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유명 인사와 역사적 사연을 모아놓은 이바구골목.
낙지전골을 안주 삼아 1차로 걸친 낮술이 얼큰하던 터에,
사진을 찍던 친구가 저 위에 올라가면 김민부 사진도 있다는 말을 핑계로
'기다리는마음'을 목청껏 뽑아재꼈다.>
지난 6월 21일, 한 고등학교 동기의 초대로 부산을 다녀왔다. 우리 문중 13. com에 올린 글을 이따금 고등학교 동기 카페에 옮기기도 하는데, 사업을 하는 그 친구는 글을 올릴 때마다 부산에 한번 내려오라고 댓글을 달곤 했었다. 초대는 고맙지만 명분이 약해 차일피일하던 차에, 대구에 사는 동기가 함께 한번 다녀오자고 부추기는 바람에 못 이기는 척 내려갔었다. 대구 친구와 함께 부산에 내려가 융숭한 대접을 받고 올라온 지 꼭 10년 만이었다. 대구 친구나 부산 친구나 관심 분야가 비슷하여 만나면 얘기 거리가 많다.
대구에서 친구와 합류하여 12시 8분 부산역에 도착하는 기차로 내려가 벌인 술판이, 6시 퇴근 후에 합석한 변호사 친구와 어울려 이 집 저 집 차수를 변경해가며 새벽 4시까지 이어졌다. 따로 연락이 없어도 부산에 갈 때마다 함께 만나는 친한 친구들이다. 늘 그러했듯이 술자리는 푸짐했고 대화는 다채로웠다. 오랜만에 밟아본 광안리해수욕장 모래사장의 감촉도 안온했다.
<해수욕장 개장 전이라 그런지 해변은 한적했다.
구두를 벗어 들고 한참 모래사장을 거닐었다.
내 상념은 광안대교를 넘어 저 멀리 태평양으로 이어졌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내 날들이여!>
만남의 하이라이트는 부산을 다녀온 뒤에 변호사 친구로부터 받은 한 통의 전화였다. 술판에 대한 유쾌한 뒷담화 끝에 그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성워이 니 우리 카페에 올린 경회루의 비극 기억하제?”
기억하다마다. 역시 작년 11월 우리 문중 13. com에 먼저 올린 뒤 고등학교 동기 카페로 옮긴 단종의 양위 비극이었다.
“거기 보마 단종 3년 캐놓고 괄호 안에 1454년이라꼬 써넣은 거 생각나나?”
“그래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와?”
“그거 너 어디서 참조했노?”
“인터넷 역사사전에 연도를 쳐 넣으면 왕조의 기년이 나오는 데가 있다. 거기 꺼 보고 썼는데 뭐 잘못됐나?”
“그래, 틀렸다. 단종 3년은 1454년이 아니고 1455년이다.”
그러면서 그 친구는 왕조의 기년제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내용이 우리 동기들에게도 유익한 참고가 될 성싶어 소개한다. 달이 바뀌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소개하는 이유는, 그 동안 읽어오고 있는
10여 권의 소설 재미에 푹 빠져서다.
<왼쪽부터 고등학교 평교사로 정년퇴임했다는, 졸업 후 처음 만난 동기,
나, 부산서 사업하는 친구, 대구 친구, 변호사 친구
3차가 끝나고 양 끝 친구가 먼저 귀가하기 직전에 기념으로 찍었다는 사진.
당연히 필름이 끊긴 내 기억에는 없다.>
1452년 음력 5월 14일, 부왕 문종이 재위 2년 3개월 만에 병사하면서 세자로 있던 단종이 보위에 올랐다. 이때 1452년은 문종의 치세로 쳐서 문종 2년으로 표기한다. 단종에게는 즉위년일 뿐 1453년을 단종 1년으로 기산한다. 이것이 왕조의 기년제로서 선왕에 대한 예우차원에서 그리 정한 것이다. 다만 조선조에는 다섯 차례의 예외적인 경우가 있었으니, 태조․수양‧중종‧인조‧순종 임금이다. 태조야 개국군주이니 당연히 1392년이 즉위년이요 원년이요 1년이고, 수양은 찬탈의 장본인으로서, 중종과 인조는 반란으로 추대된 임금으로서, 순종은 왜놈들이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앉힌 허수아비 군주로서 각각 즉위년을 원년 또는 1년으로 기산했다. 일부러 前朝를 무시한 기년 방식이었음은 불문가지다.
<정암 조광조의 후손으로 조지훈 시인과 가까운 친척인 부산 친구는
넉넉한 한학 지식에 입담도 좋아 잠시도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정이 많은 이 친구는 내처 곁에 붙어서서 뭔가를 소곤거렸지만,
불행히도 이미 정신줄을 놓은 내게는 그의 이야기가 단 한 마디도 기억에 없다.>
변호사 친구는 기년제를 설명하기 전에 ‘니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리겠지만…’ 운운하며 매우 조심스러워했다. ‘니 나하고 내외하나?’ 등 간곡한 종용 끝에야 그의 긴 설명이 이어졌다. 그는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입대하기 직전 내 단칸셋방에서 하룻밤 자고 간 적도 있고, 대법원 연구재판관으로 있을 때는 법원 내부 신문인 법창야화에 올릴 글을 내게 부탁한 적도 있었다. 울산지원장으로 재직할 때는 나를 초대하여 손수 지은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도우미 예산이 책정되어 있지만, 도우미를 두면 그 아주머니를 통한 각종 청탁 등 여러 가지 부작용 우려가 있어 관사에서 자취를 한 청렴한 법관이었다. 고등학교 동기 가운데는 경북대 의대 교수를 지낸 친구 다음으로 자주 만난 사이다.
통화를 하는 중에 그 친구가 조심스러워하는 까닭이 이심전심으로 이해가 되었다. 친구지간이라도 이런 조언을 하기는 쉽지 않다. 선의의 조언을 고깝게 듣는 친구도 종종 있지 않던가. 그래서 지난해 11월에 오류를 발견하고서도 뜸을 들이다가, 오랜만에 회포를 푼 뒤 용기를 내어 전화한 것이리라. 만사에 해박한 줄은 익히 알고 있었던 터, 가까운 사이라도 쉽게 여기지 않는 襟度 또한 배울 바다.
그 동안 역사 관련 글을 여러 번 쓰기는 했지만 여직 왕조의 기년제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역사 분야 이야기를 좋아하면서도 전문적인 식견을 갖추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30분 가까이 계속된 그 친구의 설명은 참으로 고마운 가르침이었다. 그런데 전화를 받고 인터넷 역사사전에 연도를 쳐봤더니, 어찌 된 셈인지 단종 3년은 1455년이라고 씌어 있었다. 처음에 내가 소홀하게 봤던 것인지 그새 사전 제작자가 고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여러 사람에게 정보를 알려주는 글을 쓰려면 매사에 더욱 신중해야겠다는 깨우침 또한 소중한 경험이다.
첫댓글 좋다.
새로운 글의 시작이네.
또 그 걸출한 글 솜씨 좀 보세.
고맙네.
나도 소설 세 권 다 읽었다.
1권을 읽다 초입에서 모른척 덮어두면서 부아가 쳐밀어
한밤중에 다시펴서 읽다보니
빨려들었고 미끼를 놓치지 않으려는 물고기처럼 쫄쫄 딸타 그만 끝나니 입맛이 개운해.
한 길 비슷한 크기의 사람들의 각 분야 능력이 다 다르고,
기중에 세계적이니. 그것도 베스트셀러니 어찌 아니 빠져들까!
중복을쳐다보며 읽을꺼리를 찾고있다네.
도서관에 책 두권 대여 받아 기고
다음주(7/26-29) 진주행 열차를 탄다네.
이내 신세가 보모보다보니 딸 방학에 따라 할망구도 방학이고, 덩다라 따리가민서 사는 감탱이신세라
3월에 이사 갔는데 이제사 딜다볼라꼬.
비실비실 술 한 잔 옳키 모하민서 여
행하려니 목적외 부수이 재미가 없을까봐 미리 겁낸다네.
필름이 끊어지도록 마시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던가?
~~~아!! 옛날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