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확 깬다, 확 깨고 싶다” 국민들의 불신이 하늘을 찌르는 국민연금의 ‘사기극’ 논쟁 |
연금제도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폰지’ 이야기다. 1920년대 미국 보스턴의 유명한 사기꾼 ‘찰스 폰지’는 “돈을 맡기면 개발사업에 투자해 90일 안에 2배로 돌려주겠다”며 투자자들을 끌어들였다. 그에게 돈을 맡긴 투자자들은 처음에는 큰돈을 벌었다. 투자자들은 폰지에게 더욱 몰려들었다. 8개월 만에 그에게는 250만달러가 모였다. 그러나 폰지는 수익사업을 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뒤에 투자한 사람들에게 돈을 받아 앞서 투자한 사람들에게 수익금을 주고, 나머지는 자신이 챙겼다. 그런 사기극은 오래갈 수 없었다. 사기극이 유지되려면 투자자가 계속 빠른 속도로 늘어야 했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 국민연금 반대운동이 불붙고 있다. 지난 5월29일 서울 광화문에서 국민연금 반대 촛불시위를 하는 네티즌들
▷ 오늘날 ‘폰지게임’이란 용어는 폰지가 했던 것처럼 빚을 갚기 위해 또 다른 빚을 내는 금융거래를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인 경제상황에서 폰지게임은 지속되지 못한다. 그런데 폰지게임이 성립할 수 있는 극히 이례적인 경우가 있다. 바로 ‘연금’이다. 후세대의 돈을 앞선 세대에게 미리 지급하고, 후세대의 것은 그 후세대가 지급하도록 하는 것이 연금제도다. 연금제도는 매우 엄밀한 조건 아래서 지속 가능한 폰지게임이다. 연금 가입자들이 완전한 정보와 합리성을 갖추고, 연금운용자인 정부를 신뢰하고, 연금 가입 인구의 증가율이 이자율과 같거나 그보다 높은 경우이다. 이런 조건을 갖추지 못할 때 연금제도는 ‘사기극’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 “아이구 머리야!” 지난 5월28일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 주재로 국민연금기금 운용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 1988년 도입된 한국의 국민연금제도는 어떤가? 지금 보면 대부분의 가입자들이 연금제도를 불신하고 있다. 지난 5월18일부터 인터넷 사이트 네이트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국민연금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이 91%에 이르렀다. 야후 사이트에서는 ‘국민연금 납부거부 운동에 찬성한다’는 대답이 88%나 됐다.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지난해 8월 문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인 <손에 잡히는 경제>가 리서치 전문회사인 엠브레인과 함께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85%가 “국민연금을 해지하고 싶다”고 대답한 바 있다. 젊을수록, 사무·전문직일수록 불신의 정도는 심했다
▲ 지난해 12월 열린 한국납세자연맹의 국민연금 불복운동 세미나. 국민연금은 오래전부터 불신의 대상이 돼왔다
▷ 최근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쟁은 지난 5월5일 네이버의 토론장에 ‘mariavet2000’이란 아이디의 네티즌이 ‘국민연금의 비밀’(이하 비밀)이란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논쟁은 인터넷에서 신문으로 옮겨지더니 급기야 방송국들이 토론회를 열어 중계하기까지 할 정도로 확산됐다. 결과는 보건복지부의 항복이었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관리공단은 5월27일 ‘최근 국민연금 논란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란 자료를 통해, “제도 보완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비밀’이란 자료에 담긴 불만사항이 “대부분은 제도의 성격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일부 제도 개선이 필요한 사항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상황이 끝난 것은 아니다.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오히려 더욱 뿌리가 깊어졌기 때문이다.
[출처 : http://h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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