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 아래에 서서 (외 1편)
최영규
발을 헛디뎌 몸이 넘어진다
산도 넘어진다
겨우 추슬러 마음 하나 도로 세우고
이제 보이지 않는 너를
혼자서 본다
설사면에 튀긴 햇살이 칼끝처럼 몸속을 파고든다
냄새로 찾아가는 설산의 내막
바람은 울음으로나 길을 찾아 가는데
여러 번 꺾인 몸은
조각난 얼음 속으로 파묻히고 밟히면서
누구를 찾아가는가
끝도 없는 고집
혼자 앞장 세워 겨우 모퉁이 돌 때
아, 저기 설산 아래 까맣게 떠오르는 사람
이름도 지워버린 채
무릎만 젖어 흐르는 너는
무한정 기다리는 나는
길게, 길게
종일 바람이 불었다
잠시 쉬던 바람, 석양빛이 스치자
움키듯 베이스캠프 흙바닥을 긁어
황토 기둥으로 솟구쳐 올랐다
바람에 놀란 하늘
붉은 먼지로 가득 찼다
하얗게 얼어붙은 텐트를 긁어대며
밤새 사각거렸던 생각들
먼지기둥에 빨려 들어가
팔이라도 잡아챈 듯 구겨진 표정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다부체* 쪽으로 끌려갔다
키보다 낮아진 석양
철수하는 셰르파와 대원들의 발걸음
태우듯 차갑게 비추고
어둠을 섞어
길게, 길게 발자국을 그리는 그림자와 함께
귀환하고 있다
* 다부체(6,495m) : 네팔 동부 쿰부히말 지역에 있는 봉우리로 아마다블람(6,856m)의 서쪽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다. 다부체란 ‘말 앞의 발자국’이란 뜻.
—시집 『설산 아래에 서서』 20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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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규 / 1957년 강원도 강릉 출생.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아침시집』 『나를 오른다』 『크레바스』 『설산 아래에 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