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고지리 생태공원으로
오월 넷째 월요일은 아침밥을 먹으면서 점심 도시락까지 준비해 놓았다. 식후에 나서는 산책 행선지가 식당이 없는 강변으로 나설 계획이어서였다. 학생들의 등교나 회사원들의 출근보다 이른 시간에 자연학교로 길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로 내려가 이웃 동 뜰에서 꽃을 가꾸는 꽃대감 친구를 만나 안부를 나누고 나는 나대로 버스 정류소로 나가 105번 버스를 타고 동정동으로 갔다.
동정동에서 창원역을 출발해 북면에서도 가장 북단인 명촌으로 가는 15번 마을버스로 갈아탔다. 천주암 아래를 거쳐 굴현고개를 넘은 버스는 고암과 승산을 지나 텃밭 농사를 짓는 노인을 내려주고 나니 승객은 나와 한 아낙뿐이었다. 아산에 들러서 탄 두 할머니는 온천장에 내리고 그 아낙은 바깥 신천에서 내렸다. 나는 종점을 앞둔 오곡에서 내리고 기사는 차를 돌려 돌아나갔다.
강변의 인적이 드문 작은 마을 앞을 지나니 하늘은 흐리고 황사가 끼어 날씨가 우중충했다. 오곡은 벼농사를 짓는 논은 전혀 없고 모래흙의 밭뙈기와 산지를 개간한 단감 농사로 생계를 잇는 주민이었다. 길섶에는 연분홍 메꽃이 피어 있고 갈퀴나물이 뒤엉켜 자라 자주색 꽃을 피워 덤불을 이루었다. 창고인지 정자인지 헷갈리는 건물 처마엔 제비가 진흙을 물어다 집을 지어 놓았다.
오곡은 창원 북면이고 그 인접한 내봉촌에 딸린 작은 마을은 함안 칠북면이었다. 근래 창녕함안보와 통하는 도로가 뚫려 외부로 드나들기 편리해졌다. 신설 도로를 따라 창녕함안보로 향해 걸으니 수문을 빠져나온 강물은 명촌 벼랑에서 둔각으로 휘어져 임해진으로 흘러갔다. 자모산 북향 비탈도 단감 과수 단지 일색이었는데 조선 후기 용성 송 씨 문중에서 세운 광심정을 지났다.
절개지 경사면에 가시상추가 세력 좋게 자라 발걸음을 멈추고 잎사귀를 뜯어 모았다. 야생에 절로 자란 가시상추는 상추보다 더 나은 채소로 생채로나 겉절이를 해 먹기 좋다. 내가 텃밭을 가꾸지 않아도 발품만 팔면 일용할 찬거리는 손쉽게 마련할 수 있었다. 어제 양미재로 올라 쇠어가는 산나물을 뜯은 것은 동행한 지기에게 건넸는데 가시상추는 우리 집 식탁에 올릴 참이다.
창녕함안보 남단에서 상판에 놓인 공도교를 건너 창녕 길곡으로 건너갔다. 자동차가 질주하는 둑길을 비켜 갯버들과 갈대가 무성한 둔치로 내려섰다. 길곡면 소재지 들판 바깥 둑 너머 넓은 둔치는 노고지리 생태공원으로 이름을 붙였다. 부산광역시에는 둔치 모래밭에 취수정을 뚫어 여과수를 퍼 올려 상수원으로 삼고자 하는데 지역민들이 한사코 반대해 공사는 착수를 못하고 있다.
갈대와 물억새는 잎줄기가 시퍼렇게 솟아 야위진 작년 묵은 그루터기를 가릴 정도로 왕성한 세력으로 자랐다. 올봄은 비가 넉넉하게 내려 둔치 식생은 물이 부족하지 않은 환경이었다. 군데군데 금계국이 꽃잎을 펼쳐 화사했는데 이맘때 강변 둔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자전거 길을 따라가다 정자가 나와 쉼터 삼아 올라가 배낭에 넣어간 점심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식후에도 둔치의 아득한 자전거 길을 따라 뚜벅뚜벅 걸었다. 성근 빗방울이 들었는데 우산을 준비하지 않아 가늘게 내리는 비를 그냥 맞았다. 임해진이 바라다보이는 곳에서 부곡의 온정천이 흘러온 징검다리를 건넜다. 개비리길로 들어서는 벼랑에는 임진년과 병자년의 두 전란을 겪은 뒤 전쟁의 근심을 지우고 싶다고 소우헌이라는 호를 붙인 벽진 이 씨 도일이 세운 정자가 보였다.
임해진 벼랑도 남지와 같은 개비리길로 명명되어 있다. 청암과 노리 사이에 정분이 난 암수컷 개가 벼랑을 타고 오가면서 길을 먼저 틔운 이후 사람이 다니는 길이 생겨났음에 연유했다. 노리마을 어귀에 그 개의 무덤과 빗돌이 서 있는데 글자의 마모가 심해 판독이 불가함이 아쉬웠다. 강 건너 마을이 바라보인 휴게소에서 커피를 한 잔 들고 본포교를 건너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23.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