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가피
오월 하순 토요일이다. 이달 초 어린이날에 이어진 사흘 연휴에 이어 이번에는 부처님 오신 날이 토요일이라 올해부터 대체 공휴일제를 적용해 월요일을 하루 더 쉬게 해 사흘간 휴무가 되었다. 어떤 이는 백수에게 달력 빨간 날에 뭐가 관심 있겠냐 하겠지만, 나 먼저 백수 클럽에 입회했던 꽃대감은 백수도 주말이 있다고 은근히 자랑하는 듯한 문자를 내게 보내왔던 적 있었다.
한낱 자연학교 학생에 지나지 않는 나는 토요일에도 아침 식후 등교 차림으로 현관을 나섰다. 여느 날과 다른 점은 부처님 오신 날이라 아내가 일찍 일어나 나보다 먼저 평소 다니는 절로 갔다는 사실이다. 다른 날은 내가 산행이나 산책을 나설 때까지 잠에서 깨지 못함이 허다했다. 엘리베이터를 나서 아파트단지 이웃 동 뜰로 가니 꽃대감과 아래층 할머니는 꽃밭을 돌보고 있었다.
아침 인사를 나누자 꽃대감 친구는 오늘 행선지는 어디로 나서냐고 물어와 용추계곡으로 들어가 우곡사를 다녀올 요량이라 했다. 곁에서 할머니가 거들기를 나중 저녁에 국수를 끓어 놓을 테니 할아버지와 함께 식사하자고 해 고맙기도 하고 황송했다. 지나가는 봄날에 내가 산채 했던 나물을 보냈던 사례로 그러신가 싶어 사양하지 않았다. 나는 남들보다 국수를 좋아하는 편이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퇴촌삼거리로 나가 창원대학 앞으로 향했다. 창원천 냇바닥에 무성한 잎줄기로 자라던 노랑꽃창포는 꽃을 피우던 즈음인데 지난번 제법 많았던 강수량으로 냇물에 휩쓸려 꽃잎은 떨어져 흔적이 없었다. 대신 천변 언덕에 자라는 여러해살이 금계국이 노란 꽃을 피워 화사했다. 도청 뒷길을 돌아 창원중앙역으로 올라가니 버스 정류소 개선 공사는 마무리되었다.
철길 굴다리를 지나 용추계곡으로 드니 신록의 숲은 녹음이 우거졌다. 주말이긴 한데도 산행을 나선 이들이 드물어 호젓한 숲길을 혼자 걸어 용추정을 지나 계곡을 따라 올라갔다. 용추1교를 지나 출렁다리를 건널 때까지 맑은 물이 고인 웅덩이를 지났다. 봄에 핀 야생화 향연이 끝난 길섶에는 쥐똥나무가 꽃을 피워 향기를 뿜고 줄딸기가 빨갛게 익어 있어 손을 뻗쳐 따 먹었다.
용추5교를 지난 우곡사 갈림길 쉼터에 앉아 쉬고 있으니 앳된 얼굴의 숙녀 다섯이 따라오다 우곡사 가는 방향이 맡느냐고 물어와 먼저 가십사고 했다. 나도 잠시 뒤 그들과 마찬가지로 비탈을 오르다가 앞서간 일행을 만나 학생인지 사회인이지 여쭈니 후자라고 했다. 같은 연령대로 보였는데 대화 속에 말을 낮추거나 직급을 부르지 않음을 미루어 봐 입사 동기쯤으로 헤아려졌다.
숙녀들과 같이 용추고개에서 숨을 고르고 북향 비탈로 내려간 우곡사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찾아오는 불자들의 봉축 행렬이 이어졌다. 법당으로 오르는 계단과 뜰에는 오색 연등이 내걸리고 대웅전 앞에는 임시 법석이 마련되고 스피커를 통해서 주지 스님 법문이 들려왔다. 우곡사는 인근의 장춘사 성주사 성흥사와 함께 신라 하대 무염국사가 창건했다는 유서 깊은 절이다.
자원봉사를 나선 보살이 나누어준 떡과 과일로 부처님의 가피를 입었다. 어디서 찾아오는지 규모가 그리 크지 않는 절임에도 사람들이 자꾸 모여들었는데 알고 보니 산문 바깥에서 셔틀버스로 타고 들어왔다. 나는 평소 우곡사를 찾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걸어서 산문 밖으로 나갔다. 우곡저수지 둘레길을 걸어 서천마을로 내려가 모내기를 준비 중인 들녘을 걸어 자여마을에 닿았다.
마을에는 모범운전자들이 절을 찾는 이들을 안내하느라 수고가 많았다. 해마다 부처님 오신 날은 오후 3시까지 행렬이 이어져 임시 주차장을 설치해 셔틀버스를 운행한다고 했다. 나는 창원역으로 가는 마을버스로 소답동으로 나가 시내로 복귀했다. 밀양 할머니 댁을 찾아 팔순임에도 정정한 손 씨 할아버지를 뵙고 인사를 나누고 할머니가 차려낸 국수를 꽃대감과 맛있게 먹었다. 23.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