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원, 오천원 내 돈 오천원
비가 오는 날이면 동화속 소년이나 유년기가 떠오른다.
장대비가 쏟아지면 교실 처마 밑에서 비 그치기 기다렸다.
누나들이 많아선지, 초등시절엔 우산을 들고 온 누님들과
손잡고 함께 돌아왔다.
*오마께(?) 좀 뽑고 *비과 좀 먹고 가자며 구멍가게에
들리기도 했다. 세상이 무겁고 침침한 우중인데도 말이다.
그러다 여차저차 비가 쏙 그치면 맑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고향에 산 것, 2배보다도 훨씬 긴 세월 타향살이했다.
어언 간 청춘은 가고 얼굴에는 저승꽃 처절하게 피었다.
그 많은 누님 중 하나는 고피리 면하고 서울 기어올라 왔을 때,
“누나 나도 대학 정말 가고 싶어, 서울 와 보니 다 대학 가는데,
한 달만이라도 학원이나 다녀 보았으면 좋으련만”
누님에게 애절하게, 그리고 주저, 주저하며 써 보낸 편지가 있었다.
누나의 답장은 대강 이러했다.
“OO야, 집안이 갑자기 온통 다 망했는데, 무슨 돈이 있느냐?
이것은 내 돈(지금으로 말하면 비자금)인데, 딴 생각 말고 몸이나
잘 챙겨라, 0아! 정말 미안하데이, 0아!“
나는 그걸 편지 봉투에서 꺼내어 며칠간 보관하였다.
우체국 소액환 얇고도 하얀 수표였다.
그런데,
그걸 잃어버리고 영등포 우체국 두 번인가 갔다. 끝 내 찾을 수
없었다.
내 몸은 그사이 비참하게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그 후 오래 뒤 천신만고 끝에 상급학교 졸업했다.
사연도 서너 보따리 될 거다. 소설로 적어 놓아도 리얼리티가
처자 엉덩이 같이 풍성 할 거다.
그것 다 때려치우고 그 시간에, 돈이나 죽어라, 벌었더라면하고,
후회도 가끔 한다. 거기에는 돈보다도 훨씬 값진 내 젊은 날의
페이싸스(Pathos)가 흥건하기 때문이다,
그 누나가 혼자가 되었을 때다,
난 내 집안의 마누라도 무시하고 시골에 아파트 한 채(아주 싼 것)
하나 사주었다. 그 누님도 이제는 팔순이 넘었다(81)
비내리고 황량해지면,
그 시절 오천원정,
누님이 내게 보내준 하얀 소액환 수표가 사무치게 아쉽다.
홀로 눈가에 소금기 진득한 눈물이 그렁그렁 해 진다.
그 누님은 쌍둥이 누나 중 하나 였다.
“ 쌍둥이 누나!
그때 보내준 5천원 저한테는 5백억도 더 됩니다,
누나가 있기에 사랑이 있고 여적 애절함이 있는 가 봅니다,
참으로 행복합니다. 저는 복도 많습니다.
-
-
- 열흘 전 누나가 사시는 안동 신도시 아파트 쪽에서
친구와 햄버거를 먹으며, 전화를 했다.
이제는 아무런 걱정도 없이 풍요롭게 사는데도 나는
누나가 마냥 가련해 보인다. 불쌍해 보인다는 거다.
오래 건강하게 사셔야 합니다.
안동역에서 부산행 열차를 탈 때쯤----
첫댓글 그전에 쓴 것인데 이번에 여행을 하면서
가필했습니다. 새롭지 못하더라도 양해바랍니다.
오늘 삷방이 와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밑에는 구순 어머니
팔순의 누님,
여기는 비도 없어
무척 화창한 대낮이지만
아립도록 그리운 추억과 흐느끼는 색스폰에
고만 흠뻑 취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고향 생각도 많이 날 듯 합니다.
님이 계신 시에틀은 비교적 관광객도
많고 비즈니스 하기 좋은 환경으로 압니다,
스타벅스 본사가 버티고요,
그곳 못 가보아도 그 밑에 쎈프란시스코에서
총 보름간 있어서 대강 압니다.
뱅쿠버는 잘 압니다. 다습하고 스콜이 흔하지요,
우울해지기 쉬운 곳이지요,
이곳 이태원은 그 유명한 King 클럽 때문에
(코로나 전염) 퍽 *씨겅합니다.
행여 서울 오면 기별 주이소, 이태원 끝 쪽 ‘
한남 나인원 가서 식사 커피 대접하겠습니다.
@거서리 고맙습니다.
방문 기회되면 뵙고 싶습니다.
정모에도 참석하고 싶구요
뱅쿠버에 오래 계셨군요
저는 온타리오 토론토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입니다.
겨울이 긴곳인데
어제, 오늘은 갑자기 더워졌습니다.
@단풍들것네 아! 미시사가나 헤밀턴 벌링턴 밀턴---
하여튼 건강하소서,
읽는 동안 가슴이 찡합니다.
소액환.
거서리님 덕분에 참 오랜만에 기억합니다.
아...... 그러한 것이 있었지요.
중2 때, 아버지의 부산 발령.
이듬 해 2월 엄마의 발령으로 인해
모든 가족이 부산으로 떠난 뒤에
저는 덜컹 순천에 혼자 남아
중3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때, 엄마는 매달 등기우편으로
길고 긴 편지와 함께 우체국 소액환을 넣어 보내주셨습니다.
영수 과외비, 하숙비, 용돈등.......
우체국에서 현금과 바꾸어 썼는데......
부산으로 진학하면서 그 용어를 새카맣게 잊어 버리고 살아왔네요, 지금까지.
거서리님의 글을 읽으면서
그 오래 전의 시간을 끄집어 냅니다.
그 시간에 제 곁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지는 깊은 밤입니다.
팔순 초입.
거서리님의 누님께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저는요, 돈 안되는 것, 쓸데없는 것 잘 기억합니다.
제가 고피리 시절 , 1기분(3개월 )등록금이 3520원입니다.
제가 안동 훈련소서 훈련 10주 받았는데, 훈련병 한달 월급이
850원이었습니다.
님은 그나마 교육자인 부모님 만나서 고생이 덜 했는가 봅니다.
선생님 자제분들은 일부 특권이 있었습니다--
덜 맞습니다. 쌍둥이 누님위 84세 누님 또 있습니다.고맙습니다.
포근한 밤 되십시요, 꾸뻑!
40년 전 제주도로 회갑여행가시던 울백모님께 8,000원을 드렸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비록 큰 돈은 아니었지만 그 작은 돈에 제 사랑과 정성이 듬뿍 들어 있었음을 울백모님께서 알고 계셨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
아! 그런 사연도 있었군요,
저는 어머님이 84세 돌아가셨는데,
어머님과 그해 제주도를 함께
여행했습니다. 그 여행 사진을 '여적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남매분 사이에 오가는 정이
따사롭습니다.
제게도 남동생이 있는데요
종종 엄마의 마음이 되곤 하여
무엇이든 주고 싶었음을 볼 때
님의 누님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그저 님께서 잘 사시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한 편의 문학작품 같은 글
내리는 비처럼 가슴으로 젖어드는 글..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누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셔서
감성이 촉촉하신가 봅니다 ^^
누나의 남동생 사랑---
우리집은 하도 누나가 많습니다.
고운 꼬리글 고맙습니다.
언제 막걸리 한잔 하셔야죠 ?
지난 얘기도 나누면서....
곧 있을 노을이 야기 49제 때 만나요,
꼭 한잔 합시다, 늘 건강하시고요
@거서리
네~ 화이팅...!!
삭제된 댓글 입니다.
남동생 - 미남 남동생 말하는거
정겹고 보기좋은 가정---
산소 가셔도 더 정다웁게
잘 다녀오세요---
안동 신도시 아파트 엄청 올랐을텐데
잘하셨네요
그 당시 오천환 누님에게도 큰돈인데
그 동생 얼마나 안스러웠을까요?
지금은 그집에서 편안히 사시니
무엇보다도 누님께서 그 정도 여유를 가진 동생에게 행복해 하실거 같아요
저도 동생들과 오래동안 자취하며 학창시절 보내서
그 마음이 더 와 닿습니다
당시는 다른 곳이었습니다.
누나의 딸이 결혼하여
다시 그곳으로 이사 했습니다.
그 조카도 이젤님 부모님 같이
소를 키우는데요, 지보 있습니다.
100--150두로 조절하고 있습니다.
인심도 좋고 정겹습니다.
오랜 사육 경험으로 잘도 돈을
법니다 저도 촌에가서 소나 ^^
소액환!
그런게 있었지요.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 입니다.
해군 하사 였던 울 오빠가 고등학교 다니는 제게
부모님께 돈달라기 어려울때 쓰라며
몇번을 보내줬습니다.
저도 부모님 떠나 있었거든요.
저는 해 질녁이면 오빠 생각이 많이 났구요.
지금도 저에겐 너무 고마운 오빠입니다.
오늘 안부 전화 해야겠네요.
소액환 ....보고 싶은 나의 오라버니 !
네, 괜히 찡해집니다.
저도 여동생 있는데,
항상 걱정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지적성숙 잘있어요. 지적성숙님!
저는 오빠 둘이 계신데 너무 고맙게 제게
잘해요. 이 나이에도 늘 염려를 해요.
그 오빠들이 저땜에 우는걸 몇번 보았죠.
지금도 한국가면 맛있는거
사먹으라며 돈 줘요.ㅎㅎㅎ
지적성숙님은 좋은 누나잖아요.
좋은 딸이고....
저는 그렇지 못하거든요
1969 년당시 5000원이면 요새돈 25만원 이상일거라고 생각됩니다만
반가워요---
제가 님을 처음 본지도 거의 10년이
될듯 합니다.
함께 건강하게 천년만년 살고지고 합시다.
소액환?
오랜만에 들어 봅니다
60년대에 5,000원이면
엄청 큰 돈인데...
수학여행비가 8,000원인가??했는데
누나가
대단한 분입니다
아파트 잘 사주셨네요~ㅎ
아이고,
그 아파트 작고 싼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착실한 둘째동생이
군에서 휴가나와 친구들
만나 한잔하는데
만취한 친구가 술판뒤집고
난리쳐서 손해배상을 해야되는데
누구도 주머니 홀쭉했던시절
새댁이었던 저한테 연락이
엄마한테는 혼날것 같고
뒷처리해준 기억이 문득
그동생도 참 잘하고 있네요
물질을 떠나서 늘 걱정전화도 주고
아련한 옛일들이 떠오릅니다
정아는 정이 많아 만판 해줄 겁니다.
아무렴요,
그 시절 깽판친 분도 이제는 60대로
행여 이곳에 있을지도 모릅니다요^^
나 배불러 있을떄 진수성찬 이 뭔 필요 할까요
나 배 고플때 한술에 찬밥이 정녕 고맙고 감격이지요
저도 옛날 옛날에 어느분이 준 김치 한 그릇이
지금도 아니 평생 기억에 남어요
거서리 누님도 대단하신분이네요
가시장미님
멋진 코멘트입니다.
김치 한그릇 준거---
고맙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이번 여행 때 노을 태어난 데---
호명, 그곳이 안동 신도시 부근입니다.
노을 이야기의 일가친척(촌수 잊었습니다)이 하는
동태집 가고 싶었는데, 노을이 생각나 가지 않았습니다.
진성 이씨! 이육사네 집안입니다.
이 노래는 단골 곡인데, 이번에 부산 무슨 공원 있다는
김민부 시비 있다는 무슨? 공원 못 가보았습니다.
늘 수고하시는 님-- 건강하세요.
소액환, 말만들어도 눈물겨운 추억이 구름처럼 입니다.
중1 부터 부모님 떨어저 생활 하였기에 학비를 고액이 아닌 소액환으로 받았지요.
엄마 그리워 얼마나 혼자 흐느끼며 지냈는지는 부모님은 아셨을 겁니다.
지금도 목메입니다.
음악은 왜이리 처량하지...
글 고마워요.
님은 부모님 혜택을 많이 받으신가 봅니다.
엄마 아버지---
세월이 가도 그립고 아쉬운 이름입니다.
저도 고맙습니다.
참 잘읽었습니다
저한테도 필요한 글입니다
오래전에 동생이 골재 사업할때
좀 도와 달라고 손내밀때 저는 아이들
대학 다닐때라 여유가없어
외면 한것이 아직도 죄인 같아요
누님께 아주 잘하셨습니다
거서리님 ㅎ^^
이제 누님은 나이도 다되고
아쉬운 게 없습니다.
풍요로운데도 누나가 불쌍해집니다.
동생 보다는 내 아들이 중요----'그것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ㅎㅎ
혈육의 진한 애정엔 부와 관계없이 늘 애잔하고 찡! 한 감정이
함께 따라오지요 저도 그래요 ㅠ,
특히 제 바로 밑 동생에겐 .. 그렇지요
나이 들 수록 정이 깊어지고 그리고 측은한
감정은 부부가 아닌 혈육에게도 전해집니다
이젠 친구보다
형제가 더 좋아요 종일 만나고 있어도
불편하지 않고 요 ㅎㅎ
날씨가 더워 집니다 건강 유의 하세요
운선님 동해 무척 덥지요?
저는 저녁에 남산 식물원에 앉아
이일 저일 생각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가장 힘겹고 어려울때
혈육으로 부터는 일쩐 한장 없더라고요
하지만 믿음의 친구가 준 오천원, 80년대 초 의일은
지금도 안 잊혀지지요
비정한게 가까운 혈육이더라고요
앗아가질 않나 어려워지면
내몰라라 하질 않나
삭일려고 한까 살아났지만
궁지에 몰려보면 천사보다 악마가 더 마나요
궁지에 몰려보면 천사보다 악마가 더 많아요,
저도 세상에 태어나 순간 순간 느꼈습니다.
고맙습니다.
안동역을 들락거리시는 거서리님이 부러워요.
저는 전설의 고향으로 여기고 사는데.
언제 안동역 가실 때
기별좀 하이소.
따라 나서게.
그래요,
기별을 하지요,'
고향이 전설의 고향이라--
이등병 월급이 840원.오천원이면 우와.ㅎ
그걸 어떻게 잃어버렸어요 그래.ㅉ
누나한테 잘해 드려야 겠습니다...^^
네, 늘 고맙게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