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애국운동의 당위성과 그 방향
이원재
사전에 의하면 애국주의(愛國主義 patriotism)는 자기 나라를 사랑하고 몸 바쳐 일하는 사상 또는 그런 태도를 말한다라고 정의된다. 애국주의는 과거에는 독립전쟁이나 식민지해방전쟁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났으며 최근에는 예를 들어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경기에서 그 진가가 발휘된다. 개별국가가 존속하는 한 애국주의는 절대선(絶對善)이다.
그러나 오늘날 애국주의는 버티기 어려운 시련에 직면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유사애국주의’, ‘맹목적 애국주의’, ‘광신적 애국주의(chauvinism)’, ‘국수주의’ 등 짝퉁 애국주의가 물을 흐려놓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인류애, 평화, 자유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제시하면서 은근하게 애국주의를 희석하고 폄하하는 세력으로부터 격렬한 도전을 받고 있다.
이 결과 애국주의는 철저하게 외면되고 소외당하고 있으며, ‘열린 애국주의자’, ‘참된 애국주의자’들마저 ‘맹목적 애국주의자’, ‘시대착오자’라는 오해와 비난을 꺼려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실정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5년 9월 초에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제이컵 루(Lew) 재무장관이 세금절감을 위한 미국 기업의 해외이전에 대해 ‘경제애국주의(economic patriotism)를 위반한 행위’라고 비난했다는 기사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처음에는 약간 어리둥절한 느낌이 들었다. 거의 망각된 단어로 여겨졌던 ‘애국주의’의 화려한 부활이 언뜻 믿기지 않아서였다.
오늘날 우리 문화의 정체성(正體性)은 반드시 뚜렷한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에는 지나문화(주자학)의 압도적인 영향 속에서도 농촌공동체를 중심으로 우리의 민족정신과 얼과 문화가 명맥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일어난 일련의 과정, 예를 들어 경제개발과정에서 농촌에서 도시로의 대규모 민족이동, 아파트 생활, 세계화, 다문화가정의 증가 등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면서 우리문화의 토양이 되는 공동체정신이 설자리를 잃었다.
그 틈새로 살인적인 경쟁의식이 밀고 들어오면서 도덕은 땅에 떨어졌다. 사기(詐欺)와 무고(誣告), 자살율, 노인자살률, 노인빈곤율, 결핵 세계 제1위(매년 4만 명 발병) 등 고도성장의 그늘이 우리 문화의 융성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되고 있다.
우리는 그렇다고 해서 절망하거나 우리 세대의 책무를 회피해서도 아니 된다. 우리는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찾고, 지키고, 가꾸어 나가야 한다. 문화는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기 마련이다. 문화애국주의라고 해서 남의 문화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다.
일찍이 북애자는 문화수입의 원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밝혔다.
자기의 장점을 지니고 남의 장점을 겸하는 자는 이긴다.
자기의 장점을 버리고 남의 장점을 쓰는 자는 약해진다.
자기의 장점을 버리고 남의 단점을 모방하는 자는 망한다.
그러므로 문화애국주의는 우리 문화를 창조하고 외래문화를 수용하는 뚜렷한 원칙으로 된다. 문화애국주의를 전제로 하지 않는 선진문화의 수입은 남의 것을 모방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남의 문화에 흡수, 동화, 종속되는 지름길이다.
김구 선생은 일찍이 문화애국운동의 방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최고의 문화로 인류의 모범이 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표를 제시하였다.
문화애국주의는 국수주의가 아니다. 열린 애국주의이다.
다른 민족이나 나라나 문화를 배척하는 경향이 있는 빗나간 믿음을 경계한다. 문화애국주의는, 받아드리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실천적인 열망을 바탕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