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마저도 농락하고 탄압하는 저들 때문에 죽어서도 최루액을 맞고 드라이 아이스에 채워진 채 시퍼렇게 떨어야만 했던 강서야. 네가 유언으로 남긴 ‘민주노조 사수’가 무슨 말이냐고 묻던 네 아내가, 투사가 돼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아프고도 눈물겨운 일이었다. 죽어서라도 네 아내와 아이들을 지켜주렴.”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눈물을 흘리며 추도사를 읽어나가자, 곳곳에서 한숨과 탄식이 흘러나왔다. 담배를 입에 물고 눈물을 흘리던 노동자들은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이 24일 오후 부산 동구 초량동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 전국노동자장' 노제에서 추모사를 하다 울먹이고 있다.(사진제공/민중의 소리)
눈물의 영결식.. 한숨과 탄식 곳곳에서 이어져
지난해 12월 노조탄압 중단, 손배가압류 철회 등을 요구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故 최강서(36)씨의 영결식이 24일 엄수됐다. 최씨가 숨진지 66일 만이자 유족과 금속노조가 그의 시신을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로 옮겨 농성을 벌인지 26일 만이다.
이날 영결식에는 부인 이선화씨 등 유가족들과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 오병윤.김재연.이상규 의원, 민주통합당 전순옥 의원, 진보정의당 김제남 의원, 민주노총 백석근 비대위 위원장,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등 10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지켜봤다.
장례위원회는 오전 8시 발인을 한 뒤 고인의 시신을 영도조선소 정문 앞에 마련된 영결식장으로 운구, 1시간30분 동안 영결식을 거행했다. 두 아들 등 유가족들과 무대에 오른 이씨가 그간 속내를 털어놓으며 추모 발언을 이어나가자, 영결식장은 애도와 한숨이 뒤섞여 눈물바다를 이뤘다.
이씨는 “생활고로 인한 비관, 시신을 볼모로 한 투쟁이라는 왜곡 속에 질타도 받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의 유언을 받들겠다는 마음에서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 24일 오후 부산 동구 초량동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 전국노동자장' 노제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제공 / 민중의 소리)
그는 “노조활동을 해보지 않았지만 복직 이후 3시간 만에 강제휴업 당하고 절망하는 모습, 악랄한 자본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자기 목숨 값만 받고 끝낼 수 없었다”며 “이제 언론의 헛된 보도가 거짓이라는 것이 밝혀졌고, 자기도 아이들한테 자랑스러운 아빠로 평생 남을 수 있게 됐다”며 오열했다.
이어 장례위원회는 부산대교 등을 거쳐 부산역까지 추모행진을 벌인 뒤 낮 12시부터 노제를 진행했다. 노제에서는 ‘고인의 뜻을 실현 시키겠다’는 살아남은 자들의 다짐과 결의가 이어졌다.
“고인이 목숨을 바치며 알렸던 뜻, 이제 우리 모두의 다짐”
한국진보연대 박석운 공동대표는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이후 ‘더이상은 못하겠다’던 동지의 절규가 우리를 일깨웠다”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해고자 복직, 노사관계 민주화는 이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깨 해결할 과제가 됐다”고 말했다.
▲ 24일 오전 부산 영도에서 고 최강서 열사의 운구행렬이 노제가 열리는 부산역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사진제공/민중의 솔)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재하 본부장도 “지난 66일 동안 동지의 영정 앞에 다졌던 그 맹세를 결코 잊지 않겠다”며 “노동자·민중이 주인되는 세상, 손배가압류 없는 세상을 반드시 만들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은 “강서가 자신을 던져 지키고자 했던 것은 바로 우리, 민주노조였다”며 “강서를 잃고 우리는 수십명의 힘으로 수천, 수만이 되어 싸웠다. 우리 최강서라는 그 이름, 죽어서도 잊지 말자”고 밝혔다.
장례위원회는 노제를 마친 뒤 고인의 유해를 경남 양산 솥발산 공원묘원에 안치했다.
한편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한진중공업지회 간부였던 최씨는 지난해 12월 21일 오전 노조 사무실에서 ‘민주노조 사수. 158억, 죽어서도 기억한다’ 등의 내용이 담긴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유가족과 노조는 지난달 30일 고인의 시신을 영도조선소 안으로 옮겨 손배가압류 철회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