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말을 타고 사막을 여행하고 있던 세 사람이 이상한 나그네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나그네는 그들에게 얼마 가지 않아 마른 시내 하나를 건너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서 "당신들이 그곳에 도착하거든 말에서 내려 마른시내에서 자갈들을 주워 자루와 호주머니에 채우도록 하시오.
그리고 나서 계속 여행하다가 해가 뜰 때 당신들이 주운 자갈들 을 살펴보시오. 당신들은 기뻐하며 한편으로는 애석해 할 것이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의 말처럼, 세 사람은 마른 시내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호기심으로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많은 자갈들 중에 몇개를 주워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다음 날 해가 뜰 무렵 그들은 주워 온 자갈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 자갈들은 다이아몬드, 루비, 에매랄드 및 기타 여러 가지 보석들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막에서 만났던 나그네의 말을 떠올린 그들은 그제야 그 나그네의 말을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주워온 자갈들이 보석으로 변해있어 기뻤습니다. 그러나 더 많이 주워오지 않은 것이 애석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이와 비슷 합니다. 당신이 성경에서 캐낸 진리들은 영적인 보석입니다. 그 것이 영적인 보석임을 우리는 주님의 나라에서 빛되신 주님앞에 서게 될때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성령님을 통해 그것이 영적인 귀한 보석임을 우리에게 믿음을 통해 알게 하심니다. 믿음으로 이 영적 보석들을 당신의 금고에 채워 갈 때 후일에 참으로 놀라운 부귀와 영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성경속에서 캐낸 보석을 믿음과 행함으로 천국의 금고에 매일 저축하고 계십니까?
마 13: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마 13: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리운 자요
1. 이제 2023년도가 새해가 밝았습니다. 회원님들의 교회와 가정위에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2. 새해에도 하나님의 은혜속에서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크게 세워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목 : 감추인 보화, 진주 비유 성경 : 마태복음 13:44~46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비유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천국이라는 말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하늘나라,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르치시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이 비유들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본문에는 "천국은 마치 ……과 같다."는 말이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44절, 45절, 47절) 이스라엘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는 십계명의 명령에 따라 가급적 하나님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도 아버지 존함을 이야기 할 때 -자, -자, -자 스신 분이라고 소개하지 않습니까? 복음서 가운데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독자층으로 생각하고 쓴 복음서가 마태복음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하나님 나라 대신 하늘나라, 천국이라는 말을 즐겨 씁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은 장소적 의미로 쓰이지 않았습니다. 천국은 통치적 개념으로 사용했습니다. 하나님께 다스리는 나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이것이 곧 하나님 나라, 천국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못하나니 너희 가운데 있다.> 하셨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 마음속에서 통치하시는 주님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은 다 천국 백성입니다.
그런데 기억할 것은 이 땅에서 천국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들이 즐겨 부르는 찬송 495장의 가사는 참 은혜스럽습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속에 이뤄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물론 완전한 천국은 세상 끝날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땅에서 허락하신 사건으로 천국의 기쁨을 또한 누려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오늘의 시대 사람들에게는 낯선 사건입니다.
그러나 형사 같은 부인들과 사는 사람들은 상당히 실감을 느끼게 하는 비유입니다. 예수님 당시 팔레스타인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실감나는 이야기입니다.
옛날에는 은행제도가 발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귀중한 보물을 보관하는데 가장 안전한 곳은 땅에 묻는 것입니다. 랍비의 가르침에 "돈을 숨기는데 유일하게 안전한 장소는 땅이다."했습니다. 남자들의 비상금 어디에다 두는지 아십니까? 양말, 액자 뒤, 어떤 사람은 배에다 파스까지 붙입니다.
그러나 그래봤자 부인들은 귀신같이 잘 찾아냅니다. 특별히 팔레스타인은 전쟁이 아주 자주 있었습니다. 예기치 않은 전쟁에 대비해서 땅속해 보물을 감추었습니다.
그런데 죽어서 못 돌아오게 되면 보물은 땅에 오랫동안 묻혀 있게 됩니다. 그러다가 오늘 주님의 가르침처럼 농사를 지식 위해서 땅을 파다가 이런 귀한 보물을 발견하게 됩니다. 혹자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에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보물을 발견했으면 주인을 찾아주어야 할 것 아니냐구요.
그러나 감추인 보물에 대한 유대 랍비 법에 의하면 <발견한 물건은 발견자에게 속한다. 흩어진 과일이나 흩어진 돈을 발견하면 이런 물건들은 발견자에게 속한다.> 요즈음 우리와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물을 자기 것으로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 밭을 사서 자기 것으로 만들면 됩니다. 또 오늘 비유에 보면 재산증식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보물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 그리고 그 보물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기꺼이 희생하는 자세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비유에서는 핵심을 붙잡아야지 주변적인 이야기로 마음이 흩어지면 안됩니다. 늘 비유의 교훈은 첫째로 보물과 진주에 대한 가치를 깨달음입니다. 밭에서 일하던 농부, 밭을 갈다가 보물을 발견합니다.
보물이 귀하기에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보물이 묻혀있는 밭전체를 샀습니다. 좋은 진주를 구하던 장사꾼은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그 진주를 샀습니다.
보물과 진주가 얼마나 귀한가하는 것은 그 가치를 농부와 상인은 바로 깨달았습니다. 마찬가지고 하나님 나라는 보물과 진주처럼 아름답고, 귀합니다. 그러나 그 가치를 바로 깨달은 사람에게만 천국은 참으로 귀한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요한복음 1장 11절 말씀에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나."> 슬픈 이야기입니다. 보물과 진주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숨기시었던 비밀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지금 계시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영접하지 못합니다. 1947년 따듯한 봄날, 유대 땅 사해 근처에는 베드윈 족이라는 장막을 치고 이곳저곳 옮기며 사는 유목민족이 있습니다.
사해 북쪽 동굴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 소년이 돌을 던지니까 쨍그랑 단지 깨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 안에 항아리가 있었습니다. 항아리 10개중에 9개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10번째 항아리에는 가죽으로 된 두루말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실망해서 집에 매달아 놓았습니다. 소년은 그 가죽으로 신발 끈을 만들까 했습니다.
그러나 신발 끈으로 적당치 않은 것 같아 그냥 방치해 두었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귀한 '사해사본' 성경사본이었습니다. 이 땅에 있는 가장 오래되고, 권위있는 성경사본이 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치를 모른 사람은 신발 끈 정도로 생각합니다. 30년 연구가가 20년 동안 이사야 6장을 번역 완성합니다. 우리의 성경과 비교해 보면 99.9%가 들어 맞습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얼마나 귀하게 생각합니까?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얼마나 인식합니까?
주일날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등산 못 가고, 예식장 못 가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게 그렇게 억울합니까? 가치를 모르는 자는 앞을 못 보는 소경이나 다름없습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귀머거리나 다름없습니다.
두 번째로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서 자기의 소중한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는 결단이 있어야합니다.
귀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덜 귀한 것을 버려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이것을 잘 합니다. 장난감 가지고 놀다가 더 좋은 것을 주면 지금껏 가지고 놀았던 것을 과감하게 버립니다.
주님을 얻기 위해서 어쩌면 세상을 버려야 할지 모릅니다. 부모, 친척, 남편, 아내 버려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결과 다 얻게 되고 정말 좋은 것을 얻게 됩니다. 기독교 신앙은 떠나는 것으로 시작하며 버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신앙이란, 첫째로 자기 자신을 바로 깨닫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으로 받아드려야 합니다.
두 번째로 자기 자신의 능력을 깨닫는 것입니다.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무능,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율법은 구원 조건이 아닙니다. 구원받음에 감사해서 자녀로서 마땅히 지키는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계시한 것입니다. 참으로 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입니다. 문제는 율법을 우리가 온전히 지킬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루터와 같이 율법적 고민이 없이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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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주님의 영광과 말씀과 치유의 도구로 쓰임받고 열매 맺게 하소서 샬롬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신 말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