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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아침이면 우리는 야곱이 맞이한 브니엘의 아침(창32:24∼31)을 떠올리게 된다. 본문은, ‘얍복강 교회’에서의 야곱의 기도가 오늘날 철야기도와 새벽기도의 효시임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얼굴’이 찬란히 빛나는 브니엘의 아침은 야곱에게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 절대 주권을 의미하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목숨 건 기도 끝에 맞이한 것이다. 우리도 야곱의 기도 자세로 브니엘의 아침을 맞이해야 하겠다. 새해 초 이 본문을 묵상하던 중, 장 칼뱅의 주석을 참고하다가 큰 감동을 받았다. 인간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이 난해한 구절에 대해 칼뱅은 다음과 같이 영성 깊은 통찰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와 싸우는 동시에 우리를 위하시며 싸우신다.” “주님은 왼손으로 우리를 상대하시고 오른손으로는 우리를 도우신다. ” 우리의 기도에 져주시는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의 짐을 져 주시는 하나님"(시 68:19)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로 브니엘의 새해를 맞을 수 있다. 당신은 새해 사역과 계획을 위해 얼마나 기도로 준비했습니까? [창 32:30-31]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1. 이제 2023년도가 새해가 밝았습니다. 회원님들의 교회와 가정위에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2. 새해에도 하나님의 은혜속에서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크게 세워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4. 제목 : 야곱과 브니엘 성경 : 창 32 : 22-32 신앙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여러가지로 대답할 수 있으나 가장 올바른 정의는 '신앙이란 하나님과의 만남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다닌지 여러 해가 되었는데도 살아계신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머리로만 믿으려고 했을 뿐이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떤 교인이 신앙 상담을 해왔는데 "목사님 제가 교회 다닌지 2년이 지났는데 하나님을 믿고 싶고 믿으려고 애를 써도 왠일인지 도무지 믿어지지 않습니다. 성경도 읽어보고 설교도 많이 들어왔으나 왠지 살아계신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지식적으로만 이해하고 하나님을 머리로만 이해하려고 했지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다(God is Spirit)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육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육체를 지니고 계신 분이 아니라 영으로 실존하시는 분이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한번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어찌하여 두려워 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나는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영(spirit)이라고 하는 것은 살과 뼈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육체로 부활하셨기 때문에 살과 뼈가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8절에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역사 이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또 아버지를 보여 달라 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이 아침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예수님을 통하여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차원에 계신 하나님을 육적인 차원에 있는 인간들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야곱은 20년만에 고향 땅을 밟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형 에서가 군대를 몰고 야곱을 잡아 죽이려고 쫓아온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심히 두렵고 답답해서 자기를 따르는 자들과 가족들과 소떼와 양떼를 둘로 나누었습니다. 만일 에서가 한떼를 치면 다른 한떼는 피신을 가리라 이런 생각을 가지고 두떼로 나누어서 멀리 떨어져 있게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 놓았어도 마음이 불안하고 답답하고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어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주여 형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옵소서"라고 야곱은 얍복강변에 엎드려 목숨을 걸고 기도하다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고 그의 심령은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곳 지명을 브니엘이라고 명명(命名)했습니다. 브니엘이란? 하나님의 얼굴(Face od God)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이 목숨을 걸고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얼굴을 뵈었고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이날 아침 여러분과 저도 야곱처럼 하나님을 뵙고 만나는 시간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먼저 기억해야 될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찾아 오시는 때가 있는데 그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야곱의 브니엘 사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놀라운 사실은 야곱이 얍복강변에 달려 갔을 때에 이미 하나님께서 그곳에 와 계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무소부재 하시기 때문에 아니 계신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특별히 역사하시는 곳이 있고 찾아 오시는 때가 있음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찾아 오시며 어떤 때에 역사하여 주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환난 날에 찾아 오십니다. '인간의 곤경은 하나님의 은총의 기회'라는 격언과 같이 성도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찾아 오시는 것입니다. 평안했을 때 잘살 때 아무 어려움이 없을 때 그때는 하나님께서 모르는 척하고 계시다가 사람들이 위기를 당해서 "하나님 도와 주시옵소서"라고 부르 짖을 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역사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가 군대를 몰고 올 때에 사느냐 죽느냐 하는 기로에 서서 몸부림 치며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그곳에 찾아 오셔서 역사해 주셨습니다. 둘째로 죄 때문에 고민 할 때에 찾아 오셔서 역사해 주십니다. 야곱이 환난을 당했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죄악이었습니다. 편안했을 때에는 형을 속인 죄를 다 잊어 버렸으나 형이 군대를 몰고 추격해 올 때에 '20년 전에 내가 내 형 에서를 속였는데 20년이 지난 오늘 그 죄값을 받는구나'하는 생각이 머리에 번쩍 떠오른 것입니다. 세상 법으로 말하면 공소시효가 있어서 범죄한 다음에 사한에 따라서 5년, 10년 혹은 그 이상 세월이 지나면 그 누구도 정죄할 자가 없으며 엄청난 죄를 지었어도 그 시효가 지나면 이제는 죄인이 아니다 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양심의 법으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20년이 아니라 50년, 100년이 지나도 양심의 가책은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죄가 그림자 처럼 따라 다니며 괴롭히고 정죄하는데 그것이 바로 양심의 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환난 날에 죄가 생각나서 견딜 수가 없어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려 회개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로마서 5장 20절에 '죄 많은 곳에 은혜가 더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죄를 깨닫고 회개할 때에 은혜가 넘친다는 뜻이지 무조건 죄를 많이 지은 사람에게 은혜가 많다는 뜻이 아닙니다. 야곱은 죄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와 형을 속여서 형의 장자권과 축복권을 빼앗았고 외삼촌 라반의 재산을 약탈했으며, 자기 여자를 불행하게 만든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지탄받아야 할 거짓말장이요, 사기꾼이었습니다. 신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너무나도 큰 죄를 범한 죄인임에도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회개할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의 형 에서가 군대를 이끌고 그를 붙잡으려고 달려 온다는 소식에 접하자 다시 말하면 위기에 처하자 그제서야 자기의 죄가 생각이 났고 하나님 앞에 자기의 죄를 고백하며 회개할 때에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야곱이 변화되어서 이스라엘로 바꾸어졌습니다. 사람마다 평안할 때는 죄를 생각하지 못하지만 환난이나 위기에 처해 있을 때에 비로소 자기가 범한 죄가 생각 나게 되고 회개하게 되며 용서받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실패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찾아 오십니다. 야곱은 겉으로 보기에는 성공자 같았으나 실상은 비참하게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자기 목적을 이루는 일, 축재(蓄財)하는 일, 수단을 부리는 일에는 성공을 했지만 윤리적인 측면, 자녀교육, 에서의 마음을 돌이키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실패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용서받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찾아오시느냐? 우리가 실패했을 때에 찾아 오시며 만난 바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타나 주시지 않으시며 실패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면 만난바 되어 주시고 은혜를 입혀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야곱처럼 자기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윤리적인 측면, 도덕적인 측면으론 실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업이나 외형적으로, 현상적으로는 성공했으나 자녀들의 영적 교육, 내적으로, 영적으로는 비참하게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이시간 우리의 실패를 솔직히 고백하고 주님께 회개하고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나타나 주시고 만난 바 되어 주실줄로 믿습니다. 야곱은 머리가 비상해서 머리회전이 빠르고 인간의 수단 방법을 잘 부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시편에 보면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시 7:15)'라는 말씀이 있습니다만 사람은 자기 꾀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아주 머리 회전이 빠르고 비상한 재주를 갖고 있고 수단 방법이 뛰어난 그런 사람이 자기 꾀에 넘어가 비참하게 실패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도리어 무던하고 조금 미련한듯한 사람이 재주를 잘 안부리고 수단방법을 잘 안부리며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므로 실패하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미국에 유명한 한 스파이더 맨(Spider man)이 있었는데 하루는 50층 빌딩을 줄 하나만 매어놓고 그 줄을 붙잡고 벽돌틈을 밟아가며 50층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거의 49층 이상을 올라갔을 때 거미가 거미줄을 쳐놓았는데 그것이 새까맣게 보이자 벽돌틈인줄 알고 그 곳을 잘못 밟아 그만 50층 높이에서 뚝 떨어져서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광경을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혀를 차면서 비참한 모습을 볼 수가 없어서 눈을 감고 얼굴을 돌리고 참 안되었다며 한탄을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재주가 비상한 사람도 자기 꾀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야곱이 재주가 비상하고 머리회전이 빨랐으나 자기 꾀에 넘어 가고 만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2절에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했을 때에 죄를 고백할 때, 실패했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 오시는데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하나님을 만나는 우리 모두가 되어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람에게 달려가지 말고 하나님께로 달려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위기를 당했을 때에 먼저 하나님께 달려가 부르짖어야 하는데도 하나님을 찾지 않고 소와 양과 값진 예물들을 종에게 들려서 형 에서에게 전하고 그 노여움을 풀어보려고 하였으나 그런 뇌물로는 에서의 마음을 돌릴 길이 전혀 없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놀라운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문제에 봉착하면 그 문제 해결을 위해서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뇌물을 들고 사람을 찾아가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그러나 야곱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므로 에서의 마음을 녹였듯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15절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환난 날에 우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메어달려 부르짖는 일인 줄로 믿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야곱이 인간적인 수단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실패를 했습니다. 그러자 깨닫고 부르짖으므로 문제 해결을 받았습니다. 얍복강으로 달려가 보았더니 하나님께서 벌써 와 계셨습니다. 그럼 오늘날 하나님께서 어디에 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니 계신 곳이 없으시지만 특별히 계신 곳이 있습니다. 하박국 2장 20절에 '여호와는 성전에 계시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이 기도하면 그때 하늘 나라에서 비행기 타고 내려오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이 성전안에 영원히 존재해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늘 성전에 달려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부르짖으면 여러분의 마음의 문제가 해결되어지고 응답받게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야곱이 기도한 모습을 보면 먼저 외적인 것부터 구하고 나서 내적인 것을 부르짖었습니다. 야곱은 먼저 세상 것을 위해 부르짖다가 나중에 영적인 문제를 위해서 부르짖게 된 것입니다. 본문 32장 9절을 보면 야곱이 "하나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네 고향 친척에게로 돌아 오리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지금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그러니 나의 형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라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도를 분석해 보면 육신의 안전, 가족의 안전, 재산의 보호를 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무런 응답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때서야 야곱이 깨닫고 기도하기를 22절 이하에 보면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던 또 피땀흘려 모은 재산, 양떼, 소떼를 다 떼어서 강 건너편으로 보내놓고 홀로 남아서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족 문제, 물질 문제, 재산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 버리고 영적인 문제를 붙들고 기도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영적인 문제를 붙들고 기도할 때에 영적인 응답을 받을 뿐 아니라 육신의 문제도 해결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6장 33절에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육신의 문제를 먼저 구하면 아무런 응답이 없지만 육신의 문제를 주님께 맡겨 놓고 영적인 문제를 붙들고 기도하면 영적인 문제와 육신의 문제도 모두 해결되어 질 줄로 믿습니다. 야곱의 기도를 또 한가지 분석해 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해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 에서의 마음을 변화시켜서 에서의 손에서 구원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다가 기도가 바뀌었습니다.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제가 아버지와 형과 삼촌을 속였습니다. 내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라고 부르짖게 된 것입니다. 목숨을 내어놓고 환도뼈가 부러질 정도로 하나님께 매어달려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네 이름이 무어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야곱이 "하나님, 내 이름이 야곱입니다. 사기꾼이요, 속이는 자요, 탈취자입니다"라고 대답하자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여 이기시옵소서"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 내가 내 고집대로 내 수단방법대로, 내 뜻대로 살려고 애를 썼습니다만은 내 고집, 내 수단, 내 머리회전 모두 십자가에 못박아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온전히 주관하셔서 나에게 은혜를 입혀 주옵소서"그렇게 부르짖게 된 것입니다. 야곱이 변화된 것입니다. 자신이 먼저 변화가 되고, 나부터 회개하고, 갱신하고 개혁을 일으켜야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먼저 변화되기를 바라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날 아침 모든 문제가 나 때문인줄 알고, 내 탓인줄 알고, 나의 죄를 주 앞에 고백하고 회개하는 귀한 시간이 되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오늘도 주안에서 지혜와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고 열매 맺게 하소서 샬롬
오늘도 주신 말씀에 감사합니다.
함께해 주신 평안 장로님, 예수 사랑 목사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