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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질문 테오도시우스황제에 대한 평가
angelmai 추천 0 조회 1,002 06.07.02 00:02 댓글 1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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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6.07.02 00:34

    첫댓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긴느 앞으로 처절하게 그리스도를 씹을겁니다. 저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대체 칭호를 받을 자격은.. 글쎄요? 국방에대해서는 그의 공적을 인정하지만, 종교가 아닌 후계자 선정에 대해서는 아니다라고 봅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06.07.02 03:01

    유스타니아누스도 벌인일은 많은데 주섬주섬 흘리고 다니며 뒷처리가 깔끔치 못한 경우입니다; 이양반이 벌여놓은 사업 뒷돈 대느라 유스타니아누스 대재가 죽을당시 동로마의 재정은 즉위 당시보다 더 쪼그라 들었습니다; 이 양반 보다는 차다리 수많은 원정을 벌여 불가리아 투르크인들을 실속있게 방법하고 신민들의 세금을 면제해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망당시 국고를 수만 노미스마나 뿔린 바질2세가 훨씬더 '대제'의 칭호에 적합하죠;;(물론 당시 동로마인에게는 인기는 그닥 없었고 후계자에 무관심했던게 흠이지만)

  • 06.07.02 06:09

    종종 바실리우스2세와 비교되곤 하죠...

  • 06.07.02 12:02

    저도 무장공비님의 의견에 동감해요!

  • 06.07.02 05:56

    시오노씨는 말기로마에 대한 강렬한 실망감과 더불어 기독교에 대한 상당한 증오심을 품고있는듯하니 좀 깍아들어야 할 부분이 있겠지만, 테오도시우스도 오라지게 좋은 황제는 아니었죠.

  • 06.07.02 05:57

    아 그리고 기독교하니 생각나는게 있는데... 요하네스 크리소토모스가 그당시 (5세기초) 의 안티오크에 기독교인이 고작해야 10만명밖에 없었다는 글을 남긴게 사실입니까? 만일 사실이라면 상당히 충격적인 정보라고 보는데..

  • 06.07.02 12:27

    어헉;; 초기 기독교회의 5대 중심지중 하나였던 안디옥에 말입니까?

  • 06.07.02 16:57

    유스티니아누스는 있는돈 거덜내고 가뜩이나 옆에 사산조 페르시아라는 강국이 있는데도 넓은 국경선 만들다 보니 나중에 비잔틴이 사산조에게 메소포타미아 지방과 이집트 지방 털리고 곧 이슬람군대에게 완전히 이지방을 넘겨주는데 한몫을 했죠 반면에 바실리우스2세는 주변에 강력한 불가리아제국이 버티고 있음에도 이들을 싹쓸어버리고 일시적으로 시리아 지방을 회복하고도 1440만 노마라는 엄청난 국고를 후손들에게 물려줬죠... 하지만 후계자 문제면에서는 바실리우스2세도 만만치 않습니다. 멍청한 조카가 황제위에 오르는 바람에 제국 거덜났죠. 똑똑하고 잘난핏줄 못남긴 탓에 (평생 총각으로 늙었죠)덕분에 멍청한 핏줄이 몇대

  • 06.07.02 17:20

    총각(..)은 아니죠 젊어서는 바람이나 피는 게으른 군주였으니까요(낄낄낄)

  • 06.07.02 17:21

    그럼 무정자증이었나요? -_-;; 예나 지금이나 무정자증이 문제이군요.

  • 06.07.02 21:21

    바실은 섭정에게서 권력을 되찾기 전까지는 플레이 보이로 이름을 날렸 다지요...

  • 06.07.02 16:59

    비잔틴을 다스리고 나니 돈도 없고 테마제도 망가지고 하니 결국 소아시아 지방 털리고 강력한 황권 구축이 안되 일개 장군때문에 제국이 황혼기로 들어서게 되어버리죠. 개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건 후계자 문제입니다. 가까운 예로 중국의예가 있지요. 후계자문제로 숱하게 망한나라들 많지요.

  • 06.07.02 17:40

    어메 무정자증!!!! (난 아니오!)

  • 06.07.03 11:24

    5세기초에는 아직 완전한 기독교화가 이루어지지 못하였습니다. 성 어거스틴이 신국론을 저술한 이유 중 한가지가 알라릭 침공 이후, 기독교를 비판하던 로마전통종교인들에 대해 반박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알렉산드리아에서 일어난 여철학자(이름은 잘 모르겠습니다) 살해사건 등에서도 잘 나타나죠(배영수편, <서양사강의> 한울아케데미, 2002). 완전한 기독교화가 이루어진 것은 동로마는 6세기 서로마는 7~8세기에 이루어 집니다.

  • 06.07.03 18:51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그리스도 교에 대한 공헌 덕분에 대제 칭호를 받은 것은 맞습니다.로마를 분할한 것도 그가 한 일이 틀림없고..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에도 나오는 말이니..다만 로마 분할은 그의 실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로마라는 가라앉는 배에서 동로마 지역을 구해낸 그의 업적으로 봐야하지 않을까..합니다만..

  • 06.07.04 11:37

    바실레이오스가 결혼을 하지 않은것은 국내문제가 복잡해지는것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젊어서 그렇게 귀족가문에게 시달렸는데 아내를 맞이한다는건 외척세력을 키워주는꼴이거든요. 특히 옆나라 조지기로 인생을 보냈던 바실레이오스는,자신이 자주 수도에 떠나있다는것도 고려해야 했어요. 수도에서 외박 자주 다니던 바로 전 황제 둘ㅡ한명은 정변으로, 한명은 독살설이 나돌았죠ㅡ을 봤던 황제는 마누라를 맞는다거나, 혹은 특정가문을 후계자로 지명해 황권을 위협할만한 세력으로 키우는게 싫었던거죠.

  • 06.07.15 15:33

    제 생각으론 바실리우스2세가 결혼을해서 자신의 후손을 남겼으면 동로마제국으로선 좋았을꺼라고 봅니다. 바실리우스가죽을당시 바실리우스의 동생인 콘스탄티누스는 국정운영과 전쟁경험은 별로없고 그저 뛰어난형밑에서 놀고먹고만하던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바실리우스가 싫더라도 결혼을해서 자신의 후계자를 키웠다면 동로마의 멸망의 원인이된 로마누스황제의 만지케르트전투는 없었을꺼라고 생각합니다.

  • 06.07.16 08:28

    아마 그 인간 성품으로 보아 결혼 해서 자식 제대로 키웠을 것 같지도 않고...-_-;; 그냥 일찌감치 콘스탄티누스 딸내미랑 잘나가는 장군(게오르기오스 마니아케스라거나...)한 명 찍어서 결혼시켜서 그 장군에게 제위 계승시키는게 나았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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