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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사람의 밀고
삼상 23:15-23
15 다윗이 사울이 자기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나온 것을 보았으므로 그가 십 광야 수풀에 있었더니
16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17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
18 두 사람이 여호와 앞에서 언약하고 다윗은 수풀에 머물고 요나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19 그 때에 십 사람들이 기브아에 이르러 사울에게 나아와 이르되 다윗이 우리와 함께 광야 남쪽 하길라 산 수풀 요새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20 그러하온즉 왕은 내려오시기를 원하시는 대로 내려오소서 그를 왕의 손에 넘길 것이 우리의 의무니이다 하니
21 사울이 이르되 너희가 나를 긍휼히 여겼으니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22 어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그는 심히 지혜롭게 행동한다 하나니 너희는 가서 더 자세히 살펴서 그가 어디에 숨었으며 누가 거기서 그를 보았는지 알아보고
23 그가 숨어 있는 모든 곳을 정탐하고 실상을 내게 보고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가리니 그가 이 땅에 있으면 유다 몇 천 명 중에서라도 그를 찾아내리라 하더라
삼상 23:15-23 / 사울이 다윗의 목숨을 노리고 출동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미리 알려 주셔서 언제나 도망칠 수 있게 하셨다. 16) [다윗을 찾아온 요나단] 다윗이 십 광야의 호르샤에 있을 때에,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광야의 산중으로 다윗을 찾아왔다. 그는 다윗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지하라고 격려하면서 17) 이렇게 말하였다.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게! 나의 부친이 자네에게 해를 입히지는 못할것이네. 자네는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이고, 나는 자네 다음가는 사람이 될 것이네. 이는 나의 부친께서도 잘 알고 있는 일일세!' 18) 두 사람은 여기서도 우정의 계약을 맺고. 여호와를 그 증인으로 세웠다. 그런 다음 요나단은 왕궁으로 돌아가고, 다윗은 계속 호르샤에 머물렀다. 19) [주민의 밀고로 죽을뻔한 다윗] 십 광야에 사는 몇몇 사람이 기브아로 사울을 찾아가서 이같이 밀고하였다. `다윗은 지금 우리가 사는 광야에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유다 남쪽 광야에 있는 하길라 산지에 사는데, 다윗은 거기에서도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호르샤 산성에 숨어 있습니다. 20) 임금님께서 지금 당장 같이 가시기만 하면 저희가 그를 잡아서 넘겨 드리겠습니다.' 21) 사울이 대답하였다. `너희가 나를 위하여 이토록 수고하였으니, 여호와께서 그 수고에 보답해 주시기 바란다. 22) 우선 너희가 먼저 내려가서 더 자세하게 알아보되 그가 숨은 곳이 어딘지, 누가 그를 보았는지 잘 알아내어라. 나는 그가 아주 교묘한 놈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23) 그가 숨어 있을 만한데를 모조리 알아본 후에, 그가 숨은 곳이 확실하게 밝혀지면 나를 다시 찾아오너라! 그러면 내가 너희와 함께 내려가겠다. 그가 아직도 이 나라안에 숨어 있기만 하다면, 내가 유다 땅을 다 뒤져서라도 그를 잡아내고야 말겠다'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주변 사람들은 다윗을 밀고하지만 사울 왕의 아들인 요나단은 도리어 다윗을 찾아와 위로합니다.
요나단의 위로(15-18) 다윗은 사울 왕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자 십 황무지 수풀에 은신하였습니다. 사울 왕의 아들인 왕자 요나단이 수풀 속에 숨어있는 다윗을 찾아옵니다. 비록 자기의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려고 하지만 그를 영원한 친구로 여겨 직접 찾아와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울 왕을 대신하여 왕권을 이을 왕자였던 요나단이 오히려 다윗이 왕이 될 것을 말하고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맺습니다. 요나단은 믿음의 사람이었고 마음과 마음이 통하여 언약을 맺은 진정한 친구였습니다(삼상 18:1-4).
십 사람의 고발(19-20) 십 사람들은 다윗이 자신들과 함께 하길라 산 수풀 요새에 숨어있다는 사실을 사울 왕에게 고발합니다. 이들은 다윗을 도왔다가 알리지 않은 일로 인해 아히멜렉을 비롯한 팔십 오명의 제사장이 도륙을 당한 일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울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다윗의 근거지를 알려줍니다. 사람들은 정의와 진실보다는 자신들의 필요와 안전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등을 돌립니다. 다윗은 이 과정을 통해 사람은 결코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합니다.
사울 왕의 당부(21-23) 사울 왕은 십 사람들의 고발을 듣고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복을 빕니다. 과연 사울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실까요? 사울 왕은 그일라의 일을 기억하며 보다 더 정확한 정보를 백성들에게 요구합니다. 사울의 관심은 오직 다윗을 추격하여 죽이는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그가 왕의 신분을 망각하고 백성들조차 자기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고 있습니다.
적 용 : 절망 중에 있는 누군가에게 진정한 믿음의 친구가 되어주고 있습니까?
1813년 인류 최초로 증기기관차가 철로 위를 달렸습니다. 영국의 발명가 스티븐슨의 ‘땀과 눈물의 작품’ 이었습니다. 아버지처럼 탄광 화부였던 그의 나이 스무살이 되도록 글자를 깨치지 못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증기기관차까지 발명하게 된 것은 첫 아이를 출산하다 죽은 아내 핸더슨의 공로였습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헌신적으로 글자와 산수를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스티븐슨은 흰 연기를 뿜으며 가관차가 달리던 날 ‘가슴에 살아있는’ 아내에게 중얼 거렸습니다. “여보 당신의 꿈이 달리고 있다오”
호크마 주석
=====23:15
십 황무지 수풀 - 여기서 '수풀'(* , 호레솨)은 '숲' 혹은 '숲으로 덮인 높은 곳'이란 뜻의 '호레쉬(Horesh)에서 파생되었다. 그런데 이 '수풀'(호레쉬)은 '십' 남쪽 약 3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키르벱 코레이사'와 동일한 지역을 가리키는 고유 명사 곧 지명(地名)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Klein, Smith, Lange).
=====23:16
요나단이...다윗에게 이르러 - 요나단의 이같은 행동은, (1) 사울에게 쫓겨 심한 곤경에 빠져있을 다윗을 위로하며, (2) 다윗과 자신간에 맺어진 언약(20:12-16)을 재확인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수풀 - 말할 나위없이 '호레쉬'를 가리킬 것이다(15절). 그로 하나님을...의지하게 하였는데 - 요나단이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도록 한 위로와 격려의 말은 구체적으로 17절에서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그 말의 핵심은 다윗의 왕권(王權)에 대한 인정과 보장(保障)이었다.
=====23:17
두려워 말라 - 이 문구는 하나님께서 함께 계셔서 적극적으로 도우실 것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여 사용된다(수 1:9; 사 41:10). 마찬가지로 오늘날 온갖 세속과 사단의 위협, 그리고 불의한 세력의 도전에 직면해 있는 성도를 향해서 주께서는 동일한 평안의 메시지를 전하고 계신다(마 10:31; 14:27; 17:7; 행 18:9; 27:24).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 결국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권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사울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 전부터였다(15:26; 18:15). 그러나 여기 요나단의 이 표현은 위와 같은 부친 사울의 생각이 점차 굳어져서 확신으로 변했음을 보여 준다. 나는 네 다음이 될 것 - 요나단의 이 말은 다윗이 등극한 후 자신에게 제 2인자의 지위를 보장해 달라는 소망이나 부탁이 결코 아니다. 요나단의 이 말은 단순히, 자신에게 부친 사울의 왕권이 승계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는 말로 보아야 한다. 이같이 보아야 할 까닭은, 왕조가 바뀔 경우 전(前) 왕조의 후예들은 추방 내지는 죽임을 당하는 풍습이 보편화 되었던 그 당시의 상황에서(20:14), 사울은 자신의 왕권이 다윗에게로 넘어갔을 때 자신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의 은총을 입어 제 2인자로서 존립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23:18
두 사람이...언약하고 - 다윗과 요나단 간에 이미 맺었던 언약(20:12-17)을 새롭게 갱신한 사실을 가리킨다. 여호와 앞에서 - 저자는 계약적 측면을 강조하는 하나님의 명칭 '여호와'를 사용함으로써 다윗과 요나단 간의 언약의 공고성을 부각시키려 한다(20:13, 14, 16). 한편 둘 사이에 맺은 이와 같은 언약은,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전사한 요나단(31:2)에게는 실현되지 못했지만, 요나단의 후손들에게는 다윗에 의하여 그대로 성취되었다(삼하 9:11).
=====23:19
십 사람들이...사울에게...가로되 - 십 사람들의 이같은 밀고(密告) 행위의 동기는 (1) '놉 제사장 대학살 사건'(22:11-19)에 겁을 집어먹은 그들이, 사울로부터 다윗을 도와주었다는 누명을 쓰지 않고 오히려 사울로부터 칭찬을 받을 목적과(21절), (2) 다윗이 사울의 손에 결코 붙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뜻<14절>을 알지 못하는 영적 무지(靈的無知) 때문이었다. 다윗이 우리와 함께...숨지 아니하였나이까 - 이말은 다만 다윗 일행이 십 사람들의 고장에 머물고 있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광야 남편 - 이는 유다 광야의 남쪽, 즉 사해(死海)의 서쪽 황무지를 가리킨다(Keil). 한편 흠정역(AV)은 여기의 '광야'(* , 예쉬몬)를 유다 광야의 한 부분에 위치한 특정 지역으로 본다(민 21:20; 23:28). 아무튼 이곳은 후일 세례 요한이 머물던 곳으로서(마 3:1), 그 동쪽으로는 사해로 내려갈 수 있는 석회암 절벽이 있어 가히 천연적 요새지라 할 만한 지역이었다. 그러므로 이곳은 오늘날에도 각종 피난처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Smith). 하길라 산 수풀 요새 - '하길라'(Hachilah)는 '건조한 언덕'이란 뜻이다. 그리고 이 '하길라 산'은 '십 황무지 산골'(14절)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하길라 산'은 15절에 언급된 '십 황무지 수풀'의 구체적인 또다른 명칭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산은 약 30km 정도의 높이로 서있는 관계로, 이 산에서 기거하던 다윗의 일행은 이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평지에서 생활하던 십 사람들에 의하여 쉽사리 발견될 수 있었다(Keil & Delitzsch, op. cit. p. 231).
=====23:20
내려오소서 - 이 말은 당시 사울의 궁성이 있던 기브아는 고지대에 위치한 반면 십 황무지는 상대적으로 저지대에 위치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말이다. 그를 왕의 손에 붙일 것 - 여기서 '붙일 것'(* , 하스기로)은 '닫다', '가두다'란 의미를 갖는 동사 '사가르'(* )의 사역형이다. 따라서 이는 상대방을 강제로 감금함으로써 궁지에 빠뜨리는 것을 가리킨다(레 13:4; 시 31:8). 또한 이 단어는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에 대해서 취하려 했던 행동을 표현할 때도 사용되었다(11절). 본서 저자는 본장 안에서 이 단어를 반복 사용함으로써, 다윗이 성읍 거민의 무지한 밀고와 배반등으로 위기 상황에 계속 봉착되는 안타까움을 암시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23:21
나를 긍휼히 여겼으니 - 사울은 그때 자신이 다윗의 음모와 계교에 의해 왕권을 상실하게 될 동정받을 만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고 생각한 듯하다. 따라서 여기의 '긍휼히 여겼으니'는 십(Ziph) 사람들이 자신의 그러한 불쌍한 처지를 동정했다는 뜻이다.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 그때 이미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서 떠나셨고<16:14>, 그리고 사울도 그의 행위로써 하나님을 부인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십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을 선포하고 있다. 성경은 이같은 자를 가리켜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도다'(사 29:13; 마 15:8)라고 기록하였다.
=====23:22
심히 공교히 행동한다 - 여기의 '공교히 행동한다'(* , 아람)는 '경계를 하다', '경성하다', '간계를 꾀하다'란 의미이다(시 83:3; 잠 15:5; 19:25). 구체적으로 이것은 행동의 민첩성, 그리고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는 준비성 등을 가리킨다. 더 자세히 살펴서 - 이것은 '라아'(* ), 즉 '보다'라는 의미의 동사를 확대 번역한 것이다. 이는 문맥상 상당히 잘 된 번역이다(창 31:42; 레 13:3; 시 31:7). 그가 어디 은적하였으며 - 문자적으로는 '그의 발이 있는 장소'이다. 즉 다윗의 발자취를 철저히 살펴 추적.확인하라는 말이다. 알아보고(* , 야다) - 다윗에 관한 첩보 수준이 아닌 정보를 입수하라는 뜻이다. 즉 이것은 다윗이 십 사람들에 의해 목격된 곳 이외의 또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말이다.
=====23:23
탐지하고 - 22절의 '더 자세히 살펴서'와 동일한 단어이다. 그가 이 땅에 있으면 - '이 땅에'(* , 바아레츠)는 '그 땅에'로 번역해야 정확하다. 그런데 여기의 '땅'(아레츠)은 (1) '지구'(창 1:1), '세상'(수 23:14), '나라'(삼하 24:8)등 상당히 넓은 범위의 지역을 지칭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며 (2) 이 단어뒤에 '유다 천천 인 중에서 그를 찾아내리라'라는 말이 있다는 점에서, 십 황무지 지역만이 아닌 유다 땅 전체로 보아야 할 것이다. 유다 천천 인 중에서...찾아내리라 - 이 말은 다윗이 유다 땅에 있는 한 체포하고야 말겠다는 사울의 단단한 각오이다. 그런데 여기의 '천천'은 많은 수효의 백성을 상징한다(민 1:16). 즉 유다 지파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한편 '찾아내리라' (* , 히파스티)는 '보물을 찾듯이 구석 구석 살피다'란 의미를 갖는 동사<잠 2:4> '하파스'(* )의 강조형이다. 따라서 이 단어는 반드시 다윗을 잡고야 말겠다는 사울의 강력한 결의를 엿보게 해준다.
< 설 교 >
실패의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사무엘상 23장 15-18절
요새 심리학에서는 인격 장애자라는 말이 종종 쓰입니다. 인격 장애자란 정신병자는 아니지만 정신과 인격 관리를 잘 못해서 큰 문제점을 노출하는 자를 말합니다. 이들은 외형적으로는 아무 장애가 없습니다. 지식도 있고, 명예도 있고, 지위도 있고, 기술도 있고, 돈도 있고, 건강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격과 공동체성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 병은 가장 치료하기 힘든 난치병입니다. 왜냐하면 대개 교만 때문에 생기고, 교만하여 스스로 병을 잘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가 인격 장애자입니까? 사실 모든 사람이 인격 장애자입니다. 태초에 아담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영을 잃어버리면서부터 모든 사람들은 부분적으로 다 인격 장애자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다만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인격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는 공통적인 증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못한 것과 내가 진 것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하고, 실패와 잘못에 대해 지나치게 비참하게 생각하고 집착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실패의 여유’가 없습니다. 사람이 성공만을 생각하면 아주 비참하게 됩니다. 그러면 성공하지 못했을 때 얼마나 스트레스가 됩니까?
실패의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문제에 인생의 전부를 거는 것입니다. 그 문제가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깨지면 인생이 다 무너진다고 생각합니다. 그처럼 하나의 문제를 극대화하여 그 문제에 자신의 전 인생의 성패를 걸면 그 인생은 행복할 틈이 없습니다.
입시철이 되면 가끔 입시에 떨어져 자살하는 학생이 생깁니다. 입시가 자신의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입시도 중요하고, 사업도 중요하고, 우정과 사랑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중한 내 생명입니다. 한번의 실패에 온 생명을 다 걸고, “사느냐 죽느냐?” 하고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길이 아니면 얼마든지 저 길이 있습니다. 때로 주님께서는 시련을 통해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가 실패를 대할 때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가정과 사업과 인간관계에서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처럼 실패할 수 있지만, 실망에서는 안 됩니다. 실패했는데 어떻게 실망이 안 됩니까? 충분히 가능합니다. 평소에 관심의 세계를 넓히고, 최선이 안 되면 차선, 차선도 안 되면 차차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삶의 여유를 기르면 됩니다.
가끔 남편에 대해 실망을 잘하는 사람은 왜 그렇습니까? 평소에 관심의 세계가 남편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좋은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큰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관심의 세계가 남편 하나뿐이면 남편의 얼굴을 조금만 찌푸려도 인생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롭게 관심의 영역을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똑같습니다. 친구관계에서도 어떤 친구만이 내 인생의 전부처럼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친구 아니면 다른 친구도 얼마든지 있고, 새로 또 친구를 사귀면 됩니다. 한쪽 세계만 보면 길이 막힐 때 길이 하나도 안 보이는 것처럼 절망적이지만, 보는 세계만 넓히면 무수한 길이 보이게 됩니다.
가끔 보면 기독교인 중에서도 주기적인 실망감에 사로잡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특별히 ‘만사형통’을 기독교의 진리로 생각하면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어려움이 있어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만사형통’만을 배운 사람은 일이 잘못될 때마다 그 잘못에 몰입하며, 결국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 너무하십니다! 불공평하세요! 왜 저의 기도는 안 들어주시고, 축복을 주시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죄책감에 빠집니다. “내가 죄가 많아서 그렇구나!” 그렇게 죄를 인정하고 눈물로 회개하면 좋지만 그렇게 자책하면서 절망에 빠지면 더욱 문제가 됩니다.
우리는 만사형통을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만사형통을 복이라고 생각하는 자세도 틀린 것입니다. 만사형통을 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망조입니다. 항상 잘 되면 망하지 않는 영혼은 없습니다. 그리고 만사형통이란 이 땅에는 있지도 않습니다. 그처럼 있지도 않은 것을 찾으니 어디서 찾습니까?
성공이란 많은 실패도 겪은 끝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패의 여유’를 길러야 합니다. 결국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어떤 시련 중에서도 내일의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잠언 24장 1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의인도 넘어집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의인은 다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힘들 때 필요한 3가지 주님의 음성
본문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끊임없이 도피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어느 날, 그가 일곱 번째 도피처인 십 황무지 수풀에 있었습니다. 그때 사울의 아들이자 친구인 요나단이 수풀로 다윗을 찾아와 그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어려운 도피생활에서 요나단의 위로가 얼마나 큰 힘이 되었겠습니까? 그때 요나단은 다윗에게 세 가지 영적 선물을 주었습니다.
1.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했습니다. 본문 16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로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로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2. 안전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했습니다. 본문 17절 말씀 전반부를 보십시오. “두려워 말라 내 부친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3. 내일의 산 소망을 가지게 했습니다. 17절 말씀 후반부에서 요나단은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부친 사울도 안다.”라고 말하면서 다윗의 마음에 소망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준 이 세 가지 영적 선물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이런 영적인 음성을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살이가 힘들 때 가장 필요한 음성이 바로 이 음성입니다. 어떤 음성입니까?
1.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라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할 때 대충 의지하지 말고 힘 있게 의지해야 합니다. 그 믿음은 또 다른 믿음을 낳습니다. 그런 믿음의 파급효과를 계속 경험하다 보면 보편적으로 믿음이 체질화된 사람이 됩니다. 그런 믿음이 몸에 배여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행복의 요건인지 모릅니다. 믿음이 있는 곳은 천국이 되고, 믿음이 없는 곳은 지옥이 됩니다.
정신질환 중에 의부증과 의처증이 있습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배우자를 놓고 불륜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는데, 그 의심하는 정도가 거의 신앙 수준입니다. 이 병은 치료가 아주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환자가 자신의 병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고 배우자를 의심하는 것 외에는 다 정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병은 배우자에게는 아주 골치 아픈 병의 정도를 넘어 골 때리는 병입니다.
통계적으로 100명에 2-3명이 그런 증상을 보이는데 주로 35세에서 55세 사이에 발생합니다. 성격적으로는 까다롭고, 곰곰이 생각하고, 지나치게 기억력이 좋고, 남의 행동에 대해서 예민하고, 실수나 잘못을 잘 잊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들 중에 많습니다.
여자의 경우, 샘이 많고 독점적인 사람 중에 많고, 심리적으로는 배우자에 대한 열등감에서 나타납니다. 특히 억압적이거나 편집증적인 부모와 형사처럼 뒤에서 자녀들의 허물을 캐고 다니는 부모 밑에서 자라면서 믿음을 배우지 못한 사람 중에 많이 생깁니다. 그처럼 믿지 못하면 세상은 지옥이 되고, 믿으면 천국이 됩니다.
사실 믿지 못하는 것처럼 괴로운 일이 없습니다. 부부관계에서나 친구관계에서 한번 믿고 나면 그렇게 마음이 편해집니다. 남편을 전적으로 믿는 아내는 남편이 늦게 올수록 사랑의 수은주가 올라가면서 진심으로 남편을 위하는 걱정을 하다가 남편이 들어오면 얼굴이 환해집니다.
반면에 믿지 못하는 아내는 엉뚱한 상상을 하며 의심의 수은주가 올라갑니다. “어디로 샜나? 누구를 만나 무슨 수작을 하나?” 오만가지 추측을 하고, 그 추측한 대로 믿습니다. 원래 몽상가는 사실보다 꿈을 더 확실한 것으로 믿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내 육감은 못 속여!”라고 하면서 자기 육감을 지나치게 믿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이 들어오면 아예 외면하거나 짜증부터 냅니다. 얼마나 피곤하고 고통스런 삶입니까?
사회도 믿음이 없으면 지옥이 됩니다. 믿음이 없는 곳에서는 가해자는 한명도 없고 모두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며 데모하면, 이제는 고용주들도 폐업을 하며 데모합니다. 자세히 보면 돈보다는 불신이 데모의 더 큰 이유입니다.
왜 그렇게 서로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까? 사실 모든 불신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데서 나옵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기적적인 일들을 보고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어떻게 믿음의 기초를 형성하겠습니까?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려면 두 가지 사실을 꼭 알아야 합니다.
➊ 먼저 자신이 인격 장애가 있는 무능한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낮은 심령의 골짜기에 하나님의 은혜의 물이 고이는 것처럼, 자신이 무능한 존재임을 깨닫는 바로 그 순간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➋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려면 자신이 하나님 안에서 가능성이 있는 무한한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겉모습은 질그릇처럼 별 볼일 없어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 속에는 무한한 보화가 있습니다. 질그릇 속에 보화를 가진 것이 금 그릇 속에 돌을 가진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금 그릇이 아니라도 우리 안에 성령님을 보시고 살면 우리는 어떤 존재보다 소중한 존재입니다.
행복의 근원은 주님을 힘 있게 의지하고 사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 주님을 마음속에 모시면 잘나게 생각했던 자신은 죽고 완고한 마음은 사라집니다. 그러면 마치 음침한 밤이 지나 유쾌한 아침이 찾아오는 것처럼 우리 앞에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수많은 축복의 길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2. 안전에 대한 확신을 가지라
다윗은 도피 행로 중에서 가장 큰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즉 십 거민들의 고자질로 사울의 손에 잡히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위급한 순간에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습니까?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공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사울은 “급히 오라!”는 전갈을 받고 다윗 쫓기를 그치고 블레셋을 치러 갔습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셀라 하마느곳이라고 불렀습니다(28절).
하나님은 위기의 순간에 우리를 지켜주시는 ‘셀라 하마느곳’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도에게는 항상 위로 향한 직통 문이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동서남북 ‘사방’만을 바라보지만 성도들에게는 방향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늘입니다. 성도의 삶은 ‘사방 플러스 원’의 삶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3차원의 세계에 살지만 성도들은 사차원의 세계에 삽니다.
“명품 플러스 원!”의 삶이 바로 성도의 삶입니다. 그 ‘플러스 원’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일마다 때마다 ‘플러스 원’이 더해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시간이 지나면서 ‘플러스 원’의 삶과 보통 삶은 엄청난 차이를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
성도는 어떤 상황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위로부터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영어로 ‘극복한다’는 말을 overcome이라고 합니다. over는 ‘어떤 것 위에 처음부터 끝까지 걸쳐서’라는 뜻이고, come은 ‘온다’라는 뜻입니다. 즉 우리 위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내려와 우리의 삶 전반에 걸쳐 있으면 우리는 어떤 상황도 극복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필리핀에서 목회하는 한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어느 날, 그분이 교회건축을 하다가 재정이 부족해서 건축을 중도에 포기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니까 철근이 녹이 슬고 교회 건물은 흉한 몰골이 되었고 사람들은 손가락질하고 비웃었습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전화를 해서 욕을 하며 따졌습니다. “아니, 그 짓다가 만 건물 때문에 도시 미관이 얼마나 망가지는지 아세요?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둘 거요?” 그때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교회 건축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재정이 없어서 공사가 중단되었지만 곧 반드시 짓게 될 것입니다. 잠깐만 참아주세요.”
그 사람이 다시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내가 매일 그 앞길을 지나가는데 당신 교회 모습만 보면 기분이 나쁩니다. 내일 좀 만납시다!” 그리고 다음 날 그 사람을 만났더니 그 사람이 갑자기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엄청난 재정을 수표로 적어 주어 교회 건축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붙들고 최선을 다해 헌신하며 살면 아무리 힘든 상황 중에서도 길을 열어주시고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3. 내일의 산 소망을 가지라
아무리 봐도 우리는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내일은 우리도 다윗보다 더 복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넘치는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 소망이 있다면 무슨 어려움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어떤 경우에도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옛날에는 사람의 성공에 IQ(Intelligence Quotient,지능지수)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요새는 EQ(Emotion Quotient,감성지수)가 더 중요한 성공의 요소라고 합니다. 그러데 어떤 분은 가장 중요한 성공의 요소를 OQ(Overcoming Quotient, 극복지수)라고 합니다. 즉 어려운 일들을 잘 극복하는 사람이 결국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현대인들은 옛날 사람들보다 훨씬 잘 삽니다. 그런데도 절망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상대적 박탈감이 문제입니다. 살다 보면 상대적 박탈감은 있지만 그 상대적 박탈감을 이길 수 있어야 합니다. 바보처럼 항상 남만 탓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과 나약함을 증폭시킬 뿐입니다.
사람들은 가끔 어려울 때 주위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위에서 흔히 이런 소리를 너무나 많이 듣습니다. “형제도 소용없어! 친구도 소용없어! 자식도 소용없어! 교회도 소용없어!” 그러면서 아주 굉장한 진리를 발견한 것처럼 다음과 같이 열변을 토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사람은 믿을 것이 못돼!”
무엇이 문제입니까? 나를 실망시킨 그가 문제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남을 소용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자신이 문제입니다. 소용이란 말이 무엇입니까? 적절할 때에 이용한다는 말입니다. 그처럼 적절할 때에 이용해 먹는 것이 형제입니까? 적절할 때에 이용해 먹으려고 친구를 사귀었고, 적절할 때에 이용해 먹으려고 교회를 다녔습니까? 그리고 적절할 때에 이용해 먹으려고 자식을 키웠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면 “형제도 소용없어! 친구도 소용없어! 교회도 소용없어! 자식도 소용없어!”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그런 말이 자신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 자체가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우리는 친구에게 소용 있는 친구가 될지언정 그 친구를 소용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 소용 있는 아름다운 성도가 될지언정 교회를 소용의 대상으로 삼는 아름답지 못한 성도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어차피 우리는 사람이나 세상을 믿고 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는 “누구는 소용없어!”라는 말을 최대한 피해야 합니다. 그 말은 자기 자신의 수치를 보여주는 부끄러운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형제가 나를 외면해도 나는 형제가 좋다고 말해야 합니다. 자기 입으로 형제를 불신하는 말을 해야 하는 자기의 모습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남편이 부끄러운 모습을 가지고 있어도 깊은 기도제목을 나누어야 하는 목회자 외에 일반 성도들 앞에서는 “나는 남편이 정말 좋아요!” 라고 말해야 합니다. 자기 남편을 깎아내리면서 아내가 올라가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같이 깎이는 것입니다.
친구가 나를 외면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친구를 원망할 필요 없습니다. 내가 그 친구를 배반하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어차피 친구를 믿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다 버려도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을 믿고 전진하는 담대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부부가 20년 살다가 헤어졌습니다. 그 동안 서로 끈끈한 사랑을 나누면서 잘 살던 사람이었는데 잠시의 갈등을 견디지 못하고 남편과 헤어진 후 만나는 사람마다 말했습니다. “정말 남자는 믿을게 못돼! 그 원수 놈!” 그렇게 말하면 마음이 풀립니까? 더 비참하게 됩니다.
이왕 헤어졌으면 새롭게 내일을 향해 달려야지 과거를 한탄하면서 더 비참해질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20년 동안 살면서 좋았던 시절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원수는 아닙니다. 지금 현재까지 수십 년 사랑하며 살았는데 지금에 와서 원수를 만든다면 내 생애 거의 전체가 원수와 산 것이 됩니다. 그러면 누구보다도 자신이 비참해집니다.
사람은 누군가를 원수로 만들면 만들수록 결국 자신이 비참하게 됩니다. 그 비참함을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그러므로 용서해야 합니다. 원수 같은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왔던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원수를 용서하면 우리의 삶에 새로운 비약이 생기고 놀랍고 새로운 새 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행복의 원인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세상을 살면서 새삼 발견하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에게 한 가지 허물만 나오면 그걸로 완전히 그 사람을 매장시키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아흔 아홉 가지의 착한 것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때문에 그 사람을 완전히 매장시키는 사람은 정말 불행한 사람입니다.
사람은 참 무섭습니다. 아흔 아홉 가지의 장점이 있어도 한 가지가 잘못되면 그걸로 끝내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흔 아홉 가지의 실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한 가지 장점을 보시고 아흔 아홉 가지의 실수를 덮어 주십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한 기대를 너무 쉽게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한 가지 실수가 있어도 아흔 아홉 가지의 장점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시간에 다시 한 번 “나는 누구로부터 버림을 당할지라도 먼저 버리지 않겠다”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직장이 나를 버려도 수십 년 몸담은 그 직장에 대하여 배신감을 느끼지 마십시오. 내가 거기 몸담은 수십 년의 생애를 소중히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배신한 것 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믿고 더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은 반드시 더 나은 새로운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행복의 원인은 사람에게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행복의 원인은 오직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적으로 무엇을 잃어버려도 너무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고 그 상황을 극복해서 성공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물론 무엇인가 일이 안 풀리고 큰 고통을 당하면 마음은 힘들고 상실감이 클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남아 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감사하게도 나에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습니다. 또한 그 믿음을 가진 내 소중한 생명은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더 중요한 것은 남아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는 “내일의 희망이 없다!”고 탄식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구도 자기의 미래를 절망해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생이란 항상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낙심이 혼재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떤 때에는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일이 잘 될 수 있고, 어떤 때에는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일이 더 실망스럽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모든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실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그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고, 어떤 경우에도 안전을 확신하고, 내일의 산 소망을 가지고 살면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어려움이 있어도 어려움 후에는 더 큰 영광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항상 주님 중심적으로 더욱 충성하며 사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피난처 피할 길
배영진목사 / 삼상 23:14-28
오늘은 피난처 피할 길, 이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이게 매일성경 화요일 본문인데, 이 말씀이 우리 현재 삶에 너무나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오늘 이 본문으로 설교하고 싶었습니다. 삼상23장은 다윗의 약 15년 정도의 도피생활 중에 가장 위험하고 위태롭고 위급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데 오늘 14절에 보면, 기가 막힌 말씀이 나옵니다. 그동안 사울이 날마다 다윗을 찾았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겨주지 않으셨다! 사울은 다윗은 잡지 못합니다. 왜요?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헛되고 헛된 일을 날마다 포기하지 않고 하는 사람, 그래서 사울은 악인입니다. 악인은 헛된 시도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다윗 잡는 일을 사울에게 허락하지 않아요. 그런데 포기하지 않아요. 성경에, 선을 행하다 포기하지 말라! 이런 말씀이 있어요. 그런데 사울은 악을 행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악인의 길입니다. 다윗은 이 시간 뭘 믿어요? 그래, 하나님이 나를 지키신다. 내게 피할 길을 주신다! 이게 믿음의 기도입니다. 이 믿음이 다윗에게 확고합니다. 그렇다 해도 실제로 다윗의 마음에 두려움이 조금도 몰려오지 않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믿음은!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믿음은 두려움이 전혀 없는 게 아닙니다. 두려움이 있는 그 상태로 그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다윗이 처한 위급한 시간에 하나님이 어떻게 피할 길을 주셨는지 보고자 합니다. 고전 10:13절, 이 말씀은 확실히 진리인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인가? 너희가 시험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주시며,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피할 길을 주십니다. 피할 길은 영어로는 WAY OUT! 이쪽으로 가면 살 길이 있어요. 피할 길은 비상구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시고 하나님이 피할 길을 주십니다. 이게 여호와이레! 하나님은 준비하신다. 내 인생위기에 피난처가 되시고 피할 길을 준비하신다. 이걸 믿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다윗은 하나님이 피할 길을 주셨고 여러분과 제 인생에도 분명히 이렇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피할 길을 주셔서 오늘 이 자리에 있습니다. 오늘 설교를 들으시면서 내 인생여정에 어떻게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셨는지, 피할 길이 열렸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피할 길은 두가지로 옵니다. 첫째, 내게 위로자를 보내십니다. 사람을 보내서 힘을 주십니다. 둘째, 길이 막혔는데 살 길을 열어주십니다.
첫번째 피할 길: 내게 위로자를 보내신다.
오늘 16절을 보세요. 하나님이 다윗에게 아주 은밀하게 한 사람을 보내십니다. 누구인가요? 요나단입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찾아옵니다. 다윗을 위로해주려고 하나님이 보내십니다. 14절 다윗이 지금 정신없이 도망다닙니다. 바람앞에 촛불! 다윗은 목숨이 너무 위태로워요. 이제는 곧 잡힐 것이 명백해요. 여러분 너무나 삶이 팍팍하고 고되고 숨이 막히는 시간이 계속되면 그 사람에게 탈진이 옵니다. 힘에 부친단 말입니다. 이미 다윗은 20장에 이런 말을 했어요. 그때 위기예요. 사울이 창으로 자기를 죽이려는 것이 너무 명확했고 도망가며 이런 말을 합니다. 나와 사망의 걸음은 한걸음뿐이다. 한 발만 잘못 디디면 나는 천길 낭떠러지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더 악화됐어요. 여러분 지금 다윗의 심정이 얼마나 버거운지 힘이 빠집니다. 그런데 이 다윗의 상황을 하나님이 잘 아시나요? 잘 모르시나요? 여러분도 살다가 어느 싯점에서, 버티자 견디자 하다가도 아 이거 너무 힘들다! 기운이 쫙 빠지면서 더 이상 뭔가 할 의욕이 안나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내 상황 아신다? 모르신다? 여러분 이것을 믿으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내 긴박한 상황, 내 버거운 상황, 숨도 잘 못쉴 것 같이 빡빡한 상황, 그거 우리 하나님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위급한 시간을 겪는 다윗에게 위로자 한 사람을 보내시는 겁니다. 이 시간 요나단이 은밀히 다윗을 찾아옵니다. 여러분 우리는 20장에서 다윗과 요나단 둘이 언약을 맺고서 헤어지는 장면을 봤습니다. 그때 요나단이 슬픈 소식을 전합니다. 내 친구 다윗, bad news다. 우리 아버지가 진짜 너를 죽일 마음이 확고하다. 그래서 요나단과 다윗이 얼싸안고 웁니다. 다윗이 더 서럽게 울었다고 했어요. 그리고 다윗이 정처없이 망명길에 오릅니다. 블레셋왕에게 갔다가 놀라서 미친척 하고 겨우 쫒겨나와 아둘람굴로 들어갑니다. 그때부터 다윗은 도피생활, 망명생활을 15년 가까이 합니다. 그리고 아둘람동굴, 지난주일에 다윗이 인생실패한 4백명에게 찬양하는 법 가르친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삶이 버거운 것이 뭐냐? 가는데 마다 사람들에게 배신을 받아요. 그일라 주민들을 도와줬는데,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을 배신해요. 십 사람들이 다윗을 배신해요. 사울이 무서우니까 할 수 없어요. 다윗이 어디 숨어있는지 보고하지 않으면 다 죽인다! 그래서 그일라 주민, 십 주민들이 다윗을 배신합니다. 다윗이 어디 있는지 사울이 다 보고를 받습니니다. 그래서 사울은 다윗이 어디 숨었는지 정확히 알고 옵니다. 토끼몰이 사냥하듯 매일 다윗을 쫒아다녔습니다. 이 긴급한 상황, 요나단이 혼자 생각하다가, 아 내가 다윗을 한번 찾아가야겠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요나단이, 그래 다윗을 한번 찾아가자. 그를 찾아가 위로를 해줘야겠다! 이 생각이 마구 납니다. 그래서 요나단이 지금 위로자로 온 것입니다. 우리 16절 다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뭘 위로했어요? 요나단이 다윗에게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게 하였다. 이것이 지지와 격려입니다. 여러분 오늘 요나단이 다윗을 찾아온 것이 바로 다윗에게 피할 길입니다. 저는 위로만큼 사람에게 피할 길이 없다고 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누구를 보내 위로를 해주셨나요? 여러분의 인생을 돌아보면 요나단을 분명히 보내셨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해준 게 바로 위로와 지지와 격려! 정혜신 박사는 당신이 옳다 라는 책에서 이것을 심폐소생술이라 했습니다. 사람은 이거 없으면 죽습니다. 지지해주고 격려해주고 공감해주고! 요나단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위로자입니다. 위로는 너 지금 힘들겠다. 진짜 애쓴다! 고생이 많네! 내가 뭘 도와줄 게 없나?
제가 지난 화요일 새벽 이 말씀으로 설교했는데, 그리고 기도하고 집에 가서 아침 먹고, 아침 9시에 다시 목양실로 출근하는데, 차 안에서 요나단이 생각났어요. 저를 지지해주고 격려해준 사람, 내가 가장 사랑하는 목사님, 몇년전에 천국가신 김북경목사님, 30대 초에 만나 4년정도 그분 밑에 있었는데, 그분이 제 인생에 요나단입니다. 그분이 저를 얼마나 아껴주셨는지, 얼마나 알아주셨는지 몰라요. 그 외에도 하나님이 내게 보내주신 요나단이 정말 많습니다. 17절로 가봅니다. 왕자 요나단이 이런 말로 도망자 다윗을 위로했다는 게 놀라워요. 17절 제가 읽습니다. 내 아버지 사울이 자네를 절대로 잡지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말, 자네는 반드시 이스라엘 왕이 될 걸세! 우리 아버지 사울도 이것을 알고 있네! 세상에 왕자가 자기가 절대로 왕이 되지 않을 확신을 갖고 다윗을 위로합니다. 이때 다윗의 허기진 마음이 어땠을까요? 천군만마를 얻은 듯이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보내신 위로자가 분명 있을 것입니다. 한두명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어요.. 지금도 내가 매우 힘들고 빡빡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하나님은 요나단을 내게 보내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피할 길입니다. 누가 나를 지지해주고 격려해줬나? 돌아보시면 분명히 있어요. 힘들지, 힘들겠다. 애썼어! 내가 어떻게 당신을 도와줄까? 이게 피할 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에 그렇게 피난처가 되시는 줄 믿습니다. 위로자 요나단을 보내십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힘이 되어 일어나는 것입니다. 목장은 바로 그런 곳입니다.
두번째 피할 길: 길이 막혔는데 길을 여신다.
오늘 본문을 끝까지 읽어보면 하나님은 다윗이 빠져나갈 길이 아예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살 길을 열어주십니다. 사울에게 완전포위된 상태였는데 다윗을 기가 막힌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바로 이 피할 길 경험을 다윗이 나중에 왕이 되고난 후에 시편124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로 이스라엘 모두가 찬양을 합니다. 오늘 19절부터 26절까지만 보면 다윗이 정말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습니다. 이거를 독안에 든 쥐라고 합니다. 사울이 다윗을 다 잡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19절 다윗의 위기상황, 왜 상황이 끝났는가? 다윗이 산위 어디에 숨어있는지를 십사람들이 사울에게 보고해요. 왕이 너무나 두려워 백성들이 모두 보고합니다. 그러니까 도망갈 데가 없단 말입니다. 산위에 있는 토끼몰이처럼 포위를 합니다. 사울의 군사들이 다윗에게 포위망을 좁혀오는데 다윗이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아 우리는 사냥군이 놓은 덫에 이제 걸렸구나! 올무에 걸린 새같아요. 짐승이나 새 한 마리가 올무에 걸리면 제 힘으로 몸부림쳐서 빠져나갈 수가 없습니다.
26절 제가 읽어봅니다. 저는 오늘 본문에서 이 장면이 가장 긴박하게 보입니다. 아마 다윗에게 이 순간이 가장 절체절명의 시간이 아니었나 싶어요. 사울이 산위에 숨어있는 다윗을 보고 쫒아와요. 이때 다윗이 급히 저쪽 산으로 도망갑니다. 그런데 이제는 끝났어요. 더 이상 갈 데가 없어요. 사울의 엄청난 군대가 다윗과 6백명을 완전 포위합니다. 올무에 새가 걸려 발버둥치는데 곧 잡힐 상황입니다. 그런데 27절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제가 읽어봅니다. 다급하게 전령이 사울에게 달려옵니다. 왕이시여, 큰 일 났습니다. 우리 본진이 침공당했습니다. 누구냐? 누가 쳐들어왔는데? 블레셋군사들입니다. 지금 빨리 돌아가셔야합니다! 사울과 군사들이 그 소식 듣고, 다윗 추격하다 말고 산 아래로 급히 내려갑니다.
여러분 그때 다윗이 뭘 하고 있었을까요? 시편 보면 자세히 그 상황이 나옵니다. 시편22편 주여 내 생명을 원수의 칼에서 건져주십시오. 하나뿐인 내 목숨을 개의 입에서 빼내어주십시오, 사자의 입에서 나를 구하여주십시오. 저 들소의 뿔에서 나를 구하여 주십시오! 지금 다윗과 부하들이 사울군대에 완전 포위되었습니다. 숨도 못쉬는 시간입니다. 이제 어떻게 되나? 우리 다 잡혔어! 무슨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우리 모두 체포되거나 아니면 여기서 다 죽는다! 그런데 다윗이 계속해서 나를 구해달라고 소리도 못내고 기도하는 중에, 어 이게 뭐지? 너무나이상한 일이 일어난 겁니다. 포위망을 점점 좁혀오던 사울의 군사들이 다급하게 산 아래로 물러가는 것이 보여요. 어 저게 뭐지? 무슨 상황인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다윗도 잘 모릅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고 다윗과 부하 6백명이 살아나요. 어떻게 살아나게 되었나? 당시에 몰랐는데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때 블레셋군사들이 사울의 본진을 침공한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상황을 뭐라고 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오늘도 이러한 일을 하십니다. 우리 인생에 피할 길을 주십니다. 생명이 위태로운데 죽음이 비껴가는 겁니다. 그때 꼭 죽을 것만 같았는데, 일이 묘하게 풀리고 살길이 열리고 내가 살아났네! 나는 그때 절망 바로 그것밖에 없다! 그런데 어떻게 길이 생겼는지 몰랐습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 인생 전체 상황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날 이순간을 평생 잊지 못합니다. 한두걸음만 사울이 더 다가왔으면, 이놈이 여기 숨어있구만! 여봐라. 이놈 다윗을 체포해라! 그런데 한 걸음 바로 앞에서 사울이 멀어져가요. 숨구멍이 생겼고 거기서 숨쉬고 나는 살아났단 말입니다.
다윗이 나중에 왕이 되고,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시편124편 내용이 이것입니다. 내 인생에 하나님이 급히 개입하신 사건, 꼼짝없이 죽을 상황인데 살려주셨다! 그게 몇 번인지 모른다 이것입니다. 홍수가 나서 떠내려가, 숨도 쉴 수가 없고 이제는 죽음이다! 그런데 살아난 상황, 아 그때가 하나님이 피할 길을 주셨구나! 우리가 그때 사냥군의 올무에 걸린 새같이 위급했는데, 사냥군이 우리를 잡기만 하면 끝나는 것인데 놀랍게도 올무가 끊어졌다. 그래서 살 길이 열렸고 죽을 힘을 다해서 우리는 새처럼 날아갔다! 그때 우리 주님이 거기서 피할 길을 주셨다. 내가 걸려 발버둥칠 때, 주님이 올무를 끊어주셨구나! 이걸 찬양하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이 경험을 근거로 다윗이 주님이 주신 피할 길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제 인생에도 그런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지난 주일 제 인생 60년을 말씀드렸죠. 제가 살면서 119 구급차에 세번 실려갔습니다. 2004년 혈압으로, 어지럼증으로 아산병원, 2018년 언남동 예배당 이전시절 분당서울대 병원, 그리고 2016년에는 아내가 분당서울대 병원, 그렇게들 위급하게 실려갔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 시간, 하나님이 그때마다 위로자를 보내시고 살 길을 주셨어요. 하나님이 아니면 도저히 설명할 방법이 없는 일들이 우리 삶에 자주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날개를 피난처로 삼고 그 날개 아래로 피하는 자들에게는 상을 주신다! 이 믿음으로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피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내 삶이 위급할 때 어떻게든 피난처, 피할 길을 마련해주십니다. 그 살아계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셔서 좋습니다. 좋습니까? 아멘!
힘 있게 하는 자
이응효목사(인애교회) / 삼상 23:15~29
마음이나 육체에 힘이 빠지면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 하기가 어렵습니다.
힘이 있어야 세상을 이길 수 있고, 질병과 고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다른 사람 힘 빠지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가와 힘을 주고 용기를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 15~18절에는 다윗이 곤경에 처하였을 때 요나단이 찾아와 힘을 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 힘 있게 하는 자입니까?
1. 어려움을 당할 때 찾아주는 사람입니다.
다윗이 십 광야 남쪽에 위치한 수풀에 숨어 있을 때 그 지역 주민들이 사울을 찾아가 다윗이 숨은 위치를 알려주고 다윗을 잡아 사울에게 넘겨주겠다고 약속합니다.(19~23절)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도와주기는커녕 밀고하고 죽이려고 하는 악한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어려울 때 다가와 위로해 주는 고마운 사람도 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이 어려울 때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준 고마운 사람입니다.
사울이 눈에 불을 켜고 다윗을 찾고 있던 때에 그들의 눈을 피해 다윗을 찾아왔습니다.
우리들도 어려움을 당한 분들을 찾아가 위로와 용기를 주어야 합니다.
외로운 사람들을 찾아가야 하고, 병든 사람들을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어려울 때 찾아주는 그 사람이 진정한 친구입니다.
주님은 마지막 심판 때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돌보아준 그 사실을 가지고
심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외로울 때 다가와서 친구가 되어주는 진실하신 나의 참 친구~ 주 예수 사랑하리라 나의 생명 다할 때 까지/
그렇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하늘 영광 다 버리고 이 낮고 낮은 땅에 죄 많은 나를 먼저 찾아와 주셨습니다.
갈릴리의 천한 어부들을 찾아와 주시어 그들을 제자 삼아 주셨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찾아주셨습니다. 죄인들을 찾아 죄 문제를 해결하여 주셨고, 실망한 자들을 찾아 위로하여 주셨고, 문제를 만나 고민하는 자들을 찾아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주님과 같은 분이 없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어려움을 당한 자들을 찾아주십니다.
우리교회 오셔서 간증하신 방배동 새빛맹인교회를 담임하는 안요한 목사님은 고등학교교사 시절에 갑자기 시력을 잃고 맹인이 되었습니다.
친구들도 떠나고 부인마저 두 자녀를 데리고 떠나버리자 그는 자살을 결심하고 부엌에 들어가 못에 줄을 걸었고 목을 매달았지만 못이 삭아서 부엌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습니다.
그는 면도날을 찾아 손목을 그어 동맥을 절단하려고 하였는데 바로 그 순간 주 예수님이 찾아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요한아, 요한아 내가 너를 버리지 않고 내가 너를 떠나지 않으리라” 고 하시는 음성을 분명히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떠나가고 죽음 앞에 설 때 나를 찾아주실 분이 있나요?
주님은 우리를 찾아 주시는데 그 과정은 여러 가지입니다.
어떤 분은 꿈에 주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감옥에서 만나고, 어떤 분은 몸이 병들어 신음할 때 만나고, 어떤 분은 사업에 실패하여 파선한 자리에서 만나고, 어떤 분은 예배시간에 만나고, 어떤 분은 성경을 읽다가 만나기도 합니다.
미당 서정주시인은 한국최고의 시인입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라고 시작하는 그의 시는 유명합니다.
미당은 불교재단에서 세운 동국대 학장을 지낸 불교사상의 최고 학자입니다. 그 분의 시에는 불교사상이 들어 있습니다.
서정주 시인은 미국에 있는 아들집을 방문했다가 아들이 성경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고 성경을 집어 들고 읽었습니다. 성경을 읽던 서정주는 “이 놈아, 내 죄의 문제가 해결됐다”고 아들에게 외치며 울었습니다. 아름다운 시를 썼던 미당의 마음에도 해결하지 못한 죄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노년의 미당선생은 영어성경을 읽는 것으로 소일했습니다.
미당은 윤형주장로에게 자신이 믿었던 진리, 불교가 자신을 구원할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 모습은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살려고 자기 머리카락을 붙잡아 당기는 모습이라고 증언했습니다. 미당은 “불교를 통해 여러 가지 도덕적인 경지에 오를 수 있어도 나를 구원할 수 없었는데, 나를 구해준 분이 예수라네” 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이런 찬송이 있습니다. /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끝까지 나를 돌아보시니 주는 저 산 밑의 백합 빛나는 새벽별 이 땅 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88장)
인생길 힘들고 고통스러운 길에서 당신을 찾아주시는 주님을 이 시간에 환영해 보십시오. 주님이 반드시 만나 주실 것입니다.
2. 두려운 일을 당할 때 말씀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도록 신앙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16절에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이나 환경으로 인하여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분들에게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말씀으로 권면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제가 국군의 날 라디오 방송을 통해 기독교방송에서 들은 간증입니다.
그 날 전군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은 부대의 사단장이 나와서 간증을 하였습니다.
그가 육군대위 시절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였습니다.
고국에서 베트남에 대한 정보를 듣고 모의훈련을 하였지만 막상 그 땅에 도착하여 중대원을 거느리고 매복을 하고 작전을 수행할 때는 두렵고 떨리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고국에서 친한 친구로부터 편지가 한 통 왔습니다. 열어보니 이런 내용입니다. “이보게 친구 힘들고 어렵지? 그리고 두렵기도 하겠지/ 친구야 너와 네 중대원들이 한 명도 죽지 않고 안전하게 살아서 고국에 돌아올 비결을 알려 주마/ 내가 시키는 대로 해보아라. 병사 중에 기독교인들을 선발하고 그 중에 신앙심이 좋은 병사로 하여금 매복이나 작전을 나갈 때 기도하게 하고/ 막사에 돌아오면 군가대신 찬송가를 불러라 그리하면 내 하나님이 너와 너의 중대원들을 눈동자같이 지켜주실 것이다.”
그 중대장은 친구가 시키는 대로 하였습니다. 놀랍게도 3년 후 조국으로 귀국할 때 그의 중대원들 중에는 단 한 명의 전사자도 없었고, 부상을 크게 당한 병사도 없었다고 합니다. 중대장 자신도 화랑무공훈장을 비롯한 많은 훈장을 가슴에 달고 귀국하였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더구나 특가병출신인 자신이 사단장이 되어 그날 전군최우수부대가 되었다고 간증하였습니다.
우리들도 두려워하는 자들을 찾아 말씀으로 권면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사41:10)
인간의 말은 능력이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암으로 투병하는 사람들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불황에 대한 두려움, 실직에 대한 두려움, 질병에 대한 두려움 등 현 시대는 두려움의 요소를 너무 많이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용기를 주고 힘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당신은 하늘을 날수 있는 독수리와 같은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라고 말씀으로 힘을 주는 사람이 되십시다.
3. 고난을 당할 때 희망의 말을 하여 용기를 주는 사람입니다.
17절에는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긍정적인 말 한마디가 얼마나 용기를 주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언어를 잘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을 세워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금 다윗은 쫓겨 다니는 신세입니다. 수풀 속에 숨어 살아야만 하는 비참한 상태입니다. 이 고난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를 바라보는 부하들이 600명 정도 됩니다. 그들을 먹이고 마시우게 하고 입히고 재우고 그 가족들 까지 돌보아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요나단이 찾아와 힘이 되고 용기를 주는 말을 하였습니다.
사울의 손이 미치지 못할 것이요 다윗이 반드시 왕이 될 것이라는 소망의 말이요 용기를 주는 말입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다윗에게 요나단의 이런 말은 큰 힘이 되었고 소망을 든든히 가지는 말이 되었을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좌절하게 하고 낙심하게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시고 자신감을 주셔서 새롭게 하십니다.
성경말씀만큼 나에게 자신감을 주고 용기를 주는 것은 없습니다.
출애굽기 3장에 기록된 것을 보면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모세는 의욕도 없고, 희망도 없이 그저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던 80살의 늙은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모세를 찾아오셨습니다. 호렙산 가시떨기나무에 불로 임재하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애굽에서 신음하는 이스라엘백성을 구하라는 명령을 하시자 모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자신을 비하합니다.
출애굽기 4장에 보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표적을 보이시면서 사명을 주시지만 모세는 계속하여 거절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시고 “내가 너와 함께 하며 아론을 붙여 주겠다.”고 하시며 용기를 주셨습니다. 이에 모세는 점점 변하여 새사람이 되고 위대한 지도자가 됩니다.
사사기 6장에 나오는 기드온의 모습도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의 명에 기드온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삿6:15) 이 모습은 겸손이 아니라 자신감 이 없고 자신에 대한 가치를 전혀 가지지 못한 초라한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이런 사람을 이스라엘을 미디안으로부터 구원하는 위대한 능력의 사사로 바꾸셨습니까?
하나님은 자신을 비하하는 기드온을 부르되 “큰 용사여” (삿6:12)라고 불러주셨고,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삿6:16)고 하심으로 그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치가 어떠한지 알려 주셨습니다. 이에 기드온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자신을 보기 시작하였고 결국 미디안을 쳐서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하는 사사가 되었습니다.
오늘 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용기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할 수 없다는 병에 걸려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서점에 가보면 [바보 빅터]라는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자신감의 문제를 다룬 작품입니다. [마시멜로 이야기]의 작가 <호아킴 데 포사다>의 신작으로 국제멘사협회 (Mensa International Limited) 회장이었던 천재 <빅터 세리브리아코프>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책입니다. 어릴 때 내성적인 성격과 말을 더듬는 습관 때문에 바보취급을 받던 빅터가 학교에서 실시한 IQ검사에서 173점이란 기록적인 점수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실수로 앞자리 수 1을 뺀 73점으로 오인되어 진짜 바보가 되었습니다. 다니던 중학교를 중도에 그만두게 된 그는 정비공장에서 일하기도 하였고, 17년간 보따리 장사를 하면서 인생을 패배자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때 여자 친구였던 로라로 부터 자신의 IQ검사결과의 진실을 알게 된 후부터 그의 인생은 급격한 반전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의 나이 32세 때입니다.
그 후에 그는 많은 책을 썼고 많은 특허를 낸 천재가 되어 세계적인 유명인이 되었습니다.
전 세계 인구 중 2퍼센트 상위의 지능을 가진 사람들만 가입할 수 있는 멘사 협회 회장 취임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숫자로 가늠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보지도 않고 절대 자신의 능력을 재한하지 마십시오. 자신을 믿으십시오. 스스로를 위대한 존재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행동도 위대하게 변할 것입니다. 때때로 현실은 여러분의 기대를 배반할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몇 번의 고배를 마실 것이고, 그 때마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밀려올 것입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자신의 가능성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의기소침해지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찾아올 때마다, 17년을 바보로 살았던 빅터 로저스의 인생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빅터 로저스만이 겪은 실화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현실입니다.
세상을 살아갈 때 다른 사람의 말이나 평가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요, 세상이 나를 바라보는 관점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실 내 자신도 나를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오직 나를 지으신 하나님만이 나를 바로 알고 계시고 나에게 주신 능력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다.
성경은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정확히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는 무한 가능성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스바냐3:17절, 막9:23절, 요1:12절, 빌4:13절, 베드로전서2:9절,
심지어는 믿는 자는 예수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현실의 어려움 속에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주님의 약속입니다.
“내 아버지가 너를 찾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아버지의 손이 너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피난길에 오른 다윗에게 이 말이 얼마나 힘이 되고 용기를 주는 말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날마다 가슴 떨리고 두려운 시간을 보내던 다윗에게 이 말이 얼마나 자신감을 회복시켜 주는 말이었는지 모릅니다.
본문에 기록된 요나단처럼 우리 모두는 고통당하는 이웃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과 환경을 바라보고 실망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나아가 실망한 자들에게 용기와 소망을 주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지금 가장 필요한
이한배목사(부천광림교회)
ㅇ 질 문 - 요즘 어떻게 살아가고 계십니까 ?
I. 서 론
COVID19는 그동안 교만했던 인간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인간은 그 동안 인간이 신인 줄 착각을 하고, 인간이 이 세상에 천국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하나님을 부인해 왔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안전하고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 한 번 이 땅에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인간이 신이 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 앞에 인간의 모든 노력은 다 헛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인간에게 깨닫게 하시려고, 가장 작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 인간을 심판하고 계십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에 전 세계가 shutdown이 되었습니다.
① 인간이 만든 최첨단의 과학과 기술이 집약된 공항이 폐쇄가 되었습니다.
② 최고의 학문을 가르친다는 학교가 다 문을 닫았습니다.
우리 자녀들의 모든 배움의 길이 막혔습니다.
③ 최고의 물건들을 만드는 공장들이 shut down에 들어갔습니다.
④ 교회도 문을 닫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은혜와 자비를 받을 수 있는 모든 길이 막혔습니다.
⑤ 세계의 문이 닫혔습니다.
COVID19가 pandemic에 빠지자 이제는 세계가 문을 닫았습니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전염병 문제가 해결 된다고 되는 때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전염병 문제가 해결 되어도, 중국, 미국, 유럽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모든 것이 폐쇄된 상황에서 살아야 합니다.
바벨탑의 심판으로 언어를 혼잡케 하여 모든 인류가 흩어지게 하신 것과 같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모두가 흩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오늘의 세계를 한 문장으로 표현을 하면 “희망이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니, 하나님 없는 세상에는 희망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 조금만 더 계속 된다면 바이러스로 죽는 사람들보다 절망으로 인하여 삶을 포기하는 자들이 훨씬 더 많아질 것입니다.
절망으로 인하여 생긴 자포자기의 사건으로 죽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질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
돈일까요, 물질일까요 ?
오늘은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II. 본 문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다윗은 아직도 정권을 잡고 있는 사울이 죽이려고 해서 도망을 다닙니다.
국내에서는 사울 왕이 이 잡듯이 수색을 하기 때문에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국경을 넘어 블레셋 땅으로 피신을 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의 영역을 벗어나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다윗이 피할 곳이 없었습니다.
자기들의 영웅 골리앗을 죽였다고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렇게 국내에서도, 국외에서도 피할 곳이 없어지자, 다윗은 마지막으로 유대 광야로 들어갑니다.
성경은 이곳을 십 황무지, 엔게디 황무지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아무 것도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곳이 유대 광야입니다.
다윗은 이런 곳에서 600명의 동행자들을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런 곳에서 다윗이 먹이고 입혀야 할 자들이 600명이나 됩니다.
다른 것은 못해준다고 하더라도 먹을 것은 주어야하지 않겠습니까 ?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서 다윗이 택한 것은 주위에 양을 치며 사는 약한 자들을 지켜주는 기도였습니다.
유흥업소를 깡패들로부터 지켜주고 돈을 받는 기도 말입니다.
그런데 그 일도 여의치 않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사울 왕이 전국에 누구든지 다윗의 일당을 기도로 고용해서 먹을 것을 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명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을 도와주던 자들이 다 다윗을 등지게 됩니다.
①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해준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을 배신을 합니다.(삼상 23:1-14)
그일라 사람들은 처음에는 자기들을 구원해 준 다윗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이 다윗을 도와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명령을 내리자, 사람을 몰래 보내서 사울 왕에게 다윗이 자기들에게 있다고 고해버렸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일라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일아를 떠날 때 다윗은 크게 실망을 했습니다.
② 다윗이 뒤를 봐주는 십 황무지 사람들도 다윗을 배신을 합니다.(삼상 23:19-26)
그일라에 있을 수 없었던 다윗과 일행은 십 황무지의 사람들을 뒤를 봐주었습니다.
그런데 십 황무지 사람들도 사울 왕의 명령을 듣고는 사울 왕에게 다윗을 고해바칩니다.
다윗이 자기들의 땅에 있다는 것입니다.
③ 갈멜에 목장을 갖고 있는 마온 사람 나발도 다윗을 배신을 합니다.(삼상 25:2-17)
자기와 일행이 먹고 살 길이 없자, 다윗은 갈멜에 큰 목장을 갖고 있는 마온 사람 나발의 목장을 지켜줍니다.
나발의 목장의 기도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 왕의 명을 알게 된 나발도 다윗을 배신을 합니다.
다윗의 최고의 재정적인 후원자인 나발도 등을 돌렸습니다.
이렇게 다윗을 도와주던 자들이, 사울 왕의 엄명 때문에, 다 다윗을 배신을 합니다.
다윗과 관계를 끊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① 이스라엘 땅에서는 사울 왕이 죽이려고 합니다.
② 블레셋 땅에서는 블레셋 사람들이 죽이려고 합니다.
③ 유다 광야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사울 왕이 두려워서 다윗에게 등을 돌립니다.
④ 유다 광야에서 600명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왕이 되는 것을 포기를 하려고 합니다.
도저히 더는 버틸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한 사람 때문에 600명이 다 죽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오늘 본문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이 이 황무지로 다윗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다윗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① 내 부친 사울의 손이 너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다.
② 너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나는 그 다음이 될 것이다.
③ 우리 아버지 사울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제는 너무 힘들고, 또한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포기를 하려고 하는데, 요나단이 나타나서 이런 말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러니 두려워말고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이 요나단의 방문의 결과가 중요합니다.
“두 사람이 여호와 앞에 언약하고, 다윗은 수풀에 거하고, 요나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이 말씀의 핵심은 다윗은 계속해서 황무지에서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즉 왕이 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600명의 동지들도 포기하지 않고, 함께 어려움을 견디었습니다.
이것이 왕이 되는 것을 포기하려던 다윗으로 왕이 되게 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성서학자들은 이 이야기는 원래 이 자리에 있었던 이야기가 아니라, 다윗의 승리를 미리 말하고, 그리고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을 이상화 하려는 좀 미숙하고 감성적인 편집자에 의하여 삽입된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이 것을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사무엘서를 쓰는 저자는 다윗이 왕이 되는 과정을 연구하다가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왕이 되는 다윗에게 상황이 너무 악화되어서 다윗은 왕이 되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다윗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끝까지 견디어서 결국에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다윗이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이 해답을 찾던 저자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생각해 냅니다.
이렇게 다윗에게 찾아와서 희망을 주는 말씀에 다윗은 그 힘들고 어려운 황무지를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노력을 해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요나단의 이 희망의 말씀이 다윗으로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견디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로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났을 때, 우리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여 노력하게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어떤 돈이나 물질이 아니라,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희망의 말씀 속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최근에 나는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말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 능력은 이 글을 읽는 모든 자들이 갖고 있는 것이다. 마리아라는 소녀는 자라면서 자기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것이 싫었다. 그는 언청이로 태어났으며, 그녀의 삐뚤어진 입과 코와 분별하기 어려운 말을 쉬지 않고 놀려대는 짓궂은 어린이들의 조롱과 멸시를 받으며 자랐다. 이들의 이런 놀림으로 마리아는 자기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점점 싫어하게 되었다. 그녀는, Leonard 선생님의 반에 들어가기까지는, 그녀의 식구들 외에는 아무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을 했다. 레오나드 선생님은 따듯한 미소와 둥근 얼굴과 빛나는 갈색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반 아이들은 다 그 선생님을 좋아했지만, 마리아도 레오나드 선생님을 사랑하게 되었다.
1950년대 선생님들은 매년 청력 평가를 했다. 그런데 마리아는 언청이에다가 한쪽 귀도 잘 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아이들이 자기는 청각까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놀리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매년 듣기 평가를 할 때 컨닝을 하곤 했다. 듣기 평가(whisper test)는 어린이들로 교실 문 있는 쪽으로 걸어가서는 옆으로 돌아서서 손가락으로 한쪽 귀를 막고 선생님이 속삭이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였다. 마리아는 잘 들리지 않는 귀를 선생님 쪽으로 하고 손가락으로 막으면서 마치 잘 들리는 귀를 먹는 척 했다. 마리아는 선생님들이 종종 하는 말들을 알고 있었다. “하늘이 푸르다”, “네 신발은 무슨 색이니 ?” 등등이였다. 그런데 그날은 그렇지 않았다. 하나님은 마리아의 삶을 영원히 변화시킨 7마디의 말을 레오나드 선생님의 입에 넣어주셨다. 청력 시험을 볼 때 마리아는 “I wish you were my little girl(네가 나의 딸이였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들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선생님이 자기를 딸로 삼고 싶어한다는 말에 마리아는 학생들의 쉬지 않는 조롱도 다 이기고 훌륭한 학생이 되었으며 훌륭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희망의 말씀 속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COVID19로 인하여 너무 지치고 절망적이어서, 이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이때에 우리 성도님들에게 희망을 주고 힘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오늘 말씀은 다윗이 제가 말씀 드린 그런 상황을 격고난 후에 쓴 시입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어주시니,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는 황무지에서도, 먹일 자가 600명이나 되는데도 아무 부족함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이 고백은 다윗의 체험에서 나온 고백입니다.
다윗이 “내가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을 한 것은 푸른 초장 맑은 시내물가에 있어서 아무 부족함이 없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자기가 처한 것과 같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하나님이 목자가 되어주시니 아무 부족함이 없더라는 체험의 고백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2020년에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2020년에 이런 위기의 때가 올 걸 하나님은 미리 아시고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이제는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말씀을 노래하시기 바랍니다.
2.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물속을 지날 때에도, 불속을 지날 때에도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주님의 전능하신 오른손이 우리를 지키고 계십니다.
② 또한 전능하신 손으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은 작년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COVID19 같은 두려움이 우리에게 임하실 것을 아시고 1년 전에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목자 되시는 하나님이 COVID19같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주님의 강한 오른 손으로 우리를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바이러스가 감염이 될까 두려울 때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마음에 평안을 얻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
욥이 가정, 사업, 건강을 다 잃고 큰 고통 중에 있을 때 한 말입니다.
욥은 이렇게 큰 고통 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① 욥은 이렇게 온 인류 역사상 가장 고통스러운 상황에 있었습니다.
② 그런 가운에서 하나님을 열심히 찾았으나 하나님은 보이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욥이 그 어려움을 견디고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라는 희망의 말씀 때문이였습니다.
나의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이 보이지 않아도, 나의 가는 길을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 때문이였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정금으로 만들고 계시다는 믿음 때문이였습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더 이상 견딜 수 없거든 욥이 암송했던 말씀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라는 말씀을 암송하며 기도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COVID19 후에 정금같이 될 여러분 자신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4.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하시면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은 이 때에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또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공급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것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평소에는 나의 나라만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고 어려울 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있어야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이 모든 것을 더하시는 복”을 주십니다.
어려울 때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
전승문 목사 / 삼상 23:15~18
예전에 한 신문기자가 서울 근교의 양로원들을 탐방한 후 기사를 낸 적이 있습니다. 그 중 한 할머니의 사연이 많은 사람을 마음 아프게 했습니다. 그 할머니는 1·4후퇴 때 두 아들과 함께 북한에서 내려온 실향민이었습니다. 남편의 소식은 알 길이 없고 그저 자식들만이라도 살려보겠다고 남하한 분입니다. 그분은 어린 두 아들과 함께 이를 악물고 살았습니다. 시장에 가판을 벌여놓고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악착같이 살았습니다. 그러자 힘은 들었어도 제법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자식들도 잘 키웠습니다. 아버지 없이 자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게 하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두 아들 다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했습니다. 결혼도 잘해서 두 아들 모두 번듯한 가정을 꾸렸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 두 아들에게 애써 모은 재산을 다 나누어주었습니다. 상당한 금액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큰 아들과 함께 살았는데 어느 날 큰 아들 내외가 심하게 다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며느리가 왜 우리만 어머니를 모셔야 하냐고 남편에게 따지는 소리였습니다. 작은 아들도 아들인데 왜 우리만 어머니를 모시는 거냐고 심하게 따지는 거였습니다. 어머니가 안 계신 줄 알고 그런 건데 때마침 외출에서 돌아오다 듣게 된 겁니다. 어머니는 그날로 작은 아들집으로 옮겼습니다. 하지만 작은 아들네도 어머니를 모시기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결국 갈 곳이 없었던 어머니는 무료 양로원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무료 양로원은 자식이 없는 사람들만 들어올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할머니는 자식이 있는데도 없다고 거짓말을 하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취재기자가 익명으로 기사를 낸 기막힌 사연이었습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은 심지어 자식일지라도 믿으면 안 됩니다. 사람은 변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꼭 명심하십시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은 오직 사랑의 대상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는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문제는 언제나 사람을 믿을 때 생깁니다. 사실은 사람만 그런 게 아닙니다. 세상에는 믿을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는 믿을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재물이든 지식이든 명예도 권세도 다 믿어서는 안 되는 것들입니다. 왜냐면 그 모든 것은 다 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도 변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변하지 않는 존재는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만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믿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에는 믿을만한 것이 전혀 없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람 중에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긴 있습니다. 누굴까요? 하나님이 보증해주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보증하시는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습니다. 왜냐면 그건 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안에서 만나십시오. 특히 중요한 사람일수록 반드시 하나님 안에서 만나십시오. 재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물도 하나님이 주신 재물이라면 믿을 수 있습니다. 명예도 권세도 지식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믿고 안심할 수 있습니다.
다윗에게 그런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나게 하신 사람, 하나님이 보내주신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400명 정도가 모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서 이제는 600명이 넘게 모였습니다. 그 중에는 선지자 갓도 있었고 대제사장 아비아달도 있었습니다. 특히 아비아달은 대제사장의 에봇과 함께 우림과 둠밈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서 이제 다윗은 언제든 하나님께 물을 수 있었습니다. 언제든 무엇이든 하나님께 묻고 답을 얻을 수 있게 된 겁니다. 곁에 선지자도 있고 대제사장도 있고 우림과 둠밈도 있으니 언제든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 수 있게 된 겁니다.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과 함께 같이 기도하며 함께 말씀을 들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설령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갈지라도 절대로 실패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언제나 안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안전한 왕궁에서 살고 많은 군사들이 그 곁에 있었지만 사울은 늘 불안했습니다. 너무 불안해서 자신의 지파인 베냐민 지파사람들만을 가까이 두었지만 여전히 불안했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곁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보증해주시는 믿을만한 사람들이 곁에 있습니까? 그래야 합니다. 언제나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곁에 있어야 합니다.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곁에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 늘 하나님의 사람과 가까이 하십시오. 언제나 하나님이 보증해 주시는 사람과 가까이 하십시오. 기도하는 사람, 말씀을 믿는 사람,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과 가까이 하십시오.
다윗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언제나 하나님 중심으로 언제나 믿음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 다윗에게 한 가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일라 주민들이 블레셋의 습격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일라는 다윗이 숨어있는 헤렛 수풀과 가까운 성읍이었습니다. 든든한 요새가 있는 풍요로운 마을이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이 침공해서 농사지은 곡식을 약탈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겁니다. 사실 이런 문제는 임금인 사울이 해결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이런 일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울은 그저 자신의 권력을 지키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일라는 베냐민 지파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일라는 다윗이 속한 유다지파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니 사울이 도와줄 리가 만무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 “사람들이 다윗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마당을 탈취하더이다 하니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1~2절)” 하나님이 응답하신 겁니다. 다윗에게 그일라 사람들을 구해주라고 응답해 주신 겁니다. 그러니 누가 진정한 이스라엘의 왕인가요? 다윗입니다. 이미 다윗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인 겁니다. 비록 도망자 신세지만 그러나 하나님 보실 때는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다윗이 그일라를 구원하러 가려고 하는데 부하들이 반대했습니다. 도망자 신세인 우리가 어떻게 그일라를 구원하겠냐는 겁니다 :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한지라 (3절)” 맞는 말입니다. 사울을 피하는 것도 힘든데 어찌 블레셋과 전쟁을 하겠냐는 겁니다. 그러자 다윗이 다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이번에는 공개적으로 우림과 둠밈이 있는 대제사장 아비아달을 통해 물었습니다 :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4절)” 하나님이 응답하신 겁니다. 대제사장을 통해 우림과 둠밈으로 분명하게 응답하신 겁니다.
그러자 부하들이 다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시자 아무도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순종한 겁니다. 이것이 다윗의 군대입니다.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인 겁니다. 그들이 나서자 블레셋은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도망자들로 이루어진 작은 군대였지만 블레셋을 무찌르고 그일라를 구원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십시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으로 사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그렇게 블레셋을 무찌르고 다윗이 그일라 성에 들어갔습니다. 이제 다윗에게도 든든한 요새가 생긴 겁니다.
하지만 다윗이 그일라에 있다는 소식이 사울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러자 사울이 즉시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다윗이 다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 “다윗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 때문에 이 성읍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주의 종이 들은 대로 사울이 내려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가 내려오리라 하신지라 (10절~11절)” 다윗은 하나님께 두 가지를 물었습니다.
첫째는 그일라 사람들이 자신을 사울에게 넘겨주겠는지 물었습니다. 사울이 쳐들어왔을 때 그일라 사람들이 자신을 배신할 것인지 물은 겁니다.
두 번째는 과연 사울이 정말로 쳐들어올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두 번째 질문에만 대답해 주셨습니다. 사울이 쳐들어올 것이라고 응답해주신 겁니다. 그러니 다윗이 그일라에 남아있으면 사울과 전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일라는 든든한 요새가 있는 성읍입니다. 따라서 그일라 주민들이 합세한다면 충분히 사울과 맞설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다시 한 번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 “다윗이 이르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이 너를 넘기리라 하신지라 (12절)” 하나님은 그일라 주민들이 다윗을 배신할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들을 위해 블레셋과 싸운 다윗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배신할 거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하나님은 어째서 그런 그들을 구원해주라고 하신 것일까요? 그렇게 다윗을 배신할 사람들을 어째서 구원하라고 하신 것일까요? 그래서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사람은 그저 사랑의 대상일 뿐인 겁니다.
사실 다윗의 입장에서는 많이 야속했을 겁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다윗은 그일라를 떠나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또다시 길고 긴 도망자의 삶이 시작된 겁니다. 그러나 그 삶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삶이었습니다 :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14절)” 그랬습니다. 사울이 매일 매일 다윗을 찾았지만 어디에서도 다윗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다윗이 이곳저곳을 떠돌며 불안한 삶을 살았지만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하셨습니다. 참 감사한 것은 그렇기 때문에 다윗이 더 열심히 기도했다는 겁니다. 광야에 있으니까 불안하니까 더 열심히 기도한 겁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아무도 해치지 못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함께 기도하는 사람을 붙여주십니다. 하나님이 보증하시는 사람을 보내주시는 겁니다.
다윗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요나단입니다. 그렇습니다. 요나단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찾아왔습니다. 광야에서 불안한 시절을 보내고 있었던 다윗에게 요나단이 찾아온 겁니다. 그일라 주민들의 배신으로 마음이 아팠던 다윗에게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 찾아온 겁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위로했습니다 :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16절)” 요나단은 다윗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했습니다. 하나님만 믿으라고 권면한 겁니다. 이런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곁에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흔들릴 때, 불안하고 두려울 때, 이런 사람이 곁에 있어야 합니다.
심지어 요나단은 이런 말까지 해주었습니다 :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 (17절)” 요나단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거라고 했습니다. 왕자가 세자가 다윗에게 다음 왕이 될 거라고 말해준 겁니다. 비록 지금은 도망자로 숨어 지내지만, 비록 지금은 불안하게 쫓기는 신세지만,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실은 사울도 그렇게 될 것을 알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틀림없이 왕이 될 거라고 말하는 겁니다. 또한 그러니까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면하는 겁니다. 그곳까지 찾아와서 어찌 보면 정적일 수밖에 없는 다윗을 이렇게 위로하는 겁니다.
그러니 다윗은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윗은 하나님이 보증하시는 사람들이 곁에 가득한 사람입니다. 선지자도 있고 대제사장도 있고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고 무엇보다 요나단이 다윗의 편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요? 다윗의 무엇이 이토록 좋은 사람들을 모이게 한 것일까요? 다윗이 돈이 많아서 그랬을까요? 다윗이 권력이 있어서 지식이 있어서 그런 것일까요? 아닙니다. 다윗은 아무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돈도 없고 권세도 없고 지식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사람들이 모여든 것일까요? 믿음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는 사람, 말씀을 믿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십시오.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으로, 믿음 있는 사람으로 사십시오. 그렇게 살면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렇게 살면 하나님이 보증하시는 사람들이 곁에 모여듭니다.
하지만 동시에 마귀들도 덤벼듭니다. 어떻게든 넘어뜨리려고 마귀들이 역사하는 겁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다윗이 숨어있는 곳을 알아내고 잡으러 왔습니다. 다윗을 밀고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에게 큰 위기가 닥친 겁니다 : “사울이 산 이쪽으로 가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쪽으로 가며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급히 피하려 하였으니 이는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고 잡으려 함이었더라 (26절)” 사울이 다윗을 에워쌌습니다. 이제 산 하나만 넘으면 다윗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사울에게 급보가 날아들었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공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 “전령이 사울에게 와서 이르되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들이 땅을 침노하나이다 (27절)” 사울은 다윗이 눈앞에 있는데도 그러나 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다윗을 잡고 싶어도 나라가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다윗은 또다시 구원받았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다시 살아난 겁니다. 이것이 우연일까요? 그럴 리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겁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위해 그렇게 하신 겁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곳을 셀라 하마느곳이라고 불렀습니다 : “이에 사울이 다윗 뒤쫓기를 그치고 돌아와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갔으므로 그 곳을 셀라 하마느곳이라 칭하니라 (28절)” 셀라 하마느곳은 분리의 바위라는 뜻인데 구사일생이라는 의미입니다. 꼼짝없이 죽을 상황이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난 곳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은 아무 것도 믿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믿을 수 없습니다. 사람 역시 변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일라 사람들처럼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붙잡아 주십니다. 내가 요동치 않도록 하나님이 붙잡아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이 만나게 하십니다. 다윗처럼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십니다. 그러니 언제나 하나님만 의지하면 됩니다 :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편 23:4)”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그렇게 살면 하나님이 다 책임지십니다. 그러면 우리도 다윗처럼 이렇게 찬양하게 됩니다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1)”
의로운 길, 불의한 길: 요나단과 사울의 선택
삼상 23:15-23
성경을 읽으며 우리 삶의 선택을 돌아보는 시간, 요나단과 사울, 그리고 십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배워봅시다.
시작: 다윗의 위기 속에서
삼상23:15-23은 다윗이 사울의 추격을 피해 숨어 다니던 긴박한 순간을 그립니다. 다윗은 호레스 광야에 숨어 있고, 사울은 그를 잡으려 혈안이 되어 있죠. 이 장면은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습니다. 누군가는 친구를 돕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누군가는 질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잘못된 길을 걷고, 또 누군가는 둘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요나단, 사울, 십사람들은 각기 다른 선택을 합니다. 이 선택들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줄까요? 함께 들어가 봅시다.
왜 이 장면이 중요한가요? 다윗의 위기는 단순한 도망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대조를 보여줍니다. 요나단은 친구를 지키기 위해, 사울은 자신의 욕심을 위해, 십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움직입니다. 이들의 행동은 오늘 우리 삶에서도 마주치는 선택의 갈림길을 생각하게 합니다.
요나단: 친구를 위한 의로운 마음
요나단은 이 이야기의 빛나는 인물입니다. 그는 사울의 아들, 즉 왕위 계승자였지만 다윗을 질투하지 않았어요. 삼상23:16-17에서 요나단은 다윗을 찾아가 “두려워하지 말라”며 위로하고, 다윗이 왕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 장면은 정말 감동적입니다. 요나단은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고 친구를 위해 헌신했죠.
요나단에게서 배울 점은? 첫째, 진정한 우정은 이기심을 내려놓는 데서 시작됩니다. 요나단은 다윗의 성공을 빌며 자신을 낮췄습니다. 둘째, 그는 하나님의 뜻을 신뢰했어요. 다윗이 왕이 될 것을 알면서도 반역하지 않았죠. 우리도 주변 사람의 성공을 질투하기보다 축복할 수 있을까요? 요나단처럼 누군가를 격려하는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현대적 적용: 직장에서 동료가 승진했을 때, 친구가 꿈을 이뤘을 때, 진심으로 축하하기는 쉽지 않을 때가 있죠. 요나단의 마음을 떠올리며 작은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는 건 어떨까요? 그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될 거예요.
사울: 불의에 사로잡힌 마음
반면 사울은 이 이야기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그는 다윗을 잡기 위해 호레스까지 쳐들어옵니다(삼상23:19-23). 사울의 마음은 질투와 두려움으로 가득했어요. 그는 하나님이 다윗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죠. 사울의 행동은 결국 자신을 파괴하는 길로 이어집니다.
사울의 선택이 주는 교훈은? 첫째, 질투는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끕니다. 사울은 다윗의 성공을 자신의 실패로 여겼어요. 둘째,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선택은 결국 우리를 더 깊은 절망으로 몰아넣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쫓으며 점점 더 외로워졌죠.
다른 관점에서 보면: 사울도 처음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왕이었습니다. 그의 실패는 한순간의 실수가 아니라, 계속된 불순종의 결과였어요. 우리도 작은 불순종이 쌓이면 사울처럼 멀리 돌아갈 수 있으니, 매일 하나님의 뜻을 묻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현대적 적용: SNS에서 누군가의 화려한 삶을 보며 질투할 때가 있죠. 그럴 때 사울을 떠올리며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마음을 다잡아 봅시다. 내 몫은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하셨으니까요.
십사람들: 갈림길에 선 이들
십사람들은 이 이야기에서 중간자 역할을 합니다. 그들은 다윗의 위치를 사울에게 알려줍니다(삼상23:19-20). 왜 그랬을까요? 아마도 사울의 권력과 보복이 두려웠을 거예요. 그들은 생존을 위해 다윗을 배신했지만, 이는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선택이었죠.
십사람들의 선택에서 배울 점은? 첫째, 두려움은 우리를 잘못된 선택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십사람들은 하나님의 보호를 믿기보다 눈앞의 안전을 택했어요. 둘째, 우리의 선택은 더 큰 그림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들의 배신은 다윗을 위험에 빠뜨렸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지키셨죠.
다른 관점에서 보면: 십사람들을 단순히 악하다고 단정할 순 없어요.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우리처럼 두려움 속에서 결정을 내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건 우리에게도 질문이 됩니다. 나는 두려움에 지배당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을 신뢰하며 용기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현대적 적용: 직장이나 관계에서 불편한 진실을 말하기 두려울 때, 십사람들처럼 쉬운 길을 택할 때가 있죠. 하지만 하나님은 정직과 용기를 기뻐하십니다. 작은 결단 하나가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어요.
마무리: 우리의 선택은 어디로?
삼상23:15-23은 요나단, 사울, 십사람들의 선택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어떤 길을 걷고 있는가? 요나단처럼 의로운 마음으로 누군가를 돕고 있는가, 사울처럼 불의에 사로잡혀 있는가, 아니면 십사람들처럼 두려움 속에서 흔들리고 있는가? 이 이야기는 단순한 성경 구절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생생한 교훈입니다.도서 및 문학
어떻게 적용할까? 첫째, 매일 작은 선택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달라질 거예요. 둘째, 주변 사람들에게 요나단처럼 격려의 말을 전해보세요. 그 한마디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셋째, 사울과 십사람들의 실수를 기억하며 질투와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연습을 해봅시다.
참고 말씀: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잠3:5). 이 구절은 요나단의 신뢰, 사울의 불순종, 십사람들의 두려움을 모두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의뢰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 봅시다.
한 걸음 더: 오늘부터 실천하기
이 이야기에서 배운 교훈을 삶에 적용하려면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합니다. 아래는 몇 가지 실천 방법입니다:
1. 격려 노트 만들기: 일주일 동안 매일 한 사람에게 요나단처럼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세요. 문자, 메일, 대화 무엇이든 좋아요.
2. 질투 점검하기: SNS나 주변 사람의 성공을 보며 불편한 마음이 들 때, 사울을 떠올리며 그 마음을 기도로 바꿔보세요.
3. 용기 내기: 십사람들처럼 두려움에 머물지 말고, 작은 진실을 말하는 연습을 해보세요. 예를 들어, 친구에게 솔직한 조언을 전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작은 실천들이 쌓이면, 우리의 삶은 점점 더 의로운 길로 향할 거예요.
여전히 세밀하게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
삼상 23:15-29 / 더온누리교회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을 배반하여 사울에게 넘길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윗은 십 광야의 수풀(호레스_지명)로 숨었다. 이 때 요나단이 도망자 생활 중에 있는 다윗을 찾아가 위로한다. 한편 다윗이 숨어 있던 십 광야의 몇몇 사람들은 다윗의 위치를 자세하게 사울에게 밀고한다. 그리고 다윗은 붙잡히기 일보 직전까지 간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군대를 블레셋의 침공 소식 때문에 돌리게 하셔서 다윗을 보호하신다.
다윗은 여전히 사울에게 쫓기고 있다. 사울은 많은 군사를 동원해 매일 같이 샅샅이 수색했다. 하지만 다윗을 찾을 수 없었다. 왜 일까? 다윗의 능력이 출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심하게 도우셨기 때문이다. 본문도 여전히 세밀하게 도우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볼 수 있다.
1. 요나단의 위로와 순응(16-18절)
십 광야 호레스(수풀)에 숨어 있던 다윗을 요나단이 찾아간다.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해준 그일라 주민의 배신으로 급하게 도망쳐서 겨우 십 광야 호레스에 숨어들기까지 지친 도망자 생활을 위로해 주기 위해서 이다.
*고난의 고난이 이어져도 이처럼 믿음 안에서 성령께서 주시는 듯한 진실한 위로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더구나 요나단의 아버지 사울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기름부어 세운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를 죽여 자기 가문의 왕위를 유지하려고 했지만, 요나단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을 인정하고 그 아래에서 섬기겠다고 다짐까지 한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묻고 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알게 된 하나님의 뜻에 나의 뜻을 쳐서 복종하는 것이다. 사울은 이것을 하지 않으려 했고, 요나단은 기꺼이 받아들이려 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광야 학교와 같은 고난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지체들이 생각난다. 힘들고 지쳐 있을 그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 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보여야 할 모습이다. 판단과 비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주며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요나단이 다윗을 찾아 만나는 것을 사울의 정보망에 걸려드는 날에 감수해야 할 위험을 안고 만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요나단은 다윗을 만나러 십 광야 호레스까지 내려 온 것이다.
*다윗이 직면하고 있는 배신의 상처와 책임져야 할 무리들에 대한 부담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기에 격려 해 주고 싶었을 것이다. 다윗에게 가장 큰 격려는 광야까지 찾아와 준 것 만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우리 공동체가 이런 인격적인 관계가 일어나면 좋겠다. 조건적인 관계보다 그저 하나님의 가족이기에 기꺼이 격려와 위로의 행동을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나님께서는 요나단을 통해 지친 다윗의 마음을 격려하여 주심으로 도우신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위로자로 살아가기를 다짐해 본다.
2. 계속되는 사람들의 배신(19-23절)
십 수풀 호레스의 몇몇 사람들이 자청하여 사울에게 다윗의 위치를 보고한다. 이로 인해 다윗은 큰 위기에 직면한다. 짐작해 보건대 사울이 다윗을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놉 땅의 아히멜렉을 비롯한 85명의 제사장들과 그 가족들을 학살한 사건이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삽시간에 퍼진 이 소식에 이스라엘 안에는 사울의 통치에 어느 누구도 바른 말로 직언하는 이들이 사라졌을 것이다. 사울의 정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몇몇 십 광야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 자청한 일이었다.
사울은 몇 번이고 다윗을 놓쳤기 때문에 더욱 신중한 태도로 이들의 보고를 받는다. 그들에게 가식적인 하나님의 축복을 빌어 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 위선적인 지도자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다.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라면 이렇게 폭력적 이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칼 끝을 다윗이나 백성들에게 겨누면 안 된다. 그렇게 하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축복하는 꼴이라니….
* 정적에 무자비한 사울의 모습을 보면서 지도자들의 이런 무자비한 모습이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을 깨닫는다. 0.01% 차이로 지도자가 되어 권력의 전부를 갖고 전횡하는 모습이 사울의 모습과 다를 바 무엇일까….
*권력은 그것을 소유한 사람을 타락시킨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그것을 사용하고 싶고 그 다음에는 그것을 남용하고 싶은 유혹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디오게네스), 만일 그 사람의 인성을 시험해 보고 싶다면 그에게 권력을 줘보라(아브라함 링컨)….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것은 권력이 아니라 섬김임을 잊지 말아야지…
*지금 사울에게 비판과 견제가 없다. 그의 권력은 백성에게 무자비하고 블레셋(외부 대적)에게는 소심하다. 블레셋에게 약탈 당하는 그일라 주민들에게는 무관심 했지만, 다윗이 그일라에 있다는 밀고에 주저함 없이 군대를 일으켰다… 이런 지도자라니…
*이런 지도자의 통치 아래 정의과 공의가 상실된 백성들이 나타나는 것은 지극히 예상되는 것 아닐까?….
3.어떤 사람… 셀라하마느곳(도피의 바위 or 분리의 바위_24-29절)
사울은 이번 출정에 매우 신중하고 치밀하게 접근했다. 마치 토끼몰이를 하듯 다윗을 궁지에 몰아 넣고 빠져 나갈 여지를 남겨 두지 않은 채 압박하여 밀고 올라가는 형세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다윗을 돕는 “어떤 사람”이 사울의 출정을 알려 준다(25절). 다윗은 매번 사울보다 한 발 먼저 움직였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사울의 ‘유다 사람 몇 천명 중에 숨어 있을 지라도 기어코 찾아 내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면 결코 다윗이 숨을 곳이 없을 듯 한데, 이런 사울의 말과 행적을 고스란히 다윗에게 전해주는 무명의 “어떤 사람”이 있었다(25절). 십 광야의 몇몇 사람처럼 사울에게 밀고하며 다윗을 배신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다윗에게 사울의 행로를 은밀하게 알려 주는 “어떤 사람”도 있었다.
*다윗의 기름부음을 알고 있고, 그가 왕이 될 것을 의심하지 않는 어떤 사람일 것이다. 사울의 통치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아닌 것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위기에 처한 그일라 백성을 구한 다윗에게 협력하는 어떤 사람일 것이다. 이름이 드러나지 않지만,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따라 살아가는 무명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윗의 든든한 협력자들이 되었다.
*무명으로라도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살아내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위로와 격려일 것이다. 다윗에게 요나단과 함께 “어떤 사람”은 도망자의 생활 가운데 마음에 위로를 얻고 다시 의지를 다지게 하는 이들이었다. 이 땅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느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처럼 서 있다면… 세상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에는 다윗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진퇴양난이다. 사울의 치밀한 전개 작전으로 마온 황무지의 어느 절벽과 비슷한 바위 위로 몰려 버렸다… 절체절명의 순간이 왔다. 사울은 어느 바위 위로 다윗의 무리를 몰아 넣고 완벽하게 붙잡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그런데 갑자기 블레셋 사람들이 땅을 침노하였다는 급한 전령이 온다. 아무리 다윗을 잡기에 혈안에 되어 있는 사울이라도 이 소식을 무시할 수 없었다. 사울은 다윗을 뒤 쫓는 것을 멈추고 급히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돌아갔다. 이때 사울이 이것이 너무 아쉬웠는지 그곳 이름을 특별하게 명명하였다.
“셀라하마느곳” ‘셀라(바위)’, ‘마할로케트(분배, 구분, 반열)’의 합성어이다. 직역하면 분리의 바위이지만, 번역본에 따라 ‘도피의 바위’로도 번역했다. 영어 번역은 ‘the Rock of Escape(esv)’ ‘탈출의 바위’로도 번역했다.
*사울이 명명한 이 지명은 그가 얼마나 다윗을 잡기 직전에서 놓친 것을 아쉬워 하는지를 분명하게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반대로 사울이 지은 이 지명은 다윗에게 분명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증거가 된다.
*가장 절망이 가까이 왔음을 직감하고 두 다리가 풀려가는 그 시점에 하나님께서 다시 힘을 불어 넣어 주시는 바위였다. 끝까지 소망을 붙잡고 있었다면 그것이 헛된 소망이 아니라 살아있는 소망이었음을 확인하고 감격스러워 했을 바위였다. 붙여진 지명으로 볼 때 사울의 군대가 양쪽에서 포위망을 좁혀 올라갈 때 피할 길이 한 군데 없었다면 절벽에 가까운 바위였을 텐데, 그곳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생명의 바위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극적인 개입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기막힌 역사가 펼쳐진 것이다. 사울의 입장에서는 다시 오지 못할 기회를 놓친 것이었고, 다윗에게는 “역시 의지하고 신뢰하는 하나님”의 놀라운신 생명의 역사였다.
*사울에게는 다윗의 도피를 끝장 낼 수 있는 곳 이었지만, 하나님의 개입이라고 인식조차 하지 못할 블레셋의 침공 소식에도 다윗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한 것이다. 영적인 눈이 가리워 지면 이렇게 분별력이 저하 된다.
나는?
-하나님께서는 요나단(16-18절), 어떤 사람(25절), 블레셋의 침공(27절)으로 다윗에게 위로와 격려, 정보와 살 길을 주셨다. 순간 순간 급변하는 순간마다 도우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인생이라는 광야의 길을 걸어가는 성도들에게 다윗에게 행하신 것처럼 인도와 보호를 주저하지 않으실 것이다.
-나에게도 요나단과 같은 동역자, 어떤 사람과 같은 도와주는 이들, 긴박한 순간 예상치 못할 놀라운 섭리로 도우시는 하나님의 개입과 역사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을 말씀을 통해 확신한다.
-나의 “셀라하마느곳”은 어디일까? 특정한 장소일까? 아니다. 말씀묵상이다. 말씀이다. 삶의 위기의 순간, 절벽에 선 것처럼 막다른 곳에 몰렸을 때 나를 이끌어 내어 주신 것은 “기록된 말씀”에서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도우심, 인도하심이다.
-말씀의 바위 위에서 세상을 향해 다시 굳은 믿음의 의지 돋우어서 용기있게 세상과 맞서리라… 세상을 품으리라…
*주님, 도피 생활이 여전히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배신합니다. 언제까지 해야 할까요? 그러나 그 길을 온전히 책임지시는 하나님이 보입니다. 나의 길도 고난과 역경이 있더라도 이렇게 인도해 주실 것을 신뢰합니다.
*나의 셀라하마느곳…. 그것은 말씀임을 고백합니다. 어떤 도전이 와도 말씀의 바위 위에 있을 때 제 영혼이 안전함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라
삼상 23:15~29 / 새로운우리교회
“유엔 지속가능발전 해법네트워크”가 발표한 “2022년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주관적 행복는 10점 만점에 5.95점으로 137개국 중 57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8개국 중 35위로 조사되었습니다. 물론 행복을 모두 점수로 평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힘겨운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습니까? 나는 행복하다고 말하실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겨 단 하루의 앞날조차 가늠할 수 없는 위험한 상황에서 아둘람에 있는 동굴로 숨어들어가게 됩니다(삼상22:1). 그런데 이곳으로 행복을 잃어버린 사람들 400여명이 찾아왔고(삼상22:2), 다윗은 이들과 함께 광야에서 살게 됩니다. 그런데 다윗은 아둘람에서 가까운 “그일라”가 블레셋의 약탈로 타작마당에 열심을 다해 쌓아둔 곡식을 모두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다윗은 안타까웠지만 그렇다고 블레셋과 싸워 빼앗긴 것을 찾아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다윗이 문제에 개입할 이유도, 책임을 질 일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블레셋과 싸워 빼앗긴 그일라의 가축과 곡식을 모두 찾게 됩니다. 그런데 그일라의 어떤 사람이 다윗이 그일라에 있다는 소식을 사울에게 알렸고, 사울은 군사를 이끌고 다윗을 죽이기 위해 그일라로 향하게 됩니다.
다윗은 배신의 아픔을 안고 다시금 광야로 도망을 치게 됩니다. 사울은 이런 다윗을 쫓습니다. 하지만 사울이 다윗을 매일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맙니다(삼상23:14). 그리고 바로 그때 요나단이 위험을 무릅쓰고 십 광야에 숨어 있던 다윗을 찾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삼상23:15)
요나단은 다윗에게 어떠한 상황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마지막 힘이 다하는 순간까지 하나님만을 힘 있게 의지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십 사람들이 사울에게 다윗이 숨어 있는 위치를 정확하게 알려주었고, 사울은 군대를 거느리고 십 광야로 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삼상23:19~23).
결국 다윗은 사울의 군대에 완전히 포위를 당하게 됩니다. 이제 더 이상 피할 곳도 없고, 숨을 곳도, 도망칠 곳도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시54:1~3). 만약 이런 다윗에게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라고 묻는다면 다윗은 뭐라 답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이렇게 그 어떤 희망도, 행복도 이야기 할 수 없는 인생의 끝자락에 이르렀던 그때 다윗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 내가 낙헌제로 주께 제사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주의 이름이 선하심이니이다”(시54:4, 6)
다윗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낙헌제”를 드렸습니다. 낙헌제(네다바, נְדָבָה)는 “하나님께 즐겁게 드리는 제사”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하는 마음을 담아 자발적인 헌신을 다짐하는 믿음으로 드리는 제사로, 양을 제물로 잡아 꼬리나 장, 신장, 간 주위의 모든 지방은 제단 위에 불태워야 했던 제사입니다.
다윗은 그냥 “하나님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헌신하겠습니다”라는 고백만으로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군대가 코앞에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제단을 만들고, 제물을 잡아 각을 뜨고, 태우기 위해 불을 피우는 수고를 하며 하나님께 낙헌제를 드렸던 것입니다.
다윗은 결코 한가하게 예배나 드릴 수 있었던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생의 마지막 순간이 될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위기였지만, 다윗은 요나단의 말대로 모든 힘을 다 끌어 모아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며 “하나님은 나를 돕는 분이십니다!”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한 전령이 사울에게 블레셋이 쳐들어 왔다는 소식을 전했고, 사울은 다윗 쫓기를 그치고 블레셋과의 전쟁을 위해 길을 떠나게 되면서, 다윗은 위기를 넘기게 되었던 것입니다(삼상 23:27~29).
다윗의 삶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이제 더 이상 출구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순간 다윗은 있는 힘을 다해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예배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하나님은 다윗의 예배를 기뻐 받으셨고, 다윗을 환난 가운데 건져주셨으며, 구원의 은혜를 다윗에게 베풀어 주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고, 기쁘고, 즐거운 삶을 살기 원합니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행복하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행복이 사라진 우리의 삶에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어려운 이 시대 가운데 어떻게 해야 진정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힘 있게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다는 믿음의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겠다는 결단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행복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십시오. 그럴 때 비로소 하나님은 나의 돕는 자가 되어 주셔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시고, 우리의 삶의 지경까지 넓혀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