사정이 아주 불편한 강변 구석까지 전국에서 팽나무를 구경하러 오는 이들의 발길이 줄을 이어 한갓진 마을은 몸살을 앓았다. 팽나무를 찾아오는 순례자들은 여름을 넘겨 가을이 되자 수그러들어 이제 평온을 되찾은 듯했다. 마을 앞 넓은 들녘은 벼농사 뒷그루로 심은 비닐하우스 당근은 수확을 앞둔 때다.
마을 수호신인 거대한 팽나무는 수령이 500여 년을 헤아렸다. 나는 4대강 사업 이전부터 그곳 일대 강둑으로 트레킹을 자주 다녀 주변 풍광이 익숙했다. 노거수 팽나무는 당산목 기능도 하기에 동신제 지낸 흔적으로 밑둥치에 왼새끼를 두르고 있었다. 지난해는 그 새끼줄에 답사객들이 지폐를 끼워두기도 했다. 모였던 지폐는 동신제 경비와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썼다고 들었다.
북부리 팽나무 강언덕에 서서 수산에서 삼랑진으로 흘러가는 유장한 강물을 바라봤다. 강줄기 주변 펼쳐진 넓은 둔치는 여러 식생이 어울려 자라는 생태 환경이었다. 강가 갯버들은 기본이고 물억새와 갈대가 무성했다. 둔치는 지금 노란 금계국이 지천으로 피어나는 때였다. 금계국은 외국에서 들어온 여러해살이 화초이나 이제 우리 땅에 적응해 토종처럼 여겨진 귀화식물이 되었다.
북부리에서 유청으로 가는 둑길을 따라 걸으니 느티나무가 이어진 강둑 길섶에는 노랗게 핀 금계국이 가득했다. 금계국의 열병을 받으며 대나무가 숲을 이룬 유청의 강언덕을 넘었다. 강기슭의 작은 절을 지나 유등으로 가니 커다란 배수장이 나왔다. 넓은 들판이라 농수로를 기준으로 창원과 김해의 경계를 구분 지었다. 강둑에서 행정구역이 바뀐 김해 한림의 가동에서 술뫼로 갔다.
술뫼 둔치에는 파크골프장에 다수의 동호인이 운집해 여가를 즐겨왔는데 올봄부터는 잠정 폐쇄 상태였다. 국가 하천의 무인가 시설물이라 당국에서 출입을 통제해 골퍼들은 발길을 돌려야 할 듯했다. 술뫼 언덕 농막에서 전원생활을 누리는 지인을 방문하니 부재중이었는데 주말을 가족과 보내려고 부산 자택으로 간 듯했다. 텃밭을 둘러보니 봄에 심은 채소들이 잘 자라고 있었다.
둑길을 따라 한림배수장으로 둘러 한림정역으로 가도 되겠으나 지름길을 택했다. 시호마을에서 찻길을 따라 한림면 소재지로 가다가 들녘의 농수로 비탈에 자라는 머위를 몇 줌 뜯어 봉지에 채워 손에 들었다. 역전 돼지국밥집에서 점심을 요기하고 열차를 기다리면서 머윗대 껍질을 벗겨 부피를 줄여 배낭에 챙겨 담았다. 동대구에서 내려오는 무궁화를 타고 창원중앙역에 닿았다. 23.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