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에우메네스를 '히스토리아'라는 만화를 통해 알았습니다. 저는 알렉산드로스대왕 사후에 셀레우코스,마케도니아,프롤레마이오스,박트리아? 등으로 헬레니즘 세계가 나누어졌다~~~~고 이정도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충 네이버에서 알아보니 '아르기라스피네스'라는 최강연대의 대장으로 '제국통일파'로 섭정2명 휘화로 나머지 장군들과 싸우다 시리아의 안티고노스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정도 더군요.
제가본 글에서는 플루타르코스의 글을 인용해 만화처럼 대단한 인물은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제가 이제까지 알렉산드로스사후의 헬레니즘사정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바로 로마로 넘어가다보니 이기간동안의 '동방'사정을 모르겠네요.
에우메네스는 '제국통일파'로 싸운 곧은 장군인가요? 아니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운장군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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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요즘에 여기 질문을 몇개을 올렸는데, 이자리를 빌어 답변해 주신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
활발한 활동이 일어나는 게시판을 보니 평소에 궁금해도 넘어갔던것을 계속 물어보고 싶어지네요 ^^
참고로 굉장히 19금 적이랍니다... 그리고 상당히 현실에 기초한 것은 맞습니다. 페체타이로이 헤타이로이등의 병과도 나오죠. 물론 소설적인 부분이 많기도 합니다.. 에우메네스는 알렉산더의 보좌관중 하나로 나오는데 전형적인 문관으로 겁이 많고 소심한 그의 비서... 로 나옵니다...
대충 평가를 정리해보면 "시류를 잘못 탄 비운의 장군" 정도의 그림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다른 장군들과는 달리 문무를 겸비한 지장으로써 높이 평가받았고, 성심성의껏 알렉산더를 보좌하다가 그의 사후 무너져가는 제국을 떠받치려 했으나 결국 대세를 뒤집지 못하고 병사들과 장군들 모두의 눈밖에 나 비참한 취후를 맞이하게 되죠.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가 인망을 잃은 이유가 개인의 실책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겠죠. 오로지 군사면에만 치중하고 있던 거칠고 호탕한 장군들과는 달리 에우메네스는 학식과 이성, 그리고 온화함을 겸비한 타입의 인물로써 알려져있고, 마케도니아 장군들과는 기질적으로 전혀 섞여들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로 인해 알렉산더 생전에도 무인들과 장군들은 에우메네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요. 그러나 알렉산더는 에우메네스의 재능을 인정하고 그를 보좌관 및 비서관인 동시에 장군의 일원으로써 후하게 대접해줍니다.
결국, 일종의 '쿠데타'와 같은 사태에 직면하여 병사들은 무골형 호인들에게 더 끌렸나봅니다. 명분과 원칙에 충실하고, 유능한 관료이지 군지휘관이었음에도 병사들은 그를 진심으로 따르지 않았고, 결국 그와 대립관계에 있던 장군들을 지지하면서 에우메네스와 그가 보호하던 알렉산더의 제국은 함께 무너지게 되었죠.
플루타르크 영웅전 에우메네스편을 보면 에우메네스가 아이기라스피네스들에게 배신당해 안티고노스에게 끌려 가기전 마지막으로 병사들에게 연설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연설로 병사들은 동요하지만 결국 노장들인 아이기라스피네스들이 에우메네스를 연단에서 끌어냅니다. 플루타르크는 에우메네스에 대한 평가를 상당히 혹독하게 하더군요. 하지만 그 평과 이유를 들어 보면 플루타르크가 잘못 알거나 판단을 잘못한 것이라 봅니다. 디아도코이(후계자전쟁)의 원인이 에우메네스에게 있는 것이 아니며, 무엇보다도 죽음을 앞에 두고 살고자 몸부림 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 아닐까? 그렇게 구차하게 보이진 않던데...
질문자의 질문에 답하자면 ... 플루타르크는 후자쪽이라 평했지만 저는 전자쪽의 인물이라 봅니다. 하지만 '제국통일파'에 섰다고 해서 그것이 곧은 인물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을까요? 제국통일파에 섰긴 했지만 워낙 영리해서 실익은 다 챙겼던 위인이기에 딱 잘라 말하기 어렵군요. 헌데 위의 에우메네스에 대한 글은 어떤 것입니까? 읽어보고 싶군요.
어이없이 죽은 명장중 하나이지요 -_-;; 아기라는 롬토에도 이름이 보이는 "은방패" 들로 인도 원정 전에 (도중이었던가) 고참 페체들을 재조직한 베테랑들입니다 (40~50 대의 나이임에도 20 대의 팔팔한 페체들을 전면으로 박살내는 포스를 가지고 있지요, 롬토에 나오는 실버실드는 이름만 딴 엘리트부대 입니다)
짬밥 끕수가 높은지라 -_-;; 그동안 쌓아놓은 전리품이 차암 많습니다 - 문제가 여기서 발생하지요, 에우메네스는 안티고누스를 계속 패퇴시켰으나 마지막 전투에서 안티고누스가 패주하는 와중에 요령좋게 아기라스피다이 들의 전리품 트레인 (처자식 포함) 을 스틸 -_-;; 하고 도망갑니다. 이후 안티고누스와 아기라 사이에 전리품과 에우메네스 교환 문제가 비밀리에 논의되고 "남자답지 못한" (이들이 모시던 알렉과 비교하면 더욱) 에우메네스에게 그리 충성심이 높지 않았던 아기라들은 거래를 받아들입니다.
에우메네스 아들 (에우메네스 2세) 가 엄청나게 큰 도서관을 지은 후 비싼 프톨레미의 파피루스를 대신해 양피지를 사용하여 처음으로 두루마리가 아닌 "책" 이 나왔고 이것 때문에 프톨레미 파피루스 장사 타격 어쩌고 저쩌고... 사실 책도 어원을 살펴보면 "페르가뭄의 파피루스" 였다나 어쩌구 저쩌구... ㅇㅅㅇ;;; 이것에 대해 정확한 사실을 알고 계시는 분은 아래에 꼬릿글 남겨 주세요 ( ..)
양피지에 대한 얘기는 예전에 질문을 올렸던거 같은데... 흠 프톨레팩션이 문화경쟁국가인 페르가몬 왕국을 위협하기위해 파피루스 수출을 금지하면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페르가몬에서는 양피지를 개발했다고 하는데 개발이라기 보다는 개선이 더 적절할 듯 싶군요.
그런데 이슬람 세력이 이집트를 정복했을 때,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장서들을 가지고 목욕탕 땔감을 썼다는 야사가 전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군요. 오히려 당시의 이슬람은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대단히 후원하였고 알렉산드리아를 부흥시키려고 부단한 노력을 하지 않았던가요? 오히려 과격한 기독교 세력의 탄압이 도서관 파괴에 결정타였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 왜 백주 대낮에 천재 여류 수학자(정확한 이름이 기억나질 않는군요)를 납치해서 날카로운 조개껍질로 베어죽이는 짓조차 서슴없이 저지른 사제와 일당들이 있을 정도 아니였습니까?
비슷한 경우가 있습니다. 칼리프 우마르가 페르시아의 군데샤푸르를 점령했을때, 그곳의 수많은 장서들이 불태워지고, 물속에 던져졌죠. 그래서 이븐 할둔은 이슬람 이전 나바테아인이나 칼데아인의 학문은 남은게 없다 라고 주장할 정도지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경우 이슬람 세력이 점령했을때는 뭐 태우고 자시고할
뭐... 카톨릭 교회에서 그랬다기 보단, 일반 십자군 군대들이 저지른 일이죠. 현재 카톨릭 교회가 상당히 나쁘게 비추어지고 있는데, 사실 이건 프로테스탄트의 모함이죠. 마녀, 종교 재판도 한꺼번에 불에 태운다거나 뭐 그런 일은 스페인에서나 있었고 (그리고, 이런 스페인의 행위를 바티칸은 반대했습니다) 종교재판도 상당히 이성적으로 진행되었고 각각 재판에 대해 정밀한 기록들을 남겼죠. 바티칸은 과학을 중시해서 해부학 (여기에는 시체의 해부도 포함합니다), 천문학, 화학등 (갈릴레오의 재판은, 상당히 예외적인 케이스예요)을 연구했거 중세주민들은 대게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첫댓글 대단한 역량의 인물이 아니라면 영웅전에 실릴리가 없겠지요. 고대사의 영웅중 한명입니다. 길지 않은 분량이니 직접 읽어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명분이냐 이익이냐를 놓고 본다면 인간이나 세계흐름이나 명분을 빙자한 이해관계에 의해 흘러갔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네요.
'알렉산드로스'라는 소설책 읽어보시지요. 상당히 현실에 기초한 소설이라 생각됩니다. 여기에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아주 조금은) (영화 '알렉산더'나오고 나서는 '알렉산더 대왕'으로 책이 껍데기가 바꼈더군요. (알맹이는 않읽어보아서;)
참고로 굉장히 19금 적이랍니다... 그리고 상당히 현실에 기초한 것은 맞습니다. 페체타이로이 헤타이로이등의 병과도 나오죠. 물론 소설적인 부분이 많기도 합니다.. 에우메네스는 알렉산더의 보좌관중 하나로 나오는데 전형적인 문관으로 겁이 많고 소심한 그의 비서... 로 나옵니다...
angelmai/ 네이버에 있는 글을 자세히 보니, 그 글의 결론은 = 에우메네스는 분명한 영웅이었다. 비범한 능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만화책에서 나온 만큼 '완벽한' 인재는 아니었다.= 였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영웅이 어디있습니까/ㅎㅎ
대충 평가를 정리해보면 "시류를 잘못 탄 비운의 장군" 정도의 그림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다른 장군들과는 달리 문무를 겸비한 지장으로써 높이 평가받았고, 성심성의껏 알렉산더를 보좌하다가 그의 사후 무너져가는 제국을 떠받치려 했으나 결국 대세를 뒤집지 못하고 병사들과 장군들 모두의 눈밖에 나 비참한 취후를 맞이하게 되죠.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가 인망을 잃은 이유가 개인의 실책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겠죠. 오로지 군사면에만 치중하고 있던 거칠고 호탕한 장군들과는 달리 에우메네스는 학식과 이성, 그리고 온화함을 겸비한 타입의 인물로써 알려져있고, 마케도니아 장군들과는 기질적으로 전혀 섞여들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로 인해 알렉산더 생전에도 무인들과 장군들은 에우메네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요. 그러나 알렉산더는 에우메네스의 재능을 인정하고 그를 보좌관 및 비서관인 동시에 장군의 일원으로써 후하게 대접해줍니다.
결국, 일종의 '쿠데타'와 같은 사태에 직면하여 병사들은 무골형 호인들에게 더 끌렸나봅니다. 명분과 원칙에 충실하고, 유능한 관료이지 군지휘관이었음에도 병사들은 그를 진심으로 따르지 않았고, 결국 그와 대립관계에 있던 장군들을 지지하면서 에우메네스와 그가 보호하던 알렉산더의 제국은 함께 무너지게 되었죠.
여담) 히스토리에의 번역상 문제로 에우메네스의 고향이 '칼데아'로 나오는데.. -_-; 카르디아입니다. 카르디아는 Cardia이고 흔히 '칼데아'라고 부를 때는 Chaldea 라는 지역을 얘기하는데, 이 둘은 전혀 다른 곳이니 헷갈리시는 분이 없기를..
플루타르크 영웅전 에우메네스편을 보면 에우메네스가 아이기라스피네스들에게 배신당해 안티고노스에게 끌려 가기전 마지막으로 병사들에게 연설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연설로 병사들은 동요하지만 결국 노장들인 아이기라스피네스들이 에우메네스를 연단에서 끌어냅니다. 플루타르크는 에우메네스에 대한 평가를 상당히 혹독하게 하더군요. 하지만 그 평과 이유를 들어 보면 플루타르크가 잘못 알거나 판단을 잘못한 것이라 봅니다. 디아도코이(후계자전쟁)의 원인이 에우메네스에게 있는 것이 아니며, 무엇보다도 죽음을 앞에 두고 살고자 몸부림 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 아닐까? 그렇게 구차하게 보이진 않던데...
질문자의 질문에 답하자면 ... 플루타르크는 후자쪽이라 평했지만 저는 전자쪽의 인물이라 봅니다. 하지만 '제국통일파'에 섰다고 해서 그것이 곧은 인물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을까요? 제국통일파에 섰긴 했지만 워낙 영리해서 실익은 다 챙겼던 위인이기에 딱 잘라 말하기 어렵군요. 헌데 위의 에우메네스에 대한 글은 어떤 것입니까? 읽어보고 싶군요.
어이없이 죽은 명장중 하나이지요 -_-;; 아기라는 롬토에도 이름이 보이는 "은방패" 들로 인도 원정 전에 (도중이었던가) 고참 페체들을 재조직한 베테랑들입니다 (40~50 대의 나이임에도 20 대의 팔팔한 페체들을 전면으로 박살내는 포스를 가지고 있지요, 롬토에 나오는 실버실드는 이름만 딴 엘리트부대 입니다)
ㅎㅎ 이들은 전투전에 적들을 향해 '니들 애비들을 죽이려 하는거냐' 며 호통을 친다음 덤벼든다 하더군요...
짬밥 끕수가 높은지라 -_-;; 그동안 쌓아놓은 전리품이 차암 많습니다 - 문제가 여기서 발생하지요, 에우메네스는 안티고누스를 계속 패퇴시켰으나 마지막 전투에서 안티고누스가 패주하는 와중에 요령좋게 아기라스피다이 들의 전리품 트레인 (처자식 포함) 을 스틸 -_-;; 하고 도망갑니다. 이후 안티고누스와 아기라 사이에 전리품과 에우메네스 교환 문제가 비밀리에 논의되고 "남자답지 못한" (이들이 모시던 알렉과 비교하면 더욱) 에우메네스에게 그리 충성심이 높지 않았던 아기라들은 거래를 받아들입니다.
이후 안티고노스는 투항한 아기라들을 모두 해산시키고 다른 디아도키 왕국들에게 심한 다굴을 맞고 발칸 반도로 도망갈 때까지 가장 강한 팩션으로 남습니다. 에우메네스는 당연하게도 안티고노스에게 죽임당하나 그 후손이 페르가뭄 왕국을 세우고 소아시아 일대의 파워하우스가 되지요
에우메네스 아들 (에우메네스 2세) 가 엄청나게 큰 도서관을 지은 후 비싼 프톨레미의 파피루스를 대신해 양피지를 사용하여 처음으로 두루마리가 아닌 "책" 이 나왔고 이것 때문에 프톨레미 파피루스 장사 타격 어쩌고 저쩌고... 사실 책도 어원을 살펴보면 "페르가뭄의 파피루스" 였다나 어쩌구 저쩌구... ㅇㅅㅇ;;; 이것에 대해 정확한 사실을 알고 계시는 분은 아래에 꼬릿글 남겨 주세요 ( ..)
양피지에 대한 얘기는 예전에 질문을 올렸던거 같은데... 흠 프톨레팩션이 문화경쟁국가인 페르가몬 왕국을 위협하기위해 파피루스 수출을 금지하면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페르가몬에서는 양피지를 개발했다고 하는데 개발이라기 보다는 개선이 더 적절할 듯 싶군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전쟁에서 불탄 대도서관 장서를 다시 채워넣기 위해 카이사르가 페르가몬의 대도서관의 장서들을 왕창 뜯어왔다는 것은 어찌보면 참 아이러니 하군요.그런데 페르가몬에서 가져온 장서들은 책이었나요? 아니면 두루마리였나요?
파피루스 양피지 였겠죠? 양피지가 제책법으로 만들어 졌다고 하는데 두루마리도 있을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워낙 두꺼운 놈이라... 근데 그것도 훗날 목욕탕 땔깜용으로 사용된다는 걸 생각하면 OTL ...
그런데 이슬람 세력이 이집트를 정복했을 때,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장서들을 가지고 목욕탕 땔감을 썼다는 야사가 전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군요. 오히려 당시의 이슬람은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대단히 후원하였고 알렉산드리아를 부흥시키려고 부단한 노력을 하지 않았던가요? 오히려 과격한 기독교 세력의 탄압이 도서관 파괴에 결정타였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 왜 백주 대낮에 천재 여류 수학자(정확한 이름이 기억나질 않는군요)를 납치해서 날카로운 조개껍질로 베어죽이는 짓조차 서슴없이 저지른 사제와 일당들이 있을 정도 아니였습니까?
비슷한 경우가 있습니다. 칼리프 우마르가 페르시아의 군데샤푸르를 점령했을때, 그곳의 수많은 장서들이 불태워지고, 물속에 던져졌죠. 그래서 이븐 할둔은 이슬람 이전 나바테아인이나 칼데아인의 학문은 남은게 없다 라고 주장할 정도지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경우 이슬람 세력이 점령했을때는 뭐 태우고 자시고할
건덕지도 그리 남지 않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백주 대낮에 테러당한 여류 수학자는 이름이 아마 히파티아일겁니다.
뭐... 카톨릭 교회에서 그랬다기 보단, 일반 십자군 군대들이 저지른 일이죠. 현재 카톨릭 교회가 상당히 나쁘게 비추어지고 있는데, 사실 이건 프로테스탄트의 모함이죠. 마녀, 종교 재판도 한꺼번에 불에 태운다거나 뭐 그런 일은 스페인에서나 있었고 (그리고, 이런 스페인의 행위를 바티칸은 반대했습니다) 종교재판도 상당히 이성적으로 진행되었고 각각 재판에 대해 정밀한 기록들을 남겼죠. 바티칸은 과학을 중시해서 해부학 (여기에는 시체의 해부도 포함합니다), 천문학, 화학등 (갈릴레오의 재판은, 상당히 예외적인 케이스예요)을 연구했거 중세주민들은 대게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에우메네스 2세는 위에서 나온 '카르디아의 에우메네스'와는 상관 없는 페르가몬 왕조의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