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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장 의협(義俠)의 길 (5)
BC 286년(제민왕 38년), 제나라는 송(宋)나라를 쳤다.
그냥 공격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예 멸망시켜 버렸다.
이것이 전국시대 들어 제법 이름난 제후국의 최초 멸망이었다.
송(宋)나라 하면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송양지인(宋襄之仁)' 이다.
어줍지 않은 어짊을 베풀다가 오히려 크게 패배한 경우에 쓰는 말이다.
이것은 송나라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한마디로 대변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송(宋)나라는 은왕조(殷王朝) 후예의 나라다.
은나라가 망하자 주나라는 주왕(紂王)의 서형인 미자(微子)에게 황하 근처에 땅 하나를 내주었다.
이것이 송나라의 기원이다.
대체로 송나라와 관계되는 일화는 멍청한 이미지를 갖는다.
'송양지인(宋襄之仁)' 이 그 대표다.
아마도 이것이 패망국 유민들의 특성일지도 몰랐다.
이런 이미지는 '수주(守株)' 라는 일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 송나라 사람 하나가 밭을 갈고 있었다.
밭 한 가운데 그루터기(株)가 있어 토끼가 달려가다가 그루터기에 부딪쳐 목이 부러져 죽었다.
그 날 이후로 송(宋)나라 사람은 밭 갈던 쟁기를 버리고 그루터기 옆에 앉아 또 토끼가 달려와 그 나무 밑둥에 부딪치기를 기다렸다.
이것을 본 세상 사람들은 송나라 사람을 비웃었다.
<한비자>에 나오는 일화다.
한비자(韓非子)는 상앙(商鞅)의 뒤를 잇는 전국시대 사상가 중 한 사람이다.
법가의 대가답게 그는 이 일화를 통해 법 적용에 대한 자신의 사상을 펼쳤다.
만일 옛날의 정치 방법으로 지금 세상의 백성을 다스리려 한다면, 이는 모두 토끼를 잡기 위해 그루터기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송(宋)나라 사람의 멍청함과 같다.
이리하여 나온 말이 '수주' 혹은 '수주대토(守株待兎)' 다.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어 구습과 전례만 고집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다.
송나라의 멸망도 이런 멍청함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송나라의 임금은 송강왕(宋康王)이었다.
그는 키가 9척이 넘고 얼굴의 넓이도 1척 3촌에 달했다.
힘도 세어 쇠로 만든 갈고리를 오므리고 펼 정도였다.
외양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성격 또한 몹시 거칠었다.
그는 세자인 형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그는 가까운 제나라 대신 먼 진(秦)나라를 섬기며 온갖 포악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송강왕(宋康王)은 가죽 주머니에 소의 피를 잔뜩 넣어 높은 장대 위에 매달게 했다.
그러고는 그 가죽 주머니를 향해 활을 쏘았다.
화살을 맞은 가죽 주머니에서는 붉은 소 피가 소낙비처럼 쏟아졌다.
송강왕(宋康王)이 좌우 신하들에게 외쳤다.
- 과인이 하늘을 쏘아 이겼도다!
그는 또 술을 몹시 좋아해 늘 술에 취해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신하 중 한 사람이 술에 취해 길거리에서 자다가 가죽옷을 잃어버렸다.
송강왕(宋康王)이 그 말을 듣고 신하를 불러 타박했다.
"아무리 술에 취했다고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잃어버릴 수가 있는가? 그대는 참으로 멍청하다."
그러자 그 신하가 대답했다.
"옛날 하나라 걸왕(桀王)은 술에 취해 천하를 잃어버렸는데, 그까짓 가죽옷 한 벌 잃어버린 것이 뭐 대단한 일입니까?"
"옛 책에 '이주(彛酒)' 라는 말이 있습니다. 술을 좋아하면 늘 마시게 되고, 늘 마시면 언제나 취해 있게 마련입니다. 늘 술에 취해 있으면 임금은 나라를 잃게 되고, 필부는 몸을 잃게 됩니다. 그런 사람을 일러 '무이주(毋彛酒)' 라고 합니다."
- 무이주(毋彛酒).
늘 술에 취해 있으면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게 된다는 뜻이다.
일종의 간언(諫言)이었다.
그러나 송강왕은 그때도 취해 있었기 때문에 그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송강왕(宋康王)은 여색 또한 몹시 밝혔다.
어느 날 성박 상전(桑田)에 나갔다가 뽕 잎을 따는 한 부인을 보았다.
부인의 용모는 절색이라고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송강왕은 그 날로 뽕나무 밭 옆에 청룡대(靑龍臺)라는 누각을 쌓고 날마다 위로 올라가 여인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어찌 만족하랴.
그녀에 대해 알아보니 한풍(韓馮) 이라는 일반 백성의 아내인 식씨(息氏)였다.
송강왕(宋康王)은 즉시 명령을 내렸다.
- 한풍이라는 자에게 가서 아내를 바치라고 하라.
한풍(韓馮)은 어처구니가 없는 가운데서도 아내 식씨의 의견을 물었다.
"왕이 당신을 바치라고 하는데, 당신은 궁으로 들어갈 생각인가?"
식씨(息氏)는 대답 대신 시 한 수를 지어 궁에서 나온 사람에게 주었다.
남산에 새가 있는데
북쪽에 그물을 쳐 잡으려 하는구나.
그러나 무슨 소용이 있는가.
새는 그물 위로 날아가네.
거절의 시였다.
화가 난 송강왕(宋康王)은 식씨 부인을 강제로 잡아 궁으로 끌고 들어왔다.
한풍(韓馮)은 분을 참지 못하고 칼로 자기 목을 찌르고 자결했다.
송강왕(宋康王)은 식씨 부인을 청룡대로 데리고 가 말했다.
"너의 남편은 이미 죽었다. 너는 돌아갈 곳이 없다. 만일 나를 섬긴다면 왕후로 삼으리라."
식씨 부인은 또 시 한 수를 지어 송강왕에게 보였다.
새들도 제각기 짝이 있어
함부로 봉황(鳳凰)을 따르지 않는도다.
내 비록 일반 백성이지만
어찌 왕과 즐거움을 함께 하리오.
시를 읽고 난 송강왕(宋康王)은 험악한 표정으로 위협했다.
"나를 따르지 않으면 너를 죽이겠다."
식씨 부인이 조용히 대답했다.
"왕께서 정히 생각이 그러하시다면 먼저 첩에게 죽은 남편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래야 마음 편히 왕을 모실 수 있겠습니다."
"좋다."
송강왕(宋康王)은 기뻐하며 그녀가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허락했다.
식씨(息氏)는 욕실에 가서 목욕재계한 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하늘을 향해 두 번 큰절을 올리는가 싶더니 별안간 난간으로 달려가 청룡대 밑으로 몸을 던졌다.
송강왕(宋康王)이 놀라 아래로 내려갔으나 식씨부인은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다.
식씨(息氏)의 치마끈에는 깨알같은 글씨가 적힌 작은 천조각 하나가 매어져 있었다.
첩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이 몸을 남편 곁에 묻어주십시오.
송강왕(宋康王)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소리쳤다.
"이 계집을 남편 곁에 묻지 말고 동쪽과 서쪽에 따로 묻어라."
식씨(息氏)를 땅에 묻고 난 다음날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한풍과 식씨의 무덤 곁에 커다란 가래나무가 한 그루씩 생겨났다.
그런데 그 가지들이 서로를 향해 길게 뻗어 마치 남녀가 끌어안은 듯 뒤엉켰다.
뿐만 아니다.
그 가지 위에는 원앙새 한 쌍이 날아와 앉아 서로 목을 비비며 슬피 울어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 탄식했다.
"저 새들은 한풍(韓馮) 부부의 원혼이 틀림없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그 두 나무를 '상사수(相思樹)' 라고 했으며, 송강왕에 대해서는 '걸송(桀宋)' 이라고 불렀다.
옛날 하나라 폭군 걸왕과 같이 무도하다 하여 그런 별칭을 붙였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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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연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