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과 같이 카로틴 함량이 높은 식품은 뇌졸중을 막고, 경동맥을 지키는 데 도움을 준다|출처: 클립아트코리아
거울 앞에서 고개를 살짝 돌리면 턱선 아래로 맥박이 톡톡 뛰는 자리가 느껴진다. 이곳을 지나는 혈관이 바로 뇌로 피를 보내는 '경동맥'이다. 경동맥은 혈관 벽이 조금씩 두꺼워지고 찌꺼기가 쌓여도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렇게 쌓인 찌꺼기는 자칫 뇌졸중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혈관 벽 두께가 0.1㎜만 달라져도 뇌졸중과 심근경색 위험이 적지 않게 달라진다는 분석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건강검진에서 경동맥 초음파 결과를 받아 든 뒤에야 '아차' 싶어 관리를 시작한다.
만약, 관리를 위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매일 마주하는 식단부터 살펴보는 것이 좋다. 전문가들은 우리가 흔히 먹는 식품으로도 평소 경동맥 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관련 연구들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에 전문가 의견과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경동맥 건강에 도움이 되는 식품 4가지를 짚어본다.
1.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는 경동맥과 관련해 비교적 탄탄한 근거를 갖춘 식품이다. 스페인 코르도바대학교 연구진이 이끄는 '코르디오프레브(CORDIOPREV)' 연구는 관상동맥질환 환자 1,002명을 두 그룹으로 나눴다. 한 그룹에는 복합 탄수화물 위주의 저지방 식단을, 다른 그룹에는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를 넉넉히 쓰는 지중해식 식단을 따르게 했다. 이후 연구진은 경동맥 안쪽 벽의 두께, 즉 혈관 건강의 지표로 쓰이는 '경동맥 내중막 두께'를 초음파로 측정했다.
지중해식 식단 그룹은 5년 뒤 경동맥 두께가 연구 시작 때보다 평균 0.027㎜ 줄었고, 7년 뒤에도 0.031㎜ 얇아진 상태가 유지됐다. 저지방 식단 그룹은 두께에 변화가 없었다. 혈관 벽에 쌓인 지방성 침착물인 플라크의 최대 높이도 지중해식 그룹에서 더 많이 줄었다. 다만 플라크 개수는 두 그룹 모두 그대로였다. 이미 생긴 플라크를 없애기보다는 더 커지지 않도록 늦추는 효과에 가깝다는 뜻이다.
연구에 쓰인 식단은 올리브유 하나로만 이뤄지지 않았다.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를 중심으로 과일과 채소, 통곡물, 생선, 견과류를 고루 먹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올리브유를 따로 챙겨 먹기보다 버터나 기름진 양념 대신 쓰는 편이 연구 취지에 맞다.
2. 견과류
호두와 아몬드 같은 견과류도 경동맥 건강과 관련해 주목받는 식품이다. 스페인의 대규모 식단 연구 '프레디메드(PREDIMED)'의 하위 연구는 심혈관질환 고위험군 175명을 평균 2.4년간 추적했다. 연구진은 초음파로 경동맥 여러 부위의 내중막 두께와 플라크 높이를 살폈다. 참가자 중 한 그룹은 지중해식 식단에 호두·아몬드·헤이즐넛을 섞은 견과류를 하루 30g씩 곁들였다.
견과류를 곁들인 그룹은 뇌로 직접 이어지는 내경동맥의 평균 두께가 오히려 얇아졌다. 가장 두꺼운 부위의 두께와 플라크 높이도 다른 그룹보다 느리게 늘었다. 연구진은 저지방 식단과 비교했을 때 견과류를 더한 지중해식 식단이 경동맥 벽이 두꺼워지고 플라크가 커지는 속도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다만 견과류는 열량이 높아 먹는 방법이 중요하다.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영양사 데본 피어트(Devon Peart)는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이 운영하는 건강 매체 ’클리블랜드 클리닉 헬스 에센셜(Cleveland Clinic Health Essentials)'에서 "견과류는 포화지방이 많은 식품 대신 먹어야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견과류 1회 섭취량은 한 줌 정도인 약 28g으로, 이만큼만 먹어도 160~200㎉를 섭취하게 된다. 시판 믹스넛을 고를 때는 소금을 더했거나 설탕에 절인 말린 과일이 섞인 제품은 피하는 것이 좋다.
3. 당근·토마토·호박 등 카로틴이 풍부한 채소와 과일
노란색·주황색 채소와 과일에 든 색소 성분도 경동맥과 관련이 있다. 스페인 아우구스트 피 이 수녜르 생의학연구소(IDIBAPS)와 카탈루냐개방대학교(UOC) 연구진은 50~70세 200명의 혈중 카로틴 농도를 측정하고, 초음파로 경동맥에 플라크가 있는지 확인했다.
학술지 '임상 영양(Clinical Nutrition)'에 실린 연구 결과를 보면, 동맥경화가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보다 혈중 카로틴 농도가 뚜렷하게 낮았다. 플라크 개수가 많을수록 카로틴 농도는 떨어졌다. 다만 나이 등 다른 요인을 고려해 분석하자 이 관계는 여성에게서만 통계적으로 의미 있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과일과 채소를 충분히 먹은 사람일수록 혈중 카로틴 농도가 높고, 플라크도 덜 쌓인 경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카로틴은 당근·고구마·호박·피망(주황·노란색 계열), 시금치·상추(초록색 계열), 토마토·망고·살구·멜론 같은 채소와 과일에 풍부하다. 데본 피어트(Devon Peart) 영양사는 카로티노이드가 산화를 막을 뿐 아니라 염증을 줄이는 작용도 해 "심장을 보호하고 동맥 벽이 막히는 것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준다"라고 설명했다.
먹는 방법에도 요령이 있다. 카로틴과, 체내에서 카로틴으로부터 전환되는 비타민A는 지용성 성분이라 지방과 함께 먹어야 흡수율이 높아진다. 채소를 잘게 썰거나 채 썬 뒤 식물성 기름에 살짝 볶아 먹는 것이 좋다.
4. 렌틸콩·병아리콩·강낭콩 등 콩류
렌틸콩, 병아리콩, 강낭콩 같은 콩류도 경동맥 연구에 이름을 올렸다. 캐나다 토론토 세인트마이클병원 연구진은 제2형 당뇨병 환자 325명의 7일간 식사 기록과 경동맥 초음파 결과를 함께 분석했다. 그 결과 콩류를 많이 먹는 사람일수록 경동맥 내중막 두께가 얇았다. 반대로 지방, 특히 포화지방을 많이 먹을수록 두께가 두꺼운 경향을 보였다.
다만 이 연구는 특정 시점의 식습관과 혈관 상태를 비교한 단면 연구여서 콩 섭취가 혈관 벽을 얇게 만든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대상이 다른 연구에서도 비슷한 한계가 확인됐는데, 70세 이상 호주 여성을 추적한 연구에서는 콩류를 비롯한 대부분의 채소군과 경동맥 두께 사이에 뚜렷한 관련성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도 콩류는 고기를 대신할 수 있는 단백질 식품이면서 포화지방은 적고 식이섬유는 풍부하다.
육류 반찬 일부를 콩 요리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포화지방을 줄이고 식이섬유를 늘릴 수 있어, 경동맥 건강 관리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피어트 영양사 역시 통곡물·콩류·견과류·씨앗처럼 복합 탄수화물이 풍부한 고 섬유 식단을 심장 건강의 기본으로 꼽았다.
더하는 것만큼 중요한 '덜어내기'
좋은 식품을 챙기는 것만큼 가공식품을 줄이는 일도 중요하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 슈퉁 두(Shutong Du) 박사 연구팀은 대규모 지역사회 추적 연구(ARIC) 참가자 768명의 식습관을 148개 항목의 설문으로 조사하고, 경동맥 MRI 결과와 비교했다. 학술지 '미국예방심장학저널(American Journal of Preventive Cardiology)'에 실린 이 연구에 따르면, 또 하루 한 번 먹던 초가공식품을 가공하지 않았거나 최소한으로 가공한 식품으로 대체하면 경동맥 플라크의 전체 부피가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났다.
결국 중요한 것은 특정 식품 하나가 아니라 식단 전체의 방향이다. 앞서 소개한 식품들도 대부분 지중해식처럼 균형 잡힌 식단 안에서 효과가 확인됐다. 이미 경동맥 협착을 진단받았다면 식단 관리에만 의존하기보다 의료진이 처방한 약물 치료·정기 검사를 기본으로 하되, 식습관 개선을 함께 이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 국립의학도서관의 의학정보 사이트 '메드라인플러스(MedlinePlus)'도 경동맥 협착 환자라면 약과 함께 식습관을 챙길 것을 권한다. 과일·채소와 식이섬유가 많은 음식을 충분히 먹고, 생선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먹는 것이 좋다는 설명이다.
정보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