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로와 김영란법
2016년 9월 28일부터 김영란
법이 발효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사회가 긍정적으로 변
화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
람입니다.
“와이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김영란법의 단초를 제공해준 것
이 “와이로”가 아닌가 생각이 듭
니다.
“와이로(蛙利鷺)”이란?
어릴 때부터 많이 듣고 자랐지요.
“와이로” 쓴다. 청탁이나 뇌물을 만합니다.
임금이 하루는 단독으로 야행(夜行)을 나갔다가 깊은 산중에서 날이 저물었다.
오행(僥倖)히 민가(民家)를 하나 발견하고 하루를 묵고자 청을 했
지만 집주인{이규보(李奎報)선
생}이 조금 더 가면 주막(酒幕)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자 임금은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런데 그 집(이규보) 대문에 붙
어있는 글이 임금을 궁금하게 했
다.
唯我無蛙 人生之恨(유아무와 인
생지한) :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다.”
“도대체 개구리가 뭘까..?”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어느 만큼
의 지식(智識)은 갖추었기에 개
구리가 뜻하는 걸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주막에 들려 국밥을 한 그릇 시켜 먹으면서 주모(酒母)에게 외딴 집(이규보의 집)에 대해 물어 보
았다.
그는 과거(科擧)에 낙방(落榜)하
고 마을에도 잘 안나오며, 집안에
서 책만 읽으면서 살아간다는 얘
기를 들었다.
그래서 궁금증이 발동(發動)한 임금은 다시 그 집으로 가서 사
정사정한 끝에 하룻밤을 묵어갈 수 있었다.
잠자리에 누웠지만 집 주인의 글 읽는 소리에 잠은 안 오고해서 면
담(面談)을 신청(申請)했다.
그리고는 그렇게도 궁금하게 여
겼던 유아무와 인생지한(唯我無蛙 人生之恨)이란 글에 대해들
을 수 있었다.
옛날, 노래를 아주 잘하는 꾀꼬리
와 목소리가 듣기 거북한 까마귀
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꾀꼬리
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있을 때, 까마귀가 꾀꼬리한
테 내기를 하자고 했다.
바로 “3일 후에 노래시합을 하자
”는 거였다.
백로(白鷺)를 심판(審判)으로 하
고 노래시합을 하자고 했다.
이 제안에 꾀꼬리는 한마디로 어
이가 없었다.
노래를 잘 하기는커녕 목소리 자
체가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자신
에게 노래시합을 제의 하다니, 하
지만 월등(越等)한 실력(實力)을 자신(自信)했기에, 시합(試合)에 응(應)했다.
그리고 3일 동안 목소리를 더 아
름답게 가꾸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반대로 노래시합을 제의
한 까마귀는 노래 연습은 안하고 자루 하나를 가지고 논두렁의 개
구리를 잡으러 돌아 다녔다.
그렇게 잡은 개구리를 백로(白鷺
)한테 뇌물로 가져다주고 뒤를 부탁한 것이었다.
약속한 3일이 되어서 꾀꼬리와 까마귀가 노래를 한 곡씩 부르고 심판인 백로의 판정을 기다렸다.
꾀꼬리는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잘 불렀기
에 승리를 장담했지만 결국 심판
인 백로는 까마귀의 손을 들어주
었다.
한동안 꾀꼬리는 노래시합에서 까마귀에 패배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서 백로가 가장 좋아하는 개구리를 잡아다 주고,
까마귀가 뒤를 봐 달라고 힘을 쓰
게 되어 본인이 패배한 사실을 알
게 되었다.
그 후 꾀꼬리는 크게 낙담하고 실
의에 빠졌다.
그리고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다.”라는 글
을 대문 앞에 붙이여 놓았다고 한다.
이 글은 이규보선생이 임금한테 불의(不義)와 불법(不法)으로 뇌
물을 갖다 바친 자에게만 과거급
제의 기회를 주어 부정부패로 얼
룩진 나라를 비유(比喩)해서 한 말이었다.
이때부터 와이로(蛙利鷺)란 말
이 생겼다.
. 蛙 : 개구리 와,
. 利 : 이로울 이,
. 鷺 : 백로 로
이규보선생 자신(自身)이 생각
해도 그의 실력(實力)이나 지식
은 어디에 내놔도 안 떨어지는데 과거를 보면 꼭 떨어진다는 것이
었다.
돈도 없고, 정승(政丞)의 자식(子息)이 아니라는 이유(理由)로 과
거를 보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노래를 잘하는 꾀꼬리와 같은 입장이지만 까마귀가 백로
한테 개구리를 상납(上納)한 것
처럼 뒷거래를 하지 못하여 과거
에 번번이 낙방하여 초야(草野)
에 묻혀 살고 있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임금은 이규보 선생
의 품격(品格)이나 지식이 고상
(高尙)하기에 자신도 과거에 여
러 번 낙방(落榜)하고 전국을 떠
도는 떠돌이인데 며칠 후에 임시
(臨時) 과거가 있다 해서 개성으
로 올라가는 중이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 후에 궁궐(宮闕)에 들어와 임
시 과거를 열 것을 명(命)하였다
고 한다.
과거를 보는 날 이규보선생도 뜰
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마음을 가다듬으며 준비(準備)를 하고 있을 때 시험관(試驗官)이 내 걸
은 시제(詩題)가 바로 “유아무와 인생지한(唯我無蛙 人生之恨)”
이란 여덟 글자였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게 무엇을 뜻 하
는지를 생각하고 있을 때, 이규보 선생은 임금이 계신 곳을 향해 큰 절을 한 번 올리고 답을 적어 냄
으로써 장원급제(壯元及第)하여 차후 유명한 학자가 되었다고 한
다.
이때부터 “와이로(蛙利鷺)” 유아
무와 인생지한(唯我無蛙 人生之恨)란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또한 일본말 와이로 유래되었다
고도 한다.
첫댓글 좋은글 잘 봤습니다ㅎ
이런 깊은뜻이 있었군요.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