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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게디 요새로 피신하는 다윗
삼상 23:24-29
24 그들이 일어나 사울보다 먼저 십으로 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광야 남쪽 마온 광야 아라바에 있더니
25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찾으러 온 것을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매 이에 다윗이 바위로 내려가 마온 황무지에 있더니 사울이 듣고 마온 황무지로 다윗을 따라가서는
26 사울이 산 이쪽으로 가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쪽으로 가며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급히 피하려 하였으니 이는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고 잡으려 함이었더라
27 전령이 사울에게 와서 이르되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들이 땅을 침노하나이다
28 이에 사울이 다윗 뒤쫓기를 그치고 돌아와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갔으므로 그 곳을 셀라하마느곳이라 칭하니라
29 다윗이 거기서 올라가서 엔게디 요새에 머무니라
삼상 23:24-29 / 이리하여 그들은 십 광야로 돌아갔으며 사울도 그들을 뒤쫓아 따라갔다. 이때에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마온 광야에 있었는데, 그곳은 유다 남쪽에 있는 외딴 계곡이어서 추격당하기에 아주 위태로운 지역이었다. 25) 사울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바싹 뒤쫓아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남쪽으로 더 내려가 마온 광야에 있는 바위틈에 숨었다. 그러나 사울은 거기까지 추격해 왔다. 26) 이제 사울과 다윗 사이에는 산이 하나 가로막혀 있을 따름이었다. 사울은 산의 이편 능선을 따라 추격하고, 다윗은 저편 능선을 따라 도주하였다. 다윗은 추격해 오는 사울과 그의 부하들로부터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사울의 군대를 당해 내지 못하여 거의 붙잡힌 것이나 다름없는 위기에 부딪혔다. 27) 바로 그 순간에 갑자기 전령 한사람이 나타나서 사울에게 급한 소식을 전하였다. `어서 돌아오셔서 우리를 구해 주십시오! 블레셋 족속이 쳐들어와서 모두 약탈해 가고 있습니다.' 28) 사울은 다윗을 추격하다 말고 돌아서서 블레셋 족속과 싸우러 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산의 이름을 셀라하마느곳이라고 지었는데, 이것은 `갈림 바위'라는 뜻이다. 29) 다윗은 거기서 올라가 엔게디 산성에 머물러 있었는데, 이곳은 사해 서안의 중앙에 있는 험악한 산지로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이었다.
다윗을 쫓는 사울 왕의 추격전은 마치 숨바꼭질과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위해 블레셋을 사용하사 사울의 추격을 멈추게 하시고 그를 보호하셨습니다.
숨바꼭질(24-26) 사울의 명을 받은 사람들이 다윗을 추격합니다. 다윗도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나선 것을 알고 급히 바위가 있는 마온 황무지로 피신합니다. 사울은 이 소식을 듣고 즉시 다윗을 따라 달려옵니다. 사울이 산 이쪽으로 가면 다윗은 산 저쪽으로 피신합니다. 마치 숨박꼭질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들은 서로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힘을 합쳐 블레셋과의 전쟁을 치루고 이스라엘의 안전을 지켜야 했습니다. 불필요한 소모전을 벌이고 있는 사울의 어리석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손길(27-29) 다윗의 도망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추격을 두려워하고 피신하고 있을 때 블레셋이 이스라엘 땅을 침노하였습니다. 전령이 급히 사울 왕에게 달려와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들이 땅을 침노했노라고 전쟁 소식을 전합니다. 사울이 비로소 다윗의 추격하던 걸음을 멈추고 전쟁터로 달려갑니다. 마땅히 그가 가야 할 곳은 이스라엘을 지키고 보호해야 할 블레셋과의 전쟁터였습니다. 다윗은 일시적으로 안전을 찾았고 거기서 엔게디 요새로 피신하여 머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블레셋을 움직이셔서 다윗을 보호하셨습니다.
적 용 :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도우시는 분이심을 확신하십니까?
제31회 인촌상 수상자 영광의 얼굴들 중 한 분이신 김형석 연세대 명예 교수님은 “중앙학교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 선생을 5,6년 동안 가까이 뵈면서 여러 가지를 배웠습니다. 그중 중요한 게 전체를 위해 자신보다 유능한 사람을 밀어주는 것과 편 가르기를 경계하는 것이었어요. 그게 아무나 잘 안되는데 왜 인촌 선생은 됐느냐, 애국심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도 그렇고요.”라고 회고하셨습니다. 본인 역시 연세대에서 보직을 맡아 달라는 총장의 요청에도 다른 교수를 추천하면서 자신은 사양하셨습니다. “조용히 나의 길 걸었을 뿐 별 다른 업적이 없는데 왜 나에게 상이 돌아왔는지.” 그의 겸손한 수상 소감입니다.
호크마 주석
=====23:24
일어나 - 특별한 일을 행하기에 앞서 그 일을 해하는 데에 대한 각오를 표현해 주는 단어이다. 광야 남편 마온 황무지 아라바 - 이것은 '광야 남편으로 아라바의 근처에 있는 마온 황무지'로 번역함이 좋다. 그런데 여기의 '광야 남편'은 19절에서 언급된 '광야 남편'과 동일하다. 그리고 '마온'(Maon)은 '거주', '거처'란 뜻으로서, 이곳은 오늘날의 '키르벧 마인'(Khirbet Main)과 동일 지역으로 추정되며(Keil, Smith, Fay), 헤브론 동남쪽 약 13km, 십 남쪽 약 7km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이곳은 산으로 둘러 싸여 있는 지형적 특성을 갖고 있다(Lange). 한편 '아라바'(Arabah)는 '황무지' 또는 '사막의 들'이란 뜻으로서, 갈릴리 호수로부터 사해에 이르기까지 요단 게곡을 따라 좌우로 펼쳐져 있는 저지(低地)의 광야 지대를 통칭하는 말이다(Smith). 그런데 보통 이 말은 넓게는 유다 광야 전체를, 좁게는 유다 광야 중 사해(死海) 인근의 지역 혹은 요단 계곡 중 사해와 가까운 곳 등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유다 광야 중 사해 인근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23:25
다윗이 바위로 내려 - 여기서 '바위'(* , 셀라)는 '마온'(Maon)을 둘러싸고 있는 '바위산' 또는 '절벽'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26절). 즉 다윗은 그 산에서 평지 곧 '마온 황무지'(wilderness of Maon)로 내려온 것이다. 다윗은 그때 산 바로 아래의 동굴 또는 수풀 등으로 피신하려고 했을 것이다.
====23:26
사울이 산 이편으로 가매 - 여기서 '산 이편'은 마온에 있는 거대한 바위 협곡의 한편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협곡은 매우 깊어서 먼 거리를 돌지 않고서는 반대편으로 갈 수 없다고 한다(Conder). 그러므로 사울은 그때 '산 이편'에서 '산 저편'으로 도망치고 있는 다윗의 일행을 빤히 바라다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다윗...산 저편으로...급히 피하려 하였으니 - 그때 다윗과 그의 일행은 급한 나머지 쉽사리 건널 수 없는 협곡을 애써 건너 도망치려 했던 것 같다. 두려워하여 급히(* , 네흐파즈) - 이 말은 '서두르다', '떨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하파즈'(* )의 수동형인데, 그 의미는 '겁에 질린 나머지 매우 서두르다'란 뜻이다. (시 48:5; 104:7).
=====23:27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이 땅을 침노하나이다 - 본절은 절대 절명의 위기 속에 갇힌 다윗이 하나님의 섭리로 극적인 보호를 받는 장면이다. 우리가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미처 예측하지 못하는 방법을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베푸신다(행 9:1-9) : 사실상 블레셋 군대가 침입한 것은 결코 다윗을 도와주고자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일어나는 시기와 장소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그 사건으로 하여금 거의 생포될 위기에 놓여 있었던 다윗을 구출케 하는 역할을 하게 했던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신뢰하는 자를 결코 버리시지 않는다(미 7:7, 8) : 다윗은 극한 상황에 처해서도 계속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를 신뢰함으로써 마침내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되었다(시 63편). 이것은 매사에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인정하는 신앙인의 승리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도 인간적인 잔꾀보다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는 참된 신앙이 요구되어진다(시 146:5; 마 24:13). 침노하나이다(* , 파솨트) - 원래 '벗기다', '강탈하다'란 의미로서, 약탈을 목적으로 한 침략 행위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31:8; 삿 9:33; 대상 14:13).
=====23:28
이에 사울이 다윗 쫓기를 그치고 - 당시 사울은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맺어져야 했을 합당한 관계는 무시했으나, 이방의 왕들처럼 왕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졌던 의무인 외적으로부터의 국가 방어에 관해서는 충실했다. 이같은 점에서 사울은 신정(神政) 왕국의 왕은 결코 아니었다. 다만 열방의 왕과 같은 세속적 군주일 뿐이었다(8:5, 20). 셀라하마느곳(* , Sela - Hammahlekoth) - 사울에게 쫓겨 더이상 피할 곳이 없었던 다윗은, 그 절대 위기의 순간에서 구원받은 그 장소를 기념하여 '셀라하마느곳'이라 명명했다. 어원상 그 이름의 뜻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즉 (1) '미끄러운 바위'를 가리킨다는 견해(Gesenius, De Wette, Keil), (2) '분리의 바위'를 가리킨다는 견해(Clericus, Smith, Fay)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셀라'(* )가 '바위', '절벽'등을 가리키는 확실한 단어인데 반해 '하마느곳' (* )의 기본형 '할라크'(* )는 (1) '미끄러움', '순탄함' (2) '분리', '구획'등 두가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6-28절의 문맥으로 미루어 볼 때, 이 말은 '분리의 바위'(The Rock of Division)란 뜻으로 봄이 타당할 것 같다. 즉 사울의 추격으로부터 분리시켜 다윗의 도피를 성공하게 해준 바위란 뜻이다(Koeheler, Baumgarten). 이런 의미에서 RSV, Living Bible 등의 영역본은 '도피의 바위'(the Rock of Escape)라고 번역했다.
=====23:29
본절은 엄밀히 말한다면 다음 장으로 분류됨이 타당할 것이다. 다윗이 거기서 올라가서 - 여기의 '거기서'는 다윗이 사울에 의해 쫓겨 도망간 최종 지점으로서 마온 황무지의 바위 산을 가리킬 것이다. 비록 사울의 추격은 중지됐지만, 다윗은 십 사람들이 자신을 계속 탐지하고 밀고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보다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났다. 즉 다윗과 그의 일행은 마온 협곡을 완전히 건너 올라갔던 것이다. 엔게디 요새에 거하니라 - '엔게디'(Engedi)는 '염소의 샘'이란 뜻인데, 이곳은 다윗이 앞서 은신해 있었던 '마온 황무지'의 동북방 약 17km정도 지점에 위치해 있다. 한편 '엔게디 요새'(the strongholds of Engedi)는 한 지점만이 아닌 약 20여km의 거리에 걸쳐 있는 산맥 전체를 가리킨다(Aharoni). 그리고 여기의 '요새' (* , 메차도트)가 복수라는 점에서 볼 때, 당시 다윗은 그 지역의 어느 한 곳에서만 머물지 않고 여기저기를 옮겨다니면서 은신했던 듯하다. 특히 이같은 요새 지대는 동쪽으로는 사해로 내려가는 석회석 협곡 및 벼랑과 연결된다. 그리고 이러한 협곡과 벼랑은, 흙은 석회질이지만 바위는 백악(白堊)의 암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많은 자연적인 굴들이 있어, 현재에도 도망자들의 도피처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Robinson). 또한 이 협곡의 벼랑으로 내려가다 보면 이 지역의 명칭을 낳게 한 수온 약 30도씨의 '샘'이 있다고 한다(Conder). 그리고 이 엔게디는 유다의 여러 지역 중 국방상 가장 취약한 곳이었기 때문에, 암몬.모압.에돔족들에 의하여 유다를 침범키 위한 통로로 이용되었었다(대하 20:1 이하). 한편 엔게디 요새지는 사해 수면에서 약 670m이며, 엔게디의 샘은 약 200m에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이 지명에서 암시되어 있듯이 지금도 들염소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Thompson).
< 설 교 >
셀라하마느곳
삼상 23:15-29
사울과 다윗의 연일 쫓고 쫓기는 긴박한 나날 속에 요나단은 다윗을 찾아가 “그로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다. 한편 십 주민들은 사울에게 찾아가 다윗이 있는 곳을 알려 주어 사울로 하여금 다윗이 있는 곳에 오게 하였다. 그러나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피하여 다니는 동안 블레셋이 침공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사울은 다윗 쫓기를 일단 접어두고 블레셋을 맞으러 가게 된다. 오늘의 성경 공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들려주실까?
1. 다윗이 사울의 자기 생명을 찾으려고 나온 것을 보았으므로 그가 십 황무지 수풀에 있었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어떻게 하였는가 (15-16/참조, 마 25:40)?
15 / 다윗이 사울의 자기 생명을 찾으려고 나온 것을 보았으므로 그가 십 황무지 수풀에 있었더니
While David was at Horesh in the Desert of Ziph, he learned that Saul had come out to take his life.
16 /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로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And Saul's son Jonathan went to David at Horesh and helped him find strength in God.
(답) “그로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해설) 이 당시에 다윗은 십 황무지 수풀에 있었다. 십 황무지는 헤브론 남동쪽에 위치한 고지대이다. 이 십 황무지의 일부분은 울창한 수풀이었는데 이 수풀을 히브리어 원어로는 “호레쉬”라고 하고, 그래서 영어 성경 NIV는 바로 Horesh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전에 사울은 다윗이 “문과 문빗장이 있는” 그일라 성에 들어갔다고 다윗을 잡은 것처럼 좋아했었지만, 이제는 다윗이 좀처럼 어느 성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으므로 그를 잡으러 수풀을 헤매고 다녀야 할 형편이 되었다. 그러나 지난주에 말하였듯이 항상 정보는 살아있어서 다윗과 요나단 사이에는 서로 연락이 되고 있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꿈에도 그리던 다윗을 만나러 십 황무지의 수풀로 찾아 온 것이다. 이때 요나단이 절대로 혼자 오지 않았을 것이고, 요나단이 혼자 있는 다윗을 만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요나단이 다윗을 만나는 과정에서도 몇 단계를 거쳐서 둘이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서로 소식을 전하는 자들을 보내고, 요나단을 다윗의 사람들이 확인하고 다윗과 요나단은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요나단이 다윗을 찾아온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요나단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때, 다윗은 너무나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다윗이 자기의 사람들 600여명과 함께 있었다고는 하지만, 성이나 마을이 아닌 산과 들과 숲에서 매일처럼 장소를 옮기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을 것이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이 도망자의 삶이라는 것이 다윗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래서 요나단은 다윗을 만나 자기의 심정을 전달하기를 원했다. 그냥 전령을 보내면 될 것이지, 왜 요나단이 직접 다윗을 만나야 하는가?
우리는 길에서 차들에 둘러싸여서 오도 가도 못할 때 이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는가? “그냥 집에 있지 왜 돌아다니나? 나는 너무나도 바쁘고, 할 일이 많다고 하지만, 저 사람들은 왜 그렇게 돌아다니나?” 더 심하게는 한국에서 비교적 처음에 아주머니들이 운전을 배우고 차를 몰게 되었을 때, 주로 택시 운전하시는 분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집에서 냄비나 닦고 있지 왜 할 일 없이 돌아다니나? 길만 막히게. 나는 돈 벌려고 운전하지만, 왜 운전도 잘 못하면서 차 끌고 나와서 길만 막히게 하나?” 그 때 한 아주머니가 방송에 나와서 이런 말하는 것을 들었다. “야, 나도 너 만큼 바쁘고, 우리 집에 와봐. 냄비고 솥이고 반짝반짝 닦아 놨어.”
전화로 하고, 이메일로 하고, 편지로 할 수도 있지만, 꼭 몸이 가서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사람을 직접 만나서 몸으로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특히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우리 주님은 감옥에 갇히고, 가난하고 굶주린 소자 하나에게 하는 것이 곧 주님께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우리 교회 같으면 성주 형제를 자주 찾아가는 것이 곧 주님을 찾아가는 것이다 (마 25:40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우리보다 형편이 더 힘든 지체들을 찾아가는 것이다. 지난주에 장례식의 입관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 열 시간 운전해서 네 시간 함께 하다가 다시 열 시간 운전해서 내려왔다. 목요일 오전 9시에 출발해서 집에 돌아오니 금요일 오전 5시였다.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바로 몸이 가야만 하는 것이다. 전화로 “내가 몸은 못가도 마음은 거기 있으니 간 것과 같아요.”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절대로 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요나단은 위험을 무릅쓰고 다윗을 직접 만나기를 원했던 것이다. 사울이 이 사실을 알면 요나단에게 얼마나 노발대발했을까? 다윗의 사람들이 요나단을 오해하고 다윗을 죽이거나 잡으러 온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요나단은 이러한 모든 오해나 위험을 무릅쓰고 다윗을 만나서 십 황무지 수풀로 찾아갔던 것이다. 아마도 최소한 그는 자기의 종자를 데리고 갔을 가능성이 크다.
2. 곧 요나단에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며 또 무엇이라고 하였는가(17)?
17 /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 부친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부친 사울도 안다 하니라
"Don't be afraid," he said. "My father Saul will not lay a hand on you. You will be king over Israel, and I will be second to you. Even my father Saul knows this."
(답) (1) “내 부친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2)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3) “내 부친 사울도 안다”
(해설) 요나단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이 다윗을 사울의 다음에 왕으로 세우실 것을 알았다. 그리고 다만 안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에 그대로 순종했다. 사울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다윗을 죽이려는 것에만 광분한 반면에 오히려 정작 왕의 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는 요나단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다. 이점이 요나단의 훌륭한 점이다. 요나단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기에 사울의 손이 절대로 다윗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요나단이 다윗을 죽이면 되지 않는가? 그렇지 않았다. 요나단은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요나단은 다윗이 왕이 되고, 자신은 그의 다음이 되고,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심지어 사울도 안다고 하였다. 그러면 사울의 인생은 무엇인가? 다윗이 왕이 될 것을 알면서도, 그가 다윗을 잡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의 평생을 다윗 잡기에 바친 사울의 일생은 어디서 보상을 받는다는 말인가?
예를 들어 도박에 빠져서 평생을 사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그들은 도박을 통해서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돈을 따도 결국은 그 돈을 가지고 다시 도박을 할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도박을 통해서는 인생을 성공할 수 없다. 그 사실을 그 누구보다 그들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도박을 끊을 수 없다. 너무나 어렵다. 왜 그런가? 도박이 너무나 좋기 때문이다. 돈을 따라가는 것이 너무나 흥분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몸에 돈을 따라가라는 욕심이 있고, 그 욕심을 채우는 것이 너무나 좋기 때문이다. 즉 다윗을 실제로 잡는 것보다, 다윗을 잡으러 다니는 것이 너무나 좋은 것이다. 다윗을 잡으러 다니는 순간은 그래도 마음이 나아지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불쌍한 삶을 사는 것인가? 잘못된 것에 인생을 바치는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다 그렇다.
3. 다윗은 수풀에 거하고 요나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두 사람이 무엇을 하였는가(18/참조, 삼상 20:16)?
18 / 두 사람이 여호와 앞에서 언약하고 다윗은 수풀에 거하고 요나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The two of them made a covenant before the LORD. Then Jonathan went home, but David remained at Horesh.
(답) “두 사람이 여호와 앞에서 언약하고”
(해설) 요나단과 다윗은 헤어지기 전에 다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맺었다. 하나님 앞에서 굳게 약속을 한 것이다. 아마 서로 해를 가지 않으며, 서로 위하여 생명으로 상대방을 살리며, 서로의 적이 곧 자신의 적이며, 둘 중의 하나가 죽으면 그 자녀들과 후손들을 책임질 약속을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다윗과 요나단은 헤어졌다. 다윗은 수풀에 거하고, 요나단은 자기 집 즉 기브아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것이 다윗과 요나단의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다윗은 요나단을 더 이상 만나지 못하였고, 요나단도 다윗을 더 이상 만나지 못하였다. 요나단은 이후에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대패하면서 아버지 사울 왕과 두 형제와 함께 장렬하게 전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마지막 기회이었던 것이다.
4. 때에 십 사람들이 기브아에 이르러 사울에게 나아와 가로되 “다윗이 우리와 함께 광야 남편 하길라 수풀 요새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하온즉 왕은 내려오시기를 원하시는 대로 내려오소서”라며 또 무엇이라고 하였는가 (19-20)?
19 / 때에 십 사람들이 기브아에 이르러 사울에게 나아와 가로되 다윗이 우리와 함께 광야 남편 하길라산 수풀 요새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The Ziphites went up to Saul at Gibeah and said, "Is not David hiding among us in the strongholds at Horesh, on the hill of Hakilah, south of Jeshimon?
20 / 그러하온즉 왕은 내려오시기를 원하시는 대로 내려오소서 그를 왕의 손에 붙일 것이 우리의 의무니이다
Now, O king, come down whenever it pleases you to do so, and we will be responsible for handing him over to the king."
(답) “그를 왕의 손에 붙일 것이 우리의 의무니이다”
(해설) 십 황무지에도 거주민들은 있었다. 그들은 분명히 다윗과 같은 유다지파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윗의 소재지를 사울에게 알리기 위하여 유다 남쪽에서 베냐민의 땅 기브아에까지 여행을 하여 사울을 만났다. 그들은 다윗의 위치를 정확하게 사울에게 고하였다. 다윗이 지금 십 광야의 남편에 있는 하길라산의 요새에 숨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광야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여시몬”인데 아마 고유 명사인 것 같다. 즉 “불모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헤브론 남동쪽의 황무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면서 사울 왕에게 내려와서 다윗을 잡으라고 하는 것이다. 다윗을 사울 왕의 손에 붙이는 것이 곧 그들의 임무라고 하였다. 사울은 현재 왕이고, 다윗은 그 왕에게 도망을 다니는 신세이므로 십 거민들의 입장에서는 비록 다윗이 그들과 같은 유다 지파에 속했다 하더라도 반정부 세력이므로 그들을 사울에게 밀고하여 잡히도록 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5. 사울이 가로되 “너희가 나를 긍휼히 여겼으니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혹이 내게 말하기를 ‘그가 심히 공교히 행동한다’ 하나니 너희는” 어떻게 하라고 하였는가 (21-22)?
21 / 사울이 가로되 너희가 나를 긍휼히 여겼으니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Saul replied, "The LORD bless you for your concern for me.
22 / 혹이 내게 말하기를 그가 심히 공교히 행동한다 하나니 너희는 가서 더 자세히 살펴서 그가 어디 은적하였으며 누가 거기서 그를 보았는지 알아보고
Go and make further preparation. Find out where David usually goes and who has seen him there. They tell me he is very crafty.
(답) “너희는 가서 더 자세히 살펴서 그가 어디 은적하였으며 누가 거기서 그를 보았는지 알아보고”
(해설) 사울은 십 황무지 사람들에게 계속적인 첩보를 부탁한다. 사울은 다윗이 신출귀몰 (神出鬼沒: 신같이 나타나서 귀같이 사라진다)하게 행동하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더 정확한 정보를 요구하는 것이다.
6. 사울은 계속해서 “그가 숨어 있는 모든 곳을 탐지하고 실상을 내게 회보하라”며 자기는 어떻게 하겠다고 하였는가 (23)?
23 / 그가 숨어 있는 모든 곳을 탐지하고 실상을 내게 회보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가리니 그가 이 땅에 있으면 유다 천천인 중에서 그를 찾아내리라
Find out about all the hiding places he usesand come back to me with definite information. Then I will go with you; if he is in the area, I will track him down among all the clans of Judah."
(답) “내가 너희와 함께 가리니 그가 이 땅에 있으면 유다 천천인 중에서 그를 찾아내리라”
(해설) 사울은 자기가 다윗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면 유다의 천천인 중에서라도 그를 잡겠다고 공언하였다. 베냐민 족속으로서 왕이 된 사울은 유다 지파의 다윗을 잡는데 어려움을 겪었겠지만, 그래도 십 광야 주민들의 도움으로 새로운 투지가 생겼을 것이다.
7. 십 사람들이 사울보다 먼저 십으로 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광야 남편 마온 황무지 아라바에 있더니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찾으러 온 것을 혹이 다윗에게 고하매 이에 다윗이 바위로 내려 마온 황무지에 있더니 사울이 듣고 어떻게 하였는가 (24-25)?
24 / 그들이 일어나 사울보다 먼저 십으로 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광야 남 편 마온 황무지 아라바에 있더니
So they set out and went to Ziph ahead of Saul. Now David and his men were in the Desert of Maon, in the Arabah south of Jeshimon.
25 /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찾으러 온 것을 혹이 다윗에게 고하매 이에 다윗이 바위로 내려 마온 황무지에 있더니 사울이 듣고 마온 황무지로 다윗을 따라가서는
Saul and his men began the search, and when David was told about it, he went down to the rock and stayed in the Desert of Maon. When Saul heard this, he went into the Desert of Maon in pursuit of David.
(답) “마온 황무지로 다윗을 따라가서는”
(해설) 다윗은 이제 광야 (Jeshimon) 남편에 있는 아라바의 마온 광야에 있었다. 마온 황무지는 십의 남동쪽 8km 지점에 있는 마온 성읍 근처의 황무지이다. 이 사실을 사울이 알고 다윗을 따라 갔다. 마온 광야는 십 황무지보다 약간 남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아라바도 일종의 불모지인 광야를 나타내는 지명이다. 광야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예시몬이다. 마온도 일종의 지명이며 그곳도 역시 황무지였다. 그곳에 어떤 큰 바위가 있엇다. 이곳에 나오는 지명들은 모두 다 광야를 의미하는 것들이다. 다윗이 얼마나 살기 힘든 곳에 거하고 있었는지를 이 지명들이 구체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다윗도 역시 사울이 다시 내려온 것을 알았다. 십 광야 거민들이 사울 왕에게 첩보를 준 것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모른다. 그러나 다윗은 누구라도 대적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다윗은 다시 도망가기에 바빴다. 다윗의 사람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실정법 위반자들이었기 때문에 사울에게 잡히면 큰일이므로 도망가는 것이 곧 살 길이었을 것이다.
8. 사울이 산 이편으로 가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편으로 가며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급히 피하려 하였으니 이는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어떻게 하려고 하였기 때문인가 (26)?
26 / 사울이 산 이편으로 가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편으로 가며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급히 피하려 하였으니 이는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고 잡으려 함이었더라
Saul was going along one side of the mountain, and David and his men were on the other side, hurrying to get away from Saul. As Saul and his forces were closing in on David and his men to capture them,
(답)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고 잡으려 함이었더라”
(해설) 이제 다윗과 사울 사이에 쫓고 쫓기는 경주가 시작되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하기 보다는 다윗과 다윗의 사람들을 포위해서 사로잡으려고 하였다. 사로잡으려 하였다는 것을 보아서 사울은 다윗을 포위하려고 하였고, 그러면 사울은 다윗보다 더 많은 병력을 가지고 다윗을 둘러싸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절대 절명의 위기에 빠졌던 것이다. 다윗은 그 순간에 사울이 이편 산으로 오면 다윗은 저편 산으로 피하였다.
비록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였다고는 하나, 다윗은 절대로 사울과 맞붙어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 다윗의 입장에서 사울과 싸운다는 것은 아무런 이득이 되는 것이 없었다. 사울을 죽이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이며, 백성들의 신망을 잃는 것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서서 잡히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에 다윗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무조건 도망 다니는 것뿐이었다. 다윗은 사울과 싸우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도망가지 못하면 결국 잡히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철저하게 도망을 다녔고, 이 순간은 상당히 위험한 순간까지 간 것이다.
9. 사자가 사울에게 와서 가로되 무엇이라고 하였는가 (27)?
27 / 사자가 사울에게 와서 가로되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이 땅을 침노하나이다
a messenger came to Saul, saying, "Come quickly! The Philistines are raiding the land."
(답)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이 땅을 침노하나이다”
(해설) 그러나 이 상황에서도 다윗은 한숨을 돌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왜냐하면 사울에게 사자가 와서 블레셋이 땅을 침노하였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시험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주시는 하나님 (고전 10:13)께서 다윗에게 피할 길을 주신 것이다.
10. 이에 사울이 다윗 쫓기를 그치고 돌아와서 블레셋 사람을 치러 갔으므로 그 곳을 무엇이라 칭하였는가 (28)?
28 / 이에 사울이 다윗 쫓기를 그치고 돌아와서 블레셋 사람을 치러 갔으므로 그 곳을 셀라하마느곳이라 칭하니라
Then Saul broke off his pursuit of David and went to meet the Philistines. That is why they call this place Sela Hammahlekoth.
(답) “셀라하마느곳”
(해설) 사울에게는 최소한의 애국심이 있었다. 그는 다윗 쫓기를 그쳤다. 그리고 블레셋을 치러 갔다. 그에게는 아직도 힘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곳의 이름은 셀라하마느곳 (쎌라 하마흐레코트)이라고 하였다. 셀라는 “바위”라는 뜻이고, “하마흐레코트”는 “헤어지다,” 혹은 “도피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셀라하마느곳”은 “헤어짐의 바위” 혹은 “도피의 바위”라는 의미이다. 아마도 바위는 마온 광야에 있던 그 바위를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꼭 싸움을 피할 수 없고, 낭패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개입으로 그 싸움을 피할 수 있는 경험을 한 적이 얼마나 많은가? 참을 인(忍)자 세 번이면 살인을 면한다고 하였는데, 우리가 그 순간을 잘 모면하면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길이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사울에게 잡힐 수 있는 순간을 이렇게 모면하게 해주시는 것이다. 우리도 우리의 삶에서 “셀라하마느곳”을 체험하는 날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이로 인하여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다. 분쟁과 싸움을 피하는 것이 곧 평화로운 삶이기 때문이다. 물론 꼭 싸워야 할 때도 있지만, 우리는 주로 자기 욕심에 이끌리어서 싸움을 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대화로 모든 분쟁을 이겨내야 할 것이다.
11. 다윗이 거기서 올라가서 어디에 거하였는가 (29)?
29 / 다윗이 거기서 올라가서 엔게디 요새에 거하니라
And David went up from there and lived in the strongholds of En Gedi.
(답) “엔게디 요새”
(해설) 다윗은 이제 엔게디로 올라갔다. 엔게디는 사해 서쪽의 성읍 지역이다. 엔 게디라는 말은 “염소 샘”이라는 뜻이다. 석회암으로 되어 있는 지역이며, 석회암 지역이 그렇듯이 많은 동굴이 발달한 곳이다. 후에 사울이 다윗을 쫓다가 한 동굴에서 그의 “발을 가릴 때” 다윗의 그의 옷자락을 벤 곳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그곳에도 산성이 있었고, 다윗은 그곳에 일시 숨게 되었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블레셋은 서쪽이고 사울이 블레셋을 맞아 싸우려고 간 사이에 다윗은 가장 동쪽인 사해 서쪽까지 피하였다. 다윗은 사울이 블레셋을 치러 가는 동안을 최대한 이용하여 쉼을 얻고 싶었다. 또한 엔게디는 그 자체가 요새이기 때문에 다윗이 잠시 숨을 돌리기에 적절한 곳이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다윗이 이때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다윗이 너무 힘들게 될 것임을 아셨던 것 같다. 그래서 다윗에게 엔게디의 휴식을 주신 것이다. 우리도 너무 힘들 때, 하나님께 휴식을 위하여 기도하여 보자. 휴식이 없으면 삶의 무게가 너무나 크게 다가온다. 우울증의 원인이 바로 스트레스가 아니가? 스트레스로 인하여 우울증에 걸리면 거의 다 자살로 나아가게 되어있다. 안식일을 주신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안식을 위한 것이 아닌가? 엔게디가 주는 교훈을 곰곰이 씹어 보자.
12. 오늘의 성경 공부를 통하여 깨달은 바를 각자 나누어 보자.
*** 오늘의 기도 제목 ***
1. 요나단과 같이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찾아가 주님의 이름으로 격려하게 하소서.
2. 하나님의 뜻을 철저히 의지하고 순종하게 하소서.
3. 교회 부지 매입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4. 다음 주일에 있을 지역 교회 친선 체육대회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5. 성주 형제와 윌리엄 세인트 형제를 지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다윗의 광야 생활에서 배울 교훈
삼상 23장 24~29절 / 박성환목사
다윗은 십대 어린 소년 시절에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이후 30세에 사울왕을 이어 이스라엘의 2대 왕으로 등극하기 까지 그의 생애는 도망자의 인생이었다. 그가 범죄하여 형벌을 피하기 위해 도망한 것이 아니라 충성 스럽게 섬겼던 사울왕의 미움을 받아 원치 않았지만 광야에서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숨어 지내는 생활을 해야만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광야 생활은 평범한 목동이었던 다윗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하나님의 그릇으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훈련 방법이었다.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광야 훈련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일군들을 다듬어 가시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모세의 광야 생활
– 모세는 이집트의 궁전에서 왕자로서 40년의 시간만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수 없었다.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의존적인 삶에서 하나님 중심, 하나님 의존의 삶으로 바뀌기 위해 그에게는 이름없는 평범한 목자로서 40년간의 또 다른 광야 훈련이 필요했던 것이다.
엘리야의 광야
– 갈멜산에서 승리후에 이세벨이 자기를 죽이려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광야로 도망하고 하룻길 쯤 가서 로뎀나무 아래서 절망하여 있는 장면. 하나님의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고 음식을 공급함.
침례 요한의 광야 생활
–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의 역할을 했던 침례 요한은 예수님 보다 6개월 먼저 이 세상에 태어났고 예수님의 오심을 예비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예수님께서 ‘여인이 난 자중에 더 위대한 자가 없다’고 하실 정도로 침례 요한은 하나님 나라 위해 크게 쓰임 받았던 인물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에 나타나는 날까지 광야에서 생활하면서(‘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눅 1:80) 영적으로 강해졌으며 겸손한 성품을 계발함
바울의 광야 생활
–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던 사울이 다멧섹으로 가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변화하여 복음 전도자 바울이 되었는데 그는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아라비아 광야에서 수년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 광야에서 시간동안 기도하며 금식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철저하게 낮추는 훈련을 하였으리라 짐작된다.
본론
다윗의 광야에서 도피 생활은 삼상 21장 부터 27장에 걸쳐 기록되어 있는데 모두 14곳이나 옮겨 다니면서 힘들고 어려운 광야 생활을 하게 된다. (기브아-놉-가드-아둘람 굴-유다 헤렛 수풀-십광야-마온 광야-엔게디 광야-시글락)
다윗은 십여년의 광야 생활을 통해 무엇을 배우게 되었나요?
1. 고독과 침묵을 배우게 됨
광야는 사람의 소리가 없는 곳, 온갖 문명의 소리가 차단된 곳, 오직 짐승의 울음소리와 밤하늘 수많은 별들만이 친구가 되는곳. 혼자서 묵상하며 노래하며 자신과 대화하는 훈련.
고독의 훈련은 사람의 내면을 강하게 하는 효과, 침묵은 영혼의 소리에 귀기울이게 하고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해줌
캘커다 마더 테레사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시끄럽고 불안정한 곳에서는 그 분을 찾을 수 없다. 하나님은 침묵의 친구이시다. 사람들의 영혼을 만지기 위해서는 침묵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를 통해 말씀하시는 것이다.”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성장, 235)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시 4:4)
“시 19편”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2.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을 배우게 됨
잘 훈련된 많은 숫자의 사울의 군사들을 피해다니면서 자신의 힘으로는 그들과 상대하여 이길수 없음을 알았기에 광야에서 동굴과 수풀에 숨어지내면서 그는 늘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하며 수 많은 밤을 보냈을 것. 두려움을 없애어 주시고 생명을 보호해 주시고 원수들을 멸해달라고.
“환날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붙드시며…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시 20)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시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시 7)
3. 성숙한 인격을 연마하게됨
1)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 사울왕을 자기 손으로 해하지 않음
– 두번의 기회(삼상 24 엔게디광야, 26장 십광야) 있었으나 해하지 않음, 하나님을 두려워함
– 십 광야에서 사울 왕 해하지 않음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창과 물병만 가져오게 함.
–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함 (“악인들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들은 어린 양의
기름같이 연기가 되어 없어지리로다.” 시 37:20)
2) 아비가엘의 지혜로운 말을 청종하고 자신의 분을 삭히고 어리석은 행동하지 않음-열린마음
3) 하나님 앞에서 요나단과 한 약속을 기억하여 사울왕의 자손들을 돌보아줌(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신실함, 관대함
4. 지도력을 배양하게 됨
– 삼상 22장 아둘람 굴로 도망하였을 때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함께 한 자가 사백명 가량이었더라”
– 사회의 비주류, 소외된 자들, 고통받는 자들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
– 의사소통 하는 기술, 팀웍이끌어 가는 지도력, 분쟁과 갈등 해결하는 중재자
결론
– 코로나 19로 전세계의 사람들이 이전에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상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 사람들을 쉽게 만나지도 못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가기가 꺼려집니다.
– 그래서 감염을 차단하기 위해서 집에서 가족들과 주로 시간을 보내며 폐쇄적인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저도 한국에 와서 2주간 격리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제 5일가량 남았습니다.
–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면서 쉬기도 하고 기도하며 묵상하며 책을 읽으며 보내고 있습니다.
– 심심하고 답답하고 지루하지만 평생에 다시없는 경험을 통해 유익한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격리 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 우리 모두는 어떤 의미에서 다윗처럼 광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사람들과의 접촉이 적어짐으로 말미암아 심리적인, 정신적인 외로움과 소외감을 경험합니다.
– 교회에 가서 예배와 기도 모임을 통해 늘 하나님 말씀을 듣고 찬양하고 마음껏 기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그래서 많은 시간을 혼자서 집에서 기도하고 말씀보며 하나님과 교제해야하는 영적인 광야생활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 광야의 시간을 지낼 때, 그 시간이 우리에게 유익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다윗처럼 고독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일수 있기를 바랍니다.
– 다윗처럼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 관용과 인내와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는 시간되길 바랍니다.
– 마지막으로 지도력이 배양되고 영적을 성장하는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손 안에서
삼상 23:24-29
사울의 추격 속 다윗을 지키신 하나님, 우리에게도 참된 피난처가 되어주십니다.
시작: 사울의 집요한 추격
삼상23:24-29는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는 긴박한 순간을 그립니다. 사울은 다윗이 마온 광야에 있다는 정보를 듣고 군대를 이끌고 달려옵니다. 이 장면은 숨 막히는 추격전 같아요. 다윗은 산 이쪽에, 사울은 저쪽에. 이제 다윗이 잡힐 것 같은 순간이죠. 여러분은 이런 절박한 순간을 겪어본 적 있나요?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은 때,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 모를 때 말이에요. 이 이야기 속에서 다윗의 위기는 우리에게 참된 피난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왜 이 구절이 중요할까요? 사울의 추격은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에요. 이는 인간의 열심이 잘못된 길로 갈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개입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는지 보여줍니다. 자, 다윗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하나씩 풀어볼게요.
불의의 열심: 사울의 잘못된 집착
사울은 다윗을 잡기 위해 모든 자원을 쏟아붓습니다. 삼상23:24-25에서 그는 십사람들의 정보를 받고 마온 광야로 달려가죠. 그의 열심은 대단하지만, 그 방향은 틀렸어요. 사울의 마음은 질투와 두려움으로 가득했죠. 그는 하나님이 다윗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거부했어요. 이게 바로 불의의 열심이에요.
사울에게서 배울 점은 뭘까요? 첫째, 열심 자체보다 그 열심의 목적이 중요합니다. 사울은 왕으로서 백성을 섬기라는 부르심을 잊고 개인적인 원한에 사로잡혔어요. 둘째,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열심은 결국 허무로 끝납니다. 사울은 다윗을 쫓았지만, 끝내 그를 잡지 못했죠.
현대적 적용: 우리도 때론 잘못된 열심에 빠질 때가 있지 않나요? 예를 들어, 남들과 비교하며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인정만을 쫓을 때요. 사울을 떠올리며 내 열심이 하나님의 뜻과 맞는지 점검해보는 건 어떨까요? 잠시 멈추고 기도하며 방향을 확인하는 게 필요해요.
하나님의 지락: 뜻밖의 구원
다윗이 사울에게 거의 잡힐 뻔한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삼상23:27-28에서 사울에게 급한 소식이 전해져요. 블레셋이 쳐들어왔다는 거예요! 사울은 다윗을 쫓던 걸 멈추고 돌아가야 했죠. 이게 우연일까요? 절대 아니에요. 이건 하나님의 지락, 즉 하나님의 손길이에요. 다윗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셨죠.
하나님의 지락에서 배울 점은?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위기를 아십니다. 다윗이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은 그의 상황을 놓치지 않으셨어요. 둘째,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의 계획 밖에서 올 때가 많아요. 다윗은 블레셋의 침공을 예상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그 일을 사용하셨죠.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 구절은 하나님의 주권을 보여줍니다. 사울의 계획은 치밀했지만, 하나님의 손길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우리도 삶에서 예상치 못한 도움을 받을 때, 그게 하나님의 지락임을 기억합시다.
현대적 적용: 직장에서 갑작스레 해결된 문제, 어려움 속에서 만난 도움의 손길, 이런 순간들이 있죠? 그때마다 하나님의 지락을 떠올리며 감사 기도를 드려보세요. 작은 일에도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믿는 마음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 거예요.
하나님은 안전한 바위: 참된 피난처
삼상23:28에서 이 장소는 ‘셀라하맛레코트’, 즉 ‘바위틈’이라 불립니다. 이 이름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에요. 다윗에게 이 바위는 하나님의 보호를 상징했죠. 사울의 군대 앞에서 다윗을 지킨 건 결국 하나님, 참된 피난처였어요. 다윗은 이곳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며 다시 한번 믿음을 다졌을 거예요.
하나님을 안전한 바위로 여기는 삶은 어떤 걸까요? 첫째,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는 피난처입니다. 세상의 위협이 아무리 커도 하나님의 품은 안전해요. 둘째, 피난처는 우리가 찾아가야 하는 곳이에요. 다윗은 광야에서 하나님께 의지하며 기도했을 거예요. 우리도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나아가야죠.
현대적 적용: 인생의 폭풍이 몰아칠 때 어디로 도망가시나요? 친구, 취미, 혹은 끝없는 걱정 속으로? 하나님을 안전한 바위로 삼는다면,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어요. 하루 5분이라도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께 마음을 열어보는 건 어떨까요?
마무리: 오늘도 하나님께로
삼상23:24-29는 다윗의 위기와 구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어디로 피하고 있는가? 불의의 열심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의 지락을 믿고 있는가? 하나님을 나의 안전한 바위로 삼고 있는가? 이 구절은 단순한 성경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생생한 메시지예요.도서 및 문학
어떻게 실천할까? 첫째, 내 열심을 점검하며 하나님의 뜻을 묻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둘째, 예상치 못한 도움을 받을 때 하나님의 지락이라 여기며 감사 기도를 드려보세요. 셋째,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연습을 해보세요. 성경 말씀 한 구절을 붙잡고 묵상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거예요.
참고 말씀: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로다” (시18:2). 이 말씀은 다윗의 믿음을 떠올리게 하죠. 우리도 이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 봅시다.
한 걸음 더: 지금부터 시작하기
두려움의 죄
삼상 23:24~29 / 정보배목사
1. 두려움의 죄란 어떤 것인가요?
하나님께서 지지키심과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믿지 못하고 불신하면서 불안하고 낙심하고 좌절하는 죄를 가리킵니다. 그렇다고 모든 두려움을 다 죄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두려워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려워야 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마귀가 주는 온갖 종류의 두려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될 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2. 사람은 대체 무엇 때문에 두려워할까요?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정리해 보면 다음의 4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자기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 것 같은 상실의 두려움이 있습니다. 자신의 소중한 건강을 잃어버릴 것도 같고,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들(부모, 형제자매, 자녀들, 배우자 등)도 잃어버릴 것만 같으며, 심지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질이나 직업마저도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니, 욥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욥은 당시 동방에서 가장 큰 부자였고 자녀도 많았으며 건강했지만, 결국 사탄의 시험을 통해서 모든 ‘재산’을 잃어버렸고 ‘자녀’도 죽었으며 ‘건강’도 잃어버리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욥3:25)" 둘째, 사람은 죽음의 공포를 두려워합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모든 것들로부터의 완전한 단절이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오셔서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에, 이제는 모든 믿는 자들이 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히2:15). 셋째, 사람들은 귀신의 공격을 두려워합니다. 귀신이 공격해 들어오면 질병이 걸리고 가난해지고 사건사고가 일어나고 자녀의 앞길이 막히곤 합니다(막9:22). 그러므로 귀신의 공격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넷째, 사람들은 또한 앞으로 자신이 행할 일에 대한 ‘실패’와 그것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비난과 조소’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신앙의 힘이 아니라면, 이 세상 사람치고 두려워하지 않고 지낼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두려워하면 어떤 일이 발생하나요?
사람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을 두려워하면 두려움의 영 곧 두려움을 주는 영이 달라붙습니다. 달라붙어도 등에 달라붙습니다. 우리가 흔히들 공동묘지에 갔을 때에 "등꼴이 오싹하지 않았니?"라고 말하곤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진짜로 귀신들이 시체가 있는 곳에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사람이 많이 죽었거나 사람의 시체가 많이 묻혀 있는 공동묘지는 귀신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살해 죽은 집의 방에도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4. 두려움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렇다면, 우리가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첫째로, 어떤 두려움이 임하는 상황에 발생했을 때에 즉시 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꼭 붙드는 것입니다. 그것을 입으로 말해내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목숨이 붙어있는 한 성도를 버리거나 떠나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신31:6)"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주시고 도와주신다는 성경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로 하여금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특별히 귀신이 공격이 있어 두려운 마음이 들 때에는 요한일서의 말씀은 큰 힘이 됩니다(*요일5:18, 요일4:4).
요일5: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요일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귀신들은 강한 자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고, 약한 자 앞에서는 한없이 강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귀신들의 공격이 올 때에 두려워하거나 떨어서는 아니 됩니다. 그들이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수록 강하지고 담대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해야 합니다. "너희들 우두머리가 십자가에서 개박살났다며~~, 사망이 무너졌다며~~, 너희들은 조금 있으면 무저갱에 들어간다며~~, 너희들은 진 자들이라며~~" 등등 말이죠.
그리고 두번째로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두려워지는 그 순간에 소리로 주님께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옵소서" 다윗은 늘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다윗이 젊었을 때에 얼마나 어려움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어느날 골리앗을 물리치는 바람에, 다윗은 일약 이스라엘의 군대장관과 천부장이 되었지만, 사울의 질투로 인하여 도망다녀야 했습니다. 다윗은 그후 사울 왕이 죽기까지 무려 10년동안 도망다녔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삼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온 사울 왕에 의해 영락없이 포위되어 붙잡히게 될 상황에 맞딱뜨리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하나님께서 부르짖었습니다(시34:6).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즉시 천사를 보내 그를 보호해주셨습니다. 갑자기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공격해들어왔다는 전갈을 받고 사울왕 물러가야 했기 때문입니다(삼상23:24~29). 그러자 훗날 다윗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시34:4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시46: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118:6-7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7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내게 두려움을 주는 그 대상과 십자가 세우기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세운다는 것은 나를 공격하는 이들(사람일 수도 있고, 그 배후에 있는 귀신의 세력일 수도 있음)과 나 사이에 방패 막을 치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것을 가지고 ‘십자가를 세운다’고 말하는 것은 사탄과 권세있는 그의 부하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일로 인하여 결국 사망권세를 빼앗기고 말았고, 사탄은 무저갱에 갇히게 되었기 때문에, 승리의 무기를 그들 앞에 세운다는 뜻입니다(물론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십자가가 세워지는 것을 믿고 십자가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악한 영이 공격해 온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순간에 천사를 파송하여 우리를 둘러 진을 쳐주시며 보호해주십니다(시34:7). 다시 말해 그 순간에 하나님의 생명싸개(보자기)로 우리를 싸버리는 것입니다(삼상25:29)
시34:7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삼상25:29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5. 주님께서는 지금도 성도들을 어떤 방식으로 지키시고 보호해주시고 지켜주시나요?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예수께서는 그때부터 생명 주는 영이 되셔서 믿는 자들 속에 내주하시게 되었습니다(고전15:45, 고전6:17). 그때부터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속에 들어오시는데, 한 번 우리 속에 들어오신 보혜사 성령께서는 우리가 죽는 그날까지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요14:16). 그리고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보혜사(도와주시는 분)"으로 오셔서 일하고 계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서 떠나지 않는 한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내 몸에 모시고 사는 존재임을 자각하셔야 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자부심을 가지고 강하고 담대하게 귀신과 싸워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