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에서 생긴 일
박운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개미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나의 하루일과다. 일어나서는 잠시 뉴스를 보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곧장 집을 나선다. 운동을 하기 위해서다. 운동이래야 늘 하는 걷기운동이다. 걷기운동은 특별한 장비나 기구가 없이도 할 수 있는 간편한 운동으로 비용도 들지 않는다.
운동복은 방안에서 갈아입지 않고 창고에서 입는다. 위생적이어서 좋고 가족들에게 아침 일찍 번거롭게 단잠을 깨우는 피해를 주지 않아서 좋다. 바깥에서 하는 운동이라 아무래도 옷이 불결하게 되기도 하니.
운동 코스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는 우체국이다. 우체국은 마을안길을 거쳐 가는 좁은 골목길로 차량이 다니지 않아 좋다. 대개 도심지역은 차량이 많이 다니는 길이라, 걷다보면 공기가 오염될 수밖에 없는데 그러지 않아서 좋다는 것이다. 그러면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독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차량이 안 다니는 이면도로로 지나는 길을 택한 것이다.
마을안길은 차량이 못 다니는 전적으로 사람만이 걸어가는 길이다. 가다보면 이른 아침의 하루 일을 시작하는 출근시간대라 그런지 더러 흡연을 하며 길을 걷는 광경을 보게 된다. 그런 경우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담배의 유해성을 날로 강조하지만 아직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들은 건강이 안중에도 없는지, 아니면 정녕 외면하는 강심장이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마을안길을 가다보면 교회를 지나간다. 이른 아침 교회에 가는 신도들이 더러 눈에 들어온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요즘은 종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종소리가 한편으로 소음을 유발시킨다 하여 오래전에는 민원이 자주 발생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종소리가 멎었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어떤 생각인지 자못 궁금하다.
주위의 교인이 아닌 사람들로서는 새벽종소리가 없으면 달콤한 새벽잠을 즐길 수 있어 좋다만…. 새벽에 일터로 가는 사람들에게는 잠을 설치며 일찍 일어나는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도 생각해봤다, 기실其實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리라. 옛 성현들의 말씀에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도 있듯이.
우체국으로 가는 길은 중간에 간선도로의 횡단보도를 건너서 지나가야 한다. 그 옆에는 작은 공원이 있다. 이름하여‘바르게 살기공원’이다. 과거 군부시절 바르게살기운동을 전개할 때 그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이 운동은 그야말로 꼭 필요한 국민적 실천운동이 아닐까. 과거 군부시절인 1980년대는 활발히 전개되었던 운동이다. 하지만 이젠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겨우 목숨만 부지해 오고 있는 느낌이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무슨 운동, 무슨 운동’하면서 거창하게 구호를 내걸어 시행하다가도 정권이 바뀌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없어지고 만다.
그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그래도 좋은 정책은 계속 이어져 나가야 하는 건데. 공원을 지나면 얼마가지 않아 우체국에 도착한다.
우체국은 우편물류, 택배, 금융, 보험업무를 관장하는 우리나라 우정사업 의 중추기관이다. 그리 넓지 않는 터에 자리하고 있다. 3층 건물로 1층은 금융, 보험업무, 우편물 전시장, 2층은 우편물류, 택배업무, 3층은 국장실, 회의실이 있다. 조직은 1실 2과 및 산하 9개 읍면우체국으로 편성된 기획재정부 산하기관이다.
청사건물에는 국기, 새마을기, 우정사업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며 게양대를 힘들게 붙잡고 있다. 우정사업기관은 그 옛날 대한제국시절 개화파의 선구자 홍영식을 중심으로 한 우정총국을 개청한 이래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현재의 국가기관이다.
현관문에는“무장경관 근무중”이라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현금을 취급하는 기관이라 강도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걸어 놓은 것이리라. 언제쯤 이 나라에 강도 침입의 위험이 없는, 그런 편안하고 안전한 좋은 세상이 올 수 있을지 저어기 염려가 된다.
또 다른 한 쪽 현관문에는 2015년 8월 1일부터 우편번호가 변경된다는 내용이 붙어있다. 현행 6자리 수에서 5자리로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 1970년부터 지금까지 45년 동안을 지번으로 우편번호를 시행해오다가 2014년도부터 새 도로명주소가 사용됨에 따라 다시 바뀌는 것. 앞의 세 자리는 전국 기초 자치단체 고유번호고 뒷자리 두 수는 그 지역의 일련번호 순서이다.
아무튼 새로운 우편번호 시행으로 국민들로부터 믿음과 사랑을 받는 그런 우정사업이 되길 기대해 본다. 우체국에 오면 문득 내 머리에 떠오르는 일화 몇 토막이 있다. 바로 청마 유치환과 정운 이영도 시인과의 로맨스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리라. 오늘도 나는 에머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보이는 우체국 창문 앞에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중략).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했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행복 중에서(유치환)”.
이 얼마나 애틋한 사랑의 시詩인가. 불행히도 그 분들이 결실을 맺지 못하고 아쉬움의 끝을 보았으니 실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또 그분들의 애정어린 편지 한 통이 그것이다. 그것은 바로 청마가 이영도 여사에게 보낸 편지 사연이다.
“ 정향! 어떻게 편히 쉴 수 있습니까? 어제 저녁의 허전함이 그대로 내내 마음에 덮치어 밤새도록 설레이는 꿈자리였습니다. 헤어지기 싫었습니다. 그대로 당신 따라 골목길을 올라가고만 싶었습니다. 애닯더이다. 당신도 응당 그리하였을 줄 압니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아무것도 아닌 체 하여야 되다니 끝끝내 이러한 세상이라야 하겠습니까? (중략).
이렇게도 나의 인생에 뜻과 보람을 가져다주는 당신, 귀한 당신 세상에서 오직 나만의 정향! 어느 법렬이 이렇듯 하리까? 웃으십니까? 병통이라고 설령 병통이라도 나는 즐거이 앓으리라 끝까지 앓고 살리라, 정향! 나의 정향! 오늘은 당신을 볼 수 있는 날이라 새벽부터 마음이 후련만 하외다. - 당신의 청마”.
그분들이 못다이룬 사랑은 하늘나라에서나마 부디 재회의 기쁨을 누리도록 마음 속 깊이 기도해 본다.‘사랑에는 국경이 없다’고도 하는데 왜 이분들에게는 이토록 현실 세계에서 어찌 그리도 장벽이 두터웠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오늘도 여전히 그 옛날 그때 그 에머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보이고 있건만….
우체국 광장에서 간단한 체조를 하고 몇 바퀴를 돈다. 몸의 피돌기가 빨라지면서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다. 운동시간이 흘러 30분이 지나간다. 이제 끝내야 하리라다. 무리하면 건강에 좋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광장 주위 잘 다듬어진 관상수가 눈에 들어온다. 수종은 왜향나무, 느티나무, 소나무, 전나무, 단풍나무 등이다. 왜향나무는 원산지가 일본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왜색종인 왜향나무를 관공서에서 캐어내야 한다는 여론이 일기도 한다. 한국인의 정서에 반反한다는 뜻인가 보다.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향한다. 집에 도착하니 주방에서 아침밥을 짓고 있던 아내가 보더니“배도 고플 텐데 밥도 안 먹고 무슨 운동이냐, 밥이나 먹고 하지”라며 핀잔을 준다 한다. 십분十分 옳은 말이다. 아침 빈속에 운동을 하면 에너지 소모가 커 체중이 가벼운 편인 나로서는 오히려 몸에 해로울 수 있으니.
앞으로는 운동시간대를 바꿔 아침밥을 먹고 난 후 오전중이나 저녁에 할까보다. 운동하는 목적이 궁극적으로 몸의 활력과 기능을 향상시켜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니.
첫댓글 운동 열심히 하시어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건강이 최고입니다.
요즘은 우체국이 택배 없무가 더 많은 듯 하지요
운동에서 돌아와 아내가 지은 밥을 드시는 행복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문화 발달이 때로는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그래서인지 옛날이 매우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