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 당근을 주워
오월 하순 넷째 금요일은 형제끼리 1박 2일로 거제도 여행을 마치고 온 이튿날이다. 새벽녘 잠을 깨 전날 다녀온 여정을 기록해 두고 어디로 산책을 나설까 장소를 물색해 봤다. 지난주 창녕함안보를 건너 길곡에서 본포를 향해 걷다 노리를 지날 때 강변 대숲에 죽순이 솟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가끔 나가는 창원 대산 유등 강가 대숲 사정이 궁금해 거기로 나갈 볼까 싶었다.
아침 식후 아파트단지 이웃 동 뜰에서 꽃을 가꾸는 꽃대감을 만나 안부를 나눴다. 친구는 간밤 낮달맞이꽃을 영상으로 제작해 유튜브에 올려두었더랬다. 분홍색 낮달맞이꽃은 밤에도 꽃잎을 오므리지 않는 특성이 있다고 소개했다. 꽃대감의 꽃밭에는 붉은색 꽃양귀비가 피어 한창이었다. 앞뜰에 씨앗을 심어 싹을 틔워 어린 모종을 키우는 터를 둘러보고 나는 나대로 길을 나섰다.
버스 정류소로 나가 105번을 타고 창원역 앞으로 나갔다. 역전에서 유등 강가로 나가는 2번 마을버스를 탔다. 창원역에서 출발하는 2번 마을버스는 용강고개를 넘어 용잠삼거리에서 주남저수지를 거쳐 가술까지는 1번 마을버스와 운행 노선이 겹쳤다. 수산다리를 비켜 신전으로 가는 1번 마을버스는 운행 횟수가 잦고, 모산에서 북부리를 거쳐 유등으로 가는 2번 마을버스는 드물었다.
주남마을을 지나자 넓은 들녘은 모를 심으려고 무논을 다려놓았다. 대산면 소재지 가술에는 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입주를 마쳐 가동하는 공장이 있었다. 모산에서 북부리를 지나니 강언덕에는 작년 이맘때 방송 드라마 배경이 되어 유명해진 노거수 팽나무가 우뚝했다. 길고 긴 강둑은 노란 금계국이 피어 눈길을 끌었다. 금계국은 개화기간이 꽤 길어 장마철까지 볼 수 있을 듯했다.
북부리에서 유등 종점을 앞둔 유청에서 내렸다. 오래전 폐교된 초등학교 자리는 지역대학에서 후진을 가르치던 교수가 개인 미술관으로 꾸며 놓았다. 미술관을 지나 강둑으로 나가니 작은 절이 있는데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둔 펼침막이 걸려 있었는데 그 내용이 ‘모두가 부처님이십니다’였다. 강가로 가는 언덕길에는 오색 연등을 줄지어 걸어둔 통도사 말사로 알려진 서원사가 나왔다.
둑 너머에 국가 하천 낙동강이 흘렀다. 북향 기슭은 대숲이 울창한데 사유지가 아닌지라 죽순이 솟는 철이면 내가 마음 놓고 채집해 이웃과 나누어 찬거리로 삼아 왔다. 강 언저리는 내수면 어로작업으로 생계를 잇는 노부부가 찾는 곳이다. 주말이면 여가를 보낼 곳 없어 방황하는 동남아 청년들이 낚시를 다녀가기도 했다. 해마다 솟는 죽순은 내 말고도 꺾어가는 이가 있는 듯했다.
인적이 끊어졌고 물억새와 갈대가 시퍼렇게 자란 둔치에서 대숲으로 들어갔다. 대나무 그루터기 바닥은 아직 죽순이 솟아나지 않아 잠시 의아했다. 며칠 전 창녕함안보를 건너간 강가에서는 분명히 죽순을 봤는데 거기는 솟아 있지 않았다. 올봄 우리 지역의 강수량은 흡족해 어디나 조건은 같았으나 볕이 바른 곳과 응달의 차이로 거기는 죽순이 솟아나지 않는 이유가 되지 싶다.
강가 대숲은 이번 주말 예보된 비가 내리고 나면 죽순이 솟아 나올 듯했다. 대숲에서 발길을 돌려 금계국이 가득 핀 둑길을 걷다가 비닐하우스에 키운 당근 수확이 끝난 논으로 가봤다. 이모작 뒷그루로 심은 당근을 캐낸 자리는 모를 내려고 무논으로 다려질 차례가 기다렸다. 당근 수확을 마친 논에 이삭으로 남겨진 당근이 흩어져 있었다. 모양이 뒤틀리거나 상처 난 당근이었다.
상자에 담지 않고 버려진 당근 가운데 쓸 만한 것을 고르니 짧은 시간 수북이 쌓였다. 뿌리에 묻은 흙을 털고 비닐봉지에 담아 배낭과 보조 가방에도 가득 채웠다.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동네 어귀 한식 뷔페에서 점심을 들었다. 식후 마산에서 들어온 버스를 타고 들판을 지나 주남저수지를 돌아 시내로 복귀했다. 이삭 당근은 양이 많이 이웃에게도 넉넉히 나눌 수 있었다. 23.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