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교 건너 수산으로
같은 생활권에 사는 초등학교 친구들과 격월로 얼굴을 보는 모임이 있었던 이튿날은 오월 넷째 화요일이다. 엊저녁 여름을 앞둔 보양식으로 어시장 해안 부두 장어구이 식당에서 남녀 동기 열여섯 명이 모였다. 나는 즐겨 들던 맑은 술은 한 잔도 비우질 않고 구운 장어 살점만 먹고 와 좋은 안주에 결례되지 않았을까 염려스럽다. 새벽녘 잠을 깨 전날 동선을 되짚어 글을 남겼다.
날이 밝아온 아침에 자연학교로 등교하려고 빈 배낭을 둘러메고 현관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나가 이웃 동 뜰의 꽃밭으로 가보니 아래층 밀양댁 할머니가 붓꽃을 옮겨 심고 있었다. 꽃대감은 보이지 않는다고 하니 아까 있었는데 집으로 갔는지 모르겠노라 했다. 나는 건물 남향에 있을 듯싶어 가보니 거기서 잡초를 뽑고 있었다. 마음을 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꽃을 가꾸는 꽃대감과 아래층 할머니와 헤어져 나는 정류소로 나가 105번 버스를 탔다. 동정동에서 낙동강 강가로 가는 1번 마을버스로 갈아탔다. 동읍에서 주남삼거리를 거쳐 주남저수지 곁을 지나니 들녘에는 모를 내려고 무논을 다려놓은 구역이 나왔다. 장등에서 일반산업단지 공장 지대를 둘러 대산면 소재지 중심지 가술에서 모산을 거쳐 수산교 곁을 지나 당리에서 내렸다.
나는 현지 주민도 아니면서 가끔은 낯선 동네를 찾아 골목이나 고샅을 배회하기도 한다. 어쩌다 묶어둔 상태이긴 했으나 집을 지키는 덩치 큰 개가 컹컹 짖어댈 때는 멈칫 놀라기도 했다. 이번에 찾아간 당리도 예외가 아닌지라 인적 드문 골목을 지나가니 주인이 출타 중인 집에서 덩치 큰 개가 짖어댔다. 나는 개 짖는 소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을 어귀 구석구석을 둘러봤다.
김해 한림으로 향하는 신설도로 굴다리를 지나 강둑으로 올라섰다. 드넓은 둔치 군데군데는 창원 시민들의 식수원으로 삼을 강변 여과수를 퍼 올리는 취수정이 있었는데 수풀이 무성해 정글이 연상되었다. 자전거 길이 시원스레 뻗어간 둑을 걸어 본포 방향으로 올라가니 길섶은 삘기 이삭이 패어 하늘거렸다. 대산정수장 부근에 이르러 발길을 돌려 수산교 방향으로 되돌아왔다.
낙동강 중하류 강심을 가로지른 수산교를 걸어서 건넜다. 지방도의 수산교는 길이가 무려 1.5킬로미터에 이르는 무척 긴 교량이었다. 수산교와 일정 간격을 두고 25호선 국도의 수산대교도 나란히 걸쳐 지났다. 수산으로 건너가니 마침 오일장이 서는 날이었다. 장터 입구 칼국수집에서 냉면으로 점심을 먹고 시장을 둘러봤다. 여느 시골과 마찬가지로 오일장 장터는 활기가 없었다.
그나마 텃밭에 심을 모종들이 진열된 가게는 발길이 이어진 손님을 맞았다. 어물이나 잡화 노점 앞에는 오가는 이들이 아무도 없어 물건을 살 의향이 없는 내가 지나치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저잣거리를 둘러보고 강둑 너머 하남체육공원으로 가 봤다. 4대강 사업 이전부터 수산 주민들이 활용하던 체육시설이 있던 둔치였다. 근래는 여러 꽃을 심어 공원으로 잘 꾸며져 있었다.
벚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쉼터에서 강물을 바라보며 멍때리기로 시간을 보냈다.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피어오르고 강심에는 수상 스키를 즐기는 이가 물살을 가르며 지났다. 체육공원 쉼터에서 다시 장터로 돌아와 수산국수 제면소를 찾아갔다. 인기리에 팔리는 국수 다발은 일전에 소진되고 지금 건조 중인 면은 예약은 받지 않고 내일 아침에 도착순으로 한정 양만 판매한다고 했다.
수산의 국수 제면소는 두 군데인데 ‘수산국수’가 유명하고 ‘서가네 국수’가 뒤를 이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서가네 국수를 네 다발 사서 배낭에 채워 수산교를 건너 창원 대산으로 왔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음이 진리이듯, 수산에는 국수 제면소는 유명해도 국수 맛집이 없음은 사실이다. 마을버스를 타고 시내로 복귀해 아파트단지로 들어와 국수 절반은 밀양댁 할머니한테 보냈다. 23.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