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2023.5.10 15;00-16;00
★장소;서울시종로구 인사동 경인미술관 제1전시실
★참가;김경흠, 김학천, 송관순, 전인구, 조진우, 차성근, 최명설, 김종용 동문회장
★저녁식사(16;10-17;50);갈비전문점 대청마루(종로구 경운동 건국빌딩1층)
-전시 관람을 마치고 나서 제1전시실 입구에서 강완식 화가와 기념사진 촬영-
강완식 동문으로부터 한 달전에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서화전을 개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억의 망각으로 스마트폰 달력에 입력해 놓았다. 그날이 5월10일이다. 강완식 화가의 서화전은 경인미술관 제1전시실에서 개최한다. 4개의 전시실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전시실로 100평이다. 강완식 동문이 화가로 활동한 이후 생전 처음 관람으로 의미가 남다르다. 이번 서화전에 참가하는 인원은 sd16 3학년6반 7명과 동문회장이다. 오후 3시에 안국역 6번 출구에 모여서 함께 가기로 하였다. 이곳에서 경인미술관까지는 대략 9분 정도 소요된다.
인사동은 해방 이후 1970년대에 들어와 화랑, 표구점, 등의 미술품 관련 상점들이 이곳으로 집중되면서 인사동은 현재와 비슷한 문화의 거리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서울시에서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인사동을 '전통문화의 거리'로 지정하였고 2002년 월드컵 개최 이전인 4월24일에 제1호 문화지구로 지정했다. 인사동은 현재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문화의 거리다. 여기에는 골동품 상점, 화랑, 표구방, 필방, 전통공예품 상점 등이 집중되어 있고 전통찻집, 전통주점, 전통음식점이 번성하고 있다. 인사동은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중의 하나이다.
인사동을 찾는 관광객이 많아 상주인구보다 유동인구가 훨씬 더 많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하루에 1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말인 토요일, 일요일에는 인사동 거리를 '차 없는 거리'를 운영하고 있다. 안국역 6번출구에서 인사동 골목길을 따라가다 번잡한 인사동길로 진입한 후 인사동 10길로 들어서면 경인미술관이 나온다. 미술관하면 통상 세련된 현대식 건물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가정집 같은 분위기였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한옥(제3전시실)과 장독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마당에는 싱그러운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으며.
한옥 옆에는 전통찻집이 자리하고 있어 운치가 한결 돋보였다. 경인미술관은 4개의 전시실과 아틀리에, 전통찻집으로 구성된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문화 장소이자 미술인들의 전시공간뿐만 아니라 예술인들의 만남의 장소로서도 이름이 나있는 곳이다. 강완식 화가의 서화전은 희수 기념으로 제1전시실에서 5월10일부터 15일까지 개최하고 있다. 제1전시실은 복층으로 각각 50평 규모다. 강완식 동문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박명록에 각자 이름을 붓글씨로 흔적을 남겼다. 그리고 강완식 동문이 안내하면서 작품 하나하나 세심하게 설명해 주었다.
전시된 작품은 모사작품, 사군자, 화조화, 산수풍경화, 선조숭모사업작품, 자화상,초상화 등 54점이다. 강완식 동문은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에 재주가 남달랐다고 한다. 공직생활하면서 취미생활로 틈나는대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첫 작품이 35세 때 그린 모사작품으로 세한삼우도 등 8작품이다. '모사'란 다른 화가들의 작품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을 말한다. 첫 작품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내로라한 화가도 저리가라할 정도였다. 참가한 동문들 모두 새삼스럽게 놀라워하는 표정이었다.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우리들이 모르는 숨은 재주꾼이었다.
바로 밑 동생이 서울대 미대를 나와 화가로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강완식 동문은 진작부터 미술 DNA가 있었던 것이다. 40세부터는 강산청취도 등 산수풍경화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하면서 화가로서의 두각을 나타낸다
52세부터는 사군자, 65세부터는 화조화 작품을 그렸다. 75세 때 그린 해외여행 풍경도 30점이 인상적이었다. 이중에는 에집트의 스핑크스, 이탈리아의 콜로세움, 프랑스 에펠탑, 미국의 자유여신상, 나이아가라 폭포, 영국의 템즈강 다리 등이다. 선조숭모작품 중 색채가 화려한 금강산도는
겸재 정선과 비견될 정도로 뛰어나 작품이었으며 자로 잰듯이 깨알같이 붓글씨로 쓴 판중추 증영의정 시문정 설봉 강백년 묘비명이 보통 수준이 아니었다. 화가 뿐만 아니라 서예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은 자화상과 초상화다. 전 동력자원부장관, 상공부장관을 역임한 이봉서의 초상화, 그리고 본인의 56세, 67세, 77세(희수)의 자화상을 그렸다. 경인미술관에서 생애 첫 서화전이지만 화가로서의 첫 발을 내딛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한마디로 화가로서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해도 손색이 없다. sd 16을 빛낸 자랑스런 동문이다.
이제는 강완식하면 설암 화가로 떠올리게 할 것이다. 전시실 1층에서 강완식 화가와 단체사진을 찍은 후 설암 강완식 서화전 책자를 선물로 받고 저녁식사 장소로 이동하였다. 저녁식사 시간이 애매하여 전통차 한 잔씩 마시고 헤어질까 했는데 이른 저녁식사를 하기로 뜻을 모았다. 인사동 10길을 빠져 나오면 삼일대로를 만난다. 송관순 동문은 삼일대로 건너편에 서울 교동초등학교가 보인다고 귓띔해 준다. 송관순 동문이 유년시절에 다니던 학교였다. 교동초등학교는 1894년(고종31년) 9월18일 관립교동왕실학교로 개교하였다.
서울시 경운동에 위치한 공립초등학교로 대한민국의 국공립학교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학교다. 왕실 종친과 귀족 자제들을 대상으로 한 학교로 일반인 학생은 입학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초등교육기관이었다. 송관순 동문이 초등학교 다닐 때에는 5,000여명이 넘는 과밀 학교였고 1967년까지는 매년 수백명의 졸업생이 경기중학교, 경기여자중학교에 입학시키는 명문 초등학교로 군림했다. 도시의 급격한 인구감소로 인해 100주년인 1994년에는 재학생수가 600명 아래로 떨어져 미니학교로 전락했고 2011년에는 신입생 수가 9명으로 감소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점점 학생수가 증가해 근대에는 20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삼일대로를 타고 낙원상가 쪽으로 가다보면 건국빌딩이 나온다. 건국빌딩 1층에 자리한 식당이 대청마루이다. 식사하기 전에 강완식 동문의 서화전에 참가해준 동문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면서 앞으로 만남의 기회가 있으면 자주 만나자고 하였다 그리고 각자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 축배의 잔을 들었다. 저녁식사 메뉴는 돌솥굴밥과 우거지갈비탕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정겹게 식사하면서 이 얘기 저 얘기하며 웃음꽃들을 한바탕 피웠다.
동문들과 관람하든 식사하든 함께 있으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미에 푹빠진다. 그리고 행복호르몬이 분비되고 좋은 에너지가 충전된다. 그래서 동문들이 마냥 좋다. 그러나 헤어질 때는 섭섭하다. 불교의 법화경에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란 말이 있다. 사람이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고 헤어진 후에는 다시 만난다는 뜻이다. 다시 만날 날을 약속하고 각산진비하였다. 저녁식사는 회비로 충당하려고 하였으나 봉화에서 올라온 최명설 교우가 한발 앞서 계산하였다. 정말 한없이 빛나는 동문이다.
뜨거운 박수로서 화답하였다. 강완식 동문의 서화전을 계기로 작품도 감상하고 즐거움이 가득한 만남이었다. sd 16 3학년 6반 브라보!
경인미술관 정문 입구에서
싱그러운 수목이 울창한 경내
전통찻집
제1전시실로 향하는 중
제1전시실 입구에서 촬칵
김종용회장과 6반 차성근 반장이 약소하게 축의금 전달
강완식 동문이 그림을 보고 설명하는 중
<모사 작품>
세한삼우도
사희도
하계유거도및 추강어은도
강산설제도
<사군자>
난도
분매도
국화도
설죽도
좌측 위로부터 합죽선난도, 아래 합죽선매도, 우측 상, 하 손수건도
사군자 병풍
<화조화>
백목련도
자목련도
목단도
나팔꽃도
연꽃도
포도도
무궁화도
코스모스도
<산수풍경화>
송림도
서귀포칠십리 풍경도
강산청취도
신록도
송호도
파크골프 놀이도
은륜도
사향도
해외여행 풍경도
<선조숭모사업 작품>
창송불노 학록제명도
강민첨 장군 묘역도
십이죽도
나옹선사
설봉 강백년 신도비명
강완식 화가의 자화상, 왼쪽부터 56세, 67세, 77세
서화전 관람을 마치고 나서 기념촬영
제1전시관 입구에서 강완식 화가와 기념촬영
강완식 화가에게 고맙다는 인사로 큰 박수
대청마루에서 저녁식사
식사에 앞서 축배를 제의하는 6반 반장
식사를 마치고나서 송해거리 송해동상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촬영하는 최명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