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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지고..
47.
다음 날 아침부터 이화가 분주하게 방안을 누비고 다녔다. 이화의 분주함에 금난이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이화의 시중을 들어주었다.
“처음 뵈는 분이니까 실례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셔야 해요.”
금난이 미덥지 않은 이화의 모습에 걱정을 떨치지 못하고 말을 했다.
“알겠어, 뭘 그렇게 마음을 놓지 못 하니?”
이화가 살갑게 투정을 부리자, 금난이 한 숨을 내쉬었다.
“어딜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아씨지만...가끔씩 알 수 없는 분이셔서 마음이 놓일 리가 있나요.”
라면서 쓴 소리를 했대자, 이화가 입을 삐죽 내밀더니 소리쳤다.
“조심! 또 조심하면 되지?”
대문간에서 기다리고 있는 함 서방이 이화의 모습이 보이자 너스레웃음을 지으며 이렬의 집으로 앞장섰다. 장옷을 걸친 이화가 북촌가로 향하는 길목을 요리조리 눈을 굴리며 구경을 하였다. 함 서방은 혹시라도 이화가 자신을 놓칠까봐 걱정이 되었는지 앞장서서 가면서도 꼭 한 번씩 뒤를 돌아 이화를 주목하였다.
그리고 이윽고 함 서방의 발걸음이 멈추자, 이화 또한 발걸음을 멈추었다. 대문 앞에 선 이화가 대문을 올려다보았다. 재민의 집 대문과는 별 차이가 없었지만 대군, 왕족의 집이라서 그런지 대문에서 조차도 웅장함이 가득하였다.
이화가 살짝 긴장을 하고 있는 사이, 대문이 열렸다. 밖으로 나온 청지기로 보이는 사내가 인사를 하자, 함 서방 또한 인사를 했다. 몇 마디를 나누더니 함 서방이 이화의 곁으로 왔다.
“신시 반각에 다시 아씨를 모시러 오겠습니다.”
“네. 이따 뵐게요.”
함 서방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한 걸음 물러서자, 최 서방이 나서서 이화를 반겼다.
“아씨, 쇤네를 따라 오시지요.”
“네.”
최 서방이라는 자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온 이화가 앞장 선 이를 따라 가며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자신 또한 큰 기와집에서 살았고, 지금도 재민의 집에 살고 있지만, 이곳은 왠지 지금까지 이화가 가본 곳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왠지 모를 엄숙함이 가득 묻혀있는 길을 지나 최 서방이 길을 멈췄다.
최 서방이 한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지켜보던 이화가 고개를 돌려 마당 한 가운데 꾸며져 있는 정원을 바라보았다.
“아씨. 처음 뵙겠습니다.”
나이가 든 여인이 이화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더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 내었다. 이화 역시도 그녀에게 살짝 고갯짓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저는 이곳 살림을 도맡고 있는 박 씨입니다. 제가 안채로 모시겠습니다.”
최 서방이 이화에게 고개를 숙이고 몇 발을 뒷걸음 질 치고는 그곳에서 사라져버렸다. 이윽고 박 씨라는 여인이 이화를 이끌고 안채로 향했다. 이화의 눈앞에는 여느 기와집 안채와 같지만, 또 다른 기운이 감돌고 있어 다른 곳과는 같지만은 않은 그곳을 둘러보았다.
“마님, 호판대감 댁 아씨께서 드셨습니다.”
박 씨가 상전에게 아뢰자, 안에서는 부산스러운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방문이 활짝 열렸다.
“반갑습니다.”
라며 방에서 나온 보배가 이화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문을 열고 나온 여인의 행동은 앳된 어린 아이 같았지만, 얼굴에는 조숙함이 가득했다. 어젯밤 이화가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여인의 모습에 이화는 그저 신기한 마음에 뚫어져라 그녀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리곤 이화는 그녀의 환대에 어쩔 줄 몰라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부부인마님.”
“예를 차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소저!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보배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어느 새 이화의 곁으로 내려와 그녀의 팔뚝을 잡아 이끌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 씨는 이화가 보지 못하게 보배에게 채통을 지키라는 듯 눈짓을 하였지만, 보배는 아랑곳하지 않고 미소를 흘리고는 이화를 방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소저의 함자...여쭤 봐도 될까요?”
이화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보배의 물음이 날라 왔다. 이화는 방석이 놓아진 곳에 앉아 그녀를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이은해라고 합니다.”
이은해, 재민이 이화를 양녀로 입적하며 이화에게 붙여준 이름이었다. 집안의 식구들은 이화를 별당 아씨라고 불렀기에 별 무리가 없었지만, 입에 붙은 이화라는 이름 대신 새로이 이름을 지어준 재민조차도 은해라는 이름이 착착 달라붙지 않는 지, 여전히 이화라는 이름을 조심스럽게 사용하고 있었다.
이화의 이름을 물어본 보배는 이화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더 하고 난 후에 자신에 대해서 소개했다. 이화 역시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미소가 지워지질 않았다.
“참으로 반갑습니다.”
보배의 얼굴에서는 연신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지엄하고 단아한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어제의 그 여인이 이화의 앞에 없자, 이화의 머릿속이 조금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마주 앉아 있는 여인의 모습이 참으로 다정했고, 부드러웠기 때문에 마주하는 것조차도 힘들까 걱정했던 어젯밤의 자신이 우스워지기까지 했다.
박 씨가 들여 주고 간 다과상을 가운데 둔 여인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담소를 나누었다.
“지금은 모란을 놓고 있습니다.”
“모란이요?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보배가 자신의 수틀을 당겨와 이화에게 보여주었다.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붉은 실이 어느 정도 모란의 형태를 잡고 있었다.
“모란의 꽃잎이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보배의 실력에 이화가 기가 죽은 듯 부러운 눈빛으로 수틀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화의 칭찬에 보배마저도 얼굴을 붉히면서 웃었다.
“소저의 솜씨 또한 유능하실 것 같습니다. 언제라도 좋으니, 소저의 솜씨를 보여주세요.”
보배가 반짝이는 눈으로 이화를 바라보자, 이화가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감히...부부인께 보여드릴 만큼 썩 좋지 않아서...”
“그런 말씀 마세요. 제 솜씨 또한 칭찬 받을 만한 솜씨는 아니지요.”
두 여인의 나긋한 웃음소리가 안채를 울렸다.
“아씨, 댁에서 사람이 모시러 왔습니다.”
그리고 어느 덧 함 서방이 이화를 데려가기 위해 이곳으로 올 시간이 되었다. 밖에서 최 서방이 시간을 알려오자, 보배가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화 또한 말이 통하는 벗과 헤어져야 함을 알고는 아쉬워하였다.
이화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보배가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이화의 손을 잡았다.
“자매 없이 자라서 그간 많이 외로웠습니다. 이렇게 소저께오서 와주셔서 참으로 감사할 뿐입니다.”
그녀의 말에 이화 또한 감격하여서는
“그런 말씀 마십시오... 부부인께서 소녀를 이렇게 반갑게 맞아주신 것이 더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다. 단지 겉치레로 주고받는 말들이 아니었다. 서로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두 여인은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서로를 보듬어주고 치유해주었다. 그 짧은 시간이 마지 몇 해를 넘긴 것처럼 그 여인들은 단 시간에 가까워져 있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자주 왕래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보배가 이화의 손을 꼭 잡았다. 이화 또한 다른 손을 내밀어 보배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네. 부부인”
“앞으로 소저와 저는 동지가 된 것입니다.”
보배가 환히 웃었다. 그녀의 말에 이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서촌 어귀에 모습을 들어 낸 류현은 조금 만 더 걸음을 하면 그가 돌아갈 수 있는 재민의 집이 나오는데도 멈춰선 걸음을 떼지 못하고 제자리에 서서 어물쩍거리고 있었다.
집무실에서 서류들을 헤집고 있던 류현에게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짐작하지 못했던 진만은 다른 때 같으면 퇴청시간을 알리는 북이 울리기 무섭게 집무실을 뛰쳐나갔던 그가 아직도 날이 어두워지는 것도 모르고 일에 파묻혀 있는 것을 찝찝하게 생각했다.
“도사님...? 댁으로 가시지 않으십니까?”
“아, 자네 먼저 들어가게.”
서류더미를 헤매고 있던 류현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진만은 안타까움이 가득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러는가?”
그의 표정을 본 류현이 묻자, 진만은 한숨을 길게 늘어놓았다.
“전처럼 하십시오. 어차피 지금 준비하고 있는 일들은 그렇게 빨리 처결을 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진만의 말을 들은 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서류더미들을 다시 제자리에 올려놓았다.
“혹 댁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것입니까? 어째서 요즘 따라 일에 몰두하시는 것입니까...?”
걱정이 가득담긴 진만의 목소리에 류현은 입 꼬리를 올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 일도 없네. 그저, 이것이라도 빨리 해결해 놓는다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그러네.”
복잡한 류현의 속사정을 자세히 알 수 없는 진만은 그가 무슨 말이라도 털어놓기를 원했지만, 그의 입에는 천근 같은 추가 달려있는지 쉽사리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무슨 말이라도 할까 싶어 잠시 자리에 서서 기다렸지만 류현에게서 돌아온 말은 그저 어서 집으로 먼저 돌아가라는 말 뿐이었다.
진만이 퇴청하고 난 뒤 반 시진 정도가 지나서야 류현 역시도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였다. 의금부 밖으로 나오자, 밖에는 깜깜한 어둠이 가득 차 있었다. 길을 지나고 있는 행인들도 없이 조용했다.
천천히 걸음을 거닐고 있었던 류현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오직 이화로 가득 찼었던 그의 머릿속에서는 그녀를 갈구하는 마음이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었지만, 그녀에게 손을 내밀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이 참으로 처량 맞고 한심스럽기만 했다.
그녀를 욕심냈던 자신이 참으로 어리석기만 했었다. 자신이 욕심내선 안 될 그녀였음에도 그녀를 원했다.
도성을 거닐고 있는 이들은 하나도 없었다. 조용함이 가득한 길거리에 오직 류현의 힘없는 발소리만 울렸다. 은은하게 깔린 달빛 아래를 걷던 류현의 발걸음이 멈춰졌다.
그리고 그가 높게 떠있는 달을 바라보았다.
“어찌 오늘 따라 네가 이리 마음에 가득 차는 것이냐...”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류현은 조금만 더 가면 되는 그 길에 멈춰 서서 달만 그리고 있었다.
그 날 밤, 방 안에 홀로 앉아 수를 놓고 있던 이화의 귓가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서 지게문을 열어 밖에 있는 누군가를 살펴보았다. 가을바람에 철릭 자락이 휘날리고 있었다.
이화가 있는 곳으로 돌아서려는 찰나, 다시 가던 길을 계속 걸었다. 그러다가 멈춰서더니 천천히 뒤를 돌았다. 그러다 지게문 너머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눈과 마주쳤다.
슬픈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류현이 이화의 눈에 들어왔다.
어떤 아픔이 그의 마음을 헤집어 놓는 것인지 이화는 그 아픔이 미워졌다. 그 아픔이 무엇인지 그 아픔으로 류현이 점점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것 같아 그 아픔이 미웠다.
두 사람은 고즈넉이 서로를 바라만 보았다. 그리 가깝지 않은 거리에서 아무 말도 오가지 않고 서로를 눈에 담기만 하였다.
‘왜 더 다가오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이화가 내뱉지 못하는 말을 속으로 되 내었다. 그 말이 류현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인지 그는 여전히 슬픈 눈으로 이화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가 뒤로 돌아섰다.
“도련님!”
이화가 애타게 류현을 부르자, 류현이 자리에 멈춰 섰다. 그의 발걸음이 멈춘 것을 확인한 이화는 서둘러서 밖으로 나왔다. 너무 서두른 것인지, 고운 비단신을 신고 뛰듯이 바쁘게 걷던 이화의 발이 치맛자락에 걸려 이화가 넘어지고 말았다.
“이화야!”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류현은 이화가 있는 곳으로 바삐 달려오더니 이화가 다친 곳이 없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화의 손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주던 류현의 눈앞에 고운 손이 아닌 거친 여인네의 손이 보이기 시작했다.
류현의 눈길이 자신의 비루한 손에 닿은 것을 보고는 이화가 부끄러워 자신의 손을 감추기 위해서 손을 빼내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녀의 손을 꽉 잡고 있는 류현은 여전히 미간을 찌푸린 채 그녀의 손을 눈에 담고 또 담았다.
“내가 못났다...”
“네...?”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이화는 조금 전의 다급함도 잊고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우둔하여 너를 힘들게 하였구나...”
“당치 않는 말씀이십니다...제가 원하여 한 일입니다...”
지난 일로 류현이 마음 아파하는 것을 알아챈 이화는 그를 달래듯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류현은 그런 이화의 마음을 알면서도 여전히 마음을 풀지 않고 이화의 손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류현의 손길이 자신의 손바닥에 닿자, 간지러움을 느낀 이화가 얼굴을 붉히면서 다시금 그에게 잡힌 손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남정네와 힘겨루기에서 이기지 못한 이화는 이내 그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
자신의 품에 이화를 담은 류현은 그녀의 등줄기를 쓰다듬으며 그녀의 귓가에 대고 조용하게 목소리를 풀어놓았다.
“너를 연모한다. 그러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련다.”
류현은 입으로 이화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미련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듯 그녀의 목 줄기에서 풍겨져 나오는 그녀의 향내를 들이켰다.
민망함에 휩싸인 이화는 그의 품에서 빠져나오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은은하게 풍겨져 나오는 류현의 냄새가 너무 좋아서 그 향에 홀린 듯 자리에 주저앉아 그에게 안겨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를 품에 담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무엇이 류현을 괴롭히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이화는 가만히 그의 넓은 등에 자신의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류현과 마찬가지로 이화도 그를 꽉 끌어안았다.
다시금 류현의 목소리가 이화의 귓가로 흘러들어왔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좀 전과 달리 슬픔을 담고 있었다.
“훗날 네가 나를 원망하는 날이 온다면...그 때도 나는 지금처럼 너를 연모하고 있을 것이다.”
그의 사랑을 듣고 있는 이화의 귀를 통해 그의 슬픔이 이화에게 전염되었다. 그가 보내오는 알 수 없는 슬픔에 이화 또한 그와 같은 슬픔에 빠져버렸다. 그렇지만 이화의 두 손은 더욱 힘껏 그를 껴안았다.
늦은 밤, 재민의 집에 낯선 이가 찾아왔다. 그는 재민에게 온 서찰 하나만 함 서방에게 넘기고 불현 듯이 사라졌다.
서찰을 보내 온 이는 진복이었다. 서찰에는 앞으로 직접 집으로 서찰을 보내는 것이 어려울 것 같다며, 앞으로는 장위동의 한 도살장에서 은밀하게 만날 수밖에 없다고 알려왔다.
재민이 침통한 표정으로 서찰을 호롱불에 가져다 대었다. 서찰은 흔적 없이 불타올랐다.
“이제 슬슬 때가 오는 것인가...”
이제 막 시작을 알리는 포성이 울렸다. 자신들의 목줄을 죄고 있는 자들의 목줄을 잡는 것, 두렵지만 흥미진진했다.
정세가 어떻게 뒤집어 질지 모르는 위험한 일이지만, 승리의 포효를 울부짖을 자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참으로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나라를 어지럽히는 사건들이 연신 터지고 있었다. 진복이 위험을 알리는 것을 재민을 통해 들은 류현은 더는 상단에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진만 또한 상단을 드나들 수 없어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했지만, 알 수 있는 길이 없었다.
“나리, 정호에게서 서찰이 왔습니다.”
진만이 류현에게 서찰을 넘겼다. 진만에게서 받은 서찰을 잽싸게 뜯어서 그 내용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정호의 글씨체는 여전히 수려했다. 천천히 서찰을 읽어가던 류현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내 서찰을 내팽겨 치듯 책상 위로 올려놓았다.
괴 소문! 정호가 보낸 서찰 안의 글들은 다시금 그때의 판결을 뒤집을 수도 있을 만한 소문이었다. 그렇지만 이미 소문의 진가를 맛 본 류현은 정호의 서찰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다시 서찰을 집어 들어 서찰의 내용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혹시라도 잘 못 본 것인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서찰의 내용을 다시 읊어보았지만, 정호는 틀림없이 위조은괴사건의 소문을 알리고 있었다.
류현은 서둘러서 종이를 찾았다. 붓을 들고 류현이 썩 보기 좋지 않은 글씨체로 글을 써내려갔다.
[조금 더 정확하게 조사해서 알려라.]
진만이 봉해진 서찰을 들고 사람을 개성으로 보냈다. 그리고 혼자 그곳에 남은 류현은 분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치고는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역시...끝이 너무 맹맹했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