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여정을 기약하고
오월 하순 목요일이다. 드물게 집을 벗어나 거제에서 형제들과 하룻밤을 같이 보낸 이튿날이다. 나는 형님들 틈새 베개와 이부자리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거실에서 먼저 잠들어 한밤중 깼다. 노트북을 펼쳐 전날 여정을 남겨 놓고 날이 밝아오길 기다려 큰형님과 함께 호텔 바깥 해안으로 산책을 나섰다. 지세포 연안은 목책으로 길고 긴 데크가 설치되어 산책에 안성맞춤이었다.
숙소로 복귀해 여장을 정리하면서 형수님과 여동생이 머문 객실로 건너가 아침 식사를 했다. 여동생이 출발 전 준비해 온 간편식 떡국이었지만 끼니는 든든히 해결했다. 객실을 정리하고 프런트로 키를 반납하고 남은 일정에 들었다. 거제 식물원을 찾아갈 차례보다 먼저 한 곳을 들릴 데가 있었다. 한학에 조예 깊은 큰형님을 배려해 송시열을 향사하는 반곡서원을 찾아가기로 했다.
조선 후기 학자이며 정치가였던 송시열은 정쟁의 소용돌이 중심에 선 인물이다. 그가 예송 논쟁에서 미수 허목에게 밀려 거제로 유배 왔고 사후에 현지 유림이 송시열을 향사하는 반곡서원이 세워졌다. 큰형님을 비롯한 형제자매들은 거제여상 뒤 반곡서원을 찾아 조선시대 유배객이 머물다 간 흔적을 둘러보고 인접한 거제 고을 부사가 근무한 집무실 격인 동헌 관아 건물을 지났다.
거제 식물원을 찾아갔더니 규모에 압도되어 놀라웠다. 지방자치 단체에서 관리한다고는 믿기지 않는 아주 넓은 터에 여러 화초와 원예 작물을 키웠다. 평일임에도 우리처럼 식물원을 관람하기 위해 찾아온 이들을 다수 볼 수 있었다. 토종 야생화를 가꾸는 곳이 있는가 하면 풍란 같은 희귀 화초를 수석에 붙여 키우기도 했다. 가을에 꽃을 피울 국화도 지금부터 정성 들여 가꾸었다.
거제 식물원의 압권은 7천 5백여 장의 유리를 이어 붙인 독특한 모양을 가진 돔형 온실이었다. 유리 온실로 들었더니 적도 근처 어느 남국의 잘 꾸며 놓은 정원을 보는 듯했다. 평소 나는 산천을 주유하면서 절로 자라는 식생에 익숙했는데 사람 손길에 가꾸어진 화초도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지가 워낙 넓어 경내를 관람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돔 온실을 나와 쉼터에서 다과를 먹으며 환담을 나누었다. 출발 전 진주 여동생이 준비한 쑥떡은 인기가 있어 현장에서 일하던 인부들로부터 간식을 잘 먹었다는 치사를 듣기도 했다. 거제 식물원을 나와 남겨둔 오전 일정은 남부면으로 옮겨 쪽빛 바다를 구경하는 순서가 기다렸다. 면 소재지 저구로 가는 지방도 길섶에 자라는 수국은 아직 철이 일러 꽃이 만개하지 않은 때였다.
매물도로 여객선이 뜨는 저구항에 가까운 명사해수욕장으로 가서 바다 위에 설치된 보도교를 따라 걸으며 물이 맑아 바닥이 드러난 해수욕장 금모래를 봤다. 해수욕장 바깥은 장사도를 비롯한 다도해의 여러 섬이 점점이 떠 있었다. 명사해수욕장에서 홍포와 여차로 돌아가면서 남녘 바다 절경을 완상했다. 전망대에 서니 멀리 대마도가 보였고 매물도와 대병도 소병도가 눈앞이었다.
해양수산 어류 연구소가 위치한 다대다포항으로 이동해서 맛깔스러운 갈치찌개와 생선구이로 점심을 먹었다. 식후에 어촌 체험 탐방로를 걷다가 해금강으로 갔다. 바람의 언덕과 신선대 탐방은 시간이 부족해 차창 밖으로만 살피고 우제봉으로 가는 숲길을 걸었다. 우제봉에 서니 눈앞은 억겁 세월 풍랑에 흙은 다 씻겨가 바위가 드러난 봉우리에 붙어 자라는 나무와 풀을 대면하였다.
해금강에서 학동 몽돌 해수욕장을 둘러 장목 연안 대계마을 김영삼 생가와 대통령 기념관을 둘러봤다. 시동을 걸기 전 행사를 진행한 매제는 멸치 상자를 사 차에 실었다. 매미성으로 옮겨가 바닷가에서 집념의 한 사내가 자연과 맞서 쌓아 올린 석성을 둘러보고 거가대교를 건너왔다. 셋째 형님이 사는 가덕도 식당에서 보리밥 꼬막무침으로 저녁을 먹고 1박2일 동기 여행을 마쳤다. 23.05.25
첫댓글 쉬지않은 가족여행
의미있는 깊은 우애를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