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영적 좌절과 고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서만 회복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가 삶을 살아가노라면 항상 희망과 생기가 넘치는 시절만 있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여 지내는 때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영적인 어려움에 빠져서 낙심하여 지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어려움에 빠져 낙심하게 될 때가 성도에게 반드시 해로운 것만은 아닙니다. 물론 당시로서는 그 시기가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다 극복하고 이미 과거가 된 그때를 돌이켜 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낙심에 빠진 나를 이렇게 인도하셨구나'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새삼스럽게 느끼며 감사하게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어떤 계기로든 낙심과 절망 가운데 빠졌을 경우, 과연 어떤 방법으로 그것을 극복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제 본문을 보십시오. 엘리야는 매우 깊은 낙심 가운데 빠져 있었습니다. 여러분, 엘리야가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제단의 제물을 태움으로써 여호와가 참된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만천하에 드러내 보였을 때, 앞으로 이뤄질 일에 대해 가장 큰 기대를 가졌던 사람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그것은 다름아닌 엘리야 자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 보이괴, 또 이스라엘을 불행에 빠뜨린 우상을 섬기는 선지자들을 450명이나 백성의 손으로 죽여버렸을 때, 엘리야는 이스라엘에 참된 여호와 종교가 우뚝 설 것을 누구보다도 확신하고 또 기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기대가 산산조각이 났을때, 그는 기대가 컸던 만큼 누구보다도 낙심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께 죽기를 간구했습니다. 더 이상 삶을 계속할 의욕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4절). 이것이 엘리야의 솔직한 마음 상태였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절망에 빠진 엘리야를 과연 누가 위로할 수 있을 것이며, 누가 그에게 새로운 삶의 의욕을 복돋워 줄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취하신 행동은 무엇입니까?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 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하나님으로부터 엘리야에게 양식이 공급되었습니다. 생명을 건 대결과 이세벨의 위협을 피하여 도망하느라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로가 극에 달한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양식을 공급하신 것입니다. 이 양식은 엘리야의 육신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엘리야의 육신은 하나님의 이러한 자상한 보살핌으로 인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행하며 하나님의 산 호렙에 까지 이를 수 있는 힘을 비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버리시지 않고 여전히 그와 함께 계시며, 그를 도우신다는 이 사실이야말로 엘리야에게 새로운 힘을 공급하는 원천이 되었습니다. 이후로 엘리야는 다시 회복의 길을 걷습니다. 실로 하나님의 능격에 의해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았던 엘리야의 회복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역시 삶 가운데에서 엘리야만큼이나 낙심하고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온갖 어려움에 봉착하여 아무리 뚫고 지나가려 해도 번번히 나가 떨어지고 마는 참당한 경험이 우리네 인생에도 종종 다가옵니다. 그때 우리는 엘리야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자포자기하여 드러누워 있기도 합니다. 더러는 인간적인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곳, 새 힘을 공급받을 수 있는 그 무엇을 나름대로 찾아 나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시도는 좌절 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적 좌절은 영적 능력의 근원이신 우리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만 회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잠겨 그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으면 영적 좌절은 회복되지 않습니다. 겉으로 회복된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그것은 마치 마약 성분이 사람을 잠시 황훌하게 하는 것처럼 환각 속에서 잠시 힘을 얻은 듯한 느낌을 받을 뿐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약효가 사라지면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강한 좌절감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이러한 영적 위기, 영적 좌절이 몰려 올때에 여러분은 무엇을 찾아가십니까? 혹시 헛된 것들을 찾아 그 앞에서 부복하며 이루어질 수 없는 위로와 새 힘의 공급을 간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이러한 어리석은 행동으로부터 벗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여러 곳을 돌아다닌다고 해도 결과는 변하지 않습니다. '0'은 아무리 여러 개가 늘어 서 있어도 그 값은 '0'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이, 세상 사람들이 취하는 방법들을 아무리 많이 사용한다 해도 영적 좌절에 빠진 성도를 치유해 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수많은 '0'들 앞에 '1'이 붙게 되면, 그 모든 '0'들이 새로운 의미를 얻고 '0' 하나가 늘어날 수록 점점 더 큰 수가 되듯이, 하나님께 먼저 나아가 영적 좌절을 극복하게 되면, 나머지의 모든 노력들도 여러분의 힘을 복돋워 주는 좋은 재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제 나아갈 깊을 분명히 하시기를 바랍니다. 영적 좌절과 고뇌는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결코 극복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나아가서 그의 능력을 간구하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인 동시에 유일한 방법임을 깨닫고 이를 실천함으로 영적 좌절을 극복하시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