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내리는 판단은 결코 온전한 것이 못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아람 왕 벤하닷이 북이스라엘 침공과 사마리아 포위에 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아합 왕 시대에 북이스라엘은 아람과 세차례의 큰 전쟁을 치렀는데, 본장에는 그 가운데 두 차례의 전쟁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은 그중 아람의 제1차 북이스라엘 침공 당시의 사마리아 포위와 관련한 기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1절을 보면 아람 왕 벤하닷이 매우 큰 규모의 군대를 이끌고 와서 사마리아를 포위 공격하였음을 볼수 있습니다. "아람 왕 벤하닷이 그 군대를 다 모으니 왕 삼십이인이 저와 함께 있고 또 말고 병거들이 있더라 이에 올라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치며."
여러분, 벤하닷이 거느리고 온 왕이 무려 삼십이인이라니 실로 엄청난 숫자가 아닙니까? 이 삼십이인의 왕들이 모두 각자의 군대를 이끌고 출정하였다면 실로 벤하닷이 이끈 군대의 규모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컸을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삼십이인의 왕들은 작은 소왕국의 왕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일반적인 한 국가의 왕으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왕으로 불렸던 것으로 볼때, 그들은 분명 국가적 체제를 갖추었을 것이고 일정한 규모의 군사력도 갖추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연합군인 아람 군대의 규모는 상당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러므로 아합 왕은 아람 왕 벤하닷의 항복 요구 앞에서 감히 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최대한 비굴한 자세로 벤하닷과의 화친을 꾀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싸워 보기도 전에 벤하닷은 승리자가 되었고 아합은 패배자가 된 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아합이 눈에 보이는 것만을 근러고 하여 판단을 내린 결과였습니다. 여러분, 세상의 모든 일에는 변수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전쟁이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특히 현대와 같이 가공할 만한 첨단 무기가 없었던 고대 전쟁에서는 전술이라든가 군사들의 정신력 등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즉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요인이 더 중요하였던 것입니다. 더욱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이었습니다. 따라서 비록 북이스라엘이 타락하기는 하였지만,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만 있다면 승리는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아합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을 함으로써 걷잡을 수 없는 공포감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벤하닷의 위협에 굴복하여 굴욕적인 자세를 취하여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볼 때, 아합의 판단은 완전히 그릇된 것이었고 부끄럽기 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본문은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것만을 근거고 내리는 판단이 결코 온전치 못함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우리가 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우리가 가진 또 하나의 눈, 즉 믿음의 눈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같은 믿음의 눈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세우게 하며 육안으로만 보는 것보다, 더욱 온전한 모습으로 우리가 처한 상황과 문제, 우리가 당면한 모든 것에 대처할 수 있게 해줍니다. 예컨대 여호수아와 갈렙을 생각해 보십시오. 온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그들 눈에 보이는 아낙 자손으로 인해 이미 자신들은 끝장이라고 말할 때, 그들 둘만은 하나님을 바라 보는 믿음의 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거대한 아낙 자손을 대하여 그들은 우리 밥이라’ (민 14:9) 고 호언장담하고 이후에는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이끌어 약속을 믿는 자만이 차지할 수 있는 가나안 정착을 가능케 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아합이 범했던 실수, 곧 눈에 보이는 것만을 근거로 판단함으로 싸워보지도 않고 자기를 벤하닷 앞에 굴종시키는 수치스런 장면을 목도하였습니다. 또 한편 믿음의 눈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문제를 감다함으로 승리의 길을 걸었던 여호수아와 갈렙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현실에 당면한 상황과 문제를 대하며 취하는 자세는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아합이 취하는 것 중에 어느 편이 더 가깝습니까? 어느 편을 취하고 어떤 자세로 상황을 판단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수치와 부끄러움의 길을 갈 수도 있고, 온전한 영광의 길을 걸어갈 수도 있습니다. 바라기는 여러분 모두가 믿음의 눈으로 온전한 판단을 내리며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승리와 영광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