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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축구 100인의 영웅들(Ver.2004)
1. '축구 황제’ 펠레(브라질)
==> 환상적인 테크닉으로 축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축구의 '신’. 배번 10번에 생명을 불어넣은 주인공. 아직도 왕성하게 활동 중이지만 이미 전설의 반열에 올랐다. 1,362경기 1,280골. 통산 해트트릭 92회.
2. ‘악동을 넘어선 천재’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
==> 아름다운 항구, 베수비오 화산과 함께 나폴리의 3대 보물이었던 마라도나는 약
물 중독이란 오명에도 불구하고 신기의 플레이로 세계 축구사에 혁명을 일으켰다.
86 월드컵에서 5골 5어시스트의 원맨쇼를 펼치며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3. ‘근대 축구의 시조’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스페인)
==> 아르헨티나 출신인 디 스테파노는 스페인으로 국적을 옮긴 뒤 레알 마드리드를 5년 연속 챔피언스컵 우승으로 이끌며 마드리드의 전성기를 여는 등 천재적인 재능의 꽃을 피웠다.
4. ‘완전 무결의 선수’ 요한 크루이프(네덜란드)
==> 발레리나처럼 아름다우면서도 동물처럼 예리한 플레이로 무장한 크루이프가 중심이 된 ‘오렌지 군단’의 토털 사커는 세계 축구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5. ‘그라운드의 카이저’ 프란츠 베켄바워(독일)
==> 그라운드에서 항상 우아한 기품으로 ‘백조처럼 아름답다’는 평을 받은 베켄바워는 깊은 통찰력과 지성으로 ‘리베로’라는 포지션을 탄생시켰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수비지휘 능력은 역대 최고. 감독으로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2006 월드컵 조직위원장으로 성공적인 축구 인생을 이어가고 있다.
6. ‘아트사커의 전설’ 미셸 플라티니(프랑스)
==> 화려한 게임 메이킹 능력과 예술적인 프리킥을 자랑한 플라티니는 미드필더임에도 불구하고 예리한 골 결정력을 함께 지니고 있었다. 세리에A에서 3시즌 연속 득점왕을 차지했고, 유로 84에서는 두 번의 해트트릭을 포함해 5경기에서 9골을 성공시키며 프랑스의 우승을 견인함과 동시에 득점왕과 MVP를 독식했다.
7. '새로운 황제' 호나우두(브라질)
==> 드리블, 돌파력, 슈팅 등 모든 면에서 펠레가 다시 돌아온 듯 팬들의 함성을 자아냈다. 2002 월드컵에서 8골로 득점왕을 차지하며 브라질의 우승을 이끌었다. 월드컵 통산 12골은 현재 진행형이다.
8. '그라운드의 지존' 지네딘 지단(프랑스)
==> 98 월드컵과 유로 2000에서 조국을 우승으로 이끌며 프랑스의 전성시대를 열었
다. 유연한 몸놀림을 바탕으로 한 정확한 패스와 경기 조율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9. ‘전술이 통하지 않는 유일한 존재’ 게르트 뮐러(독일)
==> 득점 기계로 이름을 날린 뮐러는 월드컵 통산 14골로 아직도 최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A매치 62경기 68골로 경기당 1골이 넘는 골을 기록했고, 소속팀에서도 40골, 38골로 두 차례 유럽 골든슈를 차지한 그야말로 독일의 폭격기였다. 프로통산 490경기 447골, 분데스리가 득점왕 7회.
10. ‘마자르의 마법사’ 페렌치 푸스카스(헝가리)
==> 무서운 스피드와 슈팅력으로 헝가리를 50년대 세계 축구의 지존으로 이끌었다.56년 공산화된 조국을 등진 푸스카스는 디 스테파노와 함께 레알 마드리드의 전성기를 일궜다. A매치 84경기 83골.
11. ‘검은 표범’ 에우제비오(포르투갈)
==> 아프리카 모잠비크 출신인 에우제비오는 동물적인 득점 감각으로 60년대 벤피카의 전성시대를 열며 ‘갈색 폭격기’의 원조가 됐다. 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9골로 득점왕에 오르며 포르투갈을 3위로 이끌었다.
12. ‘4차원의 전략을 지닌 골키퍼’ 레프 야신(러시아)
==> ‘철의 커튼’으로 불린 야신의 활약으로 60년대 구 소련은 유럽 선수권과 월드컵에서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270여 경기동안 패널티킥만 150여 차례를 막았고, 1대1 위기에서의 선방율은 상상을 초월해서 1100번의 1대1 위기에서 허용한 골은 고작 50여골에 불과하다.
13. ‘그라운드의 귀족’ 보비 찰튼(잉글랜드)
==> 잉글랜드의 디 스테파노로 불린 찰튼은 절묘한 페인팅과 우아한 볼 터치능력으
로 남미의 기술을 아우르는 능력과 함께, 페어플레이로 귀족 축구의 진수를 선보였
다.
14. ‘기적의 드리블’ 가린샤(브라질)
==> 그가 브라질 유니폼을 입고 뛴 경기에서 맛본 패배는 단 한 번. 휘어진 다리를가진 신체조건을 극복하고 현란한 드리블 묘기를 바탕으로 두 번의 줄리메컵을 안았다.
15. '하얀 펠레’ 지코(브라질)
==> 월드컵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펠레로부터 카나리아 군단의 10번을 이어받은 지코는 ‘공에 레이더를 달았다’는 찬사를 받을 만큼 자연스러운 패스와 예술적인프리킥, 정확한 골 결정력으로 이름을 날렸다.
16. ‘할아버지 플레이어’ 스탠리 매튜스(잉글랜드)
==>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바탕으로 65년 만 50세의 나이로 은퇴, 잉글랜드 축구의 전설로 남은 매튜스는 축구 실력으로 여왕으로부터 작위를 받았다.
17. '최전방 스트라이커의 교과서' 마르코 반 바스텐(네덜란드)
==> 폭발적인 강슛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반 바스텐은 88년 유럽 선수권에서 최초로 네덜란드에 우승컵을 안기고 AC 밀란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아쉽게도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었다.
18. ‘그 이름 그대로’ 조지 베스트(북아일랜드)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했으나 알콜 중독으로 젊은 나이인 26세에 조기 은퇴해 아쉬움을 남긴다.
19. ‘최고의 철인’ 로타 마테우스(독일)
==> 베켄바워의 뒤를 이어 게르만 전차군단의 리베로로 독일 축구의 영광을 계승한주인공. 한 번의 우승, 두 번의 준우승이 포함된 5번의 월드컵에서의 25경기 출전은 깨어지기 힘든 기록이다.
20. ‘모든 수비수들의 이상’ 보비 무어(잉글랜드)
==> 타고난 능력보다는 노력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무어는 전성기를 구가한 60년대 잉글랜드 대표로 107경기에 나섰다. 적은 말수에도 선수의 신뢰를 받는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21. ‘진정한 판타지 스타’ 로베르토 바지오(이탈리아)
==> 무릎 부상을 달고 다니면서도 화려한 개인기로 환상적인 축구를 선보인 90년대이탈리아 최고의 영웅. 하지만 94년 월드컵 결승전 승부차기 실축은 지금도 기억에생생하다.
22. ‘잘 단련된 야성’ 호마리우(브라질)
==> 골에 대한 동물적인 감각으로 어떤 상황에도 골을 뽑아내는 능력은 발군. 94년월드컵에서 MVP를 차지하며 브라질의 통산 4번째 우승을 일구어냈다.
23. ‘게르만 전차군단의 상징’ 칼 하인츠 루메니게(독일)
==> '미스터 유럽'이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뛰어난 스피드와 드리블 능력을 발휘하
며, 독일과 유럽의 상징적 존재로 군림했다.
24. ‘빗장수비의 대명사’ 프랑코 바레시(이탈리아)
==> 카데나치오 수비 라인의 전통을 이어 받은 바레시는 수비만 담당하는 임무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킨 뒤 공격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선보여 베켄바워의 전설에 육박했다.
25. ‘우아한 수비수’ 파울로 말디니(이탈리아)
==> 왼쪽 윙백과 중앙을 오가며 90년대 세계최고의 수비수로 군림했다. 축구선수로서는 최고의 환경에 완벽한 육체, 그리고 탁월한 전술적 시야를 가졌으며 소속팀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다.
26. ‘카나리아의 킬러’ 자일징요(브라질)
==> 사각지대에서도 어김없이 골을 성공시키는 등 천부적인 득점 능력은 타의 추종
을 불허했다. ‘펠레의 대회’로 불린 70년 월드컵에서도 9골을 기록하며 사상 최초로 매경기 득점을 기록했다.
27. ‘검은 튤립’ 루드 굴리트(네덜란드)
==>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다이나믹한 움직임을 선보인 굴리트는 축구 천재들의 장점만 물려받은 선수로 각광받았다. 오렌지 삼총사의 일원으로서 AC 밀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28. '밀라노의 영웅' 쥬세페 메아차(이탈리아)
==> 가공할 득점력으로 34,38년 조국의 월드컵 2연패를 견인했다. AC 밀란과 인터 밀란이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 구장은 그의 이름을 땄다.
29. ‘공과 이야기한 남자’ 디디(브라질)
==> 어린 펠레가 데뷔한 58년 스웨덴 월드컵 당시 세계 최고의 선수는 디디였다.
30. ‘프리킥 엔터테이너’ 리벨리노(브라질)
==> 70년 브라질 우승의 주역으로 프리킥을 경기의 하이라이트로 만들었다.
31. '행운의 별 아래 태어난 선수' 파울로 로시(이탈리아)
==> 82년 월드컵에서 브라질에게 해트트릭을 선사하며 화려하게 부활한 로시는 득점왕 등극과 함께 우승컵을 안았다.
32. ‘카테나치오의 완성’ 디노 조프(이탈리아)
==> 철벽 골키퍼로 이탈리아의 82년 스페인 월드컵 우승 주역. A매치 12경기 1143분 연속 무실점이라는 아직도 깨어지지 않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33. ‘바티골’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아르헨티나)
==> 피오렌티나 시민들은 세리에 A에서 두 경기당 한 골을 터뜨린 득점력에 반해 그의 동상까지 세웠다.
34. ‘게르만의 황금발’ 유르겐 클린스만(독일)
==> 탁월한 득점력으로 월드컵 우승까지 맛봤으며 ‘Cleans Man’이란 별명처럼 깨끗한 플레이와 검소하면서 적극적인 사회 봉사 활동으로 주목받았다.
35. ‘불멸의 득점왕’ 쥐스트 퐁텐느(프랑스)
==> 짧은 대표 경력에도 20경기에서 27골을 넣었고, 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13골을 뽑아냈다.
36. '아름다운 플레이어’ 데니스 베르캄프(네덜란드)
==> 화려한 테크닉을 바탕으로 셰도우 스트라이커의 표본을 보여주며 네덜란드 축구의 부활을 이끌었다.
37. '어시스트 제조기' 레이몽 코파(프랑스)
==> 디 스테파노, 푸스카스, 퐁텐느 등 전설적인 골게터들은 코파의 어시스트 덕에 많은 골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38. ‘사려 깊은 그라운드의 닥터’ 소크라테스(브라질)
==> 의대 출신으로 철학자를 연상시킨 지성파로 당시 브라질의 황금 미드필드진 중
의 한 명.
39. ‘화려한 투우사’ 마리오 켐페스(아르헨티나)
==> 상대를 희롱하는 듯한 화려한 기술로 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40. ‘불가리아의 축구 대통령’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불가리아)
==> 왼발의 달인이었던 그로 인해 불가리아 축구의 위상이 바뀌었다. 94년 월드컵 4강 후 불가리아 국민들은 '스토이치코프를 대통령으로'라는 구호를 외쳤다.
41. '왼발만을 고집한다' 히바우두(브라질)
==> 강력한 왼발슛과 뛰어난 임기응변을 바탕으로 호나우두와 함께 브라질의 막강 공격진을 형성했다.
42. '포르투갈의 부활' 루이스 피구(포르투갈)
==> 환상적인 오른쪽 돌파와 뛰어난 기술은 물론 리더쉽까지 갖춘 포르투갈 부활의 기수.
43. ‘요한 No.2’ 요한 네스켄스(네덜란드)
==> 요한 크루이프의 명성에 밀리긴 했지만 왼쪽,중앙,오른쪽을 가리지 않는 전천후 미드필더로서의 능력은 단연 압권이었다.
44. ‘카리스마의 계승자’ 프랑크 레이카르트(네덜란드)
==> 수비형 미드필더와 최후방 수비를 오가며 80년대 말 AC 밀란과 네덜란드의 전성시대를 연 주인공.
45. ‘황금의 머리’ 산도르 코식스(헝가리)
==> 정확한 헤딩력으로 50년대를 누빈 코식스는 50년대 무적 헝가리 시대의 주역이
다. 54년 월드컵에서 11골을 기록하며 퐁텐느의 뒤를 이었다. A매치 68경기에서 무
려 75골이나 뽑아냈다.
46. '양발의 마술사' 톰 핀리(잉글랜드)
==> 오른쪽, 왼쪽 윙으로 각각 30차례 이상 출격해 30골을 뽑아낸 핀리는 잉글랜드 사상 최고의 양발 공격수였다.
47. '웨일즈의 조용한 거인' 존 찰스(웨일즈)
==> 섬세한 축구를 한 웨일즈 최고의 스타.
48. ‘위대한 마이티 마우스’ 케빈 키건(잉글랜드)
==> 분데스리가에서 성공한 몇 안되는 잉글랜드 출신 공격수. 무수한 연습으로 자신의 가치를 실현한 노력파.
49. '모든 이가 사랑한 농부' 우베 젤러(독일)
==> 60년대 독일의 공격을 이끈 그는 기술보다는 승리에 대한 투지로 독일 국민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50. '미스터 이탈리아' 지아니 리베라(이탈리아)
==> '달리는 전차'라는 별명에 걸맞게 쉴 새 없이 그라운드를 누빈 중원의 지휘자. 월드컵에 4회 출전했고, 세리에A 최다 출장 기록은 3위.
51. ‘뱅크 오브 잉글랜드’ 고든 뱅크스(잉글랜드)
==> 철통 같은 문지기로 ‘잉글랜드의 은행’으로 불린 66년 영국 월드컵 우승 주
역.
52. '악마의 왼발' 호베르투 카를로스(브라질)
==> 그의 날카로운 오버래핑과 강력한 왼발 프리킥은 상대방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53. '이탈리아의 원조 폭격기' 실비오 피올라(이탈리아)
==> 30년대 라치오의 전성기를 이끌며 총 290골을 기록, 세리에A 역대 최다골 기록
을 보유하고 있다. 38년 월드컵 결승전에서도 2골을 넣으며 이탈리아의 우승을 이끌었다.
54. ‘황금의 아이' 루이지 리바(이탈리아)
==> 카데나치오가 전성기를 누리던 60~70년대 이탈리아의 유일한 득점 루트였다. A매치 42경기 35골로 이탈리아 통산 1위.
55. '잉글랜드의 신사' 앨런 시어러(잉글랜드)
==> 헤딩력, 양발 사용 능력을 모두 갖춘 그의 특유의 골 세레모니는 많은 축구팬들에게 기쁨을 선사한다.
56. ‘천부적인 골 사냥군’ 케니 댈글리시(스코틀랜드)
==> 팀 전력 탓에 월드컵과 큰 인연이 없었지만 70~80년대 리버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골 결정력으로 리버풀에 4번의 챔피언스컵을 안겼다.
57. '발칸의 마라도나' 게오르게 하지(루마니아)
==> 자로 잰 패스, 뛰어난 게임리딩 능력, 날카로운 왼발슛을 자랑했던 희대의 테크니션이었다.
58. ‘덴마크 축구의 상징’ 미카엘 라우드럽(덴마크)
==> 형제 대표 선수로 이름을 날린 라우드럽은 덴마크 축구를 세계에 알렸다.
59. ‘라이베리아의 괴인’ 조지 웨아(라이베리아)
==> 월드컵과 지독히 인연이 없었지만 아프리카 축구의 위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60. ‘멕시코 최고의 슈퍼스타’ 우고 산체스(멕시코)
==> 아틀레티코에서 1번, 레알에서 4번의 득점왕을 차지한 마드리드와 멕시코의 영
웅.
61. ‘잉글랜드의 아들’ 게리 리네커(잉글랜드)
==> 잉글랜드 역대 대표팀 득점 2위로 86년 월드컵에서 6골, 90년 월드컵에서 4골을 뽑아냈다.
62. ‘70년대 최고의 골키퍼’ 제프 마이어(독일)
==> 74년 서독 월드컵 우승 당시 골문을 지킨 70년대 최고의 골키퍼.
63. ‘포효하는 사자’ 피터 슈마이켈(덴마크)
==> 거구에도 유연함을 자랑한 90년대 최고의 골키퍼. 라우드럽과 함께 92년 유럽선수권 우승을 이끌었다.
64. ‘유럽 최고의 영광을 누렸다’ 프란시스코 헨토(스페인)
==> 레알 마드리드와 대표팀에서 왼쪽 날개로 활약하며 10회 이상 우승을 맛본 드문 행운아.
65. ‘검은 다이아몬드’ 레오니다스(브라질)
==> 38 프랑스 월드컵에서 8골로 득점왕을 차지하며 브라질 축구의 태동을 알렸다.
66. '최고의 오른쪽 윙백' 카를로스 알베르토(브라질)
==> 사상 최고의 오른쪽 윙백으로 평가받는 그는 70년 우승 당시 주장으로서 영구 소유되는 줄리메컵에 첫 입맞춤을 하는 행운을 얻었다.
67. ‘베른의 기적’ 프리츠 발터(독일)
==> 54년 스위스 월드컵 결승전에서 발터는 무적 헝가리를 상대로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승리를 일구어냈다.
68. 'AC 밀란의 전설' 군나르 노르달(스웨덴)
==> 50년대 밀란의 스웨덴 3인방 중 한 명으로 다섯 번의 득점왕을 차지하며 밀란에서만 210골을 기록했다.
69. '브라질의 영원한 캡틴' 둥가(브라질)
==> 94년 월드컵에서 주장으로서 뛰어난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조국의 우승에 공헌했고, 대회 베스트 11에도 뽑혔다.
70. ‘규율과 신념으로 산다’ 다니엘 파사렐라(아르헨티나)
==> 피로를 모른 채 10년 동안 강력한 태클로 아르헨티나의 수비라인을 지켰다. 86
년 멕시코 월드컵 우승의 주역.
71. ‘장군의 베스트 파트너’ 즈비그에프 보니엑(폴란드)
==> 82년 월드컵 3위를 견인한 폴란드 최고의 축구스타. 유벤투스에서 플라티니와 환상의 콤비를 형성했다.
72. '브라질은 없다' 후안 스키아피노(우루과이)
==> 50년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 20만 브라질 관중 앞에서 개최국의 꿈을 무참히 짓밟았다.
73. '신뢰할 수 밖에 없는 수비수' 파울 브라이트너(독일)
==> 70년대와 80년대 초반에 걸쳐 바이에른 뮌헨과 국가대표팀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와 중앙 수비를 겸했던 최고의 수비수.
74. ‘제2의 조지 베스트’ 라이언 긱스(웨일즈)
==> 뛰어난 스피드와 드리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성시대를 연 웨일즈의 보
물.
75. ‘토탈 사커의 체현자’ 루드 크롤(네덜란드)
==> 수비수이면서도 공격 전술의 핵심이었던 토탈 사커의 주인공.
76. ‘마지막 리베로’ 마티아스 잠머(독일)
==>동독 출신으로 독일 대표팀의 수비라인을 지휘, 96년 유럽선수권 우승을 따내며 MVP를 차지했다.
77. '다재다능한 공격수' 티에리 앙리(프랑스)
==> 중앙과 사이드를 가리지 않는 그의 넓은 활동 범위와 스피드, 돌파력은 상대 수비수를 피곤하게 만든다.
78. ‘대포알 슈터’ 로날드 쾨만(네덜란드)
==> 맞으면 뼈가 으스러질 듯한 중거리슛으로 무장한 80년대 유럽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
79. '동구의 호나우두' 안드레이 세브첸코(우크라이나)
==> 폭발적인 스피드와 뛰어난 골 결정력을 지닌 AC 밀란의 보물. 국제대회와는 인연이 없어 아쉬움을 남긴다.
80. '프랑스의 고성능 폭격기' 장 피에르 파팽(프랑스)
==> 플라티니와 지단의 중간 세대 프랑스를 대변하는 인물.
81. ‘그라운드의 카리스마’ 에릭 칸토나(프랑스)
==> 특유의 고집과 카리스마가 인상적이지만 월드컵과의 인연이나 상복이 없었다. 하지만 극도로 패배를 싫어한 칸토나는 맨체스터에 승리의 신념을 심어준 주인공이다.
82. ‘애버딘의 기사’ 데니스 로(스코틀랜드)
==> 골을 잡으면 뭐든 다 할 수 있었던 로. 당시 여성들은 아이들에게 그의 이름을 붙였다.
83. ‘타블로이드의 영웅’ 폴 개스코인(잉글랜드)
==> 방탕한 생활로 항상 대중잡지의 1면을 장식했지만 그의 실력 역시 1면감이었다.
84. '카테나치오의 원조' 지아친토 파체티(이탈리아)
==> 공격수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강력한 태클을 주무기로 60년대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수비수.
85. '황금의 오른발' 데이비드 베컴(잉글랜드)
==> 오른발 크로스 능력만큼은 역대 최고로 꼽히는 설명이 필요없는 잉글랜드의 캡
틴.
86. '삼바축구의 대명사' 카레카(브라질)
==> 마라도나와 함께 나폴리의 전성시대를 이끌었으며, 86년 월드컵에서도 5골을 넣으며 활약했다.
87. ‘스트라이커의 본능’ 이안 러시(웨일즈)
==> 국제경기와 인연이 없었지만 팬을 도취시키는 득점력을 지닌 위대한 스트라이
커.
88. '60년대 스페인 축구의 영웅' 루이스 수아레스(스페인)
==> 64년 유럽 선수권 결승전에서 수아레스는 야신이 버틴 소련을 물리치는데 일등 공신이 됐다.
89. ‘페루 사상 최고의 선수’ 테오빌리오 쿠비야스(페루)
==> 월드컵에서 페루가 거둔 4승은 그의 발에서 나왔다.
90. ‘적의 사각을 아는 스트라이커’ 다보르 수케르(크로아티아)
==> 96년 유럽 선수권부터 시작된 크로아티아의 돌풍은 그 없이 설명이 불가능하다.
91. '거미손' 올리버 칸(독일)
==> 2002년 월드컵에서 최초로 골키퍼 출신 MVP를 수상했다.
92. ‘아프리카의 신비’ 로저 밀러(카메룬)
==> 불혹에 가까운 나이에 90 월드컵에서 교체로만 4골을 넣으며 카메룬의 8강 돌풍을 일으킨 아프리카 축구의 영웅. 94년에도 골을 성공시켜 최고령 득점 기록을 연장했다.
93. '신이 사랑한 천재' 라울 곤잘레스(스페인)
==> 어린 나이에 레알 마드리드의 주전을 꿰찼고, 챔피언스리그의 사나이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94. '갈색 폭격기' 차범근(한국)
==> 최전방과 오른쪽을 누비며 80년대 분데스리가를 풍미했던 아시아 최고의 스타.
95. '달리는 지휘관' 팔카오(브라질)
==> 뛰어난 두뇌플레이로 중원을 지휘하며 새로운 축구를 창조했다.
96.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혼' 보비 롭슨(잉글랜드)
==> 소속팀에서 그가 달았던 백넘버 7번은 이후 칸토나와 베컴으로 이어지며 맨유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97. ‘최고의 사령탑’ 카를로스 발데라마(콜롬비아)
==> 특유의 사자머리로 인상 깊었던 그는 자로 잰 듯한 숏패스를 앞세워 중앙 공격
형 미드필더의 임무를 누구보다도 잘 소화해냈다.
98. '벨기에의 영웅' 엔조 시포(벨기에)
==> 월드컵에 4회 출전하면서 벨기에의 중원을 책임졌던 위대한 미드필더. 특히 중거리슛 능력이 뛰어났다.
99. '감동의 세레모니' 마르코 타르델리(이탈리아)
==> 82년 월드컵 결승전에서의 그의 골 세레모니는 아직도 많은 축구팬들에게 감동
을 주고 있다.
100. '컴퓨터 패스’ 귄터 네처(독일)
==> 74년 서독 월드컵 우승 주역으로 센티미터 단위로 패스를 조절했다는 천재.
그외
엔조 프란체스콜리(우루과이), 빌리 라이트(잉글랜드), 에밀리오 부트라케뇨(스페
인), 에른스트 오크비르크(오스트리아), 가에타노 시레아(이탈리아)는 나란히 101위
~105위를 차지하며 아쉽게 100위안에 이름을 넣지 못했다.
첫댓글 바티스투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