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망월동을 다녀왔습니다.
저도 솔직히 조중동에 의해 5.18 민주화운동이 DJ의 사주에 의해 내란을 일으키는것으로 알았습니다.
눈을 뜬 것은 85년도 쯤 성당에서 떠도는 비디오를 보고 아 이게 아니구나하는 부끄럼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4.19 때 학생들이 서울신문사(지금 우리가 만나는 서울프레스 센터 자리)를 불태우는 현장을 직접 목격했고
또 종로에서 저 만치서 총에 맞아 쓰러져 피 흘리는 광경을 직접보았습니다.
아마 늦바람 무섭다고 그사이 못했던 일을 2~3배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환갑이 얼마 안남은 장성한 아들 둘을 둔 순서울놈입니다.
원래 아이디는 "용"인데 두글자로 하라길래.....
혹 광주 5.18 민주화묘역을 안 가보신 분은 안계시겠지요?
재작년 5월 17일로 기억합니다.
흰머리 가득하신 조그마한 할머니께서 묘석을 붙잡고 흐느끼고 계신 장면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혹 이글을 보고 계신 수도권에 학부모님, 그리고 학생 여러분 명승고적이나 유람지를 찾기 전에 학부모님들은 아이들한테 학생들은 엄마 아빠에게 졸라서 함 다녀오세요.
또 가까운 수유동 4.19 민주화묘역도 다녀오시고요.
제가 컴에 익숙하면 재작년 망월동 영정봉안실를 나오면서 파안대소하는 명박이 상판하고 작년에는 제사지내는 상석에 더러운 발을 올려놓는 무식한 대똥령의 사진을 올릴 수가 있는데....
결코 역사를 무시하고 뛰어 넘는다면 미래는 없습니다.
이명박에게는 결코 과거는 없습니다.
청계천건설시 발견된 600년된 돌을 문화재 관리자에게 “그런 오래된 돌이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핀잔을 받은 숭례문 전소시 문화재위원중에 한분이 진술하셨지요.
다 아시겠지만 조선 3대 왕 태종 이방원은 아버지인 이성계의 둘째부인 강씨(태종은 7살~10살 많은 아버지의 둘째 부인)를 인정하지 않았고 또 강비(康妃) 소생의 어린 방석(芳碩)이 세자로 책봉되자 왕자의 난을 일으키고 형인 정종을 2대 왕으로 앉힌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후 태종이 즉위한 후 도성 안에 있던 지금의 경향신문사가 있는 정동(옛이름은 정릉동)에 있던 강빈의 묘를 파헤쳐 도성 밖, 지금의 성북구 정릉동으로 옮기고 능을 옮긴지 한 달이 지나자 능의 정자각을 허물고 석물들은 청계천 광교 다리 보수 공사시 재료로 사용하였다.
밟고 다니란다.
이는 마치 5.18이후 전두환이가 광주는 못가고 전남 담양에서 이순자랑 일박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철(?)이 없는 마을주민들이 대통령 다녀갔다고 비석을 세운 모양이다.
뜻있는 청년들이 그 돌을 가져다가 지금의 묘역 옆에 있는 구묘(5.18 당시 군인들이 대충 시신들을 수습하여 만든 진짜 묘역)입구 땅에다 묻어 지나가는 참배객들이 발로 밟고 지나다닌다.
한번씩 가서 밟고 오세요
첫댓글 많이 밟고 오셨나요....
아 덧붙일께요 저는 16일 도착하여 광주가 너무 조용한 분위기라 촛불집회없냐고 젊은 친구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촛불집회는 출장로에 있는것 같고 또 확실치 않지만 5.18에는 무슨 계획이 있을 것 같다는 군요. 그러면 그렇지 감히 쥐새끼가 어딜 내려와하고 17일 저녁 청계천광장을 위해 올라왔습니다. 영상을 보니 아마 무슨정보가 있었는지 전경들 11000명?
이상황에서 안가면 역적아니겠습니까.. 안그래도 의심이 가는 대한민국 대통령인것을...
연배가 있으신 분들께서도 의식이 깨어있는 분이 많아서 다행입니다...그런데 이 시대의 20대들은 취업난 걱정에 정신이 없나 봅니다...
어떤면에서...광주항쟁으로 민주화덕분에 거짓 대통령으로 당선 될 수 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