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순이를 아십니까
박운현
옛날에는 남녀의 역할분담이 따로 있었다.
의당 남자들은 밭에 나가 농사일을 하고 여자들은 집안에서 밥을 짓거나 빨래를 하며, 아기를 키우고 길쌈을 한다. 하지만 현대화의 물결에 따라 요즘은 남녀의 역할이 무색해졌다. 여자들이 직장에 나가 일을 하고, 남자가 집안에서 밥이며, 빨래를 하는 일이 예삿일처럼 되었다.
우리 집에도 예외가 아니다. 아내가 안팎으로 많은 일을 하고 있다. 밥이며 빨래를 하고 자그마한 텃밭도 가꾸고 시장도 본다. 바깥일이랄 것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무슨 일이든 보면 그냥 있지 않고 적극 나서며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이 먼저 알아서 처리하는 성격이다.
매일하는 밥이며, 빨래를 하기 싫다고 해서 하지 않아도 되는가, 일상생활에서 여러 가지 일어나는 일들을 그냥 내버려 두어서 되는가, 이런 일들을 하지 않고서는 아니 되리라. 우리 집은 탱자나무 울타리로 된 텃밭이 있다.
텃밭에 잡초며 울타리가지는 자주 제거한다. 봄이 지나 여름이 오면 생장속도가 빨라 자주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밭에 풀이 묵어나고 울타리의 나뭇가지가 도로 쪽으로 쭉쭉 뻗어 나와 통행에 지장을 주게 된다.
특히나, 장마철에는 자고나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 수시로 나가서 제거한다. 전지작업은 큰 가위로 손잡이를 양손으로 눌러 자르는 방식이다. 나뭇가지를 가위 칼날 안으로 밀어넣어 양손을 힘껏 눌러 자르는 것이다. 나뭇가지를 자르다보면 손에 물집이 생기고 팔이 아프고 고통스럽다. 그러면 여지없이 온몸에 피로감이 엄습한다.
여름철, 거의 매주 꼴로 하는 이 작업은 피할 길이 없다. 자라는 나뭇가지를 그냥두면 통행에 지장을 주는 애물단지가 된다. 이런 전지작업은 아내가 주로 담당한다. 왜냐고요? 나는 그렇게 자주하지 말고 어느 정도 자라면 하자는데 비해 아내는 조금만 자라도 잘라내야 식성이 풀리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매사의 일을 그때그때 두고서는 그냥 못 보는 적극적으로 일하는 아내의 성격이니.
또 밭에 풀을 뽑을라치면 온몸이 뒤틀리는 듯 앉아서 오리걸음으로 움직이는 체벌 받는 그런 고통스럽고 힘든 작업이다. 풀을 손으로 잡아서 뽑아내면 금세 며칠이 지나지 않아 또다시 자란다. 씨를 뿌리지도, 심지도 않았는데 언제 어디서 그렇게 뿌리를 내리고 잘 자라는지 신기하기도 하다. 누가 일부러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요즘은 그래서 풀을 제거하는 제초제가 등장하여 제거하기도 한다. 약을 뿌려서 고사시키는 방법이다. 이런 약제를 뿌려서 풀을 없애면 손쉬운 일이긴 하다.
하지만 이런 제초제는 자칫 잘못 사용하다간 큰 변을 당하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약물을 뿌리다 잘못으로 손이나 피부에 묻을라치면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기도 한다. 그러니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이 이만저만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제초제를 사용하는 농부나 조경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특별한 주의를 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런 고농도의 위험 약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괜히 약을 뿌리다가 안전사고라도 나게 되면 풀을 뽑는 수고는 그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풀은 제초제 약을 사용하지 않고 일일이 손으로 뽑는 수작업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손으로 뽑는 수고야 말로 말도 못할 만큼 힘들고 고통스럽긴 하지만, 안전 면에서는 더 이상 그만이니까 도리없이 하게 된다. 위험성이 전혀 없으니 말이다. 엊그제 아내가 병원에 입원했다.
3여 년 전에도 이와 같은 병으로 입원한 적이 있는데 또다시 입원을 한 것이다. 병명은 섬유근종이다. 이 병은 대개 마른체형의 사람들이 잘 걸리는 것이라 한다. 마른 체형의 사람들이 일을 많이 하게 되면 근육질과 골격에 마찰이 생겨서 발생한다고. 뚱뚱한 사람들은 살이 많아서 완충작용을 하여 생겨나지 않는 것이라지만.
우리 아내는 마른 체형이다. 이렇게 살이 적어 이런 병이 발생한 것이리라. 살이 적은 아내는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일을 자제해야 하겠으나, 당장 코앞에 일거리가 닥치면 어쩔 수 없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해야 만이 식성이 풀리고 참살이를 영위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동물이며, 경제적동물이다. 그리하여 일터나 직장에 나가서 일을 한다.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아 일상생활을 꾸려나가고. 흔히들 ‘가사 일은 일도 아니라’지만 일치고는 만만치가 않다는 것을 나는 퇴직하고 나서 가로 늦게야 알았다.
일반적으로 직장의 일은 어느 한 분야 일을 맡아서 처리하면 되지만, 가사 일이란 밑도 끝도 없이 한 가지 일을 하고나면 또 다른 일이 생기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이다.
나는 아침식사를 끝내고 나면 집에서 하릴없이 소일을 하고 있다. 직장에서 정년으로 은퇴를 하고 난 처지이기 때문이다. 이젠 나이도 나이니만치 사회에서 별달리 일 할 게 없다.
늘상 하루일이래야 TV시청과 PC를 열어보는 정도다. 별 할 일없이 그냥 지내다보니 가끔은 세상살이에서 비껴난 듯 소외감이나 무료함을 느낀다. 그리하여 요사이는 이를 달래려 빨래며 집안청소를 아내와 같이 거들기도 한다. 그래도 아내가 주로 맡아하는 편이다.
빨래는 요즘은 거의가 세탁기로 하는 세태이지만 우리 집은 아직도 옛날 방식의 손빨래를 고수한다. 손빨래를 하는 이유는 세탁기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전부터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아내 말이 걸작이다. ‘에너지를 절약하고 운동도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속으로 곰곰이 생각해본다. 아내의 생각이 실은 전기요금을 아끼려고 하는 속셈인 것을. 진정으로 그런 마음이라는 것을 나는 알기에.
시장 보는 일도 그렇다. 지금은 차량으로 시장을 다녀오지만 그전에는 도보로 다니며 시장을 보아왔다. 가까운 곳에 마트가 있지만 5일장에서 주로 시장을 본다. 식재료 같은 것도 일일이 손으로 작업을 하여 식단을 마련한다. 껍질을 벗기고, 칼로, 썰고, 씻고, 양념을 하고 조리를 한다.
마트에서 판매하는 조리된 식품을 사지 않고 재래시장에 가서 식재료를 직접 구입하는 것이다. 마트에 파는 식품은 가격도 비쌀 뿐더러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손으로 일일이 내 손으로 만들어야만 안심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아내의 지론이다.
그러다보니 늘 아내의 손이 고울 리가 없다. 그렇기에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는 열정적으로 일하는 그런 태도가 가정을 꾸리는 원동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내의 이러한 자세야말로 집안일을 꾸려 나가는 버팀목이다. 그래도 힘든 일을 많이 하는 아내가 보기에 안쓰럽다. 이게 아내의 생활철학인 가보다. 태생적으로 일이 몸에 배어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런 사람으로.
이런 마인드의 결과가 지금 아내의 병이 발생한 원인인 것 같아 마음이 아리다. 늘상 일속에 묻혀 사는 아내가 이런 일로 병이 발생될 줄을 꿈에도 몰랐는데…·. 섬유근종이라는 아내의 병이 힘들게 일을 많이 한 결과로 나타난 후유증이라 생각하니 더욱 가슴이 아프다.
아내도 그 점을 헤아리고 이젠 힘든 작업은 가급적 자제하고 그만두었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다. 수술이 잘 끝나고 병이 완쾌되어 이전과 같은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집에 돌아오면, 보다 나은 일상생활을 영위할 것이리라. 아내의 빠른 회복을 위해 두 손 모아 마음속으로 쾌유를 빈다.
창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니 마당의 감나무 가지 위로 푸른 물결이 일렁인다. 푸른 하늘에는 빛나는 태양이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나를 보고 반긴다. 아마도 머지않아 아내가 무사히 치료를 끝내고 퇴원하려는가보다.
첫댓글 아내 분께서 너무 알뜰하셔서 일을 많이 하시는 모양입니다. 빨리 완쾌하시기를 빕니다.
저 경험상, 젊어서 노력을 많이 한 사람은 나이들수록 건강하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사모님은 노력을 많이 한 탓에 그 정도만 나쁜 것입니다^^
노력 안하고 편하기만 한데 스트레스 많이 받은 사람은 다 죽었지 않습니까? ㅎㅎㅎ^^
여자분들 몸 돌보지 않고 억순이 되었다가 늙어서 병 얻는 사람 많지요. 이제 옛날 같지 않으니 그 아끼는 습관 버리고 두분 알콩달콩 여행이나 다니면서 편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저의 글을 읽어주시고 좋은 꼬릿글을 달아주시니, 저는 더없이 행복합니다. 이 글은 쓴 지가 좀 되었고, 지금은 저의 처가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여 일상으로 돌아와 탈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글을 쓰시는 분들은 심성이 좋으셔서 모두가 복을 받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언젠가는 존안을 뵈올날이 있겠지요. 그날을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