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천역 가는 차표 한 장 주소.
이동민
사철 푸른 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건천역으로 길게 연기를 끌면서 기차가 느릿느릿 들어온다. 기차는 칙, 칙 거릴적마다 하얀 수증기를 쏟아냈고, 푹-, 푹-, 소리 내면서 다시 떠나갔다. 기차가 떠나가자 플랫홈은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물결을 지으면서 대합실로 밀려갔다. 그리고는 한지에 떨어진 물방울이 스며서 퍼지듯이 사방으로 흩어져 버린다. 내게 떠오르는 건천역 모습이다.
서울에서 생활하던 조지훈이 목월을 찾아와서 내린 역이 바로 건천역이다. 플랫홈에서 두리번거리자 허름한 차림의 목월이 달려와서 팔을 벌려 껴안았다. 조지훈이 목월을 찾아와서 보름을 머물면서 함께 막걸리를 마셨고, 불국사에도 갔다. 조지훈이 목월을 찾아 왔다. 건천역에서 내려 목월을 만났으리라. 우리 고을 사람들은 모두가 조지훈이 목월을 찾아 왔을 때 그의 고향역인 이곳, 건천역에서 내렸다고 믿는다.
지훈도 목월도 술을 좋아했다. 그때 남긴 시가 ‘나그네’이다.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플렛홈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가이 없이 넓은 들녘이 펼쳐진다. 들녘의 끝쯤에 내가 살았던 천포 마을이 보인다. 마을의 뒷 편에는 봄철이면 홍도화로 둘러 싸인 우리집도 보인다. 목월의 시를 읽고, 나는 먼 먼 그때의 우리 마을로 여행을 해본다. 구름에 달 가듯이 들녘을 지나면 나타나는 술익는 마을이 내가 살았던 천포 마을이 아니었을까. 나는 꿈속에서 모네가 그린 생 라자르 역처럼 뿌옇게 흐려져 있는 건천역으로 달려가고 있다.
대학을 다닐 때는 토요일 저녁이면 으레 건천역의 플렛홈에 내렸다. 눈을 들어 저 멀리 대기의 흐릿함 속에 가물거리는 우리집을 바라보았다. 목월이 플렛홈에서 바라 보았던 풍경이 바로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나그네’에서 묘사한 술 익는 마을이지 않을까. 지금 나는 비로 그 플렛홈에 서서 우리집을 바라보고 싶지만 이제는 건천역으로 데려다주는 기차표를 팔지 않는다고 한다. 나를 건천역으로 데려다 주는 표를 파는 곳은 없을까? 잠시 상념에 젖어본다.
시커먼 연기를 길게 꼬리처럼 끌면서 기차가 들어와서 멎었다. 플랫홈은 삽시간에 새까만 물결로 뒤덮인다. 그 물결 속에는 나도 섞여 있었다. 대합실을 빠져 나오면 삽시간에 사방으로 흩어져서 숨어 버린다. 물결을 이루었던 숱한 이름도 흔적없이 스러져버리고, 이제는 기억나는 이름도 많지 않다. 이름은 없이 그냥 얼굴만, 까만 세라복만, 간둥거리던 두 가닥의 머리가닥의 모습만, 모두 들 안개속이다.
모처럼 생각나는 이름이 있었다. 오래 전에 고향 친구를 만나서 그의 안부를 물었더니, ‘누구? 아 그 친구 부산에서 살다가 죽었어, 술을 그렇게 퍼 마시더니.’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나는 까만 세라복의 그 여학생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알고 싶었다. 뿐만이 아니고 희끄므레한 형상으로만 나타나는 옛 고향 사람의 요즘 모습도 알고 싶었다. 그러나 나를 떠난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나를 찾아올까. 변한 모습을 보기가 두려워서 물어보지 않았다.
나에게 건천역이 거리가 멀어진 것은 아니다. 고속도로는 바로 우리 마을의 곁을 지난다. 지금까지 나는 그 길을 수도 없이 지나다녔다. 지나갈 적마다 차창 너머로 나의 지난 날을 담아보곤 하였지만, 이제는 담아지지 않는다. 어릴 적 친구들과 날마다 올라가서 뛰놀았던 뒷동산은 짙은 숲에 묻혀 옛 모습은 사라지고 없다. 그러니 내 기억도 나무숲에 갇혀버려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없다. 거리는 그때보다 훨씬 더 가까워졌는데도 왜 이리 아득하게 보일까?
건천역은 시간으로 겹겹이 포장해둔 액자 속의 그림만으로 남아 있다. 건천역의 플랫홈에 내려보고 싶어서, 기차표를 구하려 여기저기 수소문해보았다. 포항으로 가는 무궁화 호 기차가 건천역을 지난다고 하였다. 나는 표를 사서, 내가 기차를 타고 달렸던 옛 그 길을 무궁화 호 기차를 타고 달려가 보았다. 건천역에서 서지도 않고 지나갔다. 긴 연기를 뿜으면서 천천히 달리던 옛날의 기차가 아니다. 무궁화 호는 기적도 울리지 않고 건천역을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쳤다. 들녘 너머 보이는 내가 살던 마을도 저멀리서 작아져 버렸고, 우리집으로 찾아 가서 회상에 젖어 볼 여유를 주지 않는다.
나무들과, 나무들 사이로 알록달록한 지붕들이 햇볕 속에 반짝거린다. 그것도 뒤로 움직이더니 무궁화 호가 눈깜짝할 사이에 산 모퉁이를 돌아가자 흩어져버린 내 기억처럼 마을과 함께 사라져버린다. 이제는 건천역에서 들녘 너머로 바라보았던 풍경들이 액자 속의 그림으로도 남아 있지 않는다. 액자를 싸는 포장이 겹겹이 두터워지면서, 내 생각 속의 액자 그림은 자꾸 흐릿해진다.
옛날의 건천역에 내려 주는 기차표를 살 수 없을까요.
23. 3. 20
첫댓글 다시 디뎌 보고 싶습니다.
아련한 삶의 흔적들
살금살금 따라가며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