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믿는 성도는 누구를 상대로 하든 당당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엘리야가 누구이며 지금 누구를 향해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엘리야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본문에는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이라고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누군가 처음 등장할 때, 그를 소개하는 전형적인 표현 방식을 따른다면, 대개 그의 출신지보다는 그 아비나 조상의 이름을 넣어서 표현합니다. 그런데 엘리야를 소개하는 오늘 본문은 그의 아비나 조상에 대한 말은 전혀없고, 그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그의 출신지만을 표기해 주고 있습니다. 이같은 표현 방식은 엘리야가 그의 아비나 조상에게서 특기할 만한 것이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평범한 배경을 가진 엘리야가 지금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는 대상은 누구입니까? 바로 북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 아합이었습니다. 즉 엘리야는 지극히 평범한 신분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의 최고의 권력자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당당하게 선포 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자기보다 높은 사람, 훨씬 월등한 사람 앞에 서야 할 경우, 자기도 모르게 두려워하고 움츠러들게 마련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염두에 놓고 본다면, 엘리야는 감히 왕인 아합 앞에 설 수조차 없으며, 그에게 오늘 말씀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사람의 안목에 그토록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배경을 가진 엘리야가 일국의 절대 권력자인 왕 앞에서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고 당당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언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가능했겠습니까? 이같은 일이 가능했던 원동력은 오늘 말씀에서 소개되는바,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엘리야의 육신적 배경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그가 이렇게 당당하고 담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가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고백하는 바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바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고, 그분은 누가 뭐라 해도 이스라엘을 실제 통치하시는 왕이시며 살아계셔서 엘리야의 곁에서 엘리야를 돕는 분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엘리야는 왕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고 왕을 대하면서도 그가 마땅히 전해야 할 바, 징계와 심판의 메시지를 당당하게 선포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같이 엘리야에게서 볼 수 있는 당당한 태도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여러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바입니다. 여러분, 모세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당시 강대한 제국을 다스리는 바로 앞에 서서 하나님의 말슴을 전해야 했습니다. 그가 처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을 때, 하나님 앞에서 했던 말은 이것입니다.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3:11). 이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은 '네가 누구이기 때문에'라는 대답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대신 하나님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3:12)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결국 네가 누구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보다 더욱 강하고 권세있는 하나님 자신이 함께하기에 그것을 믿고, 바로에게 나아가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신약의 복음서에서 세례 요한이 온 이스라엘을 향해 책망과 심판의 말씀을 외치고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며 회개를 촉구할 수 있었던 것도, 심지어 동생의 아내와 간음했던 헤록 안디바까지 책망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자신이 누구인가라는 사실보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믿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아 요한이 더 이상 주 예수의 이름을 증거하지 말라고 협박하는 대제사장들과 종교지도자들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4:19,20)라고 선언할 수 있었던 것 역시도 그들이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확신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확신하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자신이 누구인가라는 사실에 의해서 범사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육신적 배경이나 눈에 보여지는 세상의 가치에 의해서 사람을 평가하지도 않으며, 그런 것들에 매여서 자기의 행동 영역을 정하지도 않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며,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그분의 인도하심에 의지해서 살아가기에 어떤 사람, 어떤 세력 앞에서도 굴하거나 움츠러들지 않고 당당하게 하나님의 뜻을 말하고 행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에게 이와같은 당당함이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세상적인 안목에서 어떤 상황, 어떤 형편, 어떤 조건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비굴해지거나 거만해지는 변덕스런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확신하면서 한결같이 당당하고 떳떳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