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요적적(寥寥寂寂)
쓸쓸하고 고요하다는 말이다.
寥 : 쓸쓸할 요(宀/11)
寥 : 쓸쓸할 요(宀/11)
寂 : 고요할 적(宀/8)
寂 : 고요할 적(宀/8)
출전 : 금강경(金剛經)
금강경(金剛經)에 송(宋)나라 야보도천(冶父道川) 스님이 전하는 말씀(偈頌).
山堂靜夜, 坐無言.
깊은 밤 절집에 말없이 앉으니
寂寂寥寥, 本自然.
적적고요는 본시 스스로 그러한데
何事西風, 動林野.
서풍은 무슨 일로 숲과 들을 흔들며
一聲寒鶴, 唳長天.
외기러기 소리는 장천을 울어 외나
◼ 山堂靜夜坐無言하니,
山堂. 고요한 밤 앉아서 말이 없다. 그런 글인데, 이것을 시적으로 아주 멋지게 번역을 하면 좋겠지요. “앉아서 말이 없다” 보다도 “말없이 앉았으니” 靜夜 = 고요한 밤. 山堂 했으니까 “아주 깊은 산속” 해도 좋고요. “산속 암자” 라고 해도 좋고요.
◼ 寂寂寥寥本自然이라.
고요하고 ‧ 고요하고 ‧ 또 고요한데 본래 저절로 그러함이라. 이것 눈에 보이는 그런 자연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본래 저절로 그러함이라. 그렇게 표현하면 됩니다.
이것이 우리 마음이 動하지만, 그 근본자리. 동하지 아니한 근본자리. 물은 바람에 사정없이 물결치지만, 그 물이라고 하는 그 자체는 조금도 동요가 없지요. 변함이 없습니다.
금 가지고 별별 모양을 만들어도 금의 성질은 그대로 하나도 변함이 없다고 하는 그런 것을 이런 식으로 표현.
◼ 何事西風動林野하야,
어찌하여 무슨 일로 西風은,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林野를 움직여서
◼ 一聲寒鴈이 唳長天고.
한소리 차가운 기러기가 저~ 長天에, 먼 하늘에 울고 가는가?
이것은 움직임이 없는 가운데서 움직임을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靜中動입니다. 뒤에 두 구절은 전부 동적인 것을 표현했고, 앞의 두 구절은 정적인 것 靜中動. 마음을 아무리 써도, 또 그 마음의 본체는 변함없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하는 것. 이러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요.
사실은 우리가 별별, 하루 가운데 사용하는 마음 작용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그 량으로 치자면 무수히 많은 양이지만, 우리 마음은 늘 그 마음입니다. 항상 그 마음입니다.
하나도 변함없습니다. 그것이 靜입니다. 정 가운데 동이 있고, 동 가운데 정이 있는 그것이 마음의 본색입니다.
요요적적(寥寥寂寂)
손 가는 대로 뽑아 든 책이 이태준의 '무서록'이다. 펼치던 손길이 '고독'에 가서 멎는다. 늦은 밤 곁에서 곤히 자는 아내와 아기를 바라보다가 그는 문득 외로웠던가 보다.
이렇게 썼다. '인생의 외로움은 아내가 없는 데, 아기가 없는 데 그치는 것일까. 아내와 아기가 옆에 있되 멀리 친구를 생각하는 것도 인생의 외로움이요, 오래 그리던 친구를 만났으되 그 친구가 도리어 귀찮음도 인생의 외로움일 것이다.'
그러고는 '산집 고요한 밤에 말없이 앉았노니, 쓸쓸하고 고요하여 자연과 하나 되다(山堂靜夜坐無言, 寥寥寂寂本自然)'란 한시를 인용하고 '얼마나 쓸쓸한가! 무섭긴들 한가! 무섭더라도 우리는 결국 이 요요적적에 돌아가야 할 것 아닌가!'라며 글을 맺었다.
찾아보니 '선시의경(禪詩意境)'에 실린 송나라 때 선사 야보도천(冶父道川)의 시다. 채워서 다시 읽어본다.
山堂靜夜坐無言,
寂寂寥寥本自然.
산집의 고요한 밤 앉은 채 말 없으니, 적막하고 쓸쓸함이 본래의 자연일세.
何故西風動林野,
一聲寒雁唳長天.
무슨 일로 갈바람은 숲과 들판 흔들고, 한 소리 찬 기러기 긴 하늘에 우짖는고.
원시는 '요요적적'이 아니라 '적적요요'다. 밤은 고요하고 나는 말이 없다. 이 적적하고 고요한 상태가 기쁘다. 그런데 가을바람이 온 숲을 흔들며 지나간다. 이에 질세라 기러기도 긴 하늘 위에 끼룩끼룩 소리를 얹어 이 적막을 깨뜨린다.
같은 책에 실린 송나라 승려 백운수단(白雲守端)의 시는 이렇다.
嶺上白雲舒複卷,
天邊皓月去還來.
산마루 위 흰 구름 풀렸다 되말리고, 하늘가 흰 달은 갔다간 다시 오네.
低頭卻入茅簷下,
不覺呵呵笑幾回.
고개 숙여 띠집 처마 아래로 들어와선, 나도 몰래 깔깔깔 몇 번을 웃었던고.
구름은 혼자 말렸다 폈다 하고, 흰 달은 하늘 위로 제멋대로 다닌다. 몸 하나 뉠 옹색한 움막에 들어와서도, 그 구름과 저 달의 대자유가 내 것인 듯하여 자꾸 혼자 웃는다.
고독한 적막을 바람 소리 기러기 울음이 가른다. 흰 구름과 밝은 달은 한곳에 머무는 법이 없다. 그리하여 우리는 고독을 꿈꾸면서 또 번잡 속에 산다.
▶️ 寥(쓸쓸할 요/료)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갓머리(宀; 집, 집 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翏(료)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寥(요/료)는 ①쓸쓸하다, 적막하다(寂寞--) ②휑하다 ③텅 비다, 공허하다(空虛--) ④넓다, 광활하다(廣闊--) ⑤성기다(물건의 사이가 뜨다), 드물다 ⑥잠잠하다 ⑦둘러싸다 ⑧교란시키다(攪亂---) ⑨하늘, 공중(空中)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고요할 적(寂)이다. 용례로는 텅 비고 넓음을 요활(寥闊), 적적하고 쓸쓸함을 적요(寂寥), 맑고 고요함을 청료(淸寥), 한가롭고 조용함을 한료(閑寥), 명예나 명성이 드날리지 아니하여 남에게 알려짐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요요무문(寥寥無聞), 세상에 나와서 교제하는 데도 언행에 침착해야 함을 이르는 말을 침묵적요(沈默寂寥), 형체도 소리도 다 없다는 뜻으로 무위자연을 주장한 노자의 중심 사상을 이르는 말을 적혜요혜(寂兮寥兮) 등에 쓰인다.
▶️ 寂(고요할 적)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갓머리(宀; 집, 집 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사람의 소리가 없이 조용하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한 叔(숙, 적)으로 이루어졌다. 집 속에 사람의 소리가 없어 고요하다는 뜻이 전(轉)하여 적적하다의 뜻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寂자는 '고요하다'나 '쓸쓸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寂자는 宀(집 면)자와 叔(아재비 숙)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叔자는 떨어진 콩을 줍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언뜻 보면 '적막하다'와의 연관성을 찾기가 어렵다. 그러나 소전에서는 叔자가 아닌 尗(콩 숙)자가 쓰였었다. 尗자는 콩이 떨어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소전에 나온 모습대로라면 寂자는 집안에 콩이 떨어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집안이 너무 조용하여 '콩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이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寂자는 주위가 매우 조용하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寂(적)은 ①고요하다(조용하고 잠잠하다), 조용하다 ②쓸쓸하다, 적막하다 ③죽다 ④한가롭다 ⑤열반(涅槃)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고요할 막(寞), 쓸쓸할 요(寥)이다. 용례로는 적적함이나 고요함을 적막(寂寞), 고요하고 쓸쓸함을 적연(寂然), 쓸쓸하고 고요함을 적정(寂靜), 자연히 없어져 버림을 적멸(寂滅), 속념을 떠난 고요한 생각을 적념(寂念), 괴괴하고 조용함을 적적(寂寂), 고요하게 앉아 깊이 생각하고 말이 없음을 적묵(寂默), 고요히 명상에 잠기어 말이 없음을 적묵(寂黙), 적적하고 쓸쓸함을 적요(寂寥), 번뇌를 끊고 고요히 빛나는 마음을 적광(寂光), 쓸쓸하고 외로움을 고적(孤寂), 고요하고 호젓함을 잠적(潛寂), 고요하고 쓸쓸함을 정적(靜寂), 쓸쓸하고 호젓한 모양을 소적(蕭寂), 깊숙하고 고요함을 유적(幽寂), 한가하고 고요함을 한적(閑寂), 마음이 답답하고 쓸쓸함을 울적(鬱寂), 텅비어 적적함을 허적(虛寂), 적적함을 면함이나 고요함을 깨뜨림을 파적(破寂), 깊숙하고 고요함을 현적(玄寂), 음침하고 고요함을 잠적(涔寂), 텅 비고 쓸쓸함을 공적(空寂), 심심풀이로 어떤 일을 함을 소적(消寂), 평안히 입적함을 연적(宴寂), 승려의 죽음을 입적(入寂), 모든 일을 고요히 생각하여 움직이고 결코 서두르지 아니하는 주의를 일컫는 말을 적정주의(寂靜主義), 아주 조용하여 움직이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적연부동(寂然不動), 생사의 괴로움에 대하여 적정한 열반의 경지를 참된 즐거움으로 삼는 일을 일컫는 말을 적멸위락(寂滅爲樂), 아무 소리도 없이 잠잠하여 아주 고요함을 일컫는 말을 만뢰구적(萬籟俱寂), 사람이 없는 것같이 조용함을 일컫는 말을 적약무인(寂若無人), 조용하고 적적하여 아무 소문도 없음을 일컫는 말을 적연무문(寂然無聞), 형체 소리도 다 없다는 뜻으로 무위자연을 주장한 노자의 중심 사상을 일컫는 말을 적혜요혜(寂兮寥兮)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