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남매 동기 여행
지난 사월 하순 고향을 다녀왔다. 부모님과 조부모님 기제를 춘계 시제로 통합해 지낸 날이었다. 원근에 사는 형제 조카들이 손자를 대동 서른 명 넘은 대가족이 선대 조상을 기리려고 한 자리 모였다. 고향을 지키고 계시는 큰형님의 건강이 염려되는 얘기를 듣고 와 마음이 무겁다. 큰형님은 십여 년 전 득병으로 그간 주기적으로 서울을 오르내리며 현대 의술의 혜택을 받아왔다.
그새 큰조카는 아버지의 병세가 더 기울기 전 삼촌과 고모들로 짧지만 가족 여행을 기획해 기특했다. 어쩌면 우리 7남매가 큰형님 생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동기간 여행이었다. 코로나가 오기 직전, 그때는 내가 현직이었는데 손 위로 형님 세 분이 형수님과 같이 중국 여행을 다녀옴이 가장 최근이다. 나는 연전 남자 형제 마지막으로 생업에서 은퇴했고 아래로 두 여동생이 있다.
오월 넷째 수요일이다. 계묘년 가정의 달이 가기 전 우리 형제자매는 1박 2일 국내 여행으로 거제로 향했다. 진주 근교에 사는 매제가 렌트한 승합차를 몰아 고향의 큰형님 내외를 모시고 부산진해 신항으로 출발하고 나는 같은 생활권의 넷째 형님이 운전하는 차에 아내와 함께 그곳으로 향했다. 그 시각 울산의 둘째 형님과 부산의 막내 여동생이 경제자유구역청 앞으로 오고 있었다.
거가대교 요금소를 지난 휴게소에서 가덕도에 사는 셋째 형님까지 합류하니 7님매 가족 여행단은 완전체가 되었다. 부산에 사는 둘째 매제는 와병 중이라 여동생 혼자였고 나머지는 모두 부처 동반이니 13명이었다. 우리 형제들은 평생에 걸쳐 명절이나 기제사면 고향 큰형님 댁에서 뵈었던 형수와 시동생 사이고 올케와 시누이 관계였다. 조카들이 결혼할 때면 예식장에서도 만났다.
거가대교 전망대에서 준비해 간 다과로 출발을 즈음한 안부를 나누고 포트 존에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침매터널을 지나 연륙 구간에서 대통령 하계 별장인 저도를 통과 거제 장목 연안에 닿았다. 거가대교 진입로를 따라 옥포에 이르니 조선소 도크와 대형 크레인이 보여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메카를 실감했다. 장승포에서 북단 능포의 수변공원을 첫 기착지로 삼아 해변을 거닐었다.
능포에서 양지암 조각공원으로 올라 야외에 전시된 작품을 둘러보고 장미 꽃길을 걸으며 진해만 바깥 망망대해 대한해협을 굽어봤다. 이후 장승포 해안 산책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완상하다 전망대에 차를 세우고 장승포 바깥 지심도를 바라봤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대마도가 보였는데 옅은 해무가 끼어 희미했다. 장승포 시가지를 거쳐 옥림 옥화 식당으로 갔다.
지세포 포구와 저녁 숙소가 될 예전 대명 리조트를 소노호텔 개명한 숙소가 바라보였다. 점심 상차림은 쌈밥이었는데 가족들은 모처럼 바깥에서 남이 차려준 밥상을 받아 봤다. 형제 가운데 유일하게 두주불사인 내가 반주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으니 단연 화제에 올랐다. 나는 퇴직하고 10년은 거뜬히 술을 마셔볼 거라 작심했는데 최근 심경 변화가 와 그만 금주를 실천하고 있다.
점심 식후 옥화 연안을 돌아가는 해변 산책 데크를 따라 걸으니 내륙의 뭍과는 사뭇 다른 풍광에 매료되었다. 해안에 산책 보도교는 무지개 바다 윗길이라 명명해 놓았더랬다. 지세포 연안을 산책하다가 차량으로 구조라로 옮겨가 샛바람소리길을 걸어 구조라 석성을 둘러보고 수정봉 전망대에서 내도 외도와 해금강 일대를 바라봤다. 언덕을 내려와 와현 모래 숲 해변도 거닐었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도록 동남동녀 삼천 명을 배에 태워 동쪽으로 보낸 서불이 풍랑을 만나 잠시 잠qhd가 와현이다. 서불 약수터에서 샘물을 받아 마시고 숲길을 따라 서이말등대로 나가 대한해협을 바라보고 지세포로 돌아와 횟집으로 들어 풍성하게 차려진 해물 저녁상을 받았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1층 라운지에서 커피를 들며 얘기꽃을 피우다 객실로 올라와 잠에 들었다. 23.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