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에게 용서를 구함 / 엄기철
경칩(驚蟄)이 코앞이다. 월동을 위하여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기지개를 펴고 개울 밖으로 나올 때가 되었다.
개울에서 개구리 알이 보이면 며칠이 지나 올챙이가 생긴다. 재미삼아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노라면 햇살에 등이 따습다는 느낌이 든다. 차츰 뒷다리도 나오는 올챙이를 보고는 개구리가 된다는 자연학습 일기도 썼다.
봄이 오면 산골소녀들은 언니들이랑 들에 나가 달래나 냉이를 캤고 나는 동네 형을 따라 연을 날리는 재미에 배고픈 줄도 몰랐다.
그때 우리 초등학교에서 가까운 마을 회관 뒷집에 사는 젊은 부인은 목에 두터운 수건을 감고 다녔는데 ‘연주창’이라는 만성 종기를 앓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 병을 나으려고 산 청개구리를 잡아 불에 구워 가루로 빻아서 얼굴과 목에 발랐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청정자연에서만 서식하는 개구리는 종류도 다양하다. 단백질 함량이 풍부하다는 이유로 즙이나 엑기스를 내어 판매하기도 한다. 약재로 열창이나 빈혈, 부종 및 복창에도 효능이 있다고 동의보감에 기록되어 있다지만 주로 식용으로 잡아먹었다.
우리 마을 저지대엔 ‘옥녀봉’자락 안골에서 발원되어 사방으로 동네를 관통하는 제법 큰 개울이 있다. 골짜기마다 작은 도랑이 많아 합류된 물은 남한강 실개천으로 유입되었는데 도랑마다 많은 식용개구리들이 서식했다.
겨울엔 마을마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개구리잡기에 부산을 떨었다. 산골에서 딱히 생선이나 고기를 접할 기회가 없으니 개구리가 그만큼 영양재료였다. 그렇게 잡은 개구리에 무를 듬성듬성 썰어놓고 고추장을 풀어 끓이면 둘이 먹다 둘 다 죽어도 모를 매운탕이다. 비위가 약했던 나는 먹는 즐거움보다는 개구리 잡는 재미에 휩싸여 어울렸다.
물속에 잠긴 바위 밑에 지렛대를 넣고 들썩이면 잠자던 개구리가 놀라서 물 밖으로 뛰쳐나온다. 뛰쳐나왔다가 이마에 닿는 강추위와 사람들의 함성에 놀라 허둥거리면서 물갈퀴를 휘젓는 개구리를 낚아채면 그만이었다.
빈약한 수놈 개구리보다는 몸속에 알이 꽉 차있는 덩치가 큰 암캐구리가 인기다. 알은 물론이고 살집이 좋아서 먹을 게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암캐구리를 잡아먹은 것은 한 마리만도 수백 마리의 새 생명을 앗아간 셈이다.
여름날은 하교 길에 남한강 자락에서 멱을 감았다,
우리는 자연스레 개구리헤엄을 쳤다. 지금 돌이켜보니 양팔을 휘저으며 두 발을 쭉쭉 뻗던 내 모습이 바위틈에서 놀라 뛰쳐나온 개구리가 살길을 찾기 위해 갈퀴를 휘저으며 몸부림치던 모습과 흡사하단 생각이 든다.
손에 잡힌 개구리가 튀어나온 큰 눈으로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오버랩으로 펼쳐지는데 뒤 늦게 죄를 지었다는 자책에 등 뒤로 소름이 돋는다.
개구리는 생태학적도표에 따라 하위계층으로 분리한다. 알에서 부화되어 올챙이가 된다 해도 봄 가뭄에 대부분 죽는다. 설령 살아난다 해도 뱀이나 기타 상위 포식자들로부터 먹이가 되는 나약한 존재다. 그렇게 버티고 버텨 생명을 부지하고 겨울잠을 자고나서 새봄에 대를 이으려는 본능마저 인간들의 손에 의해 소멸위기에 처하곤 했으니 변명할 말이 없다.
양서류 번식지인 계곡이나 논이 갈수록 사라지고 들에 농약이 뿌려지며 개구리의 개체 수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마치 그 많던 메뚜기가 사라지듯이 언제 우리 곁을 떠날지 모르겠다.
‘정중지와井中之蛙 부지대해不知大海’라고, '우물 속에 사는 개구리는 바다를 말해도 알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내가 개구리를 잡아먹은 수만큼 자연생태계를 파괴했으니 어린 시절 철부지 내 꼴이 우물 안 개구리의 삶이었을까?
아무리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이었다고 한들 그토록 많은 개구리와 메뚜기를 잡아다가 불에 구워먹었다는 사실이 송구할 따름이다.
인간이 저지른 자연파괴와 생태교란으로 지구 온난화가 가증되어 코로나 바이러스 펜데믹 시대가 오고 말았는가?
인간이 마실 수 있는 물을 증명이나 하듯 작은 개울에서도 자유롭게 사는 개구리들인데 이제 어쩔 것인가. 개구리들이여! 사리사욕에 눈이 먼 인간들이 뉘우치고 깨우칠 때까지 부디 용서해 주기 바란다.
반드시 지켜야할 실천이지만 나부터 각성하여 봄 햇살에 꽃봉오리를 내미는 들꽃에게도 따뜻한 마음을 드려야겠다.
2021년 2월 Gallery 秋藝廊에서
사진은 제가 찍은것이 아니고 인터넷에서 퍼왔음을 참고바랍니다
첫댓글 달밤 무논에서 울던 개구리 울음도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 곳을 가야 들을 수 있습니다.
벼이삭 위로 구름처럼 날던 메뚜기떼도 볼 수가 없습니다.
그 곳을 가야 볼 수 있습니다.
거기까지가 우리시대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이 저지른 업이 아닐까 싶어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정자에 앉아 따뜻한 글을 읽으며 몸과 마음을 씻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석야 두 손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셨네요.
어린시절 농촌에서 지내다보니 못된짓을 많이 한게 후회가 되어
경칩을 앞두고 써본 글입니다.
제 글을 읽고 그 시절은 다 그랬다며 너무 미안해하지 말라는
고향친구의 얘기를 들으면서도 웬지 마음은 편치 않네요~ ㅎ
꽃샘추위에 감기 조심하세요. 교수님!