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왠만한 전 안기부에 의한 모든 의혹은 정형근에 개입되어 있다!1 근데 이넘은 지역감정을 이용하고 안보를 이용한 정치로 오랫동안 부산에서 높은 당선률을 자랑하면서 국회의원을 해먹고 있다!!정형근..시대의 어둠이자 공작정치와 고문기술자로서 아직도 역사와 국민앞에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대낮에 길거리를 설치고 다니고 있다!! 먼저 이놈을 내년 총선에서 떨어뜨린후(달나라당의 텃밭인 부산에서 떨어질리가 없겠지만) 이넘먼저 족쳐야한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 정형근에 의한 고문과 공작과 사건은 공소시효가 말소되었기 때문에 사법권으로 인한 심판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정형근!!...조선일보가 사랑하는 그!! KAL 폭파, 다시 칼날 위에… 언제나 그렇듯이 그시절의 고문사건이나 공작사건과 의혹사건위엔 정형근이 항상 있다. 정말 신기하군..정형근..그렇게 꾸준히 휘말리기도 어려운데 [한겨레] 16년이 흘러도 끈질기게 조작의혹 제기하는 유족들… 국정원은 단 한점의 부끄러움도 없는가 지난 11월3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는 국가정보원을 잔뜩 긴장시키는 행사가 열렸다. 천주교 신부 162명이 16년 전 발생한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이다. 신부들은 “지난 1987년 사건발생 당시 폭파된 기체의 잔해나 실종자의 유해가 하나도 없었고, 범인으로 발표된 김현희씨가 북한 공작원이 아니라는 증거가 나오는 등 사건이 조작된 의혹이 있다”며 관련자료 공개, 김현희씨의 공개 기자회견, 민관합동조사협의회 구성 등을 요구했다. 87년 대선 직전 터졌던 의혹투성이 사건 국정원은 즉각 반박에 나섰다. 국정원은 ‘국정원의 입장’이라는 보도자료를 내고 “이번 사건에 관해 역사와 국민 앞에 단 한점의 부끄럼도 없고, 유가족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의혹 부분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또 “언론은 사실 왜곡으로 인한 국민들의 인식 혼란이나 국가기관의 명예훼손이 없도록 신중을 기해달다”며 ‘보도지침’까지 내렸다. 그러나 국정원은 이후 태도를 바꿨다. 11월13일 진상규명대책위 소속 신부들과 유족들이 거듭 진상규명을 요구했으나 이에 응하지 않았고, 다음날 <한겨레21>이 국정원 공보실을 통해 유족들이 제기한 의혹에 대한 해명을 요청했으나, 국정원 공보실 관계자는 “(언론을 상대로 한) 공개 해명은 아직 계획된 바 없다”고 발을 뺐다. 국정원이 이처럼 갈팡질팡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이 사건이 지닌 엄청난 폭발력 때문이다. 조작 의혹이 진실로 드러날 경우는 물론이고, 의혹을 명쾌하게 해명하지 못할 경우에도 국정원은 존폐의 갈림길로 내몰리게 된다. 이 사건에 앞서 발생한 ‘수지김 사건’이 2001년 국정원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의 조작으로 드러나 국정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발생 초기부터 범인인 김현희의 신분에 의혹이 제기되는 등 16년 동안 숱한 의문을 낳고 있다. 1987년 11월29일 오후 2시. 승객과 승무원 115명을 태운 바그다드발 서울행 KAL 858기가 버마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승객은 대부분 중동 건설현장에서 수년 동안 일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건설 노동자들이었다. 정부는 즉각 현지조사에 나서는 한편, 국가안전기획부를 통해 언론에 ‘북한 테러설’을 흘리기 시작했다. 김현희는 정말 폭파범인가 사건 발생 이틀 뒤인 12월1일 바레인을 탈출하려던 폭파범 용의자 중 한명인 김현희(일본명 하치야 마유미·당시 24살)가 생포됐고, 공범인 김승일(하치야 신이치)은 독약 앰플을 깨물어 자살했다. 당시 한국에선 대통령 선거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6월항쟁’으로 고조된 민주화 열기로 군정 종식과 민주적 정권교체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그러나 KAL기 폭파사건은 이런 분위기를 단숨에 바꿔버렸다. 안기부는 대선 하루 전인 12월15일 김현희를 서울로 압송했다. 절묘한(!) 시점에 이뤄진 이 압송작전은 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고, 다음날 치러진 대선에서는 ‘12·12 및 5·18의 주역’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13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현희에 대한 조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수사를 주도한 안기부는 1988년 1월15일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의 김정일이 88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북한 공작원 김현희에게 친필지령을 내려 KAL 858기를 폭파시킨 사건”이라고 발표했다. 김현희는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뒤 1990년 3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으나, 정부는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살려두는 것이 정치·외교적으로 효용 가치가 높다’는 이유로 사형 선고 한달 만에 김현희를 특별사면했다. 이 사건은 안기부의 수사결과 발표 때부터 여러 가지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김현희의 신분에 대한 의혹이다. 안기부는 김현희가 당시 앙골라 주재 북한 무역대표부 수산대표 김원석의 딸이라고 발표했으나, 북한 당국은 곧바로 “앙골라에는 북한 무역대표부가 없을 뿐 아니라 수산대표라는 직책도 없다”고 공식 해명했다. 일본 언론들도 “당시 앙골라에는 김원석이라는 북한 외교관이 없었다”고 확인했다. 안기부는 또 김현희가 북한 공작원이라는 증거로 김현희의 어릴 적 사진을 몇장 공개했지만 사진 속의 김현희와 실제 김현희의 귀 모습이 크게 다를 뿐 아니라(귀 모습은 성장해도 거의 변화가 없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사진 속의 주인공임을 주장하는 북한 여성이 나타나는 등 안기부 발표의 신빙성을 뒤흔드는 증거가 속속 나왔다. 국정원은 김원석 의혹에 대해 지난 2001년 “김현희의 진술을 그대로 발표한 것으로서 사실 확인은 거치지 않은 것”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일본 언론들의 집요한 추적도 안기부를 괴롭혔다. 일본의 자유기고가 노다 미네오는 자신의 저서 <김현희는 가짜다>에서 “안기부가 발표한 대로 김현희의 행적을 답사한 결과 무려 80군데가 사실과 다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것이 김현희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묵었다는 한 호텔방의 진위 여부다. 안기부는 김현희가 암파클링 호텔 603호에서 묵었다고 발표했지만 노다의 확인 결과 322호에 머문 것으로 확인됐고, 603호는 그 호텔에 아예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국정원은 2001년 이 부분에 대한 수사발표가 잘못됐음을 인정했다. 김대중 정부에게 큰 기대 걸었건만… 이 밖에도 안기부의 수사 결과를 둘러싼 의혹은 많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는 숱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외면했다. 대신 정부는 유족들의 반대 속에 ‘실종자’들의 실종유예기간(항공기 사고는 1년)이 끝나기 전인 1988년 1월 사망신고를 직접 접수시켜 처리하고, 희생자 위령탑 건립을 밀어붙이는 등 이 사건의 후속 작업을 강행했다. 김현희는 사면 뒤 반공 강연회에 불려다니고 방송에도 출연하는 등 ‘유명 인사’로 대접받았다. 유족들에게 1997년 김대중 정권의 출범은 ‘가뭄 끝의 단비’ 같은 일이었다. 군사독재정권과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른 김대중 정부는 이 사건의 의혹을 말끔히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듯 이종찬 국정원장은 1998년 10월 KAL기 사건을 ‘총풍 사건’(97년 대선을 앞두고 전 안기부 공작원과 청와대 행정관 등이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북한에 판문점 총격을 요청한 사건)과 함께 ‘북풍 의혹 사건’으로 지목해 재조사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발표는 국정원의 강력한 내부 반발로 곧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국정원은 유족들이 2001년 대책위를 구성해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는 등 본격적인 진상규명 활동에 나서자, 그해 12월 유족회와 대책위 관계자들을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비공개로 만났다. 하지만 유족들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서는 명쾌한 해명을 하지 못했다. 유족회 차옥정 회장은 “당시 우리가 제기한 의혹에 대해 국정원 사람들은 ‘김현희가 진술한 대로 발표했을 뿐이니, 김현희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뻔뻔스럽게 말했다”고 회상했다. 국정원은 진상규명은커녕 오히려 유족들과 대책위를 협박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대책위 부위원장 신성국 신부는 “지난 가을부터 일간지 인터뷰 등을 통해 이 사건의 의혹을 중점적으로 제기했는데, 지난 10월13일 국정원 관계자 2명이 나를 찾아왔다”며 “그들은 ‘대책위가 의혹으로 제기하는 내용이 북한의 주장과 비슷하다. (대책위가) 북한과 연계돼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협박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정원에 확인을 요청하자 국정원 공보실은 11월15일 “신성국 신부에게 수사결과를 자세히 설명한 것일 뿐 협박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수사책임자 정형근 의원 “발표 정당했다” KAL기 사건 당시 안기부 고위 간부들은 사건 조작 의혹에 대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강하게 부인한다. 당시 안기부 대공수사국장으로 수사책임을 맡았던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3일 천주교 신부들의 기자회견 직후 한 라디오 프로에 출연해 당시 안기부의 수사결과 발표가 정당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11월14일 <한겨레21>과의 전화 통화에서 “그 사건으로 다시 인터뷰할 생각은 없지만, 공개적인 자리에서 (의혹에 대해) 언제든지 해명할 수 있다. 사건이 조작됐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밝혔다. 당시 안기부장이었던 안무혁(68) 한국발전연구원이사장도 “김정일이 지난해 평양에서 고이즈미 일본 총리를 만났을 때 김현희의 일본어 교사인 이은혜 납치 사실을 시인했다. 이 사실만으로도 KAL기 폭파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김정일도 시인했는데 왜 의혹을 제기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이 사건을 둘러싼 숱한 의혹을 잠재우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국정원이 정말 떳떳하다면 유족들의 진상규명 요구에 명확하게 답해야 한다. 인권변호사 출신 인사가 국정원장을 하는 시대에 국정원은 무엇을 두려워하는 걸까. |
첫댓글 저도 그것이 알고 싶다보고 잠을 못이뤄서 뜬 눈으로 있다가 청소년 대표 축구 보고 잤어요
이거 올린 의도가 뭡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