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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지망월(見指忘月)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켰으나 손가락을 보느라고 달은 보지 못한다는 불교의 가르침이다.
見 : 볼 견(見/0)
指 : 손가락 지(扌/6)
忘 : 잊을 망(心/3)
月 : 달 월(月/0)
출전 : 달마대사(達磨大師)
설정 스님의 '삿된 견해로 헤매지 마라'의 글이다.
갑오년 하안거 결제 덕숭총림 방장 법어
2014 甲午年 夏安居 結制法語
이 시대(時代)를 살고 있는 공부인(工夫人)들이 정진(精進)에 앞서 꼭 마음에 새겨야 할 과제가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달마혈맥론(達磨血脈論)에서 말씀하신 이입사행론(理入四行論)이다. 즉 진리(眞理)에 들어가는 네 가지 중요한 행동이란 것이다.
첫째, 보원행(報怨行)이다. 수행자가 고통을 당할 때는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행위의 과보라고 생각하여 남을 원망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이다.
개성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에게 보탬이 되고 도움이 되서 상호 보완하므로 개체와 전체가 융통하게 하는 것이다.
보원행은 어떤 액난(厄難)이나 고통을 당해도 이것이 과보(果報)거니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심이 된다.
중국사람들은 칼을 맞고 죽을 때도 합장을 하며 '천명(天命)'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멀리 유교, 도교에서부터 싹터 온 사상이다.
혹시 죽임을 당하더라도 그들은 천명이라 생각하고 편안히 눈을 감는다. 이와 같이 어떤 액난을 당해도 과보(果報)라 생각하고 마음을 편안히 갖는 것이 보원행이다.
둘째, 수연행(隨緣行)이다. 비행(非行)을 조심하고 덕행(德行)을 행하여 서로 서로를 받쳐 주는 것이다.
수연행은 연(緣)을 따르는 행위다. 연을 따른다는 것은 굳이 회피하지 않는 것이다. 피하지 않고 연을 따라서 행하는데, 일이 닥쳤을 때 응작(應作), 불응작(不應作)을 관(觀)해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은 하고 하지 않아야 할 일은 끊어 버려야 한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회피하는 것은 이기심이요, 또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는 것 또한 안되는 일이다.
해서 안 될 일은 과감히 끊고, 해야 할 일은 목숨을 바쳐서 하는 것이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연을 따라서 행하는 것이 수연행이다.
셋째, 무소구행(無所求行)이다. 바라는 것이 없이 자비를 행하여 利他行을 하는 것이다.
무소구행은 구하는 바가 없는 행위다. 고통이란 원(願)이 많은 것이 제일 고통스러운 것인데, 구할 바가 없다고 하면 그것이 가장 잘 구하는 것이다.
도를 구하는 것은 구하는 바가 없는 구함이다. 이에 비해 재(財), 색(色), 식(食), 명(命), 수(睡) 등 오욕(五慾)을 구하는 것은 구할 바 있게 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고통이 많이 따르는 구함이다.
넷째, 칭법행(稱法行)이다. 불조(佛祖)의 규범을 실천하므로 인격체(人格體)로서의 삶을 의미한다.
칭법행은 법에 합한다는 뜻인데, 이 법은 사회법이 아니라 진리에 합한다는 의미다. 능(能)과 소(所)가 다 끊어진 것, 즉 내가 하는 바도 없고 할 바도 없어진 경지를 말한다.
이처럼 마지막 회통 되는 것을 칭법행이라고 한다. 이것이 달마 대사의 사행관으로서, 칭법행을 통하여 도에 들어간다.
이 네 가지야말로 선(善)의 종합(綜合)이며 도에 들어가는 초입(初入)이다. 도를 닦는 사람이 달마조사(達磨祖師)께서 말씀하신 사행(四行)을 떠나 달리 도를 닦는다는 것은 그대로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실현 불가능하단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달마스님께서는 또 중요한 말씀을 하셨다.
以指標月 其指所以在月以言喩道 其言所以在道顧言而不顧其道 非知道也昧指而不昧其月 非識月也所以至人常妙悟於言象之表而獨得于形骸之外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 것은 그 손가락의 뜻이 달에 있고, 말로써 도를 표현하는 것은 그 말이 도에 있기 때문이다.
말만을 귀담아 듣고 도를 찾지 않으면 도를 알 수가 없고, 손가락만을 바라보고 달을 보지 않으면 달을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지극한 도를 아는 사람은 항상 언어 밖에서 묘하게 깨닫고 형상 이전의 도리를 얻게 된다.
무아정적(無我靜寂) 속에 안심입명(安心立命)의 정안(正眼)을 얻기 위하여 공부(工夫)를 지어가되 마음을 태산같이 하여 육근(六根)을 틀어막고 남이 나를 옳다고 하던지 그르다고 하던지 마음에 끄달리지 말고, 다른 사람이 잘하고 잘못하는 것을 참견하지 말고, 좋은 일을 당하던지 좋지 않은 일을 당하던지 마음을 편안히 하여 무심히 가져서 남이 볼 때 숙맥(菽麥)같이 지내고 바보같이 지내며 벙어리같이 소경같이 귀먹은 사람같이 어린애같이 지내면 마음이 저절로 망상이 없게 될 것이다.
이 공부(工夫)는 참으로 좋은 것이로되 어려움과 불편함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어떻게 좋은 소식(消息)을 기약하겠는가?
觀心一法是何事迷雲破處月孤明凡聖從來無二路莫將邪見隨多道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무슨 일인가 미혹의 구름 없어진 곳에 달만 우뚝 밝기만 하여라. 범부와 성인은 본래로 두 길이 아니거늘 삿된 견해로 이리저리 헤매지 마라.
2014 甲午年 夏安居 結制法語德崇叢林 方丈 雪靖
[참고-1]
옛날 어느 불자가 고승을 찾아가서 가르침을 청했다. 고승이 스스로 글을 알지 못한다고 하자 불자는 크게 실망했다.
그러자 고승은 실망하는 불자에게 진리와 문자는 무관하다고 했다. '진리는 하늘의 달과 같고 문자는 우리의 손가락과 같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지만 손가락이 없다고 달을 보지 못하는 건 아니다.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을 보면 안 된다'는 가르침을 줬다는 데서 유래된 것이 견지망월(見指忘月)이다.
[참고-2]
순교한 달마대사의 웅이산(熊耳山)에 묻혔다. 양무제는 처음 만남에서는 달마 대사의 심지법문(心地法文)을 요해하지 못했었지만, 나중에 가서는 강경 조사하는 공덕은 아무리 쌓아야 소용없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고, 마음을 비워야 해탈할 수 있다는 확연무성의 불식 도리를 깨우쳤던 것 같다.
현존하는 웅이산 달마 대사 묘비의 비명(碑銘)은 양무제가 지어 봉안한 것이다. 그는 비문의 말미에 이렇게 탄하였다.
見之不見(견지불견)
보고도 보지 못하고
逢之不逢(봉지불봉)
만나고도 만나지 못하고
遇之不遇(우지불우)
말하고도 말하지 못하였도다.
今之古之(금지고지)
예나 이제나 이를 원망하고
悔之恨之(회지한지)
이를 한탄하고 또 한탄하노라
달마혈맥론(達磨血脈論)
달마혈맥론(達磨血脈論)은 달마(達磨) 대사의 어록이다. 달마 대사는 남인도 향지국(香至國; 팔라바스/Pallavas 제국) 셋째 왕자로 태어나 출가해서 붓다를 이은 제27대 직계 조사인 반야다라(般若多羅) 존자에게 가르침을 받고 제28대 조사(祖師)가 됐다.
당시 인도에서 불교는 밀교(密敎) 일색이었으나 그마저도 힌두교화 해서 더 이상 불교의 설자리가 없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달마의 스승 반야다라 존자에게는 혜안이 있었다.
그리하여 아래와 같은 전법게를 지어, 달마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부촉한 후 달마로 하여금 동쪽으로 가서 법을 전하라고 했다.
心地生者種(심지생자종)
마음 땅이 숱한 종자를 키우고
因事復生理(인사복생리)
일이 생기면 다시 이치도 생기네
果滿普釐圓(과만보리원)
수행의 열매가 무륵 익으면 깨달음이 원만해지니
華開世界起(화개세계기)
꽃이 피듯 한 세계가 열리네
그리고 반야다라 존자는 말했다. '그대가 지금 나의 법을 받았으니 너무 멀리 교화하러 가지 말고 내가 열반에 든 지 67년 뒤에 동쪽 나라(중국)에 가서 법을 크게 베풀라. 그대는 너무 빨리 가지 말라. 재난이 일어나서 백일 아래 쇠퇴하게 되리라.'
이에 보리달마가 여쭈었다. '제가 그 나라에 가서 교화하면 그곳에 보살이 있겠습니까?' 불교 수행자가 많겠느냐 하는 물음이다.
반야다라 존자는 말했다. '그 나라에는 도를 얻고자 하는 이가 많아서 이루 헤아릴 수 없느니라. 내가 열반에 든 지 67년 뒤에 제각기 친했던 사람들과 이별하라. 그 나라에 재난이 있을 터이니, 수중문포(水中文布)를 잘 항복시켜라.'
◼ 수중문포(水中文布)
물속에 물결이 퍼져 나간다는 말인데, 뒷날 보리류지(菩提流支)에게 모함을 받게 되는데, 그 유지(流支; 물결)를 비유해 동토(東土; 중국)에서 달마를 해칠 사람은 보리류지임을 예언한 것이다.
◼ 보리유지(菩提流支)
같은 인도 출신으로 북위(北魏)에서 활약했는데, 달마 대사를 시기한 나머지 광통 율사(光統律師)와 더불어 AD 528년 달마를 독살했다는 말이 전한다. 이에 하남성 웅이산(熊耳山, 해발 912m)에 장사를 지냈는데, 독살 당한 달마 대사는 관속에 신발 한 짝만 남기고 서천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 송운(宋雲)
송운은 중국, 남북조시대 승려로 돈황 사람이다. 북위(北魏)의 효명제 사절로 중앙아시아 제국을 순방했다. 낙양을 출발, 서역남도를 거쳐서 간다라 각국을 역방, 각각 국서를 봉정했으며, 대승불전 170부를 얻어 가지고 522년 귀국했다.
그런데 서역에 사신으로 갔던 송운(宋雲)이 돌아오는 길에 파미르고원에서 달마 대사를 만났다고 한다. 대사는 주장자에 신발 한 짝을 꿰어 들고 유유히 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송운이 '대사는 어디로 가십니까?'고 묻자, '서천으로 가노라. 너의 임금은 이미 돌아가셨느니라'고 했단다.
송운이 달마 대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작별하고 귀국해 보니 과연 임금이 승하하고 다음 임금이 즉위해 있었다.
그리하여 송운이 돌아오다가 겪은 일을 임금에게 보고하니 무덤을 파보도록 지시했다. 그랬더니 관속에는 신발 한 짝만 있을 뿐이었다고 한다. 이 같은 신기한 전설이 전한다.
반야다라 존자의 말씀이 계속된다.
그대가 그 나라에 가거든 남쪽에는 머무르지 말라. 그 나라 왕은 불법의 참 이치는 모르고 유위법(有爲法)의 인연 짓기를 즐기어 공덕을 좋아하니,
◼ 유위법(有爲法)
여러 가지 원인과 조건이 모여 형성된 것. 인연에 의해 생멸 변화하는 현상계의 모든 사물. 인과 관계로 구속되어 있는 존재를 말한다.
그리고 '그대가 그 나라에 가거든 오래 머물지 말고 바로 떠나라. 나의 참언(충고)을 들어라. 길을 가던 중에 물을 건너서 다시 양(羊)을 만나리라.'
여기서 물을 건넌다 함은 바다를 건넌다는 뜻이요, 다시 양을 만난다 함은 낙양(洛陽)에 이른다는 말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달마는 AD 6세기 초 남천축국(남인도)에서 해로로 중국 남북조시대의 남조 양(梁)나로 건너와서 양 무제(武帝)를 만났다.
달마가 만난 양 무제는 비록 절실한 불교신자라고 하지만 황제의 권위는 두려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러나 무제와 달마 간에 묻고 답하는 내용을 보면 달마 대사의 생사를 초월한 의연한 모습이 생생히 부각된다.
황제가 말했다. '짐이 왕위에 오른 이래 많은 절을 짓고, 경전을 소개하고, 스님들에게 도첩을 내린 것이 셀 수 없는데, 그 공덕이 얼마나 되겠소?'
달마가 말했다. '아무런 공덕이 없습니다.' 달마의 조금도 거리낌 없는 대답이었다.
황제가 불쾌하여 말했다. '어찌하여 공덕이 없소.'
달마가 말했다. '그러한 공덕들은 윤회 속에 흩어지고 말 그림자같이 형태가 없는 공덕이기 때문입니다.' 달마는 신행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유위의 공덕은 소용없음을 말했다.
황제가 물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진실한 공덕이요?'
달마가 말했다. '청정한 지혜는 미묘하고 온전해서 그 자체는 공적 합니다. 이 같은 공덕은 세간에서 구해도 구할 수 없습니다.'
황제가 다시 물었다. '무엇이 근본이 되는 진리라는 것이요?'
달마가 말했다. '텅 비어 있으니 성스럽다고 할 것도 없습니다.'
황제가 또 물었다. '짐을 대하고 있는 이는 누구요?'
달마가 말했다. '모릅니다.'
이렇게 황제를 자극한 달마는 비밀리에 북위(北魏)로 가서, 낙양(洛陽) 동쪽 숭산(嵩山) 소림사(小林寺)로 숨어들어 9년간 면벽수행(面壁修行)을 한다.
달마가 중국에 와서 조사선(祖師禪)을 전하고자 했지만, 당시 중국엔 교학이 성한 터에다가 불교를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복(祈福)의 수단으로 여기는 경향이 심해서 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대였다.
양 무제를 통해 선을 이해시키려고 했지만 양 무제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에 달마는 '아직 때가 아니구나, 시절인연(時節因緣)이 아니구나!' 해서, 소림굴로 들어가서 9년 동안 면벽을 하며 기다리게 된다.
이러한 대사도 수행하다 졸리면 눈썹을 뽑아 던졌고 눈썹이 던져진 자리에는 차나무가 자라났단다. 추후 중국 선종의 상징이 되는 차(茶)와 선(禪)이 인연을 맺는 사연이다.
달마상의 특징은 부리부리한 눈을 크게 뜨고 있는 모습이다. 소림굴 면벽 9년 수행을 하면서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기 위해 결국 눈꺼풀을 잘라냈다고 한다. 그래서 달마는 눈꺼풀이 없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표현된다고 한다.
그런데 달마가 면벽(面壁)수행을 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벽을 보고 수행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실질적인 벽은 정신적인 벽을 말한다. 모든 번뇌 망상, 잡념을 여의고 선에 몰입함을 일컫는다.
그리고 6세기부터 7세기에 걸친 당시 중국은 급격한 사회변혁 시대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새 불교의 이상을 달마에게 구하고자 했다.
달마의 벽관(壁觀)으로 일컬어지는 독자적인 선법과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의 4구절에 그의 교의가 집약돼 있었다.
9년간 면벽좌선을 하고 나서, 사람의 마음은 본래 청정하다는 이(理)를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 선법을 안심법문(安心法門)을 통해 중국 선종 제2조가 되는 제자 혜가(慧可)에게 전수함으로써 중국 선종이 시작됐다. 이같이 해서 중국에 선불교(禪佛敎)를 전함으로써 달마는 중국 선종 초조가 됐다.
이후 불교는 그 발생지인 인도에서보다 중국을 중심으로 선(禪)불교로 찬란하게 번성하게 됐고, 밀교는 티베트를 중심으로 발전하게 됐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선(禪)불교는 중국화 된 선불교전통을 따르고 있다.
그의 저서 '달마어록'은 달마 대사의 법문을 기록한 선어록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중국의 돈황(燉煌) 지방의 석굴에서 새롭게 발굴된 자료 중의 하나이다. 소위 돈황(燉煌)의 선 문헌 가운데 하나로, 달마의 말씀을 전해주는 최고(最古)의 문헌이다.
이 돈황에서 출토된 '달마어록'에 달마의 근본사상인 관심론(觀心論), 혈맥론(血脈論),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 등이 들어있다.
그리고 달마는 '능가경'을 중시하고, 당시 교학 중심의 가람불교나 강설불교(講說佛敎)와는 정반대인 좌선을 통해 그 사상을 실천하는 새로운 불교, 조사선(祖師禪)을 강조했다.
달마 대사의 마음을 관하는 이치와 방법을 설한 '관심론'과 참선공부 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지침을 설한 '혈맥론', 이치와 행으로 도에 들어가는 요점을 설한 '이입사행론'은 불조(佛祖)의 심지(心地)에 즉입하는 골수법문으로 동아시아 대승불교의 중심사상이라 일컬어진다.
'혈맥론'의 중심사상은 문자에 의하지 않고 바로 마음을 직관(直觀)하여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음을 문답형식으로 전개하고 있다.
다시 말해 교리나 문자에 의하지 않고 바로 사람의 마음을 직관하여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음을 설파한 것이다.
그리하여 '혈맥론'에서 일관되게 논하는 것은 견성(見性)이다. 견성(見性)은 인간의 본성을 본다는 말이다.
'혈맥론'이 중국적인 불교라 할 선불교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혈맥론이 중국의 오랜 사상적 화두인 인간의 본성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혈맥론은 견성이 불교의 본질이자 정통임을 주장하고 있다.
혈맥론이 주는 또 하나의 중요 법문은 인간의 본성을 스스로 자증자득하다는 점에 있다. 즉, 성품을 스스로 깨닫는 점에 있다. 그리하여 혈맥론에서는 견성(見性)을 강조한다.
인간의 본성을 스스로 본다는 뜻의 견성은 주체적 체험을 인식방법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 점이 중국사상계에 던진 선불교의 빛이라고 할 수 있다.
달마 대사는 견성을, 경전에 대한 지식적 이해나 염불, 고행 등의 수행을 뛰어넘는 담박 깨닫는 돈교(頓敎)이며, 출가와 재가의 한계마저도 뛰어넘는 보편적인 길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에 불교가 들어온 것이 대략 후한 명제(明帝) 때인 AD 67년, 그리고 달마 대사가 중국에 온 것이 기원후 500년 전후이니, 따라서 중국에 불교가 들어온 지 450여년이 지나서 드디어 중국 불교가 제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이다.
이렇게 당당하게 자기 소리를 내는 선불교의 깨달음은 참으로 경이로운 인류의 보고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인도 정신문화의 정수인 불교가 중국에 들어가 공맹(孔孟) 노장(老莊) 등 제자백가의 사상을 흡수해 마침내 위대한 결실을 맺은 것이다.
혈맥론 본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三界興起同歸一心.
前佛後佛以心傳心. 不立文字.
삼계에 나타나는 모든 것들은 결국 마음으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들은 말에 얽매이지 않고, 문자도 세우지 않으며, 마음에서 마음으로 진리를 전했다. 이 마음을 떠나서는 그대는 어떤 부처도 찾을 수 없다.
問曰: 若不立文字, 以何爲心.
•묻는다. '만약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마음을 삼습니까?'
答曰 汝問吾 卽是汝心 吾答汝 卽是吾心 吾若無心 因何解答汝 汝若無心 因何解問吾 問吾卽是汝心 從無始曠大劫以來 乃至施爲運動 一切時中一切處所 皆是汝本心 皆是汝本佛 卽心是佛亦復如是 除此心外 終無別佛可得 離此心外 覓菩提涅槃 無有是處 自性眞實 非因非果 法卽是心義 自心是菩提 自心是涅槃 若言心外有佛及菩提可得 無有是處 佛及菩提皆在何處 譬如 有人以手捉虛空 得否 虛空但有名 亦無相貌 取不得捨不得 是捉空不得 除此心外覓佛 終不得也.
•답한다. '그대가 나에게 묻는 것이 곧 그대의 마음이고, 내가 그대에게 답하는 것이 곧 나의 마음이다.
나에게 만약 마음이 없다면 어찌 그대에게 대답할 수 있으며, 그대가 마음이 없다면 어찌 나에게 물을 수 있겠느냐.
나에게 묻는 그 자체가 바로 너의 마음이다. 끝없는 옛날부터 활동하고 살아온 모든 시간과 장소들이 모두 그대의 근본 마음이며, 본래 부처이다.
마음이 곧 부처라 함은 바로 그와 같은 것이다. 마음을 떠나서 부처를 찾을 수 없으니, 마음을 떠나 밖에서 보리와 열반을 구한다면 옳지 못하다.
누구나 지니고 있는 자기의 성품(自性)은 진실한 것이어서 인(因)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과(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자성(自性)이란 법이 곧 마음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자기의 마음이 곧 보리이고, 자기의 마음이 곧 열반이다. 그러므로 만약 마음 밖에서 따로 부처와 보리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부처와 보리가 모두 어느 곳에 있는가.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가령 어떤 사람이 맨손으로 허공을 붙잡으려 하면 허공을 붙잡을 수 있겠는가. 허공이란 단지 허공이라는 이름만 있을 뿐이다. 또한 허공이라는 모양도 없어 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허공을 붙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마음을 제쳐두고 밖에서 부처를 찾는다면 종내 찾을 수 없을 것이다.
佛是自心作得 因何離此心外覓佛 前佛後佛只言其心 心卽是佛 佛卽是心 心外無佛 佛外無心 若言心外有佛 佛在何處 心外旣無佛 何起佛見 遞相 惑 不能了本心 被他無情物攝 無自由分 若又不信 自무 無益 佛無過患 衆生顚倒 不覺不知自心是佛 若知自心是佛 不應心外覓佛 佛不度佛 將心覓佛 而不識佛 但是外覓佛者 盡是不識自心是佛 亦不得將佛禮佛 不得將心念佛 佛不誦經 佛不持戒 佛不犯戒 佛無持犯 亦不造善惡.
부처라는 것은 자기 마음에서 만들어내는 것인데, 어찌 이 마음을 떠나 밖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앞 부처와 뒷 부처가 모두 단지 이 마음에 대해서만 말했을 뿐이다.
말하자면 마음이 곧 부처이고(心卽是佛), 부처가 곧 마음이라서(佛卽是心) 마음 밖에 따로 부처가 없고 부처 밖에 따로 마음이 없다.
그런데도 만약 마음 밖에 따로 부처가 있다고 말한다면 그 부처는 어느 곳에 있단 말인가? 마음 밖에 따로 이미 부처가 없거늘 어찌 부처라는 견해를 일으키는가.
그 까닭은 서로가 속이고 미혹하여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알지 못하고 다른 형상으로 만들어진 불상[無情物]에 꺼들려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또한 이러한 도리를 믿지 못한다면 스스로를 속이는 것으로서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할 것이다.
부처는 본래부터 허물이 없다. 단지 전도된 중생이 자기 마음이 곧 부처인 줄을 깨치지 못하고 알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만약 자기 마음이 곧 부처인 줄을 알게 되면 마땅히 마음이 밖을 향해 부처를 찾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부처가 부처를 제도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마음을 가지고 부처를 찾으면서도 부처를 알지 못하는 것은 단지 밖에서만 부처를 찾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모두 자기의 마음이 부처인 줄을 알지 못한다.
또한 부처를 가지고 있으면서 부처에게 예배하지 말고, 마음을 가지고 부처를 염(念)하지 말라. 부처는 경전을 독송하지도 않고, 부처는 계를 지니지도 않으며, 부처는 계를 어기지도 않는다. 부처는 계를 지니거나 어기지 않고, 또한 선업과 악업을 짓지도 않는다.
(…)
또 이런 구절도 있다.
問曰: 白衣有妻子, 婬慾不除, 憑何得成佛.
•묻는다. '가정을 가진 사람은 음욕(淫欲)을 버릴 수 없는데 어떻게 성불할 수 있겠습니까?'
答曰: 只言見性 不言婬慾 只爲不見性 但得見性 婬慾本來空寂 不假斷除 亦不樂着 縱有餘習 不能爲害 何以故 性本淸淨故 雖處在五蘊色身中 其性本來淸淨 染汚不得 法身本來無受 無飢無渴 無寒熱 無病 無恩愛 無眷屬 無苦樂 無好惡 無長短 無强弱 本來無有一物可得 只緣執有此色身因 卽有飢渴寒熱瘴病等相 若不執卽一任作 若於生死中得自在 轉一切法 與聖人神通自在無礙 無處不安 若心有疑 決定透一切境界不過 不作最好 作了不免輪廻生死 若見性 旃陀羅亦得成佛.
•답한다. '이 법은 오직 견성을 말할 뿐 음욕을 말하지 않는다. 범부는 오직 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음욕이 문제가 되지만, 견성만 하면 음심과 욕심이 본래 공적(空寂)하여 끊어 없앨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즐겨 집착하지도 않으니, 비록 버릇이 남았더라도 해로울 것이 없다.
왜냐하면 성품은 본래 청정하여 비록 색신 가운데 있더라도 물들거나 더러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법신(法身)은 본래 받는 것이 없고 주리고 목마름도 없으며 춥고 더운 것도 없다. 본래 한 물건도 얻어 볼 것이 없으나, 다만 색신(色身)으로 인해 주리고 목마르며 춥고 더운 것이 있으니, 속지 않으려거든 곧 정신 차려 정진해야 한다.
생사에 자재(自在)를 얻어 일체법(一切法)을 굴려 걸림이 없게 되면 어느 곳이고 편안하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터럭 끝만큼이라도 의심이 있으면 결코 일체 경계(境界)에 자재하지 못해 윤회를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견성만 하면 전다라(旃陀羅; 백정)일지라도 성불할 수 있다.'
혈맥론은 예로부터 달마의 어록으로 간주되면서도 단편적으로만 전해오다가 돈황본(燉煌本)의 발견으로 말미암아 그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달마는 혈맥론에서 자기 마음을 깨치는 견성(見性)을 강조하고 있다. 견성을 통하지 않고는 복덕을 쌓을 수는 있어도 부처는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자성(自性)을 볼 것을 말하면서, '부처란 자기 마음으로 지은 것이거늘, 어찌 이 마음을 여의고 밖으로 찾을 것인가. 삼계에서 일어나는 것은 모두 일심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전불(前佛)과 후불(後佛)은 서로 이심전심하여 문자를 활용하지 않았다(不立文字)'고 했다.
즉, 앞 부처님과 뒷 부처님이 다만 마음 하나만을 말씀하셨으니, 마음이 곧 부처요 부처가 곧 이 마음이라, 마음 밖에 부처가 없고(心外無佛性) 부처 밖에는 마음이 없다고 했다.
그러므로 '만약 자기를 분명하게 알지 못했다면 우선 모름지기 선지식을 찾아 배워서 생사의 근본을 깨쳐야 한다. 만일 자기의 성품을 깨치지 못했다면(不見性) 선지식이라 할 수 없다. 그래서 만약 자기의 성품을 깨치지 못하면 비록 팔만대장경을 다 외운다 할지라도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고 삼계를 윤회하면서 고통을 받아 그 고통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다'고 했다.
또 '가령 옛날 선성(善星)이라는 비구는 팔만대장경을 다 외웠지만 자신이 삼계의 윤회를 벗어나진 못했다. 그 까닭은 자기의 성품을 깨치지 못한 탓이다.
선성 비구도 이미 그러했거늘 하물며 오늘날 사람들이 겨우 몇 권의 경론을 읽고서 그것으로 불법을 알았다고 하니,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그러니 만약 참으로 부처를 찾고자 하면 모름지기 자기의 성품을 깨쳐야 한다[見性]. 왜냐하면 자기의 성품이 곧 부처이기 때문이다.
만약 자기의 성품을 깨치지 못하고서 염불한다거나 경전을 독송한다거나 재계(齋戒)를 지킨다거나 계율을 지닌다 해도 그것은 아무런 이익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따라서 만약 마음 밖에 부처가 있다고 말하면, 부처는 어디에 있는가. 마음 밖에 부처가 없거늘, 어찌 부처라는 소견을 일으킬 것인가?
서로서로 속여서 미혹하여 근본 마음을 밝게 알지 못하고 무정물(無情物; 불상을 말함)에 얽매여서 자유롭지 못하다. 만일 일어한 사실을 믿지 못한다면 스스로 속이는지라 이익이 없다'고 했다.
말하자면, 부처는 허물이 없건만 중생의 생각이 뒤집혀(전도 顚倒) 있어서 자기의 마음이 곧 부처인 줄 깨달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기 마음이 곧 부처인줄 안다면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지 말아야 하고, 부처가 부처를 제도하지 못하나니 마음을 가지고 부처를 찾으면 부처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모두가 자기의 마음이 곧 부처임을 모르는 것이다.
역시 부처를 가지고서 부처에게 절하지 말고, 마음을 가지고서 부처를 염(念)하지 말라. 부처는 경을 읽지도 않으며 부처는 계를 가지지도 않으며, 부처는 계를 범하지도 않으며, 부처는 지킴도 범함도 없으며, 또한 선과 악을 짓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러므로 만일 부처를 찾고자 한다면 반드시 곧 자성(自性)을 보면, 곧 그것이 부처인 것이고, 자성을 보지 못하고 염불을 하고, 경을 쓰고 읽고, 계를 지니고, 계를 지켜도 역시 아무런 이익이 없을 것이다.
염불은 인과를 얻고 경을 읽으면 총명해지며, 계를 지키면 하늘에 태어나고, 보시를 하면 복의 과보를 받으나 부처는 끝내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만일 자기를 분명히 알지 못하겠거든 반드시 선지식에게 참문해서라도 생사의 근본을 깨치라고 했다.
▶️ 見(볼 견, 뵈올 현)은 ❶회의문자로 见(견)은 간자(簡字)이다. 안석궤(几; 책상)部는 사람을, 目(목)은 눈을 뜻한다. 見(견)은 눈의 기능으로, 보는 일을 말하는데, 이쪽으로 부터 보는 것을 視(시), 저쪽으로 부터 나타나 보이는 것을 見(견)으로 나누어 썼다. ❷회의문자로 見자는 '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見자는 目(눈 목)자와 儿(어진사람 인)자가 결합한 것이다. 見자의 갑골문을 보면 人(사람 인)자에 큰 눈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사물을 보는 눈을 강조해 그린 것으로 '보다'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다만 한자에서는 目자가 주로 '눈'과 관련된 뜻으로 쓰이고 있다면 見자는 '보다'와 같이 보는 행위에 주로 쓰이고 있으니 차이점을 알아두는 것도 좋다. 또 예전에는 見자가 現(나타날 현)자 대신 쓰인 적이 있기에 '나타나다'나 '보이다'와 같은 의미도 있다. 이때는 '현'으로 발음한다. 다만 見자의 기본 의미는 '보다'이기 때문에 부수로 쓰일 때는 '보는 것'이나 '보이는 것'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見(견, 현)은 ①보다 ②보이다 ③당하다 ④견해 그리고 ⓐ뵙다(현) ⓑ나타나다(현) ⓒ드러나다(현) ⓓ보이다(현) ⓔ소개하다(현) ⓕ만나다(현) ⓖ현재(현) ⓗ지금(현) 등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나타날 현(現), 볼 시(視), 뵐 근(覲), 볼 관(觀), 뵐 알(謁), 나타날 현(顯),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숨을 은(隱)이다. 용례로는 보고서 깨달아 앎을 견해(見解), 듣거나 보거나 하여 깨달아 얻은 지식을 견문(見聞), 남에게 거절을 당함을 견각(見却), 실지로 보고 학식을 넓힘을 견학(見學), 남의 일을 보고 배워서 실지로 연습하는 것을 견습(見習), 사물을 관찰하는 입장을 견지(見地), 남에게 미움을 받음을 견오(見忤), 얼른 스쳐 봄을 별견(瞥見), 분실이나 유실을 당함을 견실(見失), 책망을 당함을 견책(見責), 마음에 생각하는 점을 의견(意見), 미처 찾아내지 못하였거나 알려지지 아니한 것을 찾아냄을 발견(發見),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편견(偏見), 서로 다른 의견을 이견(異見), 남의 일에 간섭함을 참견(參見), 사물을 식별하고 관찰하는 능력을 식견(識見), 무슨 일이 있기 전에 미리 짐작함을 예견(豫見), 보고 헤아리는 생각이나 올바로 인식하거나 올바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소견(所見), 신분이 높은 사람이 공식적으로 손님을 만남을 접견(接見), 지체 높은 사람을 찾아 뵙는 일을 알현(謁見), 임금께 나아가 뵈옴을 진현(進見),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한다는 뜻에서 지나친 욕심을 절제함 또는 대의를 위해서 부귀영화를 돌보지 않는다는 의미의 말을 견금여석(見金如石), 눈앞에 이익을 보거든 먼저 그것을 취함이 의리에 합당한 지를 생각하라는 말을 견리사의(見利思義), 모기를 보고 칼을 뺀다는 뜻으로 보잘것없는 작은 일에 지나치게 큰 대책을 세움 또는 조그만 일에 화를 내는 소견이 좁은 사람을 이르는 말을 견문발검(見蚊拔劍), 위험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는 뜻으로 나라의 위태로운 지경을 보고 목숨을 바쳐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을 이르는 말을 견위수명(見危授命), 항상 잊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견요어장(見堯於墻), 물건을 보면 욕심이 생긴다는 말을 견물생심(見物生心), 나라의 위급함을 보고 몸을 바친다는 말을 견위치명(見危致命), 눈앞의 이익을 보면 탐내어 의리를 저버림을 일컫는 말을 견리망의(見利忘義), 보고 들은 바가 꼭 같음을 일컫는 말을 견문일치(見聞一致), 착한 일을 보기를 마치 목마른 것같이 하라는 뜻의 말을 견선여갈(見善如渴), 착한 일이나 착한 사람을 보면 그것을 따르라는 뜻의 말을 견선종지(見善從之), 토끼를 발견한 후에 사냥개를 놓아서 잡게 하여도 늦지 않다는 뜻으로 사태의 진전을 관망한 후에 응하여도 좋다는 말을 견토방구(見兔放狗), 보고도 못 먹는다는 뜻으로 아무리 탐나는 것이 있더라도 이용할 수 없거나 차지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견이불식(見而不食), 달걀을 보고 닭이 되어 울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지나치게 성급한 것을 이르는 말을 견란구계(見卵求鷄), 눈으로 직접 보니 들었던 것보다 못하다는 뜻으로 헛된 명성을 비유하는데 사용되는 말을 견불체문(見不逮聞), 보는 것이 탈이란 뜻으로 보지 않아서 모르고 있으면 그만인데 눈으로 보면 무엇인가 문제가 생겨 우환이 있게 됨을 이르는 말을 견물우환(見物憂患), 사냥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기쁘다는 뜻으로 어렸을 때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비유하는 말을 견렵심희(見獵心喜) 등에 쓰인다.
▶️ 指(가리킬 지)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재방변(扌=手; 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旨(지)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음(音)을 나타내는 旨(지; 신이 사람에게 주는 계시(啓示; 가리키는 일)와 손가락(手)으로 가리킨다는 뜻이 합(合)하여 '가리키다'를 뜻한다. ❷형성문자로 指자는 ‘손가락’이나 '가리키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指자는 手자와 旨(맛있을 지)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旨자는 수저를 입에 가져다 대는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서는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指자는 본래 '손가락'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다. 하지만 후에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고 지시를 내린다는 뜻이 확대되어 '가리키다'나 '지시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指(지)는 손가락을 뜻하는 말로 한자(漢字)의 수사 밑에 쓰여 ①가리키다, 손가락질하다 ②지시(指示)하다, 가리켜 보이다 ③곤두서다, 곧추 서다 ④아름답다, 곱다 ⑤손가락 ⑥발가락 ⑦마음, 뜻,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꼭 집어서 가리킴 또는 잘못을 들추어 냄을 지적(指摘), 어떤 목적을 효과적으로 이루기 위하여 단체의 행동을 통솔하는 것을 지휘(指揮), 분명히 그렇게 가리켜 정하는 것을 지정(指定), 어떤 대상을 가리켜 보이는 것을 지시(指示), 어떤 목적이나 방향에 따라 가르쳐 이끎을 지도(指導),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를 지표(指標), 어떤 수 또는 문자의 오른쪽 위에 부기해 그 승멱을 표시하는 문자 또는 숫자를 지수(指數), 사람이나 사물이 어떠하다고 가리키어 정함을 지목(指目), 지정해 그 쪽으로 향하게 함 또는 그 방향을 지향(指向), 잘못을 꼬집어 나무람 또는 지목하여 비방함을 지탄(指彈), 사람이나 원숭이의 손가락 끝 안쪽에 이루어진 살갗의 무늬 또는 그것을 찍은 흔적을 지문(指紋), 어떤 대상의 사람을 이름을 누구라고 말하여 지적하거나 가리키는 것을 지명(指名), 어떤 대상을 가리켜 부르는 것 또는 그 이름을 지칭(指稱), 달래고 꾀어서 무엇을 하도록 부추김을 지주(指嗾), 말이나 글의 대강의 요지를 대지(大指), 몹시 성낸 모양을 발지(髮指), 손가락을 꼽아 헤아림을 굴지(屈指), 가운데 손가락과 새끼손가락 사이의 손가락을 약지(藥指), 가운데 손가락을 중지(中指), 엄지 손가락을 무지(拇指), 가운데 손가락이나 엄지 발가락을 장지(長指), 집게 손가락을 두지(頭指), 엄지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의 사이에 있는 손가락으로 집게 손가락을 염지(鹽指), 열 손가락을 서로 엇갈리게 바짝 맞추어 잡은 상태를 각지(角指), 새끼손가락이나 새끼 발가락을 계지(季指),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는 뜻으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만들어 강압으로 인정하게 됨을 일컫는 말을 지록위마(指鹿爲馬), 손짓하여 부르면 대답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를 일컫는 말을 지호지간(指呼之間), 동쪽을 가리켰다가 또 서쪽을 가리킨다는 뜻으로 말하는 요지도 모르고 엉뚱한 소리를 함을 일컫는 말을 지동지서(指東指西), 하늘을 보고 물고기를 쏜다는 뜻으로 사물을 구하는 방법의 그릇됨을 이르는 말을 지천사어(指天射魚), 고기를 잡으려고 하늘을 향해 쏜다는 뜻으로 고기는 물에서 구해야 하는데 하늘에서 구함 곧 불가능한 일을 하려 함을 이르는 말을 사어지천(射魚指天), 손가락을 가지고 바다의 깊이를 잰다는 뜻으로 양을 헤아릴 줄 모르는 어리석음을 이르는 말을 이지측해(以指測海), 팔과 손가락을 쓴다는 뜻으로 지시나 명령 등을 뜻대로 할 수 있다는 말을 사비사지(使臂使指) 등에 쓰인다.
▶️ 忘(잊을 망)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마음 심(心=忄, 㣺;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亡(망; 숨다, 없어지다)의 합자(合字)이다. ❷회의문자로 忘자는 '잊다'나 '상실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忘자는 亡(망할 망)자와 心(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亡자는 날이 부러진 칼을 그린 것으로 '망하다'나 '잃다', '없어지다'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없어지다'는 뜻을 가진 亡자에 心(마음 심)자를 결합한 忘자는 '마음을 없애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잊으라는 뜻이다. 忘자를 보니 '미망인'이란 단어가 생각난다. 하지만 미망인은 '아직 잊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未忘人(미망인)이 아니라 ‘아직 따라 죽지 않은 사람’이란 뜻의 未亡人(미망인)이다. 그래서 忘(망)은 주의하는 마음이 없어지다, 잊다는 뜻으로 ①잊다, 기억(記憶)하지 못하다 ②버리다, 돌보지 않다 ③끝나다, 단절되다 ④소홀(疏忽)히 하다 ⑤망령되다 ⑥상실하다, 잃어버리다 ⑦없다 ⑧건망증(健忘症)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어떤 사실을 잊어 버림을 망각(忘却) 또는 망실(忘失), 집안을 망치는 못된 언동을 망덕(忘德), 은혜를 잊음을 망은(忘恩), 잊어 버림을 망기(忘棄), 나이를 잊음을 망년(忘年), 근심을 잊는 일을 망우(忘憂), 보고 듣는 것을 자꾸만 잊어 버림을 건망(健忘), 잊기 어렵거나 또는 잊지 못함을 난망(難忘), 잊지 아니함을 불망(不忘), 잊지 않게 하려는 준비를 비망(備忘), 기억에서 사라짐을 소망(消忘), 잊을 수가 없음을 미망(未忘), 정신이 흐려 잘 보이지 않음을 혼망(昏忘), 노인이 서로 가까이 교제하는 젊은 벗을 일컫는 말을 망년우(忘年友), 어떤 생각이나 사물에 열중하여 자기자신을 잊어 버리는 경지를 일컫는 말을 망아지경(忘我之境), 은혜를 잊고 의리를 배반함을 일컫는 말을 망은배의(忘恩背義), 자신과 집안의 일을 잊는다는 뜻으로 사私를 돌보지 않고 오직 나라와 공을 위해 헌신함을 이르는 말을 망신망가(忘身忘家), 시름을 잊게 하는 물건 또는 술의 딴이름으로 술을 마시면 근심 걱정을 잊게 된다는 데서 온 말을 망우지물(忘憂之物), 나이 차이를 잊고 허물없이 서로 사귐을 일컫는 말을 망년지교(忘年之交), 나이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교제하는 벗 특히 연소자의 재덕을 인정하여 연장자가 하는 말을 망년지우(忘年之友) 등에 쓰인다.
▶️ 月(달 월)은 ❶상형문자로 언제나 둥근 날 일(日; 해)에 비하여 차고 이지러짐이 있으므로 초승달 혹은 반달의 모양을 글자로 삼았다. ❷상형문자로 月자는 초승달을 그린 것이다. 보름달은 '해'와 외형상 차이가 없으므로 초승달을 그려 '달'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태양을 뜻하는 日자가 '시간'이나 '태양의 작용'에서 연상되는 글자를 만드는 반면 月자는 달이 차오르고 지는 주기성과 관계된 의미를 전달한다. 그래서 월경(月經)이라고 하면 여성의 생리를 뜻하고 매달은 '주기적인 달'을 의미하는 것이다. 주의할 점은 月자가 부수로 쓰였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달'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肉(고기 육)자의 변형자가 月자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육달 월'이라고 한다. 그래서 비록 月자가 들어간 글자일지라도 肉자로 해석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구별할 방법은 '月자가 어느 변에 자리 잡고 있는가?'이다. 만약 期자와 같이 우측 변에 위치해 있다면 이것은 '달'과 관련된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대부분이 肉자의 변형자에 해당한다. 그래서 月(월)은 (1)월요일(月曜日) (2)달 등의 뜻으로 ①달, 별의 이름 ②세월(歲月), 나달, 광음(光陰; 시간이나 세월을 이르는 말) ③달빛 ④달을 세는 단위(單位) ⑤한 달, 1개월 ⑥월경(月經), 경수(經水) ⑦다달이, 달마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날 일(日)이다. 용례로는 달이 솟아오름을 월출(月出), 그 달의 끝을 월말(月末), 그 달의 처음 무렵을 월초(月初), 그 달의 초하룻날을 월삭(月朔), 다달이 받는 정해진 봉급을 월급(月給), 달에서 비쳐 오는 빛으로 달빛을 월광(月光), 매달 한 차례씩 인쇄물을 발행함 또는 그 간행물을 월간(月刊), 다달이 내는 집세를 월세(月貰), 달떡으로 달 모양으로 둥글게 만든 흰 떡을 월병(月餠), 한자어 숫자 다음에 쓰이어 달수를 나타내는 말을 개월(個月), 해나 달을 단위로 하여 한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세월(歲月), 매달이나 다달이를 매월(每月), 밝은 달을 명월(明月), 아름다운 달을 가월(佳月), 결혼하고 난 바로 다음의 즐거운 한두 달을 밀월(蜜月), 다음에 오는 달을 내월(來月), 달이 뜨는 것을 구경하거나 맞이하는 일을 영월(迎月), 일년 가운데 마지막 달 곧 음력 12월을 계월(季月), 달마다 정례적으로 한 번씩 모이는 모임을 월례회(月例會), 그 달에 정해진 행사를 일컫는 말을 월중행사(月中行事), 한 달에 한번씩 내는 잡지를 일컫는 말을 월간잡지(月刊雜誌), 달 같은 태도와 꽃 같은 얼굴의 뜻으로 미인을 이르는 말을 월태화용(月態花容), 달빛으로 책을 읽는다는 말을 월광독서(月光讀書), 혼인을 중매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월하노인(月下老人), 달이 차면 반드시 이지러진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지 성하면 반드시 쇠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월만칙휴(月滿則虧), 달빛은 차고 강물은 맑게 조용히 흐른다는 뜻으로 겨울철의 달빛과 강물이 이루는 맑고 찬 정경을 이르는 말을 월한강청(月寒江淸), 달이 밝으면 별빛은 희미해진다는 뜻으로 한 영웅이 나타나면 다른 군웅의 존재가 희미해짐을 비유한 말을 월명성희(月明星稀), 달은 밝고 바람은 선선하다는 뜻으로 달이 밝은 가을밤의 경치를 형용한 말을 월백풍청(月白風淸), 달이 꽉 차서 보름달이 되고 나면 줄어들어 밤하늘에 안보이게 된다는 뜻으로 한번 흥하면 한번은 망함을 비유하는 말을 월영즉식(月盈則食)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