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꽃
박운현
나는 복숭아를 좋아한다.
요즘 아름다움과 건강의 열풍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각광을 받고 있는 과일이다. 아름다움을 가꾸는 여성들에게는 미용효과를,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에게는 니코틴 제거를, 술을 먹는 사람들에게는 숙취 해소를 하여 더욱 사랑을 받고 있다. 외양도 불그스레하고 탐스럽게 생겨 구미를 당기게 한다.
각종 유기산, 비타민, 아미노산 등의 성분이 들어있어 피를 맑게 하고 간기능을 돋우며 변비, 대장암을 예방하고 활성화산소나 환경 독성물질을 없애준다. 그야말로 건강식품으로서 최고의 종합영양제라고 할 수 있으니, 여름철 여러 종류의 과일가운데서도 이만한 것도 없으리라.
땅이 비옥하고, 산이 아름답고, 물이 맑은 청도는 감 이외에도 복숭아 생산이 많은 지역이다. 이름하여 ‘복숭아 곳’이다. 복숭아나무는 거친 모래땅이나 자갈이 있는 땅, 기름진 땅, 어느 곳이든 가리지 않고 질소 질이 풍부한 토양에 잘 자란다.
대부분의 새로운 개량품종들은 충분한 크기로 자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열매가 달리는데, 개화기 이후 달포가 지나면 작은 열매들이 자연적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남아 있는 열매도 많이 있어 솎아주기를 해야 한다.
복숭아하면 주저없이 무릉도원의 전설이 머리에 떠오른다. 복숭아꽃이 만발한 무릉도원은 신선이 살았다는 전설적인 이상향이라는 곳이다. 무릉도원의 전설은 이렇다.
“옛날 한 어부가 어느 날 복숭아 꽃잎이 떠내려 오는 강을 따라 올라가게 되었다. 한참을 올라가다보니 그 곳에는 복숭아꽃이 만발한 어떤 마을이 있었는데, 비옥한 논밭에는 남녀가 즐거운 표정으로 농사를 짓고 있었다. 어부는 그 마을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으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가 그가 살던 집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는데, 고을 태수에게 사실을 알리자, 고을에서는 어부의 말을 듣고 그 곳을 찾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 곳을 찾아봐도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곳이 살기 좋은 이상향이라 했다”고 한다.
지역민들의 심성이 밝고 낙천적이며, 5월이면 지천으로 피어있는 복숭아꽃이 동산을 이루고, 흐르는 강물에 복숭아 꽃잎이 떠내려가는 청도가 바로 무릉도원이 아니겠는지.
청도의 복숭아는 국내소비는 물론 외국에도 수출을 하는 등 최근 전국에서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청도지역의 산비탈에는 대개 복숭아밭이 차지하고 있다. 복숭아농사가 농촌에는 주 소득원이다. 옛날에는 밭에 보통작물, 이를테면 보리, 밀, 콩, 감자, 고구마, 옥수수 조 등을 재배하였으나 지금은 소득이 높은 복숭아가 차지하고 있다. 아무래도 복숭아 소득이 다른 작물에 비해 높은 이유일 것이리라.
내 어린 시절 우리 집에도 복숭아 농사를 지었다. 쌀농사보다 소득이 많아서다. 집 앞 채전에는 부식거리 채소를 가꾸고, 나머지 밭은 복숭아나무를 심어 농사를 지었던 것이다. 복숭아밭 규모는 그리 너른 편은 아니었다. 1천㎡정도였으니. 그렇지만 복숭아농사라는 게 그 정도의 규모라도 만만치만은 않다.
2,3월이면 복숭아나무 가지를 복숭아가 적정수준으로 달리게 가지치기를 하고 거름을 주고 소독을 한다. 거름은 퇴비나 소, 돼지, 닭똥 등을 주고, 소독은 유황성분의 농약을 뿌린다. 유황소독약은 덩어리를 갖고 와 드럼통에 넣고 물을 부어 불을 지펴서 녹인다. 고형의 유황이라 쉽게 잘 녹지는 않는다. 불을 강하게 지피면서 해야만 서서히 녹아내리면서 액상의 농약으로 변한다. 물론 모두가 이런 방법으로 하는 건 아니다.
농약상에서 액상의 농약을 구매하여서 물에 일정비율로 희석하여 바로 소독을 하기도 한다. 고형의 유황을 녹여서 하게 되면 일손이나 땔감이 필요하니 일이 번거롭고, 힘이 드는 그러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유는 약효가 액상보다 뛰어난다는 생각에서다.
우리 집에는 연로한 부모님과 나이어린 두 남동생이 있었다. 부모님은 농사를 짓고 나, 동생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아니고서는 복숭아 농사에 전적으로 매달릴 수는 없었다. 공휴일이나 토요일 오후에 주로 일을 할 수 있었으니.
유황 농약 같은 것도 바로 농약상에서 액상의 농약을 구매하여 살포할 수밖에 없었다. 고형의 유황을 녹여서 만든 것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그때는 우리 집의 농사방법이 손으로 하는 재래식이었다. 소독기래야 발판에다 발로 밟고 양쪽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뒤로 밀었다 앞으로 당겼다 하는 순 수동식 농기구였다.
하루는 아버지와 함께 둘이서 복숭아 소독을 하기 위해 소독기를 손수레에 싣고 복숭아밭으로 향했다. 밭이 있는 곳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입구 부근 산비탈 밭이었다. 밭 아래는 가까운 저수지가 있었다. 물은 양동이로 수차례나 퍼 옮겨 날랐다. 고무 통에다 물을 갖다 붓고 갖고 온 농약병의 뚜껑을 열고 농약을 일정한 희석비율에 따라 넣어, 막대기를 휘~휘~ 저어 살포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농기구 호스를 농약 고무통에 담궈 살포한다.
계절은 바야흐로 늦은 봄날이라 날씨도 더웠다. 이내 땅방울이 얼굴에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하였다. 봄바람이 남녘에서 살랑살랑 불어왔지만, 농약을 살포하면서 나는 땀방울이 가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버지와 나는 농약을 살포하면서 갈마들며 역할을 맡아하였다. 농약을 직접 살포하거나, 농약을 펌프질하여 보내는 것이나, 모두가 매한가지로 힘든 일이라 그렇게 한 것이다. 그래야만이 일의 능률이 오르고 힘이 덜 들게 되는 것이니.
힘들게 짓는 복숭아농사 일이기는 하지만, 수확의 기쁨을 생각하면 그래도 그렇게 힘이 들지만은 않는 것 같았다. 복숭아 농사가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는 것이다. 나와 두 동생은 학교에 다니는 어린 학생으로서, 아버지는 연로한 노인으로서, 힘이 부치는 농사를 그렇게 지었던 것이다.
그래도 아버지는 나에게 “이 복숭아농사로 우리 집 살림을 살게 해 주고, 소비자에게는 맛있는 먹거리를 제공해주는 보람 있는 일이라”며, “힘들지만은 수확의 보람을 생각해서라도 싫증 내지말고 일하자”고, 나를 다독이시던 때가 오십여 년이 흐른 지금도 어제일인 듯 기억에 생생하다.
더러는 어머니와 함께 복숭아밭에 나가 일을 하기도 하였다. 장마가 지나가는 6,7월이면 복숭아밭에는 거름성분 있어,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자주 풀을 베어야 했다. 풀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자라났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힘들게 풀을 낫으로 베지 말고, 제초제를 뿌려서 제거하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제초제를 뿌려서 제거하면 일손을 크게 줄이는 손쉬운 방법이긴 하지만, 고독성의 위험한 농약이라 인체에 치명적이다. 혹시라도 제초제 농약을 뿌리다 중독하게 되면, 해독제가 아직 개발되지 않는 현실에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토양이 오염되고 생태계 환경이 일그러진다.
그리하여 어머니께 그 위험성을 설명하고 제초제를 사용하지 말도록 설득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힘들게 농사를 지어 수확을 하게 되면, 그동안의 고생은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지고 만다. 살림살이에 큰 보탬을 주고 학비에도 더없이 도움을 주게 되기 때문에.
나에게 그 복숭아농사도 이제는 먼 옛날의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의 한편의 드라마로 주마등처럼 뇌리에서 지워지질 않고 아스라이 떠오른다.
지금은 직장생활에서 은퇴를 하고 고향에서 그리 멀지 않는 이웃마을에서 아무 일 없이 지난 시절을 되새기며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다. 한편 그 옛날의 복숭아농사를 다시 한 번 지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들기도 한다. 농사법도 그 옛날의 수동식에서 벗어나 기계화된 방법으로서.
아침운동을 하다 산자락 복숭아밭을 지나거나 복숭아를 판매하는 공판장을 가다보면, 먹음직스런 복숭아가 그 옛날의 복숭아 농사를 짓던 시절을 불현 듯 떠오르게 한다.
얼마 전에는 아내와 함께 농협공판장을 다녀왔다. 복숭아공판장을 둘러보고 맛있는 복숭아를 사먹고 싶어서다. 버스정류소 앞이나 5일장에 가면 소량의 복숭아를 좌판에 펴놓고 판매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복숭아 공판장에 가노라면 입맛에 맞는 많은 복숭아가 산더미같이 출하되고 가격도 시장시세 보다는 비싸지 않기 때문이다.
농협공판장은 이전의 낡은 건물을 헐고 새 건물로 신축, 아담하고 차량이 쉽게 접근 하도록 하였다. 강철 벽과 지붕으로 엉성하게 지어 있던 기존의 건물과는 달리 콘크리트로 제법 견고하고 웅장하게 잘 지어진 건물이다. 앞쪽으로 확 트인 공판장에는 복숭아 상자를 마음대로 들여 놓을 수 있도록 확장되어 있다.
광장에는 복숭아를 싣고 온 경운기들이 줄을 짓고, 공판장 안으로는 탐스런 복숭아가 담긴 상자들이 날 보란 듯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다. 많은 종류의 크고 작은 맛깔스럽고 불그스레한 색깔의 복숭아들이라 참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우리 농민들이 여름 내내 구슬 같은 땀방울을 흘리며 힘들여 지은 결실이다. 저 많은 과일들을 생산한다고 뜨거운 불볕아래 갖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일한 보람으로 나타난 것이다.
시커멓게 탄 그을린 얼굴로 일한 그들의 모습에서 오늘은 공판장 여기저기서 환하게 웃음꽃으로 피어난다.
첫댓글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낭만 같지만,
농사짓는 일이 얼마나 어러운지 조금은 압니다~~^^보람있는 농사는 웃음꽃을 피우고 만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청도는 복숭아 수확이 한 창입니다.값이 예년만 못하다고 걱정을 합니다. 제발 제 값을 받아 모두 웃음꽃을 피웠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청도복숭아가 너무 많이 생산된다 하여 수년 전 복숭아나무를 베어내도록 군에서 권장한 일이 있습니다. 다른 대체작물로 바꿔란 뜻이었죠. 그러나 그정책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복숭아생산 물량조절은 시장기능으로 자연적인 조절이 되도록 놔두어야 합니다. 인위적으로 될 일이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